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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722화 (722/1,550)

00722  황제의 마실  =========================================================================

유지웅이 지독한 게임광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게임 아이템에 몇 억, 몇 십억을 지르는 것은 차라리 애교다.

그는 좋아하는 게임 종목을 키우기 위해 사비를 털어 수천 억 원의 대회 상금을 충당하는 등, 일반인이 보기에 쩍 벌어질 정도의 투자를 한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 수천 억 원에서 몇 조 원의 금액은 별 것 아닌 수치다. 취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그가 엄청나게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게 있다. 평범한 사람에서 세계 패왕의 자리에 젊은 나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안다는 냉혈한이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나름 상류층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해방하여 민중의 지지를 얻어 합리적으로 스팟 필드 이권을 챙기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즐거움까지 누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꾸몄다면, 앞뒤가 전부 맞아떨어집니다!”

“유지웅 회장이 가진 냉혹함이라면 그러고도 남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국민의 안위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없겠죠.”

“해외로 쫓겨난 전대 국회의원들 전원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도 유지웅 회장이 뒤에서 손을 쓴 거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인위적인 개입이 없고서야 그 많은 사람들이 전원 사망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지웅 음모론을 주장했다. 황 실장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듣기만 했다.

처음 유지웅을 만났을 때 기억이 났다. 그때 그는 막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앱서버였다.

당시 황 실장은 그를 우연한 행운으로 벼락출세한 젊은이라 우습게 여기고, 그만 결례를 저질렀다.

―이만하면 회장님께 충분히 예의를 차린 것 같은데요? 내가 뭘 더 해드려야 하죠?

일성그룹을 이끌어가는 분이시니 그 분 앞에서 조금만 조심해달라는 말에 그는 진지한 일침을 날렸다. 당시 황 실장은 매우 화가 났지만 어디 두고 보자는 식으로 참았다.

결과적으로 참기를 잘했다. 유지웅은 당시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싶었으니까. 만약 자신이 참지 않았다면, 혹은 유지웅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지금 자신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짓거나, 아니면 해외로 도주한 전대 국회의원들처럼 의문의 사고사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모골이 송연했다.

“만약 그 분이 게임을 즐기듯이 지금 아프리카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거라면, 그 목적은 뭐겠나?”

“어떤 의미이신지……?”

팀원들은 언뜻 이해를 하지 못했다. 유지웅이 아프리카에 개입한 것은 스팟 필드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한 정화 작업이라고 이미 결론이 났다. 여기에 그가 이 상황을 게임처럼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목적이 뭐냐고 또 물어보니 의아했던 것이다.

“스팟 필드가 아닌, 게임을 즐긴다는 한에서 그 목적이 무엇이겠냐는 말이네. 게이머로서의 목적이 있을 것 아닌가?”

아, 하고 팀원들은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그렇다. 어떤 게임이든 간에 목적이 있다. 보통은 목적이 아닌 미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략 시뮬레이션에서는 상대방의 유닛, 혹은 빌딩을 모두 제압해서 승리하는 것이고, AOS 계열에서는 상대방 진지 최후방에 있는 주요 건물을 먼저 부수는 것이다. RPG 게임은 올바른 스토리의 진행을 겪어나가는 것이고.

‘유지웅 회장’이 아닌 ‘게이머 유지웅’으로서, 아프리카에서 활개 치는 목적은 무엇일까?

민중의 해방? 모든 혈맹의 붕괴? 아니면 아프리카 전역을 제압하는 것?

그가 게이머로서 스스로에게 어떤 미션을 부과했는지에 따라 그의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동 예측을 최대한 근접하게 산출하는 것만이 기업의 행보를 결정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유지웅이 게임처럼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제일 처음 제기한 이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최근 3년 간 유지웅 회장이 즐긴 MMORPG와 싱글 RPG 게임과 게임 성적, 주요 캐릭터, 주요 퀘스트 등을 분석하겠습니다.”

“음, 좋아. 그렇게 하면 그 분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게임 미션이 어떤 것인지 추정하기 쉽겠지.”

“MMORPG와 싱글 RPG에 한정해서 분석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유지웅 회장이 플레이한 게임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분석 대상에 넣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대로 시행하게.”

“전문 분석가 외에 게임 고급 개발자들을 모아놓고 자문을 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게임이라면 그들이 더욱 잘 알 테니까요. 기왕이면 유지웅 회장이 플레이한 게임을 개발한 사람들이 좋겠습니다.”

“맞는 말일세. 그들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 테니. 즉각 그리 시행하게.”

“예!”

“자자.”

황 실장은 가볍게 박수를 짝짝 쳤다. 그룹 전략기획실 팀원들은 긴장해서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는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입을 떼었다.

“알다시피 우리 일성그룹은 그 분의 결정으로 국내 결정체 정제 산업 진출을 금지 당했다. 매우 뼈아픈 일이지. 언제 금지가 풀릴지 현재로서는 기약을 못한다.”

“…….”

“미국 스팟 필드, 그 거대한 시장에 진출하려 했지만 미국 기업의 견제를 뚫고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아. 그룹이 총력을 다하고 있으나 5%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달라.”

황 실장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어렸다.

“아프리카 스팟 필드는 무주공산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 기업이 얼마든지 터를 잡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제2의 스팟 필드에 형성될 결정체 정제, 유통 시장이 얼마나 거대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아.”

“…….”

“그 거대한 시장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그 분의 행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겠지?”

“예.”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일일세. 모두 최선을 다해주게.”

“알겠습니다!”

*  *  *

“A3가 있으니까 좋고 편하네. 처음에는 적어도 몇 달 이상 아프리카 오지에서 지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 미국에 못 가는 게 아쉽지만, 서울에서 휴식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유지웅이 이끄는 미국 특수공격대는 일주일은 아프리카에서, 일주일은 서울에서 지내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서울에서 지내는 것은 일종의 휴가였다.

“싸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휴식입니다.”

유지웅은 처음부터 그렇게 확고한 방침을 세웠다. 초음속 제트기인 A3가 있으니까 아프리카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금방이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A3가 있는 공항까지 몰래 와야 한다는 게 오히려 어려웠다.

“그런데 공대장님, 이제 슬슬 신 바츠 연합과 합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주일 간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아프리카에 돌아온 미 특수공격대는 그렇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유지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츠 연합은 바츠 연합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뭘 우려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신 바츠 연합은 구 바츠 연합과는 다릅니다. 연합수장 바츠도 한 번 수뇌부 통제에 실패한 만큼 이번에는 신중하게 연합을 다스리고 있다고 합니다.”

구 연합 수뇌부와 달리 바츠는 거대한 이권 속에서도 조금도 타락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거대한 승리 속에서도 처음 연합을 결성한 목적을 잊지 않았다.

그의 단점이라면 연합 수뇌부가 타락하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뿐이다. 이미 뼈아픈 경험을 한 그는 신 연합을 다스리는데 있어 조금의 빈틈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츠가 오리지널 내복단, 안티 블러드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지웅은 바츠 연합과 접촉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원들은 그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이상했다. 지금의 바츠 연합이라면 충분히 믿을 만한데, 어째서 그는 거부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바츠 연합의 타락을 정확하게 예상했어.’

바츠 연합과 합류하자는 의견은 구 연합 시절에도 나왔다. 그러나 유지웅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바로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의 바츠 연합이라면 적어도 혈맹 하나 정도는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때에도 그들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혈맹으로 전락할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합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츠 연합은 정확히 유지웅의 예언대로, 이권 앞에서 수뇌부가 다툼을 벌이다가 무너졌다.

공격대원들이 놀랐던 것은 유지웅이 외부의 조언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었다. 유지웅은 언제나 공격대와 함께 움직였고, 사적인 통화가 아니고서는 통신을 항상 공유했다.

유지웅은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신 연합은 구 연합과 다르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 때문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저희도 알 수 있나요?”

“신 연합은 명분을 지닌 거대 집단입니다. 용맹과 정의를 상징하는 소수 정예인 우리와는 반대죠. 우리가 연합에 들어가면 바츠는 원하지 않아도 그 휘하 인물들이 우리를 흡수해서 서열을 확고히 하고자 할 겁니다.”

“…….”

“그 대립 구도가 자칫 연합 전체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게 진짜 중요한 이유죠.”

유지웅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저의 존재입니다.”

“공대장님이야 분장을 하고, 앱서버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아시아인이라는 것은 속이지 못해요. 흑인으로만 구성된 우리 팀에 아시아인이 섞여 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의심의 불씨를 낳습니다. 최악의 경우 제 진짜 정체가 알려지면, 아프리카를 둘러싼 이 모든 분쟁을 제가 뒤에서 조종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요.”

장엄한 서사 스토리가 있는 RPG 게임을 많이 해봤던 유지웅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일과 비슷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게임도 여러 번 해봤다.

게임하듯이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사 게임을 했던 경험이 지금 아프리카의 문제를 헤쳐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유지웅은 매번 최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끊임없이 거대 혈맹의 눈을 붙잡아두고, 자극하고, 그들이 신 바츠 연합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중이 들고 일어날 용기를 심어줘야 합니다. 자리를 잡은 바츠 연합이 봉기한 민중과 손을 잡고, 그들 스스로가 혈맹을 몰아내고 평화와 질서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대원들은 진지한 얼굴로 들었다. 유지웅은 들뜬 기분에 심취한 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후 우리는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조용히 사라져야 합니다.”

“그게 멋있으니까요?”

“당연히 그렇……가 아니라! 그래야 아프리카의 질서가 바로 잡히니까요!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도 우리의 존재가 남아 있으면 혼란만 더 커질 뿐입니다!”

유지웅은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는 장갑을 끼며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대원들이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역시…… 맞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분, 지금 게임을 즐기듯이 임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와, 무섭다. 이 모든 게 게임이라니…….”

“나도 솔직히 소름끼치긴 했는데, 그래도 이만큼 아프리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 저 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까지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나?”

유지웅이 들었으면 억울할 것이다. 그는 단지 게임을 했던 경험을 적용해서 헤쳐 나가고 있을 뿐인데.

그렇게 오해는 커져만 간다.

============================ 작품 후기 ============================

"최악의 경우 제 진짜 정체가 알려지면, 아프리카를 둘러싼 이 모든 분쟁을 제가 뒤에서 조종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요."

"어, 아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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