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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786화 (786/1,550)

00786  %3C프리시즌 딜러편%3E 이래도 천민같아?  =========================================================================

“여기가 사무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김 비서.”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제가 다 송구합니다.”

“……그래도 저보다 한참 연장자이신데 그럴 수는 없죠.”

“직장에서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직급 아니겠습니까?”

“…… 정 원한다면 차차 노력해볼게요.”

하루아침에 신입이 들어왔다. 김기영을 비롯한 두 비서는 신입이 들어온다는 것에 기뻐했다가, 그 신입이 비서실장인 김기영보다 열 살 넘게 나이가 많은 것에 좌절했다. 김기영이 30대인 것에 비해 김범석은 40줄이 훌쩍 넘은 것이다.

김범석은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김기영에게 깍듯이 대했다. 상사에 대한 예절과 존경이 아주 그냥 몸에 양념처럼 배여 있었다.

두 선임 비서는 김범석과 직급이 같은 것을 차라리 편안하게 여겼다. 열 살도 넘게 차이 나는 양반한테 상사 취급을 받는 거 영 적응이 안 된다.

“저희들은 김 비서님과 직급이 같으니까 편안하게 대하십시오.”

“저도 그게 편합니다. 말 편하게 낮춰주세요.”

“알았네. 그리 하지. 젊은 사람들이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김범석은 바로 배를 내밀며 으스대듯이 말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두 비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참 보통 인연이 아니지 않은가? 전 직장도 같고 현 직장도 같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예. 김 비서님.”

“김 비서님이 뭔가. 그냥 형님이라고 하게. 하하하!”

김기영은 멀리 떨어져서 다소 불편한 눈으로 바라봤다. 젊은 사람들이 시원시원해서, 라는 말이 왠지 자신을 겨냥한 것처럼 들렸다. 나이 어린 상사라는 점을 은근히 비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만약 김범석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상사 대접을 해주고 있다는 걸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자, 그럼 신입사원도 들어왔고 하니 오늘은 축하파티 겸 회식을…….”

“제가 사겠습니다, 실장님!”

김범석은 한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무슨 천진난만한 신입사원의 패기 넘치는 발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김기영은 심장이 몹시 안 좋았다. 아니, 당신 연배를 생각하라고! 아무리 신입사원이라지만 그건 아니잖아!

“그럴 필요 없어요, 김 비서. 회식 같은 것은 경비 처리를 하면 되니…….”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실장님!”

“비싼 덴가 보네요. 하지만 그 정도야…….”

“아이구, 어떻게 하늘같으신 회장님 돈을 그런 곳에 허투루 쓸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 돈은 나중에 정규 회식을 할 때나 쓰고,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자신만만한 모습에 김기영은 문득 부러운 마음 반 울적한 마음 반이 들었다.

‘8조 원…….’

김범석이 받을 8조 원을 생각하니(아직 받은 줄은 모르고 있다) 부러워서 배가 아팠다. 원래 직장에서 동료 연봉 같은 것을 가지고 부러워하면 안 되는데, 8조 원이 어디 한두 푼 하는 돈인가.

연봉이 200억으로 오르고 세상이 달라 보였으나, 하늘 위에는 더 높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자자,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김범석은 신이 나서 두 동료와 한 명의 상사를 모시고 자신이 잘 아는 고급 술집으로 향했다. 덩치 좋은 네 명의 경호원이 거리를 두고 그들을 경호했다. 김범석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경호원이다. 그는 몸보신 하나는 끔찍하게 여긴다.

룸을 하나 잡아놓고 김범석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주문했다. 위스키, 샴페인, 와인, 보드카 등등 술이 종류별로 들어왔다. 김기영은 저게 다 얼마지 하는 걱정보다 저걸 과연 다 마실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제가 먼저 한 곡 뽑겠습니다!”

김범석은 신명이 나서 노래를 넣었다. 마이크를 쥐고 무대에 올랐다. 잔잔한 트로트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다.

간만에 까마득한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내고 있어서 미안하긴 한데, 김기영 입장에서는 직장 상사를 모시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거 설마 템버린을 쳐야 되는 건 아니지?

“실장님도 한 곡 하시죠!”

“아, 네. 그래요.”

“번호만 말씀하세요. 아니면 18번 곡 말씀해주시면 제가 찾아서 넣겠습니다.”

“어, 음……. 말리꽃?”

“오오! 역시 신세대다우십니다!”

리모컨을 조종해서 순식간에 노래를 찾아내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게, 본인이 더 신이 나 보인다. 김기영은 다소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

“우와아아! 역시 실장님! 최곱니다!”

김기영은 부담 만땅인 얼굴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노래 부르는 내내 김범석이 두 팔로 율동을 하고, 간간이 탬버린으로 추임새를 넣고, 노래가 끝나자 점수에 호들갑을 떨었다. 사람 진짜 부담스럽게.

생긴 거나 경력으로 보면 까마득한 직장 상사인데, 유지웅이 자신을 실장으로 임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리 되다니…….

다른 두 부하 직원도 어색하긴 했지만 술이 들어가고 노래도 하고, 아가씨들도 부르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꽤 자연스러워졌다.

“제가 실장님께 양해를 구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회장님께서 일성 그룹 비자금 스캔들에 관해서 저한테 일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실장님 지휘를 벗어나 제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봐야 할 듯합니다.”

“별 걸 다 신경 쓰시네요. 회장님 지시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감사합니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김범석은 두 손으로 정중하게 술을 따랐다. 많이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잃지 않는다. 김기영은 이제야 그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전형적인 중간 관리자형 인물이다. 직장에서 위아래 인간관계가 철저하게 그어져 있는.

“그럼 제가 맡고 있는 업무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일상 업무로 복귀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도 지금 따로 추진하는 일이 있어서…… 김 비서가 맡은 업무 끝내고 천천히 복귀해도 괜찮아요.”

“실례지만 어떤 업무를 진행 중이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김포 공항을 매입해서 저택을 지으려고 한다…… 라는 말을 해도 괜찮은지 김기영은 순간 고민했다.

‘아참. 어차피 이젠 부하 직원이지.’

그러고 보니 한 배를 탄 사이 아닌가? 김기영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얼마 전에 한국공항공사 박철준 이사가 승무원한테 술병 집어던져서 다치게 한 거 기억하시죠?”

“네. 술병회항으로 유명한 일 아닙니까.”

김범석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술병회항이 김기영이 진행 중인 업무랑 무슨 상관이지?

“언론과 권력층에서 그 사건을 조용히 묻으려고 해서 내가 지금 피해자를 설득해서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작업 중이에요. 이미 경찰에 있는 친구 도움도 받고 있고요. 박철준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당하게 만드는 게 일단 1차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게 업무와 무슨 상관인지…….”

“김포공항을 매입할 겁니다. 그걸 위한 밑작업이죠.”

“김포공항을요?”

“네, 거기에 회장님이 거주하실 저택을 지어야 해서요. 회장님께서 집에 활주로가 있으면 하셨거든요.”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중간까지는 갸웃거리며 듣고 있던 김범석은 최종 목적을 듣자 감격해서 몸을 떨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영락없이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이다. 김기영은 문득 저 얼굴에서 주름만 지우면 그래도 부하 직원으로서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세상에! 활주로가 있는 대저택이라니! 김포공항을 매입하신다니! 회장님의 포부도 대단하시고, 실장님의 치밀한 계획도 매우 놀랍습니다!”

“아아, 별 거 아니에요.”

“저도 돕겠습니다!”

“김 비서는 일성 비자금 스캔들을 건드려야 하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제가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업무를 묶어서 한 번에 처리하면 시너지 효과도 더 클 겁니다!”

“이 두 가지를 묶어서 처리한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네! 박철준 그 친구, 이형준이 조카입니다!”

‘전 회장님’은 어느새 ‘이형준이’로 격하되었지만, 사소한 건 일단 넘어가자.

김기영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물었다.

“박철준 이사가 이형준 회장 조카라고요?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말 박철준 이사가 이형준 조카라면 김기영이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김범석은 저리 자신만만하게 조카라고 단언하는 것일까. 설마?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박철준이, 이형준이 친동생 이재준이가 남 몰래 낳은 사생아거든요. 오너 일가에서도 쉬쉬하고 있는 비밀이죠.”

김기영은 술기운이 확 가신 얼굴로 말했다.

“바로 기사 띄워야겠네요.”

“맡겨 주십시오!”

*  *  *

김범석은 이형준 회장의 측근으로서 182조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관리했다. 이형준이 그런 큰일을 맡긴 것은 김범석이 대단히 유능해서는 아니었다. 물론 김범석은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으나, 그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보고 비자금 관리를 맡긴 것이다.

김범석은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하다. 임팩트는 후자에 두면 된다. 즉 강자에 매우, 아주, 몹시 약하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룰을 따른다.

그리고 영리하다. 김범석은 일성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성이 숨만 후 하고 불어도 자신은 파리처럼 날아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강자에 약하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정도로 영리하며, 적당히 비자금 관리 능력도 있는 인물. 배신의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그는 비자금 관리처럼 지저분한 일을 맡기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는 일성그룹의 비자금에 관련된 물적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증거를 근시일 안에 검찰에 보내 고발을 할 생각입니다. 지금 밝힐 수 있는 것은 비자금 총액 규모가 182조 원에 달한다는 것이며, 이는 제가 알고 있는 비자금에 지나지 않는다는…….」

TV에 당당히 나와 일성의 비리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황 실장은 사색이 된 채 고개를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 당장 골프채가 날아와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아니, 차라리 골프채라도 날아왔으면 했다. 차라리 실컷 얻어맞으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형준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부하 직원을 두들겨 패는 것은 전대 회장이나 그랬지, 그는 대기업의 오너로서 최소한의 품위는 지켰다.

“실수군, 실수였어.”

“회장님.”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야. 김범석이라면 그럴 인간이라는 걸 더 빨리 알아야 했어. 이건 내 실수네.”

김범석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다. 그 점을 믿고, 배반의 우려가 없어 비자금 관리 책임자로 썼다. 하지만 일성보다 더 힘쎈 강자가 나타나 먹이를 흔들자 냉큼 그쪽으로 붙었다.

이 회장이 간과한 것은, 이렇게 일성을 물 먹일 수 있는 개인이 나타날 가능성을 놓친 것이다.

근데 이건 불가항력 아닌가? 레드 몹을 한 방에 때려잡는 근딜이 나타날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겠어? 귀신이라 해도 그런 건 모를 것이다.

============================ 작품 후기 ============================

범석씨 일 년 이자가 기영씨 일 년 연봉의 열 배가 넘는다는 웃픈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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