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796화 (796/1,550)

00796  %3C프리시즌 딜러편%3E 테러리스트? 아니죠  =========================================================================

“시작합니다.”

정복을 입은 여성 딜러가 게임 시작을 알렸다. 칠드그린은 적당한 긴장감과 경계심을 담고 유지웅을 바라봤다. 호기심도 적절하게 섞었다.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담하게 카지노를 드나들까 하는 그런 표정. 물론 전부 계산된 연극이었다.

“한국에는 여행 오셨나 봐요?”

딜러가 돌리는 카드를 받으며 유지웅이 물었다. 칠드그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여행은 아니고, 업무차 왔습니다. 그래도 반쯤 휴가 온 기분을 내고 있어요.”

“업무요?”

“예. 취재해야 할 인물이 있어서요. CNN 경제부 기자입니다.”

“……취재?”

유지웅은 잠깐이나마 멈칫했다. 칠드그린은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왜 취재라는 말에 저런 반응을 보이지?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

‘이상하다? 내가 과거로 와서 역사가 바뀌었나?’

한편 유지웅은 가벼운 혼란에 빠졌다. 과거로 왔더니 세상이 바뀌었더라, 하는 그런 전개인가? 칠드그린이 CNN 소속 기자라니? 이 무슨 복날 브라우니 비늘 벗기는 소리야?

“참,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바드라고 합니다.”

“바, 바드라고요?”

“……예,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그렇게 특이한 이름은 아닐 텐데, 하며 칠드그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지웅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고 힘겨워했다. 바드라는 이름에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이 양반이! 놀랐잖아!’

아무래도 신분을 감춘 잠행 뭐 그런 것인가 보다. 유지웅은 역시 과거가 바뀌지 않았군, 하고 속으로 흡족해하며 딜러가 재차 던져 주는 카드를 받았다.

“저는 유지웅이라고 해요.”

“알고 있습니다.”

“몰랐다고 하면 이상했을 거예요.”

“지금 세계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핫 아이콘인데 제가 모를 수가 있나요. 오천 배팅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제가 얼마나 유명하죠? 오천 받고, 다시 오천 배팅하죠.”

“아주 유명하시죠. 시골 마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테러리스트라서요?”

유지웅은 카드를 정리하며 피식 웃었다.

어째서일까. 칠드그린은 그 짧은 미소에서 묘한 서늘함을 느꼈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 정도는 상관없다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무심함일까.

어느 쪽이든 간에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

‘자기가 지닌 힘의 크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가늠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악관에서는 유지웅이 무력만 믿고 설치는 애송이다, 아니다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으리라.

분명한 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천방지축 애송이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입가를 스치고 지나간 미소에서 칠드그린은 그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쉬운 상대는 아니다. 미국은 그를 대하는 태도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역시 직접 온 보람이 있어.’

덤으로 파텍필립 블루세이버도 따고.

이상한 사심이 제법 큰 비중으로 이번 출장을 합리화하지만, 뭐 그 정도는 넘어가주자.

“투 페어.”

“하하, 트리플입니다.”

“어, 졌네?”

칠드그린은 겉으로는 정중한 웃음을, 속으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3연승이다!’

고작 3번을 이겼을 뿐인데 벌써 30만 달러를 땄다. 딴돈이 커질수록 판돈도 커지고, 그럼으로 인해 따는 돈이 더욱 커지는 선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 페이스대로 간다면 제한 시간 안에 파텍필립 블루세이버를 낙찰 받을 돈을 쥘 수 있을 것 같다.

운 좋게 유지웅과 접촉해서 인연도 만들고, 꿈에 그리던 드림 워치도 얻고.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거 아닌가?

‘부통령님 귀여워.’

유지웅은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는 도박을 즐기지 않는 칠드그린의 성정을 안다. 그런 양반이 포커룸까지 들어온 것은 아마 오늘 경매에 나오는 파텍필립 블루세이버 때문이리라.

전생에서도 칠드그린이 시계라면 죽을 못 쓰는 애호가 아니었던가.

‘부통령님, 임무는 뒷전이시죠? 지금?’

EIS 부국장이나 되는 양반이 뭐 때문에 이 먼 한국까지 직접 날아왔겠는가. 다 자신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파악하고, 뭐 겸사겸사 협상의 물꼬도 트고, 그러려고 왔겠지.

‘뜻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으아악! 왜 행운의 신은 날 도와주지 않는 거야!’

유지웅은 이 먼 한국까지 온 빨대를 위해 정말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직접 딴 돈으로 낙찰받은 드림 워치, 뭐 그런 정말 의미 있는 선물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져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칠드그린의 주머니 사정은 뻔하다. 시계를 낙찰 받으려면 적어도 수백만 달러는 잃어줘야 한다.

왜 져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냐고? 그건 바로…….

‘망할! 또 로티플이야!’

벌써 두 번이나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시가 들어왔다. 남들은 평생을 도박판에서 시간을 보내도 한 번 쥘까 말까 한다는 그 꿈의 패다.

그래서 유지웅은 일부러 카드를 바꿔가면서 패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왜 져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지 알겠지?

“하하, 제가 또 이겼군요. 이거 너무 저만 이기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행운의 여신이 붙어 있는 걸 어떡하겠습니까.”

‘저쪽으로 좀 가라고! 이 망할 여신아! 왜 자꾸 내 옆에 붙는 거야!’

“카드를 바꿀까요?”

“그러는 게 좋겠군요.”

칠드그린이 바라보자 여자 딜러는 끄덕이고는 새 카드를 한 벌 꺼내 뜯었다. 그리고 다시 카드를 섞어서 돌렸다.

“풀 하우스입니다.”

“트리플입니다. 제가 또 졌네요.”

‘헉헉! 잘못하면 스트레이트 플래쉬 뜰 뻔했네. 아까 패 바꾸길 잘했어.’

“이거 오늘 귀하의 운을 제가 다 가져가나 봅니다.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거 오늘따라 영 운이 안 따라주네요.”

‘망할 여신아! 저쪽으로 제발 좀 가라고오!’

진짜 져주는 것도 죽을 맛이다. 무슨 카드가 못 나와도 최소 투페어니 져주는 것도 고된다.

“올인하겠습니다.”

이미 걸린 판돈만 합쳐서 500만 달러는 족히 되는 상황이었다. 패를 보고 고심하던 칠드그린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남은 모든 칩을 앞으로 밀었다.

‘승부다!’

이미 경매 오픈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무려 세븐 포카드. 지고 싶어도 절대 질 수가 없는 패 아닌가.

패를 보며 끙끙 앓던 유지웅은 결국 카드를 덮었다.

“다이.”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칠드그린은 씩 웃으며 칩을 모두 가져갔다. 다 합치면 아마 550만 달러는 되리라.

‘이 정도면 충분해!’

상대방 패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지막에 패가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칠드그린은 블루세이버를 낙찰받을 자금을 확보한 것이 기뻤다.

한편 유지웅은…….

‘으악! 깜짝 놀랐잖아! 거기서 올인을 하면 어쩌라고!’

이번에도 로티플로 완성될 삘이라서 열심히 패를 버리고 있었는데 엉겁결에 에이스 포카드가 만들어져 버렸다. 어떡해야 하나 하고 고민 중이었는데 칠드그린이 기습을 해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그 정도면 블루세이버는 충분히 따실 수 있겠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칠드그린의 눈빛에 날카로운 기운이 스쳤다. 아니, 블루세이버를 위해서 포커를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아차렸지? 유지웅에게 자신은 오늘 처음 본, 미국 출신 기자일 텐데?

유지웅은 순간 실수했다 싶었지만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그는 칠드그린의 왼손목을 가리켰다.

“그 시계를 보고 알았습니다.”

“아…….”

칠드그린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 한 마디에서 모든 오해가 눈녹듯이 사라졌다.

“저도 파텍필립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유지웅은 보란 듯이 왼손을 들어서 보여 주었다. 사실 눈썰미 좋은 칠드그린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 부딪치며 얽혔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교류했다.

한편 칠드그린은 조금 불안해졌다.

“혹시 귀하도 경매에 참가하시나요?”

“그러려고 했는데, 오늘은 행운의 여신이 칠……, 아니 바드 기자님께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양보하려고요.”

“이런, 감사합니다. 제가 동양에서 귀인을 만났군요.”

사실 유지웅이 경매에 나서면 칠드그린으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양보한다고 하자 안심이 되었다.

“같이 가실까요? 이것도 인연인데 바드 기자님이 무사히 시계를 따내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영광입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성 딜러는 앉은 자리에서 수백만 달러를 잃고도 화기애애한 두 사람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둘은 경매장소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니 이윽고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의 편의를 위해 통화 종류는 미국 달러로 진행되었다. 시작가는 10만 달러.

“20만.”

“40만.”

“50만.”

“100만.”

호가는 순식간에 100만을 돌파했다. 느긋하게 지켜보던 칠드그린은 여유 있게 경매에 참가했다.

‘블루세이버, 너를 위한 매너 입찰이다!’

“500만.”

순간 경매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이 싸늘해졌다. 500만 달러, 아무리 파텍필립이 명품이라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시계 하나에 무려 50억 원이나 하는 셈이니까.

‘저건 내 것이다!’

칠드그린은 더욱 의기양양했다. 보라, 자신의 한 마디에 압도된 이 분위기를! 이 맛에 부자들이 돈 쓰고 그러고 하는 거구나!

“600만.”

그때였다. 가녀리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얼어붙은 분위기를 대번에 깨뜨렸다. 칠드그린은 사색이 되어 경쟁자 쪽을 바라보다가 윽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유지웅도 얼른 그쪽을 살폈다. 아랍권 여인인가? 온몸을 망토처럼 가리는 검은 아바야를 입고,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늘씬한 여성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싱긋 웃었다. 유지웅은 얼른 칠드그린에게 물었다.

“아는 분이에요? 눈치가…….”

“UAE의 왕족입니다. 왕위 계승 1위 후계자죠.”

“예?”

유지웅은 황당했다.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여자가 어떻게 왕위를 잇는다고 그래? 이 세계,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거지?

“제이크 안슐리제 빈 자예드 알 나얀, 국제결정체투자회사(IACP)의 회장이죠.”

칠드그린은 분개한 표정으로 절망을 삼켰다.

“이 경매는…… 이미 제가 졌습니다.”

그의 전재산은 55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 작품 후기 ============================

여신 : ....저는 쭉 페이커 뒤에 붙어 있었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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