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04 %3C프리시즌 딜러편%3E 에피소드 : 나는 챌린저다 =========================================================================
‘이거 뭐야…….’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
‘헉헉, 좋다! 이거 완전 꽃밭이네!’
좌섹시, 우청순.
좌모델, 우레이싱걸.
그야말로 양손의 끝이다. 정모 참가자들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양쪽에 부스걸들이 나란히 서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생글생글 웃어준다.
키 크고, 늘씬하고, 쭉쭉빵빵 한데다가, 얼굴은 예쁘기까지 하다. 눈이 마주치면 코웃음을 치는 게 아니라 상냥하게 미소를 보내주기까지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정모 참가자는 50명이다. 그리고 부스걸은 100명이다. 그렇다 보니 한 명 당 두 명의 부스걸이 붙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서비스요, 이벤트다.
양손에 모델을 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과연 이런 경험을 살면서 또 겪어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지웅이 트롤급 실력을 가졌다는 것도, 그리고 자기가 잘한다고 착각하는 것 때문에 암 걸릴 것 같았던 기억도, 머릿속에서 깨끗이 잊혀지고 없었다.
“안녕하세요. 롤비군10년차입니다. 어…… 근데 참가자는 이게 다인가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유지웅은 인사말을 하다 말고 휭하니 비어 있는 관중석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와아아!”
“롤비군형님이다!”
“형님 보러 부산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습니다!”
“형님의 쩌는 신컨을 보여주세요!”
“보여줘! 보여줘!”
50명이 아니라 5,000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렁찬 함성이 전시홀을 뒤흔들었다. 어떻게 저 숫자에서 저렇고 크고 아름다운 환호가 나올 수 있을까. 적은 숫자에 실망했던 유지웅은 문득 가슴이 뭉클해져서 마이크를 다시 고쳐 잡았다.
“생각보다 정모 참가 열의가 적어서 살짝 서운했습니다만…… 역시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죠. BJ 롤비군10년차의 방송을 아낌없이 시청해주시고 이렇게 정모까지 먼 발걸음을 해주신 여러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롤비군! 롤비군! 롤비군!
우리의 영원한 탤린저!
뭐래? 저건! 닥쳐!
무슨 탤린저야! 영원한 챌린저지!
아 맞다! 실수! 실수! 인정! 인정!
챌린저! 롤비군! 챌린저! 롤비군!
영원한 우리의 챌린저!
파도 같은 환호소리가 전시홀이 떠나갈 듯이 울렸다.
* * *
“그래, 차라리 소수 정예가 낫지.”
유지웅은 처음 정모 참가 숫자가 너무 적어서 실망했다. 자신의 인지도가 이 정도 밖에 안 되었나 하고 말이다. 역시 2, 3만의 시청자 수는 너무 적었어, 뭐 이렇게.(사실 롤 방송 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한다)
실망감이 없진 않았지만 일단 참가자들의 우렁찬 환호가 그의 마음을 녹였다. 그리고 각 참가자들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리그를 나누어 가볍게 친선게임을 치러 보았다.
그 결과 그는 매우 만족했다.
“이 사람들 최소 마스터급이네. 좋아, 아주 좋아.”
최고 계급은 챌린저. 전국에서 최상위 50명만이 밟을 수 있는 등급이며, 철저한 인원제로 운영된다. 그 바로 아래 등급이 마스터 등급이다. 챌린저만큼은 아니지만 일반 게이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고수들이다.
유지웅이 보기에 정모 참가자들은 최소 마스터급 이상은 되어 보였다. 덕분에 참가자 수가 적다는 섭섭함은 날아갔다.
친선게임 마지막 팀의 경기가 끝나자 그는 마이크를 쥐었다.
“먼저 가볍게 친선게임을 치러봤는데요, 여러분들의 실력은 잘 봤습니다. 본 티어는 모르지만 실력만 봤을 때는 모두 최소 마스터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셨네요.”
‘나 다이아5인데?’
‘나 골드인데?’
‘나 실버인데?’
‘나…… 브론즈인데…….’
다이아, 골드, 실버, 브론즈, 이 순서대로 아래로 내려온다. 즉 이 중에서는 다이아가 가장 높다는 다이아조차 마스터 등급에는 상대도 안 된다.
근데 유지웅은 전부 마스터급 이상의 실력이라며 칭찬을 했다. 이 얼떨떨한 상황에 참가자들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사회 진행을 위해 단상에 오른, 늘씬한 모델이 호들갑스럽게 질문했다.
“어머, 마스터 티어면 굉장히 높은 거 아닌가요?”
“그렇죠. 여기 이 분들은 지금 당장 프로게이머에 진출하셔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대단하세요!”
“사실 처음에는 정모 참가자가 적어서 살짝 실망했거든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실력을 보고 납득했습니다. 자체적으로 최상위 50명만 추려서 참가하신 거군요.”
참가자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아, 이럴 땐 무슨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모르겠어.
유지웅은 다소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좀 더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건 좋지 않아요. 저는 실력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그런 BJ가 아닙니다. 제가 추구한 정모는 실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프로게이머급 최고 실력자들만 모여서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그런 자리는 원하지 않았어요!”
“…….”
“…….”
목에 핏발이 서다시피 힘을 주며 강조하는 모습은 열정이 흘러 넘쳤다. 강의 실력만큼은 진짜다. 이 많은 사람들(부스걸 100명에 참가자 50명이니 적은 건 아니다) 앞에서 전혀 떨지 않고, 제스처가 어색하지 않고,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으니.
다만, 다만, 다만…….
‘이 중에서 님이 제일 못해요!’
‘이 중에서 님이 제일 못하잖아요!’
‘이 중에서 님이 제일 못하…… 정말 그러나?’
참가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유지웅의 진지한 눈빛, 열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서 정체 모를 신뢰를 느꼈다. 믿음이 보였다. 거짓된 경험을 돌아보게 됐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장권재는 문득 생각했다. 시선은 오른쪽에 있는 늘씬한 부스걸의 D컵 가슴에 못 박은 채로.
‘그래, 그 정도로 못하는 사람한테 3만 명의 시청자들이 몰릴 리가 없잖아. 모든 결과에는 그만한 원인이 있는 거야.’
다른 이도 생각했다. 눈은 활짝 웃는 부스걸의 얼굴을 향한 채로. 근데 진짜 예쁜 것 같다.
‘진짜로 챌린저급 고수인데 일부러 방송 재미를 위해서 못하는 척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눈이 리신, 아니 병신이라 못 알아보는 거야.’
그리고 다른 이도 그런 흐름에 동조했다.
‘롤비군님이 우리보고 못한다고 하면 그냥 못하는 거야! 우리가 병신들인 거라고! 눈리신, 손잭스, 뇌문도라고! 우리가 말이야!’
반복 세뇌라는 게 참 희한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저항한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데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어, 정말 그런가?’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정모 참가자들은 다들 처음에는 롤비군이 진짜 게임 더럽게 못하면서 자기가 잘하는 줄 착각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 얼굴을 대하고 그의 강의를 듣다 보니, 사실 그는 엄청난 고수인데 일부러 못하는 척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화려한 부스걸들이 양옆에서 생글거리며 이것저것 사소한 것까지 다 챙겨준다. 이게 바로 믿음의 가장 큰 근원이다.
“저, 사…… 사진 좀 같이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장권재는 황급히 폰카를 꺼냈다. 두 명의 부스걸들이 양쪽에 서며 포즈를 취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향긋한 냄새가 한층 강렬하게 장권재를 자극했다.
찰칵! 찰칵! 찰칵!
‘으흐흐흑! 롤비군님! 앞으로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롤만 잘하는 게 아니라 지갑까지 너그러우세요!’
이미 장권재의 영혼은 입장을 뒤집었다. 그에게 유지웅은 천상계의 절대자요, 지존이었다. 그러니까 게임 실력도.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저 분이 참 장난 없죠. 아주 유명하신 분이세요.”
“어머나, 그러니까 이렇게 사비로 큰 행사도 열고 하시는구나. 그런데 말 되게 재밌게 하신다.”
“하하, 괜찮으시면 내일 제가 아까 말한 그 가게 가보실래요? 제가 살게요.”
“정말이죠?”
“네. 번호 좀 주시겠어요?”
“폰 주세요. 찍어 드릴게요.”
‘롤비군님! 앞으로 영원한 챌린저로 모시겠습니다!’
이상형 모델로부터 전화번호를 따낸 어느 참가자의 마음속에서 이미 챌린저로 굳어졌으며.
“아마 격주에 한 번씩 이런 자리 할 것 같던데요? 소속사에 문의할 때 그런 말씀을 흘리신 걸로 알아요.”
“그럼 참가자분도 다음에 또 나오시는 거네요. 그때도 저희 꼭 불러주시기예요?”
“진짜 내 동생 보는 것 같아서 귀엽다. 되게 착해 보이구.”
“이거 끝나고 기다릴래요? 누나들이 맛있는 거 사줄게.”
‘롤비군님! 으아아아앙!’
남동생이랑 동갑이라며 부스걸 누나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고 애프터마저 확보한 어느 중학생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고.
“음……확실히 마스터급 이상 실력들이신 건 맞는데 역시 아직 많은 게 부족해요. 특히 아까 C팀 경기, 진짜 제가 이런 말은 하기 싫지만 보다가 암 걸릴 뻔했어요.”
“맞아요! C팀 플레이 진짜 답답하더라고요!”
“C팀입니다! 너무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이아1밖에 안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롤비군님이 개인 교습 좀 해주세요!”
“개인 교습을 하기에는 이거 시간이 너무 없고……. C팀은 내일 방송에 꼭 나와요. 보이스 켜고 직접 개인 교습 해줄 테니까.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치, 치사해! 너희들만 개인 교습 받기냐!”
다이아로 구성된 C팀이 그의 가르침을 갈구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정모 공식 행사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만 뒤풀이나 합시다.”
유지웅이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여 명의 직원들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나온 출장 요리였다. 그들은 능숙하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막 조리한 따뜻한 음식과 술, 음료를 차려놓았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그 종류와 음식 가짓수만 해도 천차만별이었다. 보드카, 위스키, 샴페인, 와인 등 비싸 보이는 다양한 술도 테이블에 올랐다.
“부스걸분들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뒤풀이 하는데 혹시 같이 하실래요?”
“어머,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오늘 한 짓만 봐도 저 어린 주최자는 돈이 무척 많아 보인다. 게다가 차려진 음식들도 만한전석이 부럽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고 맛있어 보인다. 이런 자리에 초대를 받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전시홀은 순식간에 대학 엠티 현장처럼 변했다. 부스걸들은 즐겁게 먹고 마시면서도 자신이 담당했던 참가자 양쪽에서 끝까지 이것저것 챙겨 주었다. 흥겹게 뒤풀이에 참가한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프로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오늘 하루 일당만 해도 무려 200만 원이다. 다른 행사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페이가 세다.
당연히 뒤풀이에서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 두면 나중에 또 불러줄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더라도 매너 좋은 청년 재벌에게 잘 보여 둬서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리고 부스걸들의 그런 프로 정신은…….
‘롤비군님 만세다!’
‘우리의 영원한 챌린저!’
51명의 챌린저와 아이들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 * *
―롤비군 정모 후기 봤음? 와, 장난 아니더라. 완전히 다른 세상 정모였음.
―그거 사기 아니었음?
―사기 아님. 참가자들이 인증샷 올렸는데 와 시발 완전 개부럽다.
―헐, 나 지금 보고 옴. 이거 진짜임?
―진짜라 함. 벡스타몰 통째로 빌려서 모델 100명 불러다놓고 행사 했다 함. 무슨 단체 소개팅 같은 분위기였다고 함. 내 친구 놈도 모델 전화번호 따서 다음날 데이트까지 했다던데.
―저도 모델 누나들이 맛있는 거 사줬어요!
처음에는 안 믿었다. 그러나 수십 여 명의 참가자들이 인증샷을 폭풍처럼 올리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모 내내 양옆에 모델 둘을 끼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참가하지 않은 이들은 수없이 공분했다. 챌린저와 아이들에게 분개한 것이 아니라 멍청하게 참가하지 않은 자신의 부족한 믿음에 분노했다.
―롤비군님! 다음 정모는 꼭 참가하겠습니다!
―저도요! 저도 꼭 참가하겠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열렬한 추종자로 변했다. 이제 채팅방에서 롤비군을 까는 글이 올라오면 폭풍 다굴을 맞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추종자 중에서 단연 가장 믿음이 가장 강한 이들을 꼽으라면 1차 정모에 참가한 50명이라 할 수 있다.
“지금보다 실력을 키워야 해! 더! 더! 잘해야 해!”
“이제 마스터 리그 간신히 올랐다! 안 돼! 이 정도로는 부족해!”
“크흑! 롤비군님의 은총에 보답할 길은 실력을 키우는 것뿐이야!”
롤비군 앞에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50명의 아이들은 누구보다 더 이를 갈고 열심히 몰두했다.
그리하여 실력이 일취월장한 이들은 15명의 미성년자를 제외한, 나머지 35명이 전원 프로 구단에 스카웃되는 영예를 안았다고 한다.
* * *
“오늘은 특별히 SSK구단과 타진소드 구단의 경기를 방송하며 해설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롤비군님 개인 방송 안 해요? 아쉽다…….
―앗, 그러고 보니 SSK구단과 타진소드, 프로 선수 전원 롤비군님 제자 아닌가요?
“맞습니다. 양 팀 선수 전원이 저한테 사사했죠. 참 지지리도 못하는 애들이었는데 어느새 어엿한 프로게이머가 되어 롤드컵 진출 티켓을 놓고 최종 결전을 벌이고 있네요. 감회가 참으로 새롭습니다.”
나름 뭉클했는지 유지웅은 슬쩍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채팅창에서는 칭찬과 축하 등이 쏟아졌다.
“권재, 이 놈도 챌린저 9위에서 진짜 순위 올라갈 생각을 안 해서 제가 여러모로 속이 많이 썩어들어갔는데……. 이제는 어엿한 챌린저 1위죠. 스승으로서 자랑스럽네요.”
―테이커 선수(장권재의 계정 이름)가 잘하긴 해도 그래도 롤비군님 한테는 안 되죠!
―그럼요! 롤비군님이야말로 영원한 챌린저 0위이신 걸요!
국내에 단 50명밖에 없다는 챌린저. 그 중 1위를 포함한 45명이 롤비군10년차의 제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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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트롤(부제-협곡의 사부)
게임 방송 에피소드는 일단 여기까지고요, 다음 편부터는 다시 본편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프리시즌 딜러편 계속 이어집니다ㅋㅋ
아이고 본편이라 하니까 저도 헷갈리네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