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28 %3C프리시즌 딜러편%3E왕을 쓰러트릴 자 =========================================================================
유지웅의 정상 회담 제안은 혼란스럽던 중국의 열기를 잠시 잠재우는 원인이 되었다. 정확히는 그 혼돈의 열기를 바다 건너 미국 땅으로 옮겼다고 볼 수 있으리라.
한창 대아시아 정책을 수립하느라 정신이 없던 백악관은 또 다른 폭탄을 안은 셈이다.
“정상 회담? 이 시기에?”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 중국의 이권에 관해 교통정리를 하자는 것은 아닐 테고…….”
“한국 입장에서는 UN가입국이 아닌 지금 이 시기에 최대한 많은 약탈을 해두는 게 유리합니다. 새삼 협상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중국이 아닌 다른 문제로?”
“…….”
누군가가 내놓은 가설에 빌클런 대통령은 흠칫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중국이면 낫다. 혹시 일본이나 다른 지역에 벌써부터 손을 댄 건 아니겠지?
‘중국 다음에 일본을 좀 찝쩍거려 볼까 하는데, 그래도 미국에 일본 지분도 있고 해서 사전 협의를 좀 하려고 한다.’
빌클런은 문득 떠오른 상상에 가벼운 오한이 들었다. 부디 그런 것만큼은 아니기를 바란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쨌거나 그자가 진중하게 대화를 하자는 것은 처음 아닙니까?”
“그러나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미합중국의 오랜 독트린입니다.”
테러와 협상은 없다. 그것은 미국의 굳건한 자존심이다. 협상을 시작하는 순간 협상 그 자체를 노린 테러가 우후죽순으로 시작되어 감당이 불가능해진다.
미합중국이 테러에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은 오로지 철저한 보복, 그것뿐이다.
“그러나 이미 그 자는 일개 테러리스트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그 자를 단순한 테러범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미국 내에서는 런던 참사를 ‘테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또 유지웅을 단순한 테러범으로는 보지 않는 게 요즘 여론의 대세다. 테러범보다는 한국을 장악한 냉혹한 독재자, 그런 식으로 다시금 정의하려는 관점이 강세였다.
그가 한 짓은 테러, 하지만 그는 테러범으로 보긴 어렵다. 미묘하지만 유지웅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이 변화의 과도기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그 자를 단순한 테러범이 아닌, 동아시아의 테러지원국 수장으로 격상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그거야말로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 자가 한국 내에서 어떤 공식적인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니까요. 그 자는 한국 내에서 일개 시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 자는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공식적인 지위를 갖지 않았을 뿐, 이미 자기 입맛대로 한국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죠. 민주국가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수많은 국민들이 열렬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 자 때문에 한국이 UN에서 탈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 이상의 당근이 주어지기 때문이었죠. 지금까지 한국을 장악한 독재자 중에서 그자만큼 채찍과 당근을 절묘하게 사용한 자도 없을 겁니다.”
“이번 정상 회담을 인정하면 그자를 일개 테러리스트가 아닌 국가 수반급 인물로 간접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회담, 아니 협상 테이블을 치워야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설령 간접 인정하는 셈이 있더라도 그 자와 협상 창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번 회담은 반드시 성사해야 합니다!”
탁!
그때였다. 설전이 오고 가는 찰나 빌클런 대통령이 갑자기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 덕분에 국무 위원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고 대통령에게 눈을 돌렸다.
‘이거구나!’
대통령의 눈은 흥분으로 차 있었다. 위원들의 설전에서 그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 자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 것 같소! 바로 그거요, 그거!”
“각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기 위치를 테러리스트에서 독재자로 격상하는 거요! 우리가 이번 회담을 인정하면 그 자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고!”
위원들은 그제야 머릿속에서 뭔가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군요!”
“이제 이해가 갑니다!”
“설마 중국을 도발했을 때부터 이 모든 게 이미 계산된 시나리오란 말입니까?”
“혹시 UN 강제탈퇴까지도? 한국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어 자기 입맛대로 다루기 위해?”
“……소름이 끼치는군요.”
처음에는 그냥 막무가내인 줄 알았다. 최근 행보에서 그래도 나름 노림수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를 달리 했다. 그러나 지금 완전히 모든 평가를 뒤집게 됐다.
“나는 얼마 전 그 자가 차기 세계 경찰국 수반의 자리를 노린다고 짐작했소. 그래서 미국의 정책 방향의 수정을 검토 중이었소.”
빌클런이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만약 런던 참사, UN탈퇴, 북경 참사와 이번 정상 회담 요청까지 모두 계획된 시나리오라면, 그자가 원하는 게 단지 그것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게 확실하오.”
“…….”
대통령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이 위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통령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좀 더 힘이 실려 있었다.
“이번 회담을 세계가 주시하고 있소. 만약 내가 응한다면 여러분들이 말한 대로 우리 미합중국이 그자를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닌, 독재 권력을 지닌 국가수반으로 간접 인정하는 셈이 되오. 그러나!”
“…….”
“그 자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하는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반드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 자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어디까지 가고자 하는지 그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소. 설령 그자와 친구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동의합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회담에 응해야 합니다.”
만장일치로 결론이 났고, 미국은 곧 유지웅과 ‘정상 회담’을 가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발표문에 ‘정상 회담’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대변인의 발표를 본 모든 이들은 이것이 정상 회담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워싱턴 정가는 기름을 끼얹은 듯이 활활 타올랐다. 공화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백악관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의 정상회담 수락? 이는 고도의 정치적인 결정?
―테러리스트에서 독재자로 지위 격상! 전문가가 바라본 백악관의 입장 변화!
당연히 얌전하게 일이 흘러가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대대적으로 항의하고 나섰고, 유럽에서 가두시위가 줄을 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는 살인자다! 살인자와 대통령이 회담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빌클런 대통령은 물러가라!”
“민주당 내각은 전원 사퇴하라! 사퇴하라!”
미국에서도 시위가 줄을 이었다. 유지웅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매일같이 들고 일어나며 유지웅을 본 딴 인형을 불태우는 등 퍼포먼스를 벌였다.
“회담 수락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는 이미 강력한 무력을 지닌 국가수반이다! 언제까지 그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수도 없다!”
“회담 반대론자들은 지금 한국 암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미국의 국부가 소모되고 있는지 알기나 하냐!”
반대를 위한 시위가 줄을 서고, 그 시위를 반대하기 위한 시위가 다시 맞불을 놓았다. 미국 정계, 여론은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당당히 유지웅이 탄 전용기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는 그의 입국을 반대하는 자들, 그리고 반대 세력을 반대하기 위한 자들이 모여서 숨 막힐 듯한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무슨 사단이 나도 제대로 날 분위기인지라 미국은 수많은 경찰 인력을 배치해서 철저히 예방에 신경 썼다. 어떤 미친 이가 유지웅에게 총알이라도 갈기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유지웅이 모습을 보였다.
“저 사람이야?”
“생각보다 어린데?”
“19살이라잖아. 당연히 어리겠지.”
“저렇게 어린데 벌써부터 그리 잔혹하면 나중에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유지웅한테 물건이라도 던질 듯이 굴던 이들은 막상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경비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의전 차량에 오르는 모습이 익숙한 듯이 당당하다.
그 자연스러움에서 은근히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그리고 그가 영국과 북경에서 벌인 기억이 겹치니, 자연히 호랑이 앞의 개구리처럼 움츠러들게 되었다.
그렇게 유지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당당하게 백악관에 입성했다.
‘이 청년이…….’
빌클런은 뚜벅뚜벅 걸어와 악수를 청하는 유지웅을 홀린 듯이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그를 코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그가 가진 분위기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절제되었고, 세련되었으며, 정밀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직접 만나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기 기분에 취해 막무가내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는 아니다.
둘이 악수를 나누자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빌클런은 그에게 앉기를 권했다.
“회담을 요청했을 때에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그러시겠죠. 저도 미국이 그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치사하다고요?”
정상 회담에서 쓸 법한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빌클런은 단어 선정 때문에 불쾌하기보다는, 뭐 때문에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했다.
“티모, 진짜로 너프 할 겁니까?”
“그게 무슨 말…….”
불현듯 빌클런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을 느꼈다. 그제야 자신이 휴지처럼 구겨 버렸던 보고서가 생각났다. 그 보고서 귀퉁이에 쓰여 있던 바로 그 이름!
‘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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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이번 패치를 없던 걸로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