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36 %3C프리시즌 딜러편%3E왕을 쓰러트릴 자 =========================================================================
“그럼 여러분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맡기겠습니다.”
유지웅이 입을 열자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다소 진정되었다. 사실 시끄럽지는 않았다. 다만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가렌 박사님, 최윤 박사님, 니트로 박사님은 우선적으로 차세대 MD망 구축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통합 결정체 연구 시설 같은 것을 어떻게 운영할지 거시적인 계획을 세워주시고요.”
“네, 넷?”
“통합 결정체 연구 시설이요?”
“네, 크리스탈 밸리 같은 뭐 그런 거요. 그것보다 좀 더 대규모로 만들어 볼 거니까 미리부터 준비 해주시고요.”
세 과학자는 황당했다. 아니, 분명히 이 자리는 블랙 몹 대책 회의가 아니었어? 엉겁결에 스카웃이 되고 말았는데?
“장태준 팀장님은 단기적으로는 제가 어떻게 블랙 몹을 잡아야 할지 구체적인 전술 전략을 세워주시고요. 때려잡는 건 일이 아닌데 도망치면 제가 어찌할 수가 없으니 그 점을 특히 고려하시면 됩니다. 전력 차이는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네?”
듣도 보도 못한, 결정체 10만 이상의 블랙 타입이라는데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니란다. 장태준은 황당했지만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한편 칠드그린은 남 몰래 눈을 빛내고 있었다. 유지웅이 노리는 게 단순히 블랙 몹 사냥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통합 결정체 시설?’
크리스탈 밸리. 실리콘 밸리를 본 따 만든, 미국 서부의 거대한 결정체 첨단 기술 단지다. 아무래도 유지웅은 그와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인 모양이다.
‘크리스탈 밸리보다 대규모라?’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난다. 칠드그린은 과연 이 일이 미국에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칠드그린 의장, 아니 부국장님은…….”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왜 한 번씩 자신을 부를 때 의장이라고 실수를 할까?
“일단 미국 국적의 레지나라는 여류 과학자를 찾아주시고요, 그 다음에는 차후 저를 대신해서 WCO의 사무를 총괄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WCO? 그게 뭡니까?”
“아, 가칭이에요. 세계 결정체 센터, 뭐 그런 의미죠.”
“그러니까 그게 뭡니까?”
“뭐긴요. 바로 여러분들이죠.”
“……?”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누구는 일그러졌고, 누구는 갸우뚱거렸으며, 누구는 살짝 흥분한 듯했고, 또 누구는 흙빛으로 싸늘하게 물들었다.
“저희가 WCO라니요? 그런 이야기는 사전에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만…….”
“그러니까 지금 알려드리고 있잖아요. 제가 세계 결정체 센터라는 세계 기구를 만들 건데, 여러분들의 그 주춧돌이 되어주셔야겠습니다. 전술 담당은 장태준 팀장님이, 기초과학이랑 공학은 세 분 박사님들이, 마지막으로 총괄적인 사무행정은 칠드그린 부국장님이 맡아주시는 거죠.”
칠드그린은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아니, 이게 처녀 귀신 소개팅 하는 소리야?
마치 이미 모두와 합의를 마친 것처럼,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통보하는 태도가 더 기가 찼다.
“저기…… 그 WCO인지 뭔지 저는 들어간다고 결정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만?”
최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가렌이 지원 사격을 했다.
“저 역시 연방 연구소를 맡고 있는 몸이라 타조직에 들어가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1차 예산으로 100조 원쯤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순간 조용히 있던 니트로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재빠르게 일어나서 최윤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렌도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 니트로를 도와 최윤을 제압했다.
“읍! 읍! 읍!”
졸지에 두 노인 과학자들에게 제압당한 최윤은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억센 힘을 뿌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니트로는 늙어서 골골대는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유지웅 회장. 믿고 우리에게 맡겨주시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드리겠소.”
“최 박사도 만족해하고 있군요. 그렇죠?”
“저기, 두 분……. 그렇게 입을 막으면 최윤 박사님이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잖아요.”
“아니아니, 최윤 이 사람이 글쎄 꽃가루 알러지가 있지 뭡니까. 그래서 지금 기침이 나오려고 하는 걸 내가 잡아주는 거요.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하지 않게 이렇게 해달라고 그가 아주 그냥 신신당부를 하더군.”
“정말인가요?”
“그렇고말고요. 최 박사, 이 사람과 내가 얼마나 절친한 사이인데.”
“뭐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죠.”
최윤은 애처롭게 발버둥을 쳤다. 뭐야, 이상해! 그렇게 당연한 듯이 넘기지 말라고!
‘아, 안 돼!’
끔찍한 예감이 들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몸과 영혼이 모두 갈려나갈지도 모른다. 그것은 공돌이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생존 본능이 보내는 신호였다.
“자, 그럼 모두 힘내서 수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지웅이 손뼉을 짝짝 쳤다. 그때 장태준이 의아함을 품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하세요.”
“일단 회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아까 사무행정을 칠드그린 부국장님께 맡긴다고 하셨는데, 그럼 회장님께서는 어떤 업무를…….”
“돈 대잖아요.”
“예?”
장태준은 ‘겨우 그거?’라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유지웅은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그렇게 카리스마 넘치던 전술팀장도 8년 전으로 돌아오니 역시 조금은 답답한 구석이 있다. 대체 언제 키워서 쓸 만한 사람 만들지?
“원래 인재는 적재적소에 있어야 가장 빛나는 법입니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해야 할 일도 바로 그거고요. 인재 배치!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죠.”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서 저는 고심 끝에 여러분들을 최적의 장소에 배치했습니다. 칠드그린 부국장은 정보기관의 실무장으로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니, WCO의 창립부터 총체적인 사무행정까지 모든 것을 잘 해줄 겁니다.”
“저기, 잠깐만요.”
칠드그린은 듣다 말고 중간에 나섰다.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단순 사무행정 뭐 그런 자리인 줄 알았는데, 이거 느낌이 좋지 않다.
“총체적인 사무행정이라니요? 아까는 분명 대략적인 사무행정 업무를 맡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일단은 규모가 작은 만큼 사무총장 자리를 맡으시면 됩니다. 잘 하실 수 있죠?”
“…….”
“당장은 별로 많이 할 게 없을 거예요. 그러니 과로사나 그런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
칠드그린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동석한 상사가 받아들이라고 눈짓을 보내는데 거부 의사를 발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 의장도 시켜버려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다행이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안다면 사표를 내는 게 현명한 것이다.
* * *
힘들게 모은 인재들에게 여러 가지 대칙 수립을 요구한 후 유지웅은 곧바로 귀국행에 올랐다. 칠드그린과 최윤이(가렌과 니트로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이런 게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유지웅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는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을 방해하지 않는 거죠.”
“…….”
뭔가 납득이 될 듯 말 듯한 대답에 최윤과 칠드그린은 정신이 멍해졌다. 가렌과 니트로는 한쪽에서 팔짱을 낀 채 흡족한 듯이 끄덕거렸다.
“역시, 제대로 된 상사란 바로 저런 것이죠.”
“든든한 지갑과 부하 직원을 방해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상관의 바람직한 표본이지.”
아무튼 망연자실한 최윤과 칠드그린, 벌써부터 예산 견적 내느라 바쁜 두 사제, 마지막으로 중간에서 가만히 눈치만 살피는 장태준을 남겨두고, 유지웅은 한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유지웅 만세!」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영웅!」
「당신이 세계 최고!」
수십 만은 넘을 듯한 환영 인파가 그를 맞이했다. 그가 비행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고막을 찢을 듯한 환호성이 하늘을 뒤덮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숨이 넘어갈 듯한 요란한 환영이었지만 유지웅은 태연했다.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국민 여러분들께서 열렬히 환영해주실 줄은 몰랐네요.”
“CBS의 채연호 기자입니다! 미국과 성공적인 관계 회복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시금석을 놓으신 것 덕분에 지금 나라 전체가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 말씀 해주시죠!”
“이 나라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유지웅은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수십 분이 넘도록 그가 흔쾌히 인터뷰를 받아주자 기자들도 이게 웬 떡이냐며 신이 나서 달려들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중이었다. 유지웅이 빌클런과 나란히 공동선언을 함으로써 관계 회복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꿰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은 유지웅 때문에 UN에서 탈퇴당하는 등 극단적인 곳까지 몰렸다. 그러나 그는 결정체 암시장을 통해 경제 상황을 이전보다 몇 배 더 좋아지게 했을 뿐 아니라, 이번에 공동 선언을 통해 외교 관계 수복도 이뤄냈다.
덕분에 지금 국내에서 유지웅의 인기는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공항에 몰려든 수십만의 환영 인파가 그 증거였다.
어느 기자가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나라는 다시 UN에 재가입 할 수 있는 겁니까?”
“아뇨.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예?”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이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입을 다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차르륵, 하고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유지웅이 말을 이었다.
“그거 영국이 게거품 물고 반대표 던질 거라 소용없어요. 안 되는 거 굳이 매달릴 필요 없죠. 솔직히 UN 가입 별 볼일도 없고요.”
“그, 그럼 다른 계획이라도…….”
“어차피 지금 시대는 괴수와 결정체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레이드를 쥐고 있으면 곧 세상을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죠. 그래서 제가 한 번 생각을 해봤는데, UN 대신 공격대 연합 같은 것을 만들어볼까 해요. 우리나라가 의장국 먹고요.”
“공격대 연합이요?”
“네, 일단 UR(United Raiders)이라고 해둘까요? 실은 의장 맡길 만한 인물도 생각해놨습니다. 적임자가 있죠. 레이드 관리본부에서 일하시는 남기철 국장이라는 양반인데…….”
뉴스를 보던 남기철은 주저 없이 짐을 쌌다. 왠지 모르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남 국장님,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다, 당신들 누구야! 이게 무슨 짓이야!”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청와대 지시입니다.”
그렇게 검은 선글라스는 쓴 덩치 좋은 요원들에게 끌려갔다.
============================ 작품 후기 ============================
죄송해요.. 연참검의 후유증이 제 몸을 갉아먹었나 봅니다..
ps : 광X 작가님은 그래도 연참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빨리 담편 보고 싶어서 현기증 날 거 같단 말이에여.
물론 전 오늘은 이걸로 끝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