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63 %3C프리시즌 딜러편%3E 테러범, 그리고? =========================================================================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아.”
“아닌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뜻인데?”
정효주는 불안한 눈으로 결정체와 유지웅을 번갈아 주시했다. 그는 결정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이 많은지 이따금씩 끄응 하는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도 중간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네가 생각하는 거? 그게 뭔데?”
“결정체의 최종 형태로 진화 중이라는 거지.”
결정체의 결정도 포화 수치는 135,000이다. 포화 상태에 달한 결정체는 더 이상 결정 에너지를 저장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정한 조건 하에 근본 성질이 변화하는 숙성 과정을 마치게 되며, 숙성이 끝나면 레드 결정체로 바뀐다.
‘숙성 조건이 뭐더라?’
전생에서도 숙성 조건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최윤 등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몇 가지 가설은 내놓았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너무 어려운 개념이어서 굳이 외울 생각도 안 했다.
“와, 이거 어떡하냐.”
유지웅은 발만 동동 굴렀다.
일단 너무 커서 결정체를 삼키기도 그렇다. 게다가 숙성이 되다가 말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숙성 과정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숙성 중이면 아까운데.’
만약 이 놈이 숙성 중이라서 언젠가는 레드 결정체로 변화한다면? 지금 흡수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흡수 방도는 어떻게 찾는다 치더라도.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숙성 중이라고 치자. 그럼 언제 숙성이 끝나나? 1년 뒤? 2년 뒤? 아니면 10년 뒤?
“와, 진짜 답이 없다.”
머리를 북북 긁고 있을 때였다. 쿤겐이 갑자기 놀라서 외쳤다.
“써! 뭔가 이상합니다!”
“지웅아! 저거! 저거!”
“뭐? 왜?”
정효주의 뾰족한 비명까지 뒤따랐다. 유지웅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거 왜 저래?”
퍼플 반, 레드 반 결정체가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기압이 높아지며 주위에 강한 돌풍이 일어났다. 그 여파로 결정체가 조금씩 땅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빛은 보라색 부위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순간 유지웅의 뇌리에 퍼뜩 과거가 떠올랐다. 휴스턴을 날려버린, 바로 그 대폭발!
‘젠장! 망할!’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그는 재빨리 앞으로 뛰어들었다. 손을 뻗으며 결정체를 쥐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감싸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안 돼!’
그는 있는 힘껏 보호막을 펼쳤다. 대상은 정효주와 쿤겐이었다. 그녀들이 아무리 단단한 탱커라 해도 휴스턴 대폭발을 견디지는 못할 테니.
눈부신 섬광이 모든 것을 뒤덮었고, 날카로운 굉음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텍사스 남부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 * *
휴스턴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폭발은 우주에서도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직경 300km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도시도, 사람도, 동물도,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참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폭발이 해안을 뒤덮으며 강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인근 해역은 배가 뒤집힐 정도로 강한 파도로 뒤덮였으며, 이웃주의 해안까지도 그 여파가 미쳤다.
말도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 그리고 대참사에 미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비상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이라고 이 사태가 어떻게 일어난 건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상상은 가능했다.
“이미 각하께서도 아시지만 유지웅 딜러는 휴스턴에서 잠적했습니다. 처음 우리는 미합중국을 교란하고자 함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칼리타를 처치하고 나온 결정체를 독차지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결정도는 알 수 없으나 칼리타는 유지웅 딜러가 일찍이 언급한 블랙 등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모든 정보기관이 혈안이 돼서 유지웅을 찾아내고 있지만, 그것은 그를 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백악관은 유지웅이 칼리타를 잡고 나온 결정체 때문에 잠적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정도야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데 왜 그랬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였지만.
대통령은 화를 냈다.
“겨우 그것뿐입니까? 그 결정체를 우리 몰래 차지하려고 그가 잠적했다고?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각하. 하지만…….”
“그는 차지하고 싶으면 당당히 자기 것이라고 선언할 사람이입니다. 우리 것을 빼앗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처치한 괴수에서 나온 건데 그가 왜 비굴하게 잠적까지 한단 말입니까? 칼리타와 그의 잠적을 결부해서 생각하지 마시오! 적어도 직접적인 동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유례없던 대참사입니다. 이제 곧 분노한 미국 시민의 목소리가 백악관을 질타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한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안일합니까?”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미국 역사상 없었던 대참사였다. 과거 수차례 습격했던 레드 몹이 낸 피해를 모두 합쳐도 이에 미치지 않으리라. 사망자 수가 얼마인지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텍사스 주정부까지 폭발에 휩쓸린 탓에 지금 텍사스는 모든 행정이 마비된 상태였다.
우습게도 행정 마비를 제외하면 타도시는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다. 부상자와 이재민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폭발의 위력이 어마어마했다는 증거다.
“각하!”
그때였다. 비서실장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회의 흐름이 깨졌지만 대통령은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굳은 얼굴로 반문했다.
“무슨 일입니까?”
“북미항공사령부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휴스턴 대폭발 13분 전, 1만이 넘는 결정도가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MD망의 한계 수치를 넘어선 겁니다!”
“칼리타 말고 또 다른 블랙 몹이 나타났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각하!”
빌클런 대통령은 분개했다.
“아니, 그런 중대한 일을 내가 왜 이제야 보고받는 겁니까? 대폭발 13분 전에 일어났다고요? 그럼 적어도 내가 대폭발 직전에는 보고받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혹자는 겨우 13분 가지고 대통령이 책임 회피를 하려고 유난 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3분의 차이는 무시무시하다. 비상 발령을 내릴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지하로 대피할 시간을 벌 수 있었으리라.
“그게, 10초도 지나지 않아 반응이 사라져서 감지 센서가 일시적인 오류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사령관은 미국 시민의 목숨을 참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군요.”
“…….”
대통령은 심호흡을 했다. 책임을 묻는 것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은 최선을 다해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다.
“모든 시민이 사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지하에 있다가 화마를 피해간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을 구조하기 위해 미국이 지닌 모든 역량을 투입하세요.”
“이미 텍사스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인근 주에서 가용 가능한 모든 구조 인력을 긁어서 보냈습니다.”
“항공사령부는 텍사스와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MD망의 감시망을 강화하세요. 아무리 작은 조짐이라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의 희생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
대통령은 구조 대책을 위해 빠르게 지시 사항을 쏟아냈다.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럼 보고를 기다리겠습니다.”
대통령은 피곤한지 눈을 감고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가 눈을 뜨자 비서실장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각하. 공화당에서 이 일을 문제 삼으면…….”
빌클런의 임기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 민주당 대선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이미 공화당의 당선은 물론이고 재선도 따놓은 당사다.
그러나 대통령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수많은 시민이 정부의 무능함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
“선거에 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각하.”
빌클런은 한숨을 쉬며 유지웅을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고의로 벌인 일은 아니다.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그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 시기에 휴스턴에 왔고, 그리고 두 마리의 블랙 몹이 휴스턴에 출몰했다?’
조심스러운 가정이지만, 그가 블랙 몹의 결정체를 탐내서 방미한 것이라면? 그리고 레이드 도중 그도 손 쓸 수 없었던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면?
어느 것도 확증은 없다. 그러나 유지웅은 분명히 이 사태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끝인가.’
간신히 유지웅과 관계 회복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러나 휴스턴 대참사는 미국 전역의 분노를 불러올 것이다. 공화당은 이 일을 절대로 넘기지 않고, 반드시 이용할 것이다.
빌클런은 차라리 유지웅이 폭발에 휩쓸려 죽었기를 바랬다.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그리고 건재하다면 이제껏 상상하지 못한 대혼란이 미국을 휩쓸 테니까.
미국은 적 앞에서 언제 어느 때든 무릎을 꿇지 않았다. 유지웅이 적이 된다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 원한 관계가 과연 미국에 이익이 될까? 아닐 것이다.
* * *
수십 기의 구조 헬기가 휴스턴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지독한데. 뭐가 있었는지 전혀 모르겠어.”
“정말 이 아래에 도시가 있었단 말입니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기장이 혀를 내두르자 부기장도 핼쑥한 안색으로 말을 받았다. 헬기 아래에는 말 그대로 대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대도시의 빌딩 숲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하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그래도 찾아야지. 분명 어딘가에 생존자가 있을 거야.”
지하철, 혹은 지하실, 아니면 지하상가, 그런 곳에서 우연히 참사를 피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구조 본부는 그렇게 믿고 사력을 다해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이렇게 깨끗하게 쓸린 상황에서는 어디에 그런 장소가 남아 있을지 흔적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민주당은 이걸로 끝났군요. 공화당이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거예요.”
구조 탐색 중에 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기장은 부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후 사정이 어쨌든 간에 책임을 피할 순 없지. 구조 작업이 대강 종료되면 빌클런은 사임할 수밖에 없을 거야.”
“유지웅 딜러가 이랬다는 말이 있던데…….”
“……벌써 그런 소문이 돈단 말인가?”
참사가 일어난 지 이제 겨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기장은 참으로 일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여겼다.
“살아 있을까요? 이런 대폭발 속에서?”
“……살아 있지 않기를 바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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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개노답 삼남녀가 활개를 칠 무대 전초는 마련됐습니다.
이 전개를 위해 정규 시즌에서 이름 모를 블랙 몹을 등장시킨 겁니다. 3년을 묵힌 복선이죠.
믿거나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