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87 %3C프리시즌 딜러편%3E 아이돌 라이벌 =========================================================================
“이 손맛! 이 찰진 맛! 그래, 틀림없어! 이런 녀석이 또 있을 리가 없지!”
유지웅은 신이 났다. 너무 신이 나서 그는 조직원 중 누가 자신을 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몸을 살짝 굽힌 채 환희에 젖어 부르르 떨었다.
“브라우니! 녀석이 틀림없어!”
이번 생에서 브라우니를 마주친 것은 두 번째다. 한 번은 몇 달 전, 멀리서 녀석의 기운을 느꼈을 때.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군이 합동훈련 중에 레드 몹의 습격을 받았는데, 그것이 브라우니였던 모양이었다.
“그래, 이것은 운명이야! 또다시 너를 애완조로 삼아 키우라는 계시!”
운명은 과거로부터 개척, 아니 계승하는 것이다! 유지웅은 신이 나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대로 아래로 입수할 준비를 하자 대부가 기겁했다.
“미, 미스터!”
“대부! 아주 큰 놈으로 한 마리 낚아 오겠습니다! 그동안 참치 회나 맛있게 떠놓으시죠! 하하하!”
호탕한 웃음만 남기고 유지웅은 그대로 물로 입수했다.
첨벙!
유지웅은 보호막으로 몸을 감쌌다. 수중인데 신기하게도 호흡이 전혀 가쁘지 않았다. 호흡 인내력이 극단적으로 올라간 것이다. 이것만 봐도 이미 탱커의 신체 능력은 넘어섰다.
그리고 별로 어둡지 않았다. 물론 해저 바닥이나 수km 밖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잠수부들이 보는 것보다는 훨씬 명확하게,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어디냐, 어디야?’
유지웅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녀석의 그림자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오냐, 숨바꼭질이라도 하자 이거지? 이거이거, 귀여운 놈.’
그는 즐거운 마음에 주변을 빙글 둘러보았다. 역시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찾아내서 늘씬하게 패줘야겠다. 그리고 신성한 주인과 노예의 계약을 치르는 거다!
‘자! 주인님이 왔다! 어서 영접하거라! 브라우니!’
물살을 가르며 유지웅은 느긋하게 헤엄쳤다. 녀석의 기습 따위는 염려도 되지 않았다. 보호막은 활성화된 상태다.
‘어디 있지? 어디 있어?’
한참을 유영했지만 브라우니의 모습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자 유지웅은 슬슬 불안해졌다. 위험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브라우니를 못 만나는 건 아닌지 하고.
다행히 기우였다.
‘브라우니! ……가 맞나?’
저 멀리 날렵한 유선형의 물체가 보였다. 어두운 물속에서도 은색으로 빛나는 몸체는 크고 아름다웠다. 마치 잘 빠진 잠수함이 유유히 헤엄치는 듯한 모습에 유지웅은 잠시나마 감탄하며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브라우니가 원래 물고기였더랬지?’
브라우니는 본래 물고기였다가 일정 이상의 결정도를 쌓으면서 조류로 진화한 케이스다. 당시 유지웅은 별 생각 없이 녀석을 날치 취급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녀석의 자존심이 꽤나 상했을 것 같다. 그래도 사람 말도 알아듣고, 어린아이 이상의 지능도 지닌 녀석이었는데.
‘근데 원래 저리 생겼나?’
색은 대충 비슷한 거 같긴 한데 크기나 생김새가 예전에 한 번 봤던 녀석의 변신 모드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 왜, 녀석이 노틸러스와 싸울 때 자기의 진정한 힘을 드러낸다며 보였던 그 멸치 모습 말이다. 기억 속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한데?
‘브라우니가 맞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브라우니(로 추정되는) 녀석이 갑자기 맹렬하게 속도를 높였다. 유지웅은 본때를 보여줄 때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웬걸. 녀석은 자신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속도를 더욱 높여, 크루즈선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목표는 바로 크루즈선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왜? 유지웅은 일순 혼란에 빠졌다.
바로 그때,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차!’
퍼뜩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선실에 깜빡 잊고 놔두고 온 인피니티 스톤! 반쪽짜리 레드와 반쪽짜리 퍼플로 이뤄진 구체형 결정체!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던 녀석이지만 낚시를 한답시고 잠시 선실에 벗어두고 왔다.
설마 녀석은 그 기운을 느끼고? 이런, 큰일 났다!
‘내 낚싯배가!’
유지웅은 눈이 뒤집혔다. 그는 맹렬히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출력이 좋아도 그는 기본적으로 유선형이 아닌 인간이었다. 물속에서 최대의 속도를 내기에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브라우니(로 추정되는) 녀석은 크루즈선에 좀 더 가까이 있었다. 이 속도는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다.
‘안 돼! 브라우니 녀석! 이 주인님의 장난감을 망가뜨리지 말란 말이다!’
무릇 카메라를 가져본 이라면 알 것이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샀는데, 애완견이 공인 줄 알고 물었을 때 그 섬뜩함을! 송곳니가 하필 렌즈에 닿아 있을 때의 그 공포를!
‘으아아악!’
지금 낚싯배가 망가져버리면 한동안은 낚시를 즐길 수 없게 된다. 선박 렌트사(실은 크루즈 회사)에 쓸 만한 낚싯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우니! 로 추정되는 녀석아! 제발!
‘나가 떨어져!’
유지웅은 결국 극단의 선택을 내렸다. 돌진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있는 힘껏 팔을 뒤로 뻗었다. 그의 온몸에 맹렬한 빛에 휩싸이며 주변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 기운에 놀랐던 것일까. 브라우니(로 추정되는) 녀석이 제자리에 멈칫했다. 유지웅은 풀 스윙을 하듯이 그대로 오른팔을 있는 힘껏 앞으로 뻗었다.
번쩍!
날카로운 백색 빛의 기둥이 순식간에 물살을 갈랐다. 동시에 물속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굉음이 퍼졌다.
―꾸에에엑!
* * *
「우리 오피가 최고시다.」
「지랄 노노. 우리 오피가 최고시다.」
「어휴, 김치맨. 냄새 나.」
「뭐라는 거야? 양키 꺼져! 버터나 덕지덕지 처바른 주제에!」
「김치 전사 따위가 감히 위대한 캡틴 아메리카한테 대적을 하겠다는 거냐!」
한국과 미국,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불꽃 대결로 치달았다. 양자는 서로 자국 오피가 더 세고, 더 예쁘고, 더 섹시하다며 눈에 불을 켜고 경쟁을 벌였다.
심지어는 양쪽 오피의 과거와 이력, 집안, 현재 자국내의 영향력 등등의 스펙을 비교 분석하는 쇼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은 미국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박 행진을 치며 시청율이 70%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프로그램이 성공하자 우후죽순처럼 너도나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영했고, 그것은 인기를 끌었다. 물론 프로그램의 결론은 항상 비슷했다. 무조건 우리 오피가 짱 쎄고! 짱 예쁘고! 짱 섹시하다!
“우리도 비슷한 걸 방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녀석들은 매일 같이 오피 비교 쇼 프로그램으로 열풍 몰이를 하던데. 덕분에 국론 단합도 더 쉽게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왕 할 거면 좀 더 자극적인 컨셉으로 나가보는 건 어떻습니까?”
“자극적인 컨셉?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 미국에서 방영 중인 오피 쇼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아이돌 찬양 오락 프로그램입니다. 그 점이 소년층, 청년층, 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히고 있죠. 덕분에 사회 전반적인 열풍을 불러올 수 있었고요. 하지만…….”
“계속하세요.”
“아이돌 프로그램이란 뭡니까?”
상대는 그제야 눈이 번쩍 뜨인 듯 감탄사를 냈다.
“아!”
“바로 아이돌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미국 오피 쇼 프로그램을 보세요. 아이돌 프로그램에 아이돌이 나오고 있습니까? 쿤겐 슐제거는 그런 프로그램에 전혀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앙꼬 빠진 앙꼬빵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과연!”
공영, 민영 방송국 PD간에 벌어지고 있는 대화라고 상상했다면 당신은 틀렸다. 청와대 국무위원회에서 당당하게 벌어지고 있는 토론이다. 물론 의장은 대통령이다.
그는 지금 얼굴을 손으로 반쯤 가린 채 묵묵히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이미 반쯤 체념한 자의 포스가 묻어난다.
‘힘들고 벅차군. 대통령이라는 자리…….’
대통령직. 분명히 얼마 전까지는 격무에 시달리는 자리이기는 해도 나름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요즘 들어서 그런 시각에 회의가 든다.
언제부터였더라? 그래, 바로 그때부터였다. 유지웅이 한국 땅에 출몰한 그때부터……. 출몰이라고 하자니 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 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좋아요! 그럼 우리는 아이돌이 직접 출연한 쇼 프로그램을 기획해봅시다. 각 방송사에 협조 공문부터 보내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방송국들 클래스야 알아주지 않습니까? 쇼 프로그램 베껴서 더 좋은 쇼 프로그램 만드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고난이도 셀프 디스인가. 대통령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회의록을 녹음해서 들려주면, 아마 백이면 백 방송국 예능 PD들 대화라고 착각할 것이다.
“음, 아직 우리나라는 오피 쇼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없으니까 신선하긴 하겠네요.”
“안일한 생각입니다. 요즘 글로벌 인터넷 세상 아닙니까. 미국에 방영된 쇼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당일에 바로 시청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마추어들이 만든 번역 자막도 바로바로 올라오고, 퀄리티도 좋습니다.”
“그런 말씀은 왜 하시는 거죠?”
“즉!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미 미국의 오피 쇼 프로그램 때문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엔간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가는 혹평만 받고 말 겁니다. 정부의 협조 요청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정치계에 후폭풍도 장난 아니게 몰아칠 거고요.”
“흠, 일리 있는 의견입니다.”
“저는 방송국 피디가 아닙니다. 예능 쪽은 더더욱 모르고, 평소에 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능 기획 관련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우리가 치고 올라가려면 그에 못지않은 폭발적인 컨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부 장관이 열변을 토했고, 다른 장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대통령은 차가운 눈빛으로 외교부 장관을 주시했다. 그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들어 있었다.
뭐라고? 예능 쪽은 몰라? 평소에 보지도 않아? 예능 관련 기획은 아는 바가 없어?
그런 사람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술술 나오지? 이거 의심이 가는데?
대통령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한 외교부 장관은 목에 핏대까지 올린 채로 말을 이었다.
“요즘 ‘부탁할게 냉장고’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주부들도 즐겨 보고, 덕분에 장년층 남성들도 그 이름은 알고 있다고 하죠. 프로그램 자체가 유명한 쉐프들의 유쾌한 요리 대결을 컨셉으로 잡고 있다 보니 적당히 격식도 있고요.”
“아, 혹시?”
“정효주 딜러가 천박한 몸싸움, 몸놀이나 하는 예능 컨셉을 선호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부탁할게 냉장고라면 충분히 승낙할 겁니다! 무엇보다 부탁할게 냉장고에는 대통령님의 자제분이신 최현석 쉐프도 출연 중이지 않습니까?”
“오, 그랬습니까? 전 왜 전혀 몰랐죠?”
대통령의 아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몰랐다니. 다른 장관들은 대통령 앞에서 민망하고 면목이 없어서 살짝 쩔쩔 맸다.
“유명한 쉐프들의 유쾌하고 기발한 명 요리 대결! 현 대통령의 아들과 현 우리나라 유일 오피의 동시 출연! 그 둘의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독설과 평가! 국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하나로 끌어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제가 보기엔 이미 국민들의 마음은 충분히 하나인 듯한데요.”
“좋아요, 좋아! 그 기획, 아주 좋아요!”
대통령의 자신 없는 한 마디는 그렇게 묻혔고, 외교부 장관을 향한 대통령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예능 안 본다며? 전혀 모른다며?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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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장관의 활약을 넣어줘야겠어요.
방송국 일일 예능 피디, 녹화 프로그램을 촬영을 주재....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깨달은 그는 정치계에 사표를 던지고 예능계에 출사해 돌풍이 되는데....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