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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911화 (911/1,550)

00911  %3C프리시즌 딜러편%3E 잡았다! 요놈....?  =========================================================================

“네가 히카리였다니!”

어째서? 왼손은 분명히 다른 녀석에게 반응했는데? 왜 연약한 소녀인 줄만 알았던 인물이 히카리란 말인가?

당황함은 잠시였다. 유지웅은 표정에서 놀란 기색을 싹 지웠다.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잘 됐다. 자, 와라. 내가 오늘 누가 주인인지 이 자리에서 명백하게 모든 것을 가려 주마.”

“인간,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히카리는 자세를 살짝 낮추고 으르렁거렸다. 딴에는 위협을 한다고 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열 살배기 어린 소녀, 그것도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쁜 모습으로 그러고 있으니…….

‘귀, 귀엽잖아! 이거!’

어머, 이건 꼭 잡아다가 키워야 해.

유지웅은 괴수 집사의 본능이 들끓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잡아서 데려다가 기르고 싶다.

‘망할 인간 같으니.’

한편 히카리는 바짝 긴장했다. 아직 인간의 문화와 지식에 서툴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건 안다.

눈앞의 녀석은 인간 종족 최강의 개체다. 지구 어딜 가도 녀석의 이름이 언급된다. 인간 중에서 녀석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히카리는 녀석의 막강함을 직접 몸으로 체득했다. 불과 얼마 전 일이 아니던가. 괴수의 몸으로 전력을 다했지만, 녀석을 당해내지 못했다. 아니, 꼼짝도 못하고 잡힌 채 얻어맞기만 했다.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그때 녀석은 온힘을 다한 것 같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히카리의 결론은!

“잘 있거라, 인간!”

잽싸게 등을 돌린 채 후다닥 뛰어올랐다. 곧 조그만 등에서 커다란 날개가 돋아 힘차게 펄럭였다. 은은한 빛에 휩싸인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천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귀, 귀여워! 꼭 잡아다가 기르고 말 거야!”

괴수 집사의 본능을 자극했다!

브라우니, 모비딕, 히카리! 이 삼종 세트만 갖추면 어느 동물 애호가 모임을 가도 꿇리지 않으리라. 아이 정서 교육에도 아주 좋을 것이다. 히카리는 말도 통하니 여차하면 보육을 맡길 수도 있고.

‘상상만 해도 개이득!’

어느새 히카리는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유지웅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어딜 도망치려고!”

유지웅은 한 발을 뒤로 딛었다. 무게 중심을 뒤에 싣고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앞으로 뻗었다. 다잡은 손을 중심으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온몸을 휘감았다.

“간다! 울트라 미라클 제네시스 스피시즈 메가 오버 파워 빔!”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파동이 히카리는 기겁을 하고 뒤돌아봤다.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유지웅의 손끝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안 돼!”

히카리는 급히 방어막을 펼쳤다. 피부에 흐르는 것이 아닌, 반투명한 구형의 실체를 띤 방어막이었다.

번쩍!

콰과과광!

섬광이 방어막에 부딪쳤다. 히카리는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온힘을 다해 방어막을 펼쳤는데도, 충격 에너지가 뼛속까지 침투했다.

“으아아악!”

결국 방어막이 깨졌다. 충격 에너지가 직접 피부에 부딪쳐왔다. 버티지 못한 히카리는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쿠웅 하고 대지가 진동했다.

“하하, 울트라 미라클 제네시스 스피시즈 메가 오버 파워 빔의 맛이 어떠냐.”

“으으……. 그 무시무시한 기술은 대체 뭐란 말이냐, 인간.”

“위대한 존재만이 사용 가능한 필살기다. 지구상에서, 오로지 이 몸만이 유일하게 쓸 수 있지.”

과연 그 이름처럼 무시무시하군. 하고, 고통 속에서도 히카리는 생각했다.

히카리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손가락 끝까지 저릿저릿할 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유지웅이 다가왔다. 히카리는 꿈틀거리며 움직이려 애를 썼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고고하게 ‘죽여라! 인간! 미련은 없다!’라는 말 따위는 알지 못한다. 이제 갓 지적 사고에 눈을 뜬 히카리는 자존심보다는 생존 본능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아니, 자존심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었다.

따라서 그녀의 선택지는…….

“사, 살려줘! 인간!”

“살려달라고?”

“그, 그래! 살려다오! 살려만 주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

죽을힘을 다해 움직이지 않는 팔을 움직였다. 낑낑거리며 손바닥을 맞대고, 싹싹 빌었다. 인간들이 주로 하는 행동에서 봤는데,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대부분 말을 들어준다. 아마도 인간의 관습이리라.

‘귀, 귀여워.’

유지웅은 기함을 할 뻔했다. 충격 때문에 몸도 안 움직이는 주제에 애처롭게 두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그러나 일부러 표정을 엄히 했다.

“건방진 아이 같으니라고. 이렇게 쉽게 무너질 거면서 왜 그런 짓을 했지? TV에 나와서 유럽 시민의 목숨을 걸고 협박을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렇게 비굴하게 비는 거냐?”

“그, 그렇게 하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따라했을 뿐이다!”

“본 걸 따라한 거라고? 어디서 봤는데?”

“너희가 TV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테러리스트와 대통령이라는 이름이었다!”

테러리스트와 대통령. 유지웅도 알고 있는 영화였다. 테러범의 공격에도 단호하게 대처하여 미국을 구해내는 대통령의 무용담을 다룬 영화였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첨단 항공기와 항공모함 등 풍부한 볼거리가 있어 유지웅도 몇 번이고 즐겨봤던 영화였다.

“테러범과 왕! 너도 그 영화를 봤구나! 어쩐지!”

유지웅은 묘한 데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취미를 놓고 쑥덕거릴 때가 아니다.

“아무튼! 너는 우리 인류의 존엄함에 흠집을 내는 행위를 했다! 나는 절대로 그걸 용서할 수 없다!”

“살려다오, 제발! 뭐든지 하겠다!”

이제 좀 몸이 움직이는 히카리는 무릎까지 꿇은 채 싹싹 빌었다. 유지웅은 표정을 엄히 하고 물었다.

“정말로 뭐든지 할 테냐?”

“물론이다! 뭐든지 하겠다!”

“잘 들어라. 봤다시피 난 네가 어디에 있든지 찾아낼 수 있고, 잡으러 갈 수 있다. 네가 아무리 몰래 나를 기습한다 해도 나는 끄떡없다.”

“아, 알고 있다!”

히카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아까만 해도 그렇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뒤에서 기습을 했는데, 잠깐 정신을 잃은 척 하더니 곧바로 무시무시한 반격을 해오지 않았던가?

방금은 또 어떻고. 도망치려고 했더니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필살 기술을 퍼부어 자신을 추락시켜 버렸다.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아 흡족하군. 좋아, 너 그럼 내 것이 돼라.”

“……네 것이 되라고?”

“그래. 내 것이 돼라.”

히카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열심히 습득한 인간의 문물을 떠올려 봤다. 저런 말은 보통 무슨 의미로 쓰이더라?

“나는 네 새끼를 수태할 수 없다. 우리는 종이 다르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유지웅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아니, 이 새끼 암사자가 지금 누구를 소아성애자로 만들려고!

“그냥 내 애완동물이 되라는 뜻이다! 사람을 뭐로 보고!”

히카리는 다시 생각했다. 애완동물이 되라. 이게 보통 어떤 의미로 많이 쓰이더라?

“이 몸은 성체가 아니다. 너의 육욕을 만족시키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유지웅은 게거품을 물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 이 음탕한 검은 사자야!”

“음탕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아아악!”

유럽 시민을 인질로 잡고 협박도 하기에, 심도 깊은 대화가 통할 정도로 인간적 사고에 눈을 뜬 줄 알았다. 하지만 완전히 헛다리짚은 것 같다.

‘말문 트이자마자 이상한 영화만 잔뜩 본 거 아냐?’

모르지. 어쩌면 이상한 B급 영화로 인간의 말을 배운 것일 수도 있다.

“너는 짐승이고, 나는 인간이다. 그렇지?”

“그렇다.”

“나는 널 죽일 힘이 있지만, 널 죽이지 않겠다. 그 대신 너를 키우고 싶다.”

“나를 키워?”

히카리는 갸웃거리다가 사색이 되었다.

“키워서 잡아먹으려는 거구나! 인간!”

“아악! 아니라고!”

“거짓말! 인간들은 짐승을 키워서 잡아먹는다! 나도 알고 있다!”

============================ 작품 후기 ============================

왜 키워서 잡아먹는 게 짐승뿐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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