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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954화 (954/1,550)

00954  %3C프리시즌 딜러편%3E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유지웅은 자기 기억력을 한탄하면서도 일단 냉큼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쥐었다. 여벌의 낚싯대 덕분에 노인과 유지웅은 나란히 세월을 낚을 수 있었다. 아, 세월이 아니라 물고기라고 해야 하나?

“이상하다. 분명히 이 호수인데.”

“그 괴물 말인가?”

“네, 여기 추적기에는 그렇게 나오거든요.”

“혹시 얕은 호수에도 숨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은 건 아닌가?”

“아닌데. 전에 봤을 때는 엄청 컸거든요. 앗! 한 마리 잡혔다!”

“벌써?”

노인이 놀라워했다. 유지웅은 간단하게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팔뚝만 한 물고기가 푸드득거리며 딸려 나왔다. 유지웅은 신이 나서 물고기를 뺐다.

“허허, 나도 아침부터 이러고 있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거늘…….”

“앗! 또 한 마리!”

“허허, 이 친구가 아주…….”

“앗! 또 한 마리 잡혔다!”

“이보게…….”

“오예, 또 잡혔다!”

“…….”

노인의 얼굴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니, 무슨 낚싯대를 던졌다 하면 줄줄이 잡혀 나와? 물고기들한테 뇌물이라도 준 거야, 뭐야?

“이런,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한참을 낚시에 몰두하던 유지웅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그의 양동이는 물고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 노인의 양동이는 손가락만 한 붕어만 한 마리 있을 뿐이었다.

“이런, 할아버지가 잡으셔야 할 물고기를 제가 혼자 다 잡아버린 것 같네요. 이건 다 드릴게요.”

“하지만 이건 자네가 잡은 건데…….”

“어차피 지금 들고 가지도 못해요. 가지세요.”

유지웅은 미안하다는 듯이 그리 말했다. 노인은 헛기침을 하면서도 거절하진 않았다.

일단 자리를 털고 일어난 유지웅은 다시금 패드컴퓨터를 살폈다. 로버의 반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는 통신기를 켰다.

“박사님들, 스카우터 지금 정상 작동하고 있는 거 맞죠?”

「예, 아무 문제없습니다. 여기 모니터룸에서는 지금 회장님이 있는 곳에 로버가 있다고 나옵니다.」

“오차 범위가 얼마나 되죠?”

「최대한으로 잡아도, 반경 80미터는 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 호수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는 건데……. 미치겠네요. 무슨 장애물 같은 것도 안 보이고, 호수는 얕고, 도대체 로버는 어디에 있는 거야.”

「수상하거나 이상한 점, 이질적인 게 없는지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시죠.」

“아, 머리 아파요. 낚시 조금만 더 해야지. 아니다, 매운탕이나 먹을까?”

「낚시요?」

“아, 여기 웬 할아버지 한 분이 낚시하고 계셔서요. 그 분이랑 지금 같이 낚시하고 있어요.”

「대화는 어떻게 하고요? 이탈리아어를 원래 잘하셨나요?」

“네? 아닌데요? 여기 이분이 한국어를 되게 잘하셔서 지금 대화하는데 아무 문제없어요.”

「그런데 이탈리아는 지금 전 국민 소거 작업 실시하지 않았습니까?」

“어, 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

아까는 노인이 대피령을 못 들어서 여기 있는 거라 쳤다. 하지만 한국어는 왜 저리 유창하단 말인가? 이탈리아인이 한국어를 배울 일이 없을 텐데. 그것도 현지인이.

그러고 보니 로버가 분명 이 호수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괴수 같은 건 안 보인다.

유지웅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의 등을 노려봤다.

‘혹시?’

그는 조용히 품에 손을 넣었다. 혹시 몰라서 들고 온 간이 측정기가 잡혔다. 구형이지만 그래도 쓸모는 있으리라. 그는 측정기를 켜고, 노인을 겨누었다.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귀청이 떨어질 듯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측정 수치는 단숨에 맥스치를 찍더니, 곧 퍼엉 하고 측정기 내부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 피시식 하고 매캐한 연기가 측정기에서 흘러나왔다. 과부하로 내부 회로가 터진 것이다.

구형이긴 해도 15만까지는 거뜬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켠 김에 타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로, 로버!”

유지웅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이럴 수가! 바로 코앞에 로버를 두고 몰랐다니!

“무, 무슨 소린가? 로버라니?”

안 그래도 경고음에 화들짝 놀란 노인은 유지웅이 적의를 보이자 더욱 당황했다.

그러나 유지웅은 기세를 풀지 않았다. 이제는 안 속는다, 안 속아! 지금까지 감히 감쪽같이 날 속였겠다!

“젠장! 원래는 유럽 시민들 안전을 확보한 후에 싸우려 했건만, 이제는 틀렸다! 할 수 없지!”

“이, 이보게!”

“어디서 사람 행세를 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아아!”

유지웅은 크게 점프해서 뒤로 물러났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돌격을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는 그대로 로버, 아니 로버로 강력히 의심되는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문답무용이다!

“간다!”

“으, 으허억!”

콰아앙!

*  *  *

강력한 폭발음에 정효주와 쿤겐, 히카리, 브라우니는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봤다. 정효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로버가 저기에?”

“써, 제가 갑니다!”

쿤겐은 주저 없이 폭음이 난 곳을 향해 달렸다. 정효주도 기겁해서 얼른 뒤따라 달렸다. 히카리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브라우니의 깃털 사이에 몸을 묻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너도 와야지! 여기서 뭐해!”

부리나케 되돌아온 정효주가 히카리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히카리는 깜짝 놀라 버둥거렸지만, 정효주는 그대로 질주했다.

*  *  *

“과연 로버, 대단해. 내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을 받아내다니…….”

“이보게!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어떤 감언이설로도 날 꼬드길 순 없어. 나는 로버, 당신을 처치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미래에서 말이지. 유지웅은 그 말은 속으로 삼키며, 득의양양해서 로버로 강력히 추정되는 노인을 노려보았다.

주변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유지웅은 조금 전, 자신이 날린 일격필살을 로버로 강력히 추정되는 노인이 간단히 쳐낸 것을 분명히 보았다.(사실 그래도 만약을 생각해서 빗나가게 쐈다) 블랙 몹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공격이었는데, 놀랍게도 저 노인이 가볍게 걷어낸 것이다.

그 모든 정황이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며,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을 도출해낸다. 눈앞의 저 노인이 바로 로버다! 휘버의 사념을 잡아먹고 태어나, 균열을 지킨다는 일념밖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

‘어, 어라?’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노인이 황당한 얼굴로 자기변호를 위해 거듭 외쳤다.

“그러니까 그 로버인지 뭔지 하는 이름을 난 모른단 말일세! 자네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은…….”

“휘버?”

“그래, 내 이름은 휘버일세! 어, 근데 자네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나?”

“…….”

“…….”

“……휘버 박사님, 혹시 정신 차렸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만?”

“그러니까 휘버 박사님 맞죠? 프랭클린 교수님 밑에서 니트로 박사님과 같이 수학한 그 휘버 박사님?”

“맞네만.”

“에너지 평등 세상을 위해 균열을 뚫으셨고요?”

“허억! 자네가 어떻게 그걸!”

이야기를 해보니 뭔가 점점 확실해진다. 지금 로버의 몸을 차지한 것은 온전한 휘버의 인격이다. 그러고 보니 생긴 것도 멀쩡한 보통 사람 아닌가?

“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

“설마 레마시아 연구소 자폭시킨 다음, CIA가 쫓아올까 봐 여기로 잠적하신 건가요?”

“그, 그렇다네. 자네는 어떻게 그것까지 알고 있나?”

아놔.

============================ 작품 후기 ============================

로버는 없어! 하지만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살아가!

"닥쳐 나 앞으로 유럽에 쪽팔려서 못 가게 생겼다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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