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5 %3C프리시즌 헬조선편%3E 한 번 물면 놓지 않아요 =========================================================================
이럴 수가!
내 공돌이가 이렇게 대머릴 리 없어!
유지웅은 번들거리는 최윤의 정수리에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그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다. 최윤의 이마에 검게 먹칠을 한 것이다.
그렇게 나타난 얼굴을 보니, 자신이 알던 최윤과 완벽하게 매칭이 된다.
‘여기에도 최윤이 있었구나.’
유지웅은 신음했다. 설마 헬조선에서 최윤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깐, 그럼 최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을까?’
퍼뜩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디 저희에게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아량을…….”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돌아서려 했다. GCS를 그들에게 갖다 주고 싶었다. 반질반질한 타코야끼 수백 개를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도저히 측은지심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효주가 어느새 나타나 제지했다.
“안 돼!”
“하지만 최 박사님도 있단 말이야.”
“여기서는 박사가 아니라 그저 학사생일 뿐이지. 아무튼 안 돼. 이런 식으로 GCS를 줘버리면 GCS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꼴이 될 거야.”
정효주는 단호했다.
“GCS에 탈모 효능까지 있는 줄은 내가 미처 몰랐지만…… 여럿이 나눠서 쓰도록 하는 건 안 돼. 그건 GCS의 이름값에 흠만 될 뿐이야.”
전의 시대야, GCS 말고도 결정체로 만든 전용 탈모 치료제가 있으니까 미처 정효주도 깜빡하고 넘어간 것이다. 그런 기능도 있었구나, 몰랐네. 이런 식으로.
심지어 그 치료제는 가격도 합리적이라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GCS에 비해 단점이라면, 모든 이가 100% 치료되지는 않았다는 점. 안 자랄 놈은 무슨 짓을 해도 안 자라난다는 것은 그 치료제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유지웅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정효주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사악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최 박사님을 만난 건 잘 됐어. 카이스트 이론물리학이라고 했지? 그럼 여기서도 머리가 좋은가 봐.”
“그런가 봐. 최 박사님 끌어들일까? 결정체 연구하려면 어차피 공돌이는 필요하잖아?”
“당연하지. 일단 최 박사님 데려오자.”
“그 양반만 따로 GCS로 회유하면 넘어올 거야.”
“정말 잘 됐네. 안 그래도 결정체 사업 맨땅에서 시작하려면 총 지휘를 맡아줄 감독이 필요 했는데……. 최 박사님이라면 적임자지.”
젊지, 머리 좋지, 일도 열심히 하지. 이보다 더 적임자가 있을까? 헬조선의 최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체학이 없다고 이론물리학을 전공하는 걸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유지웅은 다른 사람들 몰래 조용히 최윤을 따로 만났다. 최윤은 유지웅의 제안에 놀라워했다.
“저를 고용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학생일 뿐인데 이렇게 좋은 조건에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유지웅이 내건 조건은 제법 괜찮았다. 탈모 치료를 위해 GCS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5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합리적인 수준의 연봉과 성과금을 제공한다.
아직 학사 과정인 최윤에게는 매우 과분한 조건이었다. 일단 GCS의 가격만 해도 천문학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전 화장품 개발 같은 건 자신이 없습니다. 애초에 제 전공도 아닙니다.”
“물론 화장품 개발 같은 걸 시킬 마음은 없습니다.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최윤 당신한테도 잘 맞는 종류의 일이 될 겁니다.”
전생에서도 정말 잘하던 일이었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최윤은 결국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저를 높이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자, 바로 머리를 자라나게 하러 가보죠!”
유지웅은 얼른 최윤을 데리고 펜션으로 향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그가 직접 GCS를 풀 준비를 했다. 혹시라도 최윤이 GCS를 빼돌리면 안 되니까.
그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헬조선의 최윤의 인성은 아직 100% 검증되지 않았기에 정효주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윤 씨, 준비 됐습니까?”
“예!”
“그럼 투하합니다. 3, 2, 1, 투하!”
유지웅은 GCS를 욕조 물에 그대로 던지고는, 욕실에서 빠져 나왔다. 잠시 후 최윤이 후다닥 안에 들어갔고,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약 20분 후, 옷을 말끔히 다 입은 최윤이 개운한 표정으로 나왔다. 아직 그의 머리는 반질반질했지만, 이미 탈모를 다 벗어버린 듯이 뿌듯한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탈모가 어지간히 고통이셨나 보군요.”
“예, 고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대머리가 됐는데, 제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그때의 치욕을 떠올리듯, 최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빛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살기가 흘렀다.
“학생 주임이 저한테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하, 너 지금 반항하냐? 정확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
“머리를 민 게 아니라, 그냥 벗겨졌을 뿐인데…… 으으윽!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어요.”
어지간히 큰 트라우마였나 보다. 유지웅은 뭐라 위로해줄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무튼 그렇게 최윤은 장차 세계 최대의 군벌, 아니 재벌이 될 ‘균열그룹’에 가입했다.
* * *
구필성 회장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임원들이 치고 박고 떠드는 소리가 마치 꿈결처럼 귓가를 스치고 흘러갔다.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현실인지는 한 건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GCS에 사정을 빌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그룹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자네,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우리 델지그룹은 국내 최상급 대기업이야! 그깟 신생 화장품 업체 하나 때문에 흔들리거나 하지 않는단 말이야!”
“현실을 보십시오! 최종 소비자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업에서 매출이 90% 이상 하락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다!”
“어차피 국내 시장은 우리에게 작아! 세계 시장에서는 아직 선전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의 반그룹 정서가 그 세계 시장으로 언제 뻗어갈지 초읽기란 말입니다! 지금 GCS가 전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탈모 환자들이 GCS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벗겨진 임원이 울화를 터트리듯 열변을 토하자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숙연해졌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진정성을 말에 담을 수 있는 것일까.
이윽고 구필성 회장이 눈을 떴다.
임원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구필성 회장은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GCS와 화해한다.”
“회장님……!”
“인정할 건 인정하지. 선공은 우리가 가했고, GCS는 반격을 했을 뿐이야. 그 반격 한 번으로 천하의 델지그룹이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몰랐지만……. 현준아.”
“예, 회장님.”
정자세로 앉아 있던 구현준은 바짝 군기가 든 얼굴로 대답했다. GCS와의 갈등을 초래한 게 자신이었기에, 그는 이 자리가 가시방석이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수습하거라.”
“예, 회장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여기서 수단과 방법은 불법적인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예!”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든지, 밤낮으로 석고대죄를 하든지, 머슴을 자처하든지 해서 용서를 받아내란 의미다. 이해하고 있느냐?”
“……알겠습니다.”
미약한 머뭇거림 속에서, 구필성 회장은 손자가 품은 희미한 반항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재벌3세로 태어나 평생 남들에게 큰소리만 치며 살아왔으니, 속이 어지간히 쓰리기로 할 것이다.
그러나 구필성 회장은 외면했다. 녀석도 생각을 할 줄 아는 놈이니, 섣부른 짓을 저지르지는 못한다. 또한 자신의 명령을 어길 배짱도 없다.
GCS에 화해를 청하는 것은 손자에게 있어서 벌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물론 왕족은 면책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룹 전체를 위태롭게 한 죄라면, 왕족이라 해서 면책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잔인하게 숙청된다.
‘재희가 화장품 사업에 관심이 있었드랬지…….’
구필성 회장은 이 일이 끝나고, 델지생활건강을 누구에게 맡길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 * *
“머리! 머리! 머리가 자라났어요!”
최윤은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효주는 맛좋은 송아지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주시했고, 유지웅도 팔짱을 낀 채 기분 좋게 바라봤다.
최윤은 정말 어린애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고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 이따금 배를 잡고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웃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머리카락은 풍성하다 못해 장발이 되어 등 중심에 닿을 정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20년은 미용실 한 번 가지 않은 노숙자 꼴이다.
하지만 그 지저분한 머리카락이 최윤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자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몇 번이고 울다가 웃다가를 거듭했다.
“하하, 풍성충이 된 걸 축하합니다. 효과는 확실하죠?”
“정말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그런데 GCS로 목욕을 하셨으면서 얼굴 피부는 왜 그대로인지 모르겠네요.”
“아! 제가 몸은 담그지 않았어요. 머리만 담갔습니다.”
“아, 그래요?”
“네. 소중한 GCS의 효능을 두피가 아닌 피부 따위에 나눠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대체 그럼 그 ‘첨벙’ 하던 소리는?
얼마나 빠르게 머리를 담갔으면 욕조에 뛰어든 거라고 오해를 했을까.
“최윤 씨, 그럼 이제 일하실 준비가 되었나요?”
“물론입니다!”
“자, 여기 보안서약서와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시죠.”
최윤은 주저 없이 서명을 했고, 그렇게 그는 정식으로 유지웅에게 채용되었다.
“그럼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큰 사업이 있어요. 아직 절대 비밀을 유지해야 할 사업입니다.”
“뭡니까?”
“연료 사업입니다. 이 시대의 연료 패러다임을 전부 갈아엎을 놀라운 사업이죠.”
“연료 사업이라고요?”
최윤은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아무리 GCS가 대단하다 하지만, 지금 한 말은 썩 믿기 힘들었다.
“직접 확인해보시죠. 이것이 우리가 내놓을 새 연료입니다.”
유지웅은 조그만 상자에 담긴 그린 결정체를 내밀었다. 결정체를 확인한 최윤은 신중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응용법은 사실 우리도 자세히 모릅니다. 그걸 최윤 씨가 연구해주셔야겠어요. 여기 물질의 주요 특징과, 취급시에 주의해야 할 주요 사항을 요약했습니다.”
“흠…… 일단 알겠습니다.”
최윤은 별다른 말없이 그린 결정체를 챙겨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날.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이건 혁명입니다, 혁명이에요!”
“……아니, 하루 만에 벌써 파악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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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또 문제를 하루만에 해결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