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3 < -- <프리시즌 헬조선편> 설악마스터 -- >
‘결정체라고?’
‘설악마스터가 결정체를?’
대통령이고 참모고 할 것 없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놀라워했다. 설악마스터가 원소 번호 119, 결정체를 갖고 와서 금을 요구하다니.
참모들은 순간 눈이 마주친 채 빠르게 생각을 교환했다.
‘해야 한다!’
‘이 거래는 무조건 해야 해!’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니던 설악마스터가 스스로 나타났다. 그것도 귀한 광물까지 들고서.
결정체를 순수한 형태 그대로 확보한 국가는 없었다. 유지웅은 GCS(결정체 비누)로 가공한 형태로만 팔았고, 그것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순간 번개같은 생각 하나가 그들의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결정체 광맥은 설악산에 있는 건가!’
트럼프는 짜릿한 전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몸이 떨렸다.
그는 설악마스터를 향해 흔쾌히 끄덕였다.
“좋다. 거래하지. 어느 정도의 금이 필요한가?”
「요즘 인간 세상 이야깃거리를 보니 이 광물이 제법 귀하게 거래되고 있더군.」
참모들은 가볍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설악마스터는 인간 세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양이면 GCS인가 하는 1,000만 달러짜리 비누를 1,000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상응하는 금을 원한다.」
거기서 대통령과 참모들은 잠시 멈칫 했다. 시세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살짝 당혹스러웠다.
「금은 가급적 UBS에서 발행한 골드바로 해다오. 다른 신용 있는 은행이 발행한 것으로 대체해도 상관은 없다. 그럼 2주 뒤에 수금하러 오겠다.」
설악마스터는 그 말을 남기고 날갯짓을 펼쳤다. 천천히 상승한 설악마스터는 동쪽을 향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트럼프는 날카로운 눈빛이 되어 명령을 내렸다.
“즉시 결정체를 연구기관에 맡기고 성분 분석을!”
“예, 대통령 각하.”
“그리고 100억 달러어치 금괴를 준비하게.”
브라우니는 거래를 동시에 이행하지 않고, 먼저 결정체를 맡기고 떠났다. 그것은 대금을 떼어먹히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에서 발로한 행동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자신감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수천km의 거리를 순식간에 초음속으로 돌파하고, 시속 수백km로 물살을 헤집으며, 백악관 지하 벙커를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아 뚫고 들어오는 침투 능력.
「이래서 정치가들이란……. 알겠다. 내 부탁을 들어줘서 너희가 ‘입지 않을 손해’가 뭔지 지금 바로 보여주겠다.」
「일단 미국 두개 주 정도는 날리고 오겠다. 초토화된 땅을 보면 네 생각도 달라지겠지.」
「마음대로 생각해라. 아무튼 ‘너희가 원하는 이익’이 뭔지 보여주겠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끝이 쭈뼛거린다.
설악마스터는 그 자체로 전략 폭격기나 다름없다. 그리고 본인, 아니 본조(本鳥)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다.
‘마음에 드는데.’
트럼프는 국제 사회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의 힘과 영향력을 마음껏 행사하고 있다. 그 호쾌한 행보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지지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설악마스터 역시 스스로가 지닌 힘을 유감없이 휘두를 줄 안다. 트럼프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설악마스터가 사라진 방향을 언제까지나 바라보았다.
미국은 극비리에 결정체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MIT, 칼텍, 스탠포드 등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정체 분석 작업에 몰두했다.
그들은 이미 카이스트에서 결정체를 관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정체가 신원소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결정체가 지닌 진정한 성질, 그리고 그 활용 가능성을 진지하게 뜯어보기에는 한없이 모자랐다. 오히려 결정체 연구에 대한 갈증만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재료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무려 천 개나!
“역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신원소가 틀림없습니다. 카이스트 발표회에서 최윤 박사가 공개했던 그 신물질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결정체가 한국에 있는 것은 그럼 틀림없는 것 같은데…… 정말 설악산 지하지대에 묻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전남 야산을 파헤치고 다닌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의 노력은 다 헛짓거리였단 소리다.
물론 과학자들의 역할은 결정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게 아니었다. 결정체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밝혀내는 게 급선무였다.
“최윤 박사는 결정체를 다양한 제조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밝혔습니다만, 정확한 효능 방향성에 대해서는 아직 말을 아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맞아요. 제대로 공개한 건 금속 제품의 성질 강화 정도 밖에 없잖소.”
“GCS의 제조, 금속의 강화는 결정체의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의약품, 산업품으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 틀림없어요.”
그렇게 과학자들이 결정체 분석에 머리를 싸매고 매달리는 동안, 드디어 금괴가 준비되었다.
“나중에 의회 동의를 얻을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군.”
100억 달러어치의 금괴를 마련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순도 99.999%의 금이 무려 200톤이나 된다.
금값 변동과 달러 가치 변동 때문에 국제 시장이 좀 고생하겠지만, 미국은 공개할 수 없는 큰 이익을 얻었다.
설악마스터와의 교류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누구도 확보하지 못한 결정체를 순수한 형태로 얻었다는 것.
트럼프는 거래를 위해 사막지대까지 손수 발걸음을 했다.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듯 보이는, 우주 영화에서나 보일 듯한 풍경이다.
10kg짜리 골드바 2만 개는 차곡차곡 정리가 된 채,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보관함 안에 쌓여 있었다.
개별 보관함 각각에 1천 개의 골드바가 들어가 있고, 그 보관함이 총 20개였다. 보관함 상부에는 굵은 강철 사슬이 달려 있고, 그 사슬은 하나의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저 고리가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나? 그래도 금괴 무게만 200톤, 상자 무게까지 합치면 250톤은 족히 될 텐데.”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설악마스터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저런 형태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괴 200톤을 요구한 걸 보니 그 정도 무게는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설악마스터가 수탉 한 마리 만한 크기라는 것.
아무리 힘이 세도 체격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라는 게 있다. 금괴 200톤은 새 한 마리가 물고 가기에는 엄청난 부피를 자랑한다.
그래서 미국은 이런 형태로 만들었다. 20개의 금괴 상자를 한 입에 주렁주렁 매달 수 있는 모양으로.
“정체불명의 열원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그때 항공사령부에서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지만, 설악마스터가 초음속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열을 통해 감지한 것이다. 그 속도가 무려 마하 10을 넘었다.
대기권에서 저런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치킨이라니, 정녕 생명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도착, 도착했습니다!”
다급한 보고가 비명처럼 계속 울렸다.
트럼프는 금괴 상자 위의 상공을 응시했다. 붉은 잔염에 휩싸여 있는 새 한 마리가 천천히 아래를 향해 하강한다.
전혀 뜨겁지 않은 듯 깃털을 가볍게 파닥거리며, 금괴 상자 중 하나를 골라 내려앉았다. 그리고 도도하게 목을 치켜들고 이쪽을 바라본다.
트럼프가 눈짓 하자 우람한 군인이 나서서 위성전화기를 설악마스터에게 던졌다. 설악마스터는 한 발을 들어 날렵하게 전화기를 받아냈고, 곧바로 톡 앱을 실행했다.
「금괴 200톤은 문제 없겠지?」
“물론이다. 미국 몇 개 주가 시범적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거든. 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수량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야기를 해주기 바란다. 실수가 있다면 그 이상으로 배상할 것이다.”
「AS 정신 하나는 확실해서 좋군. 앞으로 나도 무력을 행사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대화를 시도하겠다.」
“감사한다.”
트럼프는 조금 망설였고, 참모들이 서둘러 말하라는 듯이 눈짓 했다.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 전화기는 지구 어디에 있어도 연락이 가능하다. 또 태양광 충전 방식이라 배터리 교체나 충전이 따로 필요없다. 그러니…….”
트럼프는 순간 설악마스터가 피식 웃었다고 생각했다. 새라서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럼 위치 추적도 가능하겠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니, 불가능할 수가 없다. 그건 말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의지에 달렸다는 것인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 참고하지.」
트럼프는 아리송했다. 위치 추적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추적을 하더라도 스스로가 불편해질 일은 없다는 자신감인 것인가.
“그런데 이 많은 걸 어떻게 갖고 갈 생각이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그 몸집으로는…….”
순간 트럼프는 입을 다물었다. 별안간 설악마스터로부터 눈부신 광채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눈부신 광휘에 참모들도 저마다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어떻게든 실눈을 뜨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목격하려 했다.
트럼프는 눈부심을 견디고, 실눈을 뜬 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입이 저절로 떡 벌어졌다.
화려한 섬광 속에서 브라우니의 몸집이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섬광이 걷히고 드러난 모습에, 대통령과 참모는 물론이고 과학자, 군인들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트럼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것이…….”
「보아라, 이것이 나의 진신이다.」
설악마스터는 더 이상 위성폰을 쓰지 않았다. 허공을 무겁게 울리는 둔탁한 저음으로 직접 인간의 언어를 발성했다.
언뜻 보기에도 키가 10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인다. 저 거체가 날개를 완전히 펴면, 날개 끝에서 끝까지 그 길이는 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적어도 2km 이상은 되지 않을까.
눈부시게 매끄러운 백색의 광택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그 모습은, 혼을 빼앗길 듯이 신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설악마스터는 천천히 날갯짓을 했다. 신기하게도 바람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설악마스터가 상승함에 따라, 금괴 상자들도 중력을 거스르듯이 둥실 떠올랐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한 광경에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거래는 완료되었다, 미국의 왕이여.」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설악마스터는 허공을 천천히 회전 한 뒷, 저절로 부유하는 금괴 상자를 이끌고 동쪽을 향해 사라졌다.
“…….”
한참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목소리로, 트럼프가 입을 열었다.
“들었나? 나더러 미국의 왕이라고 했어.”
그는 몹시 기분이 들떠 보였다.
“야, 잘했겠지?”
「넵, 일부러 천천히 변신했어요. 답답해 죽는 줄.」
“뭐든지 연출이 중요한 거야. 순식간에 후다닥 변신해버리면 그 과정을 음미할 수가 없잖아. 마법 소녀들이 변신할 때 왜 일부러 천천히 변신하는 건데? 다 이유가 있어요.”
「아, 그리고 미국의 왕이라고 불러주니까 엄청 좋아하던데요?」
“역시……. 뭔가 통하는 게 있어.”
유지웅은 먼 서쪽 하늘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쪽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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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황상의 반도사랑은 현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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