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 < -- <프리시즌 헬조선편> 동상이몽 -- >
결정체를 정제해 만든 철강강화제, 일명 GC-2의 첫 출고가 드디어 이뤄졌다.
1차 물량의 공급만을 기다리고 있던 미국 철강업체들은 출고되자마자 전부 긁어가다시피 가져갔다.
“이 정도 양이면 900만 톤의 철강의 품질을 강화할 수 있을 겁니다.”
최윤이 장담했고, 미 철강업체들은 제니스 컴퍼니의 가공할 생산능력에 감탄했다. 미국 전체의 생산량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혼합 비율은 1,000만 대 1입니다. 900만 톤의 철강을 강화하기 위해서 900kg의 GC-2가 소모됩니다.”
“그럼 더 많은 양을 혼합하면 어떻게 됩니까?”
“더 많이 혼합한다고 해서 품질 강도가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그보다 적게 혼합하면 품질 강화가 기대했던 만큼 이뤄지지 않습니다. 정격 용량을 사용해 주십시오.”
미 철강업체들은 한 번 더 놀랐다. 900kg이면 항공기로 충분히 실어 나를 수 있는 양 아닌가.
미국 전체 생산량을 한 달 넘게 커버할 수 있는 물량이 겨우 항공기 한 대로 운반할 수 있다니.
포장된 GC-2가 항공기에 실리는 광경은 미국 주요 매스컴을 통해 낱낱이 생중계 되었다. 흑인 남성 아나운서는 이 거래를 통해 미국의 철강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니스 컴퍼니와 미합중국의 우호적인 거래 관계가 부디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편 그런 양자 간 핑크빛 관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결정체 산업에 숟가락을 올려놓지 못한 국내 대기업들이었다.
보스코제철과 미래제철을 제외한 어느 기업도 제대로 된 투자를 이뤄내지 못했다. 멀찍이 떨어진 채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특히 국내 최대 재벌인 담성그룹의 차기 총수인 이형원 부회장은 뉴스를 볼 때마다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너무나 아까워서.
담성그룹은 결정체를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분류하여,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 끼어 들 수 없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돈으로 파고들려고 했지만, 어어 하는 사이에 유지웅은 미국에서 1조 달러나 현금을 끌어왔다. 이쯤 되면 결정체 미용 비누를 경매로 팔아서 얻는 수익은 애교처럼 보일 정도다.
“사실 방법이 없습니다. 제니스 컴퍼니는 현금 보유량만 따져도 이미 국내 최대의 부자 기업입니다. 심지어 면세 혜택까지 받고 있어서 파고들 여지가 없습니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방법을 찾으세요.”
이형원 부회장은 앓는 소리만 늘어놓는 임원들이 영 못마땅했다. 방법이 없으면 방법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방법이 없다고 손 놓고 있으려 하다나. 그러라고 회사에서 비싼 월급을 줘가면서 데리고 있는 줄 아나.
“현 정부가 제니스 컴퍼니를 용인한 것은 당장 결정체 광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상 테이블에서 양보를 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결정체 광맥을 먼저 찾으세요.”
“예, 부회장님.”
임원들은 어쩔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형원 부회장의 지시에 순순히 수긍했다.
“제니스 컴퍼니를 노리는 것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국내의 모든 기업, 심지어 정부마저 제니스 컴퍼니를 노리고 있어요. 이런 구도 안에서조차 공략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능하다는 방증 밖에 안 됩니다.”
“…….”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유지웅 그 친구가 잃을 게 없어서 절벽 협상에서 승리했다고 하죠? 그런데 어디 지금도 그렇습니까? 정말 잃을 게 없나요?”
이형원 부회장의 말에 임원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집도 절도 없던 옛날 시절과 지금의 유지웅은 분명히 처지가 다르다. 예전에는 잃을 게 전혀 없어서 언제든 해외로 이주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
“제니스 타운이 있지 않습니까. 무려 1조 달러 이상을 쏟아가면서 짓는, 유지웅 그 친구의 사유지 말입니다.”
제자리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는 자산. 공사비와 땅의 면적 및 입지를 고려하면, 장차 그 가치는 2, 3조 달러를 훌쩍 넘어설 게 분명하다.
“맞습니다. 땅을 짊어지고 해외 이주를 할 것도 아니니까요.”
국내에 막대한 가치를 지닌 사유지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아무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날 수는 없을 테니까.
이형원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친구가 이 나라에 빼도 박도 못하게끔 정착하게 만드는 게 급선무일 거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임원들은 차기 그룹 총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다들 결연히 끄덕였다.
10대 재벌 총수들이 극비리에 한 자리에 모였다. 모임은 담성그룹 이형원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유지웅을 어쩌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며 결정체 광맥을 찾는 데만 노력을 쏟아 붓던 그들은, 제니스 타운을 유지웅의 기반이자 약점으로 만들자는 발상에 찬성했다.
“왜 그런 간단한 방법을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을까요. 역시 이형원 부회장님 답습니다.”
“그럼 우리의 전략을 180도 바꿔야겠군요. 제니스 타운의 준공을 적극 돕는 쪽으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10대 재벌들은 제니스 타운의 건설을 떨떠름하게 여겼다. 대놓고 반대는 못했지만 찬동하지도 않았다.
유지웅에게 제니스 타운이라는 거대한 자산이 생기는 것만 염려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니.
“정부에도 우리 의사를 전달하고 은밀한 공조 관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부분에서는 다들 알아서 행동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은밀한 합의가 이뤄지고 얼마 후, 유지웅은 행정부로부터 의외의 연락을 받았다.
“제니스 타운에 관련된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라고요?”
“예, 국회가 아닌 정부 발의로서 다룰 예정입니다. 제니스 타운에 직접적인 효력을 끼칠 조항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 번 보시고 기탄없이 코멘트 해주시기 바랍니다.”
“앗, 설마 저를 위해서 특별히 정부에서 법안을 상정하려는 건가요?”
“네, 바로 그렇습니다.”
법무부 차관은 웃는 낯으로 말했고, 유지웅은 의외라는 듯이 법안 내용을 살폈다. 차관은 속으로 비웃었다.
‘니가 그걸 본다고 알겠냐.’
물론 조항 자체는 좋은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나중에 전문가들이 검토한다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말이다.
법안의 전체적인 내용을 훑어보자면 신도시 건설을 증진하고 긍정적인 효력을 부여하는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상 제니스 타운에 영향이 미칠 것을 상정해서 만든 것이다.
“일단 내용이 너무 좋은데요. 적어도 독소조항 몇 개 정도는 끼어 있을 줄 알았는데, 얼핏 봐도 그런 건 안 보이네요.”
“당연합니다. 부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게 아니라, 나라 차원에서 제니스 타운의 성공적인 건립을 장려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죠. 독소조항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제한을 걸 만한 조항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정상인데. 사실 지금 정부와 제가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
“지금 제니스 타운 덕분에 전남 쪽을 중심으로 지방 경기가 엄청 살아나고 있고, 덕분에 국가 경쟁력과 경제도 호황 흐름으로 돌아서고 있죠. 하지만 그 때문에 지금 대통령은 제니스 타운에 묻어가는 무능하고 운 좋은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저한테 적극 협력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저는.”
“그,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되는 겁니까? 제 앞에서…….”
“어차피 이렇게 말해도 수위 대폭 낮춰서 보고하실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뭔가 쓸데없이 지는 듯한 이 억울한 기분은 대체 뭘까?
유지웅은 보란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 헬조선의 재벌들이 이렇게 나에게 우호적으로 나올 리가 없는데.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을 텐데.”
“꿍꿍이라니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대기업과는 상관없이 행정부가 국가 경쟁력 상승 장려를 위해 추진하는 국책 사업의 일종입니다.”
“대체 뭘까. 뭘 노리는 것일까.”
유지웅은 차관의 말을 대충 흘러 넘긴 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재벌들 간에 이뤄진 담합을 알지 못하는 차관은 유지웅의 그런 태도에 그저 어이가 없었다.
이윽고 유지웅이 고개를 들었다.
“근데 이 법안 어차피 정부에서 추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코멘트 같은 걸 해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100%라고 장담은 드릴 수 없지만, 제니스 타운에 이로울 만한 의견은 겸허히 수용하여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이 법안을 추진하는 이유가 제니스 타운의 성공적인 장착을 장려하기 위해서이니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해서 법안에 반영하겠다는 거네요. 뭐,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밀어붙이셔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차관은 서울로 올라가서 상부에 그렇게 보고했고, 법안은 곧 정부 발의로 진행되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그리고 유지웅이 별 말을 안 했다는 소식을 건너들은 이형원 부회장은 무척 만족했다.
“그 친구는 아마 상상도 못할 겁니다. 맛 좋고 영양가 풍부한 고기가 사실은 자기 자신을 길들이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애초에 의심을 품지 말라고 좋은 내용으로만 법안을 포장했지 않습니까.”
제니스 타운에 지어지는 빌딩들이 한 층 한 층 높아질 때마다, 그걸 보는 재벌들의 마음도 덩달아 뿌듯해졌다.
“이상해. 분명히 재벌들이 밀어붙여서 만든 법안이야. 그런 냄새가 폴폴 났어.”
“재벌들이 왜? 우리 서로 사이 안 좋잖아.”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배가 아플 텐데 왜 나한테 좋은 일을 굳이 밀어붙이는 걸까? 이제라도 내 앞에서 납작 엎드려보겠다는 걸까? 그걸 위한 사전준비는 아닐까?”
정효주는 잠시 생각한 후 아 하고 손뼉을 쳤다.
“혹시 우리한테 약점을 만들려는 건 아닐까?”
“약점? 무슨 약점?”
“제니스 타운이 완공되면 우리의 주요 자산이면서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잖아. 최악의 경우 그거 포기하고 해외로 이주하거나 망명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야.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무려 1조 달러 이상을 투입한 대공사다. 향후 완성된 도시의 가치는 대체 어느 정도나 될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유지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에이,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난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는데.”
“니 말의 논지는 알겠어. 하지만 말이 안 되잖아. 제니스 타운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내가 설마 그거 포기 못해서 벌벌 떨까 봐? 걔들도 그걸 알 거야.”
“……아니, 재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 같은데. 제니스 타운의 가치가 너 발목 잡는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없어.”
유지웅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무리 헬조선이라 해도, 그렇게 금전 감각 떨어지는 애들이 재벌일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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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신도시 그거 얼마나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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