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1061화 (1,061/1,550)

1061     < --  <프리시즌 헬조선편> 동상이몽  -- >

5경 6,250조 달러어치의 결정체가 불타버린 후, 전 세계는 북한을 주목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결정체를 내놓으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가하던 북한은, 정작 결정체의 3/4이 사라진 것이 공개된 이후 오히려 조용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 침묵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봐도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북한은 마침내 닷새에 걸친 침묵을 깨고,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속보입니다! 오늘 시각 14:25분 경, 북한 미사일 기지에서 총 3기의 미사일이 서해상으로 발사되었습니다. 서해를 종단한 북측 미사일은 전라남도 남해안 영해 밖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인명이나 재산 피해는 없습니다!」

「국방부에서 북측 미사일의 자세한 제원을 공개했습니다!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의 이름은 대포동 3호이며, 총사거리가 12,000km 이상으로 추정되는 탄도 미사일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런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 한반도 남서해 지역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 고장이나 오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자폭인지는 아직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박지철 아나운서, 남서해상에서 미사일 3기가 일제히 폭발한 게 과연 고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단언하건데 아니라고 봅니다. 북측의 미사일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입니다. 최대사거리 12,000km 이상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 고작해야 1,000km도 비행하지 못하고 폭발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3기가 거의 같은 좌표상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역시 북측의 의도적인 자폭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탄도 미사일들이 자폭한 위치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결정체 산업단지가 건설되는 제니스 타운 인근 해역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니스 타운에 대한 위협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자폭이었을까요?」

「그렇게 해석하는 게 타당하겠습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한국 사회를 또 한 번 발칵 뒤집어놓았다. 어떤 식으로든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무런 전조도 없이 무력 도발을 시도한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인적이 드문 섬에 대한 포격이 아니라, 탄도 미사일을 통한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대포동 3호가 핵탄두 장착용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라는 것이 알려짐에 따라, 한국은 공포에 떨었다.

“혹시 그럼 그 미사일에 핵탄두가 장착되어 있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일부러 자폭시켰다니까 굳이 핵탄두를 장착하지는 않았을 거야. 대신 다음에 발사하는 미사일에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도 있다, 이런 경고를 보내는 거지.”

“북한이 쏜 미사일이 남서해안까지 내려와서 영공 인근을 휘저어도 국방부는 아무것도 못하네. 이럴 거면 사드는 도대체 왜 배치한 거야?”

“그러고 보니 사드를 발사했는지 아닌지는 알려진 바가 없네. 주한미군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스산한 전쟁 분위기가 감돌았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긴장감이 한반도를 팽팽하게 맴돌았다.

그리고 미사일이 자폭하고 꼬박 하루가 지난 후, 드디어 북한이 입을 열었다.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일 자랑스러운 인민의 불벼락 무기인 대포동 3호를 세 발 발사하여 남측에 분명한 경고를 전달했다. 그간 남측 정부는 비겁하게도 민족의 보물인 녹색 결정체를 사사로이 채굴하여 독점해왔으며, 인민공화국에 분명한 권리가 있음에도 반환하라는 요구를 묵살해왔다.

그리하여 노동당 지도부는 큰 결심을 내렸다. 남측이 계속적으로 우리 인민공화국의 요구를 묵살할 경우, 차라리 노동당의 손으로 녹색 결정체를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전일 발사한 대포동 3호 세 발은 그를 위한 경고이자 최후 통보이니, 남측 정부는 현명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거 북한이 터트린 거 아니야.”

「그럼요? 사드가 터트린 걸까요?」

“나도 모르지. 아무튼 형은 북한이 터트린 게 아니라고 생각해. 만약 자기들이 터트린 거면 터진 이후에 즉시 입장 발표를 했을 거야. 근데 꼬박 하루가 걸렸어. 자기들도 당황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입장도 결정하고 그러는데 시간이 걸린 거지.”

「무슨 말만 들으면 북한에 첩보라인 심어놓으신 듯.」

「나중에 지웅이 형님 말씀대로 발표나면 오늘 방송 다시보기에 성지순례옵니다.」

「저도 성지순례오겠습니다.」

유지웅이 방송을 종료하고 기지개를 켜자, 뒤에서 지켜보던 정효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그냥 입이 근질거려 죽겠지? 사실 네가 한 거라고.”

“엄밀히 말해서 내가 한 거 아니잖아. 브라우니가 했지.”

대포동 3호 3기가 남서해 지역에서 일제히 터진 것은 브라우니가 한 일이었다.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탄도 미사일이라고 해봐야 브라우니한테는 앉아 있는 파리를 파리채로 두들기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북한이 엄청 당황한 거 눈에 딱 보이는데, 왜 사람들은 전혀 모르지? 그게 안 보이나?”

“그거야 우리는 북한이 자폭시킨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데, 흠…….”

“놔둬. 누가 믿어주겠어? 브라우니 정체를 공개할 것도 아니면서.”

“근데 북한이 조바심이 나긴 했나 보다. 위협 미사일을 발사할 줄은 몰랐어. 결정체를 없애버린 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브라우니가 놓치지 않고 잘 감시해야 할 텐데.”

지금 브라우니는 한반도 상공을 활강하며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북한의 무력 도발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하늘 위의 5분 대기조(鳥)라고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마. 브라우니라면 포탄 한 발도 놓치지 않고 잡아낼 거야.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도 제일 먼저 발견했잖아.”

“근데 굳이 요격할 필요가 있었어? 그냥 놔둬도 어차피 먼 바다로 날아갔을 텐데.”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지. 자기들이 쏜 미사일이 두들겨 맞는 걸 봐야 간담이 서늘해질 거 아냐.”

정효주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지웅아. 결정체가 공기 중으로 돌아갔으면 나중에 괴수들이 나타나거나 그러진 않을까?”

“그럴 일은 없어. 결정 에너지 그대로 자연계에 흩어진 게 아니니까. 아주 산산이 분해돼서 결정체로 뭉칠 수가 없거든.”

“진짜 무로 돌아간 거구나, 그럼.”

“당연하지. 괴수가 ‘벌써’ 등장하면 곤란해. 레이더도 없는 세상인데 브라우니가 괴수들 처단하러 다닌다고 얼마나 바빠지겠니?”

정효주와 자신이 바빠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바빠지는 것은 오로지 브라우니뿐.

만약 브라우니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기겁하겠지?

“그리고 생각해 봐. 앉은 자리에서 편하게 결정체를 찍어낼 수 있는데, 굳이 괴수가 등장하면 피곤해진단 말이야. 그냥 지금 현상 유지가 훨씬 낫지.”

“그건 맞아.”

“나도 그 정도는 다 생각해서 결정체를 없앤 거란 말이야. 또 모르지. 난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 왼손의 균열로 다시 흡수되었을지도.”

“그런 건 네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콩알만 한 에너지가 흘러들어와 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가서 알기 힘들어. 밥 한 톨 먹어봤자 위장에 아무 신호 없지? 그거랑 비슷해.”

“…….”

그때였다. 유지웅과 정효주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진동했고,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폰에서 톡 메시지 알림이 동시에 울릴 만한 일은 하나뿐이다. 단톡방에 새 메시지가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유지웅과 정효주가 이용하는 단톡방은 단 하나, 바로 브라우니까지 셋이 포함된 단톡방이었다.

―북한이 서쪽 유인도 방향으로 포탄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요격 중입니다.

―브라우니, 하나라도 놓쳐선 안 돼.

―근데 수가 너무 많아서 완전 요격은 힘들겠는데요. 그냥 선제공격해서 포 부대를 날려버리면 안 되나요?

“안 돼! 지금 브라우니 니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진다고!”

정효주는 톡 메시지를 치다 말고 한심하다는 듯이 얼굴을 들었다.

“그런 게 이유야?”

“브라우니는 나중에 방송할 컨텐츠 떨어져서 할 거 없을 때 짠 하고 아주 멋있게 등장시키려고 생각 중이었단 말이야. 이렇게 갑작스럽고 얼떨떨하게 정체 유출되는 건 절대로 바라지 않았어!”

“방송 컨텐츠가 퍽이나 떨어지겠다.”

그냥 카메라 켜고 숨만 쉬어도 수천만 명이 몰려들어서 후원금을 던지지 않을까?

유지웅이 문득 이를 갈았다.

“그나저나 이것들이 미쳤나. 진짜로 기습 포격을 실시할 줄이야. 와, 제정신 아니네.”

“기록을 보니까 한두 번 그런 게 아니래. 잊을 만 하면 무력 도발 심심찮게 하나 봐.”

“이게 다 만만해 보여서 그래. 제대로 쓴맛을 한 번 보여주면 무서워서 어디 그런 짓을 할 수나 있겠어?”

“그래서? 쓴맛을 보여주려고?”

“끄응…….”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고뇌에 빠졌다. 정효주는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 지금, 북한을 힘으로 때려줘도 되는지 아닌지 그걸 고민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 너 지금 어떡해야 북한을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가게 할 수 있을까 그거 고민하고 있는 거잖아. 힘을 써서 눌러줄까 말까 그건 관심도 없잖아.”

“헉, 어떻게 알았어?”

“니 표정에 다 써 있어. 실룩거리면서 웃음 참는 거 보니까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겠더라. 그래서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이런 거 어때? 결정체 광맥이 알고 보니 백두산 지하까지 닿아 있는 거야. 근데 백두산 지하지대에 묻힌 결정체는 불안정하다, 그래서 그 에너지가 터지면 백두산이 활화산으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걸 방송에서 말하는 거지. 그럼 북한 정권에 좋은 협박이 되지 않을까?”

“근데 거짓말이잖아.”

“그걸 북한이 무슨 재주로 알겠어. 어차피 결정체에 관해서는 우리만 알고 있으니, 북한 정부가 엉엉 울면서 매달리지 않을까?”

정효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난 그 의견은 별로. 그것보단 이런 건 어때? 내가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뭔데?”

“들어봐. 결정체 광맥이 알고 보니…….”

정효주는 목소리를 낮춰서 설명했고, 집중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유지웅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두 팔을 뻗어 그녀를 덥석 끌어안으며 방방 뛰고 즐거워했다.

“역시 효주라니까! 난 널 믿고 있었어!”

“이거 놔! 민망하잖아!”

“효주야! 사랑해!”

며칠이 지났다.

북한의 포탄 사격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제는 세계대전 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국내 10대 신문사들은 한 장의 초청장을 받았다. 바로 유지웅의 이름으로 보내진 것으로, 중대 발표가 있으니 전남의 어느 야산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초청장을 받은 기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약속장소로 향했다.

“근데 여기가 어디지?”

“유지웅 의장 소유로 된 야산 중 하나랍니다. 혹시 결정체 광맥을 공개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결정체 광맥은 여기 전라남도가 아니라 설악산과 금강산 일대에 있는 거 아니었어?”

“그게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죠. 유지웅 의장이 이제 와서 그걸 바로잡으려는 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곳은 정부와 대기업들이 샅샅이 조사하고 다녔는데. 광맥 같은 것은 흔적도 없었어.”

“근데 저 밭은 뭐죠? 수박밭인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내 유지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느 때처럼 가느다란 셀카봉에 무지막지한 방송용 카메라를 매달고 있는 채였다.

‘다른 건 몰라도, 힘 하나는 정말 장사군. 웬만한 격투기 선수들은 상대도 안 되겠어.’

‘근데 이런 외진 곳에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야?’

유지웅은 기자들을 둘러보고는 씩 웃었다.

“다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제가 결정체에 관련된 중대발표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원래는 끝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사소한 오해 때문에 민족간에 비극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발표로 북한이 모든 오해를 풀고, 자신들이 여태껏 헛짚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기자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졌다.

유지웅은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수박밭을 향해 걸어갔다.

기자들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멍하니 바라봤고, 그때 유지웅이 넝쿨 하나를 잡고는 쑥 뽑았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보란 듯이 넝쿨 뿌리를 들어올렸다. 무심코 넝쿨 뿌리에 눈길을 준 기자들은 기겁했다.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파랗게 질린 채, 떨리는 손가락으로 유지웅이 쥔 넝쿨 뿌리를 가리켰다.

“그, 그것은 설마……!”

“결정체 광맥 같은 건 사실 없어요. 왜냐하면 결정에는 광맥이 아니라 결정체 작물 뿌리에서 채굴하는 거거든요.”

============================ 작품 후기 ============================

결정체는 사실 밭에서 재배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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