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7 < -- <프리시즌 헬조선편> 크리스탈 코인 -- >
착한 사람에게서는 악인과는 다른 생체기파가 나온다.
결정체 작물이 결정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에는 그 생채기파가 크게 작용한다.
작물에서 결정체 파편을 얻은 이들은, 아무튼 본인이 지닌 선량한 기질 덕분이다.
유지웅의 그런 설명에 류이한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걸 대체 누가 믿는단 말인가.’
착하고 선량하다는 기준은 대체 뭔가? 생체기파라고 그럴싸한 용어를 갖다 붙인다고 사람들이 믿을 것 같은가?
류이한은 유지웅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거짓말 자체는 크게 상관없었다. 결정체의 비밀을 감추는 것은 유지웅과 제니스 컴퍼니에 있어 이익이니까.
‘기왕 거짓말을 할 거면 좀 사람들이 믿을 만한 거짓말을 꾸며내던가!’
벌거벗은 임금님도 아니고, 착한 사람이 키우는 작물에만 결정체가 맺힌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유지웅 방송은 그를 철저히 배반했다.
“역시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군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우와, 착한 사람들한테만 열리는 결정체 작물이라니.
―그럼 난 안 되겠네. 포털사이트 뉴스에 악플 다는 게 취미니까.
―최초로 10억에 파편을 판 행운아 있잖아. 내가 인터넷 싹 뒤져봤는데 SNS고 뭐고 아무것도 없더라. 역시 착한 사람들은 트위터 따위에 눈도 주지 않는군.
―착한 사람들은 인생의 낭비를 하지 않는 거겠지.
―근데 착하다는 기준이 대체 뭐냐? 그건 진짜 궁금하다.
―그보다는 착한 사람 특유의 생체기파를 감정하는 기술을 빨리 개발해서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 제니스 컴퍼니가 그 단서를 쥐고 있는 듯한데.
“아아, 동생들. 잘 들어. 우리도 그렇게 추정할 뿐 아직 그 기술이 만들어진 건 아니야. 그래서 내가 일반인에게도 보급을 하기로 결정했던 거고. 가능한 많은 샘플을 얻기 위해서지.”
―역시 그런 의도가 있으셨군요!
―놀랍습니다! 감탄합니다!
“근데 아쉬워. 내 예상대로 완전한 결정체를 재배한 사람은 없더라고.”
―헐, 그것도 다 예상하셨던 겁니까?
“당연하지. 아, 그리고 확실하게 알아 둬. 결정체 파편은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없어. 컴퓨터로 비교하자면 분할된 파일 조각 같은 거야. 당연히 완전한 파일이 있어야 설치를 하든 작업을 하든 하겠지?”
―파편 활용 기술은 제니스에게만 있다는 뜻이군요, 지웅이 형님!
“오늘 동생들은 다들 이해가 빨라서 좋네. 뭐,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거액을 주고 파편을 사가는 애들이 분명 있을 거야. 내 회사에 침투해서 결정체 작물을 훔쳐간 모지리들처럼 말이지.”
―허억,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류이한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돼. 다들 그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고 있다니.
백악관은 긴급 대책 회의가 열렸다.
그들은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너무 어긋나고 있으니.
“설악마스터는 분명 결정체가 인간의 힘으로는 채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국무위원들은 다들 표정이 안 좋았다. 그들로서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설악마스터는 아직도 연락이 없습니까?”
측근의 물음에 트럼프는 인상을 구겼다.
마지막 거래 이후 설악마스터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왜 그런 것일까. 이제는 설마 금이 필요 없다는 것일까…….
트럼프는 누구가의 연락을 이렇게 애타게 기다려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를 생각해보았다. 동시에 야속하기까지 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미합중국,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으로서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순 없는 법. 그는 안면 근육을 단단히 다잡았다.
“유전자 공학 전문가들이 모두 달라붙어 결정체 작물을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정 에너지를 모으는 메커니즘을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지웅 의장의 발표 내용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선한 자가 키우는 작물에서 결정체가 열린다는 그 말? 자네들은 그걸 믿나?”
트럼프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다.
그는 결정체 광물은 설악마스터의 영역 지하 깊은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역시 유지웅 의장과 설악마스터와의 관계를 조사해야 합니다. 설악마스터와의 인연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결정체 작물 역시 설악마스터가 선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측근들은 달랐다. 광맥설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지만, 재배설에 높은 가능성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대량의 수경재배시설에서 결정체가 열리는 것을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눈으로 뻔히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세상에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유지웅 의장을 밀착 감시할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이지 않나. 더군다나 가까이에 지모 대위까지 붙어 있고. 괜히 쓸데없는 밀착 감시를 늘렸다가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해.”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 괜한 문제점을 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보다는 북한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으니.”
결정체 광맥 때문에 분개한 북한은 이미 한 차례 미사일까지 쐈다. 비록 위협용이기에 자폭시키긴 했지만 언제 다시 위협을 가해올지 알 수 없다.
“북한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긴 합니다. 위협 미사일 자폭 이후로 아무런 제스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하지 않은가. 이것들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으니.”
결정체 욕심에 눈이 뒤집어진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감시의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하고.
설악마스터의 연락을 기다리며 애간장을 태워야 하고.
결정체 재배는 또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내야 하고.
백악관은 한반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중동, 이스라엘, 남미 문제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돼가고 있습니다.”
유지웅은 뒷짐을 진 채 뚜벅뚜벅, 조용히 대리석 바닥을 거닐고 있었다. 구두굽이 차가운 돌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막하면서도 경쾌하게 울린다.
“300명의 모니터링 직원들을 고용해서 팀을 꾸린 보람이 있어요. 물론 300명은 시작일 뿐이지만요.”
“……네? 시작일 뿐이라고요? 혹시 모니터링 팀을 얼마나 더 늘리실 생각이십니까?”
“적어도 5,000명은 되어야 효율적인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최윤은 진땀을 흘렸다.
그는 지금 유지웅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그 의도만큼은 얼핏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을 끌어들여서 한 패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미 그는 유지웅의 거짓말에 몇 번이나 얽혀들었다.
결정 에너지의 구조와 몇 가지 응용 방법을 밝혀냈다는 것만으로, 그는 강제로 유지웅과 공범이 되었다. 사람들은 결정체가 식물 뿌리에서 열린다는 말을 믿고 있었고, 그것을 밝혀낸 사람은 자신으로 둔갑한 지 오래였다.
유지웅은 예전에 300명의 직원을 고용해서 모니터링 팀을 구성했다. 초봉 7,000만원부터 시작하는 고액 연봉자들로, 엄격한 단계적 심사를 거쳐 고용된 이들이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니스 컴퍼니 내부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제니스 컴퍼니 최고경영자인 류이한 사장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철저히 오너 유지웅의 직속 부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덕분에 제니스 컴퍼니에서는 그들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제법 생겨났다.
“……대체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한 번 상상을 해보세요. 아무거나 좋으니까요.”
“상상을 하려고 해도, 어떤 거라도 좋으니 단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강제로라도 끼워 맞추지요.”
“강제로 끼워 맞출 거리야 이미 널려 있지 않나요? 안 그래요, 최윤 소장님?”
“…….”
최윤은 맨들맨들한 머리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어제 소개팅 때문에 ‘재배했던’ 모발이 밤사이 빠지고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얼마 남지 않은 모발들마저 지금 실시간으로 빠져서 흘러내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최근에…… 결정체 작물에서 결정체 파편을 얻은 이들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던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그, 그럼 모니터링 팀이 하는 일은…….”
“은총을 받기에 적합한 이들을 선별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물론 그들은 자기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정확히 어떤 목적을 위해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무차별적으로 대한민국 시민들을 조사해서 과거와 현재, 성향 등 일체의 정보를 취합해 카테고리화 하는 것이죠.”
“그건 불법 사찰이 아닙니까?”
“걱정 마세요. 합법적인 영역 안에서만 하고 있으니까요. 모니터링 팀은 자기들이 광고나 홍보 등을 위한 예비 소비자층 빅 데이터 수집 및 정리 작업을 하는 거라 알고 있습니다.”
최윤의 정수리에서 축축한 식은땀이 흘렀다. 더불어 뺨을 타고 탈모도 같이 흘렀다.
지금 유지웅은 분명히 말했다.
결정체 파편 획득의 행운을 쥔 주인공들은 자신의 선택과 은총을 받은 것이라고.
“그럼 그 사람들이 결정체 파편을 얻은 것은…….”
“제가 결정 에너지를 원격으로 보냈기 때문이죠. 그들이 키우는 작물 줄기에 맺히도록 말이죠.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맺히는 것까지 모두 세심하게 조절했습니다.”
“……!”
최윤은 눈을 부릅떴다. 머리카락이 다시 한 움큼이 빠지며, 완전한 탈모인에 가까워졌다.
즉 그들이 결정체 파편을 얻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웅의 의도가 개입해 있었다는 뜻이다.
“왜 그러신 겁니까?”
최윤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것을 묻지 않았다. 말해줄 수 없는 거라면 어차피 말해주지 않을 것이고, 말해줘도 되는 내용이라면 그가 알아서 나불나불 불어댈 테니까.
지금 저 표정도 봐라. 어서 빨리 ‘대체 왜 그랬어요?’라고 물어봐주기를 잔뜩 고대하는 표정 아닌가.
왜인지는 모르지만, 유지웅은 자신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그 브레이크가 좀 더 잘 작동했으면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형편이 좀 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둘째, 그런 사람들이 저의 지지자이자 아군이 되게 만들고 싶었어요. 셋째, 국민들 사이에 결정체 파편 재배 작업의 광풍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넷째, 그렇게 해서…….”
“잠깐만요.”
가만 놔뒀다가는 1,996번째 이유까지 나올 판이었기에, 최윤은 다급히 말을 끊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그 사람에게 돈을 직접 나눠 주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왜 이렇게 번거롭게 우회해서 처리하시는 겁니까?”
“그냥 돈을 지급하면 적선이 돼버리죠. 남는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제가 돈을 주고 사면 경제 활동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경제 생산성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제가 쥐게 되는 거구요.”
“돈을 주고 사기 위해서, 일부러 결정체 작물을 팔고 사람들을 골라서 결정체 파편이 열리도록 했단 말씀입니까?”
“누가 긍휼히 여겨서 거저 준 돈을 받는 것보다는, 길가다가 황금을 주워서 파는 게 더 신나잖아요. 아, 점유이탈물 횡령죄는 논하지 맙시다. 재미없는 억지 논점 끼워 넣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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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타고 한 줄기 탈모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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