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3 < -- 성자 중의 성자 -- >
―진정해, 북쪽 친구. 내 발사 버튼이 조준 중이다.
백악관의 주인이 자신의 SNS에 올린 짤막한 글귀에 전 세계가 무거운 긴장 속으로 빠졌다. 세계의 시선이 미국의 행보에 쏠렸다.
―미 7함대, 이동! 한반도 남서해 쪽으로 항진 중!
―트럼프 대통령, 본격적으로 북한 위협하나?
―중국, 미 함대 이동 소식에 경기에 가까운 반응 보여.
미국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일본 해군기지에 주둔 중이던 7함대가 곧바로 한반도 남서해를 향해 움직인 것이다. 남서해에 함대가 자리를 잡고, 서해를 통해 항모의 항공 전력으로 북한을 위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동해가 아닌 남서해를 택한 것은, 여차하면 나설지 모르는 중국의 개입까지 분명히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이참에 확실히 미국의 힘을 보여 중국까지 눌러놓겠다는 의지까지 포함된 것이 분명했다.
―걱정할 것 없다, 북쪽 친구. 우리 항모 함대가 지금 진정제를 싣고 배달하러 가는 것뿐이니.
또다시 SNS에 올라온 트럼프 대통령의 문구에 온 세계가 바짝 긴장했다.
“트럼프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정말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전쟁을 일으키려는 게 아니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제대로 틀어막겠다는 거지. 지금 결정체 사업에 미국이 가진 지분이 얼마인지 한 번 봐봐. 미국 철강계가 쏟아 부은 돈만 자그마치 1조 달러라고. 여기에 컴퓨터 반도체 제조업체 AND까지 이미 제니스 컴퍼니에 넘어왔잖아.”
“아하, 그래서 북한이 혹시라도 위협을 가할 수 있으니 작정하고 눌러 놓겠다?”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어. 북한이 미사일 자폭 쇼를 벌였을 때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 했는데, 그동안 백악관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었지. 이제야 계산기 두드리는 작업을 다 끝낸 모양이네.”
“그렇다면?”
“장고 끝에 미 7함대를 움직였어. 작정하고 벼린 칼을 꺼낸 거야. 피를 보지 않고 칼집에 다시 집어넣진 않겠지.”
미함대가 한반도 남서해를 향해 이동하자, 중국과 러시아에서 즉각적인 반발이 터져 나왔다.
“미국은 즉시 함대를 돌리고, 대화를 시작하라.”
“우리는 극동아시아에 더 이상의 전운이 감도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아마 북한 수뇌부들한테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두려운 하룻밤이 지난 뒤, 트럼프 대통령의 SNS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평양 주석궁을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무런 부연설명이나 문구 없이, 그 사진 한 장만 달랑 올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깨달은 온 세계는 전율했다.
“이 사진, 간밤에 스텔스기가 북한 평양까지 정찰하고 돌아왔다는 증거잖아?”
“이건 트럼프가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야. 네가 모르는 사이에 머리 위로 미사일을 날리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경고지.”
전화의 불씨는 작아지기는커녕 언제 불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반전 운동이 일어나는 한편, 이참에 미국이 북한을 확실하게 눌러야 한다는 외침도 만만치 않게 크기를 높이고 있었다.
중국은 혹시라도 미국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을 두려워하면서도 북한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고.
러시아 역시 자기 앞마당을 미국이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것에 불쾌해하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국가 간 감정이 격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국은 제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만약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미국의 주도에 의한 철저하고도 조속한 응징의 형태로 진행되기를 빌었다.
미 함대가 한반도 남서해를 향해 이동하는 그 일주일의 시간이 참으로 길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사건이 일어났다.
「속보! 북한에 반란 일어나.」
「전대미문의 대반란! 북한, 내전으로 진입하는가?」
「CBS 최영주입니다. 긴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사흘 전을 기점으로 일어난 북한 반란이 현재까지 진행 중입니다. 북한 최고 권력자 일가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군은 반란 진압을 시도 중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보입니다. 현재까지 군 최고위 장성 네 명이 사살된 것으로 공식 확인 되었습니다. 다음은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앵커의 다급한 설명 이후, 평양 곳곳을 찍은 사진이나 영상물이 스쳐 지나갔다. 곳곳에 건물이 부서진 잔해와 탄환 자국이 남아 있는 모습이 선명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평양 자체가 전쟁에 접어든 게 분명했기에, 한국은 불안감에 떨며 크게 술렁거렸다.
“진짜야? 진짜 지금 북한에 반란 일어난 거야?”
“그렇다던데. 이미 내전 돌입했다더라. 김씨 일가는 지금 생사 확인도 안 된대. 탈출했는지 안 했는지도 알 수가 없대.”
“……와. 그 철옹성 같은 북한에도 반란이라는 게 결국 일어나긴 하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놓고 미사일 조준하니까 멘붕 온 거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들고 일어나서 위원장 머리 잘라서 갖다 바치고 읍소라도 해보려고 한 게 아닐까?”
여러 가지 다양한 주장이 나왔지만,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은 주장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진짜 공포’를 느낀 세력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은 실제로 일리가 있었기에 거부감 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받아들여졌다.
“미국도 함대 세워놓고 관망하는 중이라던데. 일단 북한 내전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지켜볼 생각인가 봐.”
“혹시 미국이 북한 반란에 개입을 하지 않았을까?”
“어, 그럴 수도 있겠다. 미국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세상의 관심은 이제 북한의 반란에 관해서 미국이 어디까지 알고 관여했는지에 쏠렸다.
“미국은 미사일 자폭 쇼 이후 줄곧 조용하다가 계산 다 마치고 7함대까지 움직였어. 그리고 그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때맞춰서 반란이 일어났고,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지. 아무리 봐도 이건 미국이 처음부터 설계한 거야.”
음모론은 그렇게 끝없이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었다.
백악관의 내부 사정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랐다.
7함대를 잠시 정박하게 한 것은 북한 사태를 좀 더 지켜보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그것은 느긋함에서 나온 여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변수에 당황해서 일단 올스톱을 외친 것이라고 봐야 했다.
“북한 수뇌부는 모조리 처형되었습니다. 북한 서열 200위까지는 그 일가족을 포함해 전부 사망했습니다. 갓난아기도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망은 제대로 확인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혁명군은 자신들의 성과를 그다지 숨길 마음도 없는 듯이 보입니다.”
북한 지도부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었지만,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발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북한 최고 지도층은 반란이 시작하자마자 사망했다. 정확히는 혁명군이 최고 지도층을 일거에 제거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머리를 잃은 노동당 고위층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혁명군은 재빨리 움직여 서열 200위에 달하는 북한 고위층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일가족까지 전부.
그 모든 게 겨우 사흘 만에 일어난 일이었고, 북한의 권력은 사실상 혁명군으로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놀랍군, 놀라워.”
트럼프는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혁명군 세력은 극소수였다. 무장 역시 그리 변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평양방위군 세력이 노동당의 통제 하에 있었으니.
그런데도 혁명 세력은 단숨에 평양을 점령하고 노동당의 중심 인물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이 보기에 그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어린아이가 맨주먹으로 반달곰을 때려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정말 지원하는 외부 세력이 없나? 중국이나 러시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
“현재까지는 파악된 정황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북한의 사태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혁명군만의 힘으로 반란을 성공했다는 건가? 대단하군. 정말 놀라워.”
트럼프가 박수를 치든 말든, 참모진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까지는 1차 성공일 뿐입니다. 평양을 점령하고 평양방위군을 무력화시켰지만, 그 외의 세력은 아직 건재합니다. 지금쯤이면 국경지대에 포진한 군 부대 장성들도 평양에 일어난 참사를 구체적으로 파악했을 겁니다.”
최고지도부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들로서도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수뇌부가 일가족까지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 군벌 세력들도 저마다 움직일 것이다.
군력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그들은 당연히 평양에 진입을 시도할 것이고, 혁명군을 몰살시키려 할 것이다.
그 이후 정통성을 주장하며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쓸 것이다.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혁명군을 지원할지 말지, 그리고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를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판단은?”
측근들은 주저 없이 말했다.
“당연히 개입해야 합니다. 지금쯤이면 혁명군도 외부 세력의 조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여기저기 접촉을 시도할 겁니다. 특히 그들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헌데 만약 그들이 김씨 일가보다 더 악질적인 독재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지기반이 빈약한 만큼 언제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적어도 더 악질적인 독재 정치는 펴지 못할 겁니다.”
트럼프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접선해 봐.”
그때였다.
국방부 장관의 표정이 별안간 창백해지더니, 빠르게 대통령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각하, 휴전선 인근에 있던 2개 사단이 연합해서 평양으로 진군했다고 합니다.”
“벌써? 서둘러야겠군.”
운 좋게 평양을 점령했지만,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운 기계 부대의 진공에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혁명군은 변변찮은 탱크 하나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니까.
만약 접선을 하기도 전에 지방 군벌의 개입에 무너진다면, 미국의 개입도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트럼프는 최악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든 한반도를 시끄럽지만 않게 만들면…… 조속히 조용히 시키면 되는데…….’
“시간이 없으니 조속히 접선하도록 하게. 평양에 직접 상륙을 해도 좋으니.”
“알겠습니다.”
비상안보회의는 일단 그렇게 마쳤다.
그러나 트럼프는 퇴근할 수 없었다. 다른 국무위원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다시금 백악관 회의실에 모여야 했다.
“현재 평양 진격 부대의 상황입니다. 보유하던 전차의 80%가 무력화되었습니다. 관련 영상입니다…….”
상황을 브리핑하는 군 장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영상을 지켜보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제대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불바다 속을 유유히 걸어 나오는 한 남자가 보인다. 걸친 옷 대부분이 불타고 걸레짝이 된 그는 알몸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차갑게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부러진 전차의 포탄 발사대 끝이 쥐어져 있었다.
무수한 기관총탄이 그를 향해 난사되고 있지만,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그는 손에 든 포탄 발사대를 창처럼 가볍게 던졌고, 반쯤 부서진 장갑차가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꿰뚫리며 불이 붙었다.
입을 떡 벌린 트럼프는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인간 탱크……?”
우습게도, 그 외의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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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개는 솔직히 예상 못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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