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 -- 종신주민 -- >
“난 말이지. 질서를 중시해.”
유지웅은 카메라를 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찌어찌 납득 할 수 있는 실수도 아니고, 그냥 지가 술 먹고 운전대 잡았다가 인생 여럿 날려버린 놈이, 돈 빠방하게 써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오는 건 질서가 아니지. 안 그래?”
―역시 지웅이 형님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우리 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사회에서 격리를 해주신 거군요! 범죄자들의 도시를 지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정말 감탄합니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엄연한 공권력이 살아 있는데 사인이 사적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닌가 싶은데요……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응, 꺼져.
―법이 할 일을 못하니까 결국 참다 참다 형님까지 나서서 저러시는 거잖아.
“그런 말이 나올까 봐 백병우 그 친구하고 약속을 했어. 그 친구도 술만 먹으면 운전대를 잡는 자기 자신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하네. 자기 못된 습관을 교정해달라고 나한테 어찌나 애절하게 부탁하던지. 아버지와 같이 말이야. 그래서 받아들인 거야.”
―그, 그렇다면야 할 말이 없네요…….
“난 법을 존중하는 법치주의 시민이란 말이야. 법이 하지 말라는 건 굳이 애써서 하지 않거든.”
―그럼 백병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정말 교정이 되면 형님의 보호 관찰이 끝나는 건가요?
“물론이죠. 완벽하게 교정이 돼서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나는 백병우 부자와 약속한 대로 보호 관찰 조치를 그만둘 거야. 애초에 그게 ‘계약’이었으니까.”
―왠지 지웅이 형님 성격 같으면 평생 교정이 안 됐다고 제니스 프리즌에서 안 내보내줄 것 같은데…….
―쉿, 그런 건 혼자 속으로만 알고 있어. 절대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돼.
―아차, 나의 실수.
―근데 형님, 지금 어디 가세요? 제니스 타운이 아니라 지금 서울에 계시는 거 같은데요?
“국회의원한테 민원이 있어서 여의도를 찾아가고 있어.”
―어느 국회의원을 찾아가시는 중이세요?
“몰라. 아직 안 정했어. 그냥 아무 국회의원이나 붙잡고 민원 넣을 거야.”
―근데 민원 같은 것을 이렇게 대놓고 말씀하셔도 되는 건가요?
―국민이 국회의원한테 이거저거 해달라고 민원 넣는 거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 자기 사익을 위해서 민원이 아니라 ‘청탁’을 하는 게 문제지.
―맞아. 지금 형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잖아. 민원 넣으려고 찾아가는 중이라고. 애초에 불법 청탁 같은 거였으면 이렇게 방송에 대고 말씀을 꺼내지도 않으셨겠지!
―애초에 형님이라면 불법 청탁 같은 것을 하실 이유가 없지. 오히려 국회의원들한테 청탁을 받으면 모를까.
―빨리 제니스 타운이 완성돼서 이사가고 싶다. 학학. 그러면 형님과 매일 같은 도시에서 눈뜰 수 있겠지?
―근데 형님, 무슨 민원이에요? 내용은 비밀인가요?
“아아, 비밀까진 아니고, 그냥 제니스 타운을 짓는데 필요한 법안들이 있어서 부탁을 좀 하려고. 제니스 타운이 정상 궤도에 올라야 이 나라도 더욱 발전을 할 거 아니야?”
―역시 법은 꼼꼼하게 지키시는 우리 지웅이 형님!
“하하, 내가 원래 법은…….”
그때였다. 끼이익! 하는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무언가 둔탁한 충격이 유지웅의 뒤를 덮쳤다.
유지웅은 그대로 자신을 덮친 물체에 밀린 채 도로 옆에 서 있는 빌딩에 처박혔다. 그가 들고 있는 방송 장비는 그런 순간까지도 낱낱이 송출하고 있었다.
―으앗! 무슨 일이야!
―지, 지웅이 형님이 차에 치이셨어!
―아니, 저 차는 미쳤나? 이 백주대낮에 왜 저렇게 밟아가면서 인도를 침범하고 지랄이야!
―혹시 급발진 같은 게 아닐까?
―지웅이 형님! 괜찮으세요?
한눈에 보기에도 유지웅의 상태는 심각했다.
차와 빌딩 벽 사이에 끼인 채, 부서진 벽에 몸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세게 밟았는지 차량의 앞부분은 절반이 줄어들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아야야……. 내가 진짜 레이더가 아니라 일반인이었으면 이건 즉사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지웅이 아픈 표정을 지으며 차를 힘겹게 밀어내고 빠져 나온 것이다.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더러워지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이 보였다.
―지웅이 형님은 불사신입니까?
―와, 꼼짝없이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멀쩡히 털고 나오시다니…… 혹시 지웅이 형님, 딜러가 아니라 탱커는 아닐까?
―아니면 탱커, 딜러, 복합 능력자일 수도 있지.
차에서는 요란한 경적이 울리고 있었다. 유지웅은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쟤는 지가 뭘 잘했다고 경적을 저렇게 계속 울려대?”
―형님, 왠지 운전자 상태가 지금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한 번 살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어.”
유지웅은 옷을 탁탁 털고는 운전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운전자가 운전대에 머리를 숙이고 댄 채 정지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 헉, 뭐야?”
유지웅은 눈살을 찌푸렸다.
“또 술 냄새야?”
―종신주민 2호를 벌써 확보하신 겁니까?
국내 기업가, 정치가들은 유지웅의 방송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체크한다. 자신이 직접 볼 시간이 없어도 보좌관이나 부하를 시켜서 반드시 내용을 확인하게 한다.
유지웅이 종종 방송에서 외교, 정치, 경제에 관련된 폭탄을 떨어뜨리곤 하기 때문이다.
100만 명의 죄수를 수용 가능한 신형 교도소 같은 경우는 방송에서 터트리기 전에 미리 행안부에 협조 요청을 ‘통보’한 내용이라 타격이 적었지만, 방송에서 먼저 터트린 다음에 일을 추진하는 경우도 잦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의도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유지웅의 방송을 낱낱이 체크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보다 더 바짝 긴장해서 방송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유지웅이 지금 여의도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대놓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미처 방송을 체크하지 못하던 보좌관들 사이에 그 소식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국회의원 대부분은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보좌관에게 방송 내용을 확인하게 시켰다.
그런데 생방송 도중에 사고가 났다.
「또 술 냄새야?」
―종신주민 2호를 벌써 확보하신 겁니까?
“의원님! 의원님!”
여당 소속 장충후 의원은 수석 보좌관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스라치게 놀랄 뻔했다.
그는 유지웅이 국회로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발 그게 자신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타게 기도하던 중이었다.
“큰일입니다!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무슨 사고?”
“유지웅 의장이 국회로 오던 도중 여의도에서 인도를 덮친 차에 치였습니다! 건물 벽에 부서질 정도로 세게 처박혔고 차체도 앞부분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그럼 죽은 거 아니야?”
순간 장충후 의원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다가 아차 싶어서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유지웅 의장은 어떻게 됐지?”
“사, 살아 있습니다! 아주 멀쩡합니다!”
“뭐라고? 아니, 차에 치여서 벽에까지 들이박혔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어?”
“아무래도 레이더라서 일반인과 맷집 자체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 차량 운전자가 음주운전자인 듯합니다.”
“아니, 또?”
고속도로 역주행 음주운전에 얽힌 게 얼마나 됐다고, 그새 또 음주운전과 엮인단 말인가.
“의, 의원님!”
그때 말단 보좌관이 사색이 돼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장충후 의원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가슴이 벌렁거렸다.
“유지웅 의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까지의 놀람은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에 불과했던 것인가.
장충후 의원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크게 외쳤다.
“아니, 왜 하필 나야!”
“처음 뵙습니다, 의원님.”
유지웅은 공손하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까지 했다. 장충후 의원은 그런 공손함이 더욱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대체 무슨 요구를 하려고 이렇게 깍듯하게 대한단 말인가.
“하하, 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는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그래도 3선을 괜히 한 게 아니라는 듯, 장충후 의원은 침착한 웃음으로 유지웅을 맞이했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제일 먼저 눈에 띄어서 들어왔어요.”
“…….”
장충후는 신관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의원 사무실을 잡은 자신의 선택을 원망했다.
“제 옷이 좀 그렇지요? 사실 오는 도중에 사고가 있어서 이 꼴이 됐습니다. 어디 가서 옷이라도 사 입고 와야 할 텐데 시간도 없고, 또 국정을 다스리시는 의원님께서 그런 사소한 문제를 심각히 여기시진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왔습니다.”
“자, 잘하셨습니다. 암요, 다른 것도 아니고 사고로 옷이 그렇게 됐는데 어쩔 수 없지요. 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요?”
“네, 그래서 운전자는 일단 현장에 놔두고 왔습니다. 음주운전인지 술 냄새가 엄청 심하더라고요. 덕분에 오는 도중에 민원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민원이 ‘하나 더’ 생겨?
장충후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원래 제가 민원 드리려고 한 게 이건데요. 제가 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서 대충 간이 법안을 만들어봤습니다. 제니스 타운이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법안인데요. 기존에 행정부와 국회가 입법 통과를 해주신 점은 감사하지만, 추가로 이런 법안들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나중에 검토해보시고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올해 안에 꼭 통과시켜 주실 거죠?”
장충후의 귀에는 그 말이 마치 올해 안에 통과시키도록 만들라는 협박처럼 들렸다.
아주 터무니없는 법안만 아니라면 아마 별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다. 다른 국회의원들도 생각이 있다면 유지웅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손을 써보겠습니다. 저어, 그런데 오는 도중에 하나 더 생겼다는 민원은 무엇인지요……?”
“아, 다름이 아니고 제가 음주운전 사고를 두 번이나 겪었잖아요? 물론 첫 번째 경험은 제가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목격자로서 겪은 거지만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음주 운전에 관련된 요구를 할 모양인가?
가만, 이전에 백병우도 본인이 보호 관찰하겠다며 한창 땅을 다지고 있는 제니스 프리즌에 끌고 갔다고 했지, 아마?
‘맞다. 오는 도중에 새로 생긴 민원이라고 했지? 그럼 아마도 그 이야기가 맞겠군.’
덕분에 장충후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 거라면 한층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음주 운전자들 처벌이 너무 약해요. 자동차는 잘못 운전하면 흉기나 마찬가지인데, 술 먹고 운전대를 잡는 것은 도로 위에서 사람 죽이고 다니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닙니까? 엄한 처벌이 필요해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인간적으로 술 먹고 운전하다 걸리면 1회 발각만으로 영원히 운전을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까지 죽였으면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맞죠.”
유지웅은 가슴을 활짝 펴고 말했다.
“제니스 프리즌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말이 100만 명 수용이지, 빽빽하게 수용하면 300만 명 이상도 수용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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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입구는 언제나 열려 있단다.
출구는 언제나 닫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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