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1134화 (1,134/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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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웅이 입국한 순간부터 백악관은 초긴장 모드였다.

사전에 통보를 받았기에 그의 입국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대체 왜 갑자기 수행원 한 명만 달랑 데리고 입국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유지웅은 그 수행원의 신원을 국가 기밀로 유지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수행원이 대체 누구지?”

“담성그룹 계열사 임원입니다. 김범석 이사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담성전자 이형원 부회장의 측근이기도 합니다. 유지웅 의장과 가끔 비밀리에 만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자세한 관계 내역은 알 수 없습니다.”

유지웅의 괴팍한 성정을 일찍이 파악한 백악관은 그를 관찰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다.

도청 등 불법적인 영역에는 일체 발을 담그지 않고, 통상적인 수준에서 지켜보는 정도만 유지하고 있다.

그가 미국과의 동맹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고, 또 실질적으로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괜히 그의 심기를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막말로 그는 대체 자체가 불가능한 동맹이니까.

“담성그룹이라면…….”

“한국 재계 1위의 재벌 기업입니다. 현재 유지웅 의장의 소모임에서 단단히 찍힌 그룹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유지웅 의장이 담성그룹 인수를 노리는 거 같습니다.”

“내부 측근을 포섭한 거군.”

트럼프는 끄덕거리며 납득했다.

유지웅이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집어삼키든 미국한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협조 요청을 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향까지 있었다.

“특별한 외교 일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유지웅 의장도 단순한 관광 여행이라고 밝혔습니다.”

“단순한 관광 여행에 비밀리에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 측근만을 대동하고 올 리가 없을 텐데.”

일리가 있는 의견인지라 백악관 참모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유지웅은 무엇을 노리고 김범석 한 명만을 데리고 굳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일까?

백악관과 지척으로 떨어져 있는 만큼,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트럼프와 독대를 할 수도 있다.

혹시 유성그룹 인수 과정에 트럼프의 도움이 필요해서 관광 여행을 사칭하고 온 것은 아닐까?

“그럼 김범석이란 그 친구는 한국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출국한 적이 없겠군.”

“네, 그렇습니다. 출국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출국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서까지 김범석 그 자 한 명만을 데리고 워싱턴을 방문했다?

백악관 분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유지웅 의장이 방송을 켰습니다!”

“뭐야?”

회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CIA 직원이 재빨리 빔 프로젝터를 켜서 유지웅의 방송이 재생되게 했다.

「안녕, 동생들? 나는 지금 미국 워싱턴DC에 와 있어. …… 경품 상품으로 깔끔하게 1kg금괴 42,000개 간다.」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방송 내용에 다들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메가밀리언 복권 숫자가 몇 개나 일치할지를 알아맞히는 경품 이벤트를 한다는 것인가?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의 안색만 살폈다.

트럼프는 눈을 부릅뜬 채 화면을 노려보듯이 주시했다. 그의 긴장감에 전염된 참모들도 입을 다물고, 바짝 긴장한 채 화면을 살폈다.

왠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CIA 직원이 센스 있게 어느새 메가밀리언 추첨 방송까지 동시에 틀어 주었다.

「어디 보자. 첫 번째 숫자는…… 3이네?」

「다음 숫자는 72군. 이것도 맞췄다.」

「33. 또 맞았네.」

「42. 역시 빗나가질 않는군.」

「22. 이것도 맞췄네.」

숫자 5개가 잇따라 일치하고, 마지막 메가볼 넘버까지 완벽히 맞추는 걸 목도한 순간, 트럼프를 포함한 참모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저, 저게 가능해?”

“심심풀이로 처음 산 복권이 3억 200만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당첨된다고?”

눈으로 보면서도 다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

쇼가 아니라 마치 기적을 목도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누군가가 사기라고 말해주는 게 오히려 믿기 쉬울 만큼 엄청난.

「내가 숫자 6개를 모두 맞춘다는 것에 건 시청자 친구들에게는 1kg짜리 금괴를 상품으로 나눠주겠어. 몇 명이나 되는지 어디 보자……. 와, 신기하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동생들, 다들 직접 확인해볼래?」

“42,000명!”

“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조작입니다. 아무튼 조작입니다.”

백악관은 더 큰 경악에 빠졌다. 유지웅이 경품으로 내 건 금괴의 숫자와 경품 이벤트 당첨자의 숫자가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오늘 방송의 마지막 쇼가 남았네? 그게 뭘 거 같아?」

“흐, 흐이이익!”

“제발! 제발, 그러지 마요!”

진중해야 할 백악관 회의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유지웅이 카메라 앞에서 21억 달러짜리 복권 당첨 용지를 북북 찢어버린 후 라이터 불을 붙여 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21억 달러는 여기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아니 인생을 걸어볼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당장 그 돈만 있어도 세계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테니.

갑자기 유지웅의 표정이 바뀌었다.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잘 들어. 내가 이제부터 번호 여섯 개를 찍을 거야.」

“적어! 적어!”

“누가 나에게 메모지를! 볼펜도!”

백악관 참모들은 허둥지둥 메모지와 볼펜을 찾았다. 트럼프도 급히 펜을 들어 필기할 준비를 갖췄다.

「1, 22, 33, 41, 44…….」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숫자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써내려가는 필기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필기를 마친 이들의 표정에는 안도와 기쁨이 가득했다.

이 순간만큼은 백악관 수뇌부 일동도 방송 시청자들과 똑같이 한마음이리라.

「이게 내가 찍어주는 행운의 숫자야. 다음 메가밀리언에서 건승하도록 해, 동생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방송 종료.

월드 스타의 콘서트 무대에 흠뻑 빠진 듯한 희열은 조금씩 물러가고, 그 자리를 이성이 대신 차지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물론이고 참모진들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그러면서도 숫자 6개를 적은 종이를 각자 슬쩍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험, 험…….”

멋쩍음을 달래기 위한 헛기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다들 어떻게 회의를 진행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남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적은 6개의 숫자,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계면쩍음만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트럼프가 언제나 소중하게 들고 다니는, 설악마스터 전용 핫라인 위성폰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악마스터!”

회의실의 분위기가 대번에 반전했다. 다들 언제 겸연쩍어했느냐는 듯 날카로운 프로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트럼프는 급히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문자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금괴 42톤이 필요하다.”

문자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트럼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내용이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1kg짜리 42,000개로 준비해 달라.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거래를 하고 싶다.”

“…….”

“…….”

참모진의 표정이 다들 하나같이 묘하게 변했다.

설악마스터가 보낸 문자 내용이 너무 의미심장했고,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설마…….”

“유지웅 의장의 방송 경품으로 쓰려고?”

“무, 물론 설악마스터가 유지웅 의장을 비밀리에 후원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대놓고?

방송이 끝난 직후에 이런 요구를 해오면, 백악관이 아무리 바보여도 눈치 챌 수밖에 없지 않는가. 유지웅이 경품으로 나눠주기 위해서 금괴가 필요한 거라고.

어느 참모가 의문을 제시했다.

“설악마스터가 유지웅 의장을 후원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지웅 의장이 이런 ‘소소한’ 부탁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고 또 그걸 쉽게 들어줄 만큼 둘 사이가 밀접하다는 것은 보고 내용에 없었습니다.”

유지웅이 설악마스터와 접촉하고 있다는 조짐은 없었다. 백악관은 설악마스터가 설악산에 은둔한 채 조용히, 꼭 필요할 때만 유지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거라고 추정해왔다.

북한에 지원한 금괴야 한반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설악마스터가 유지웅을 도와준 것이라 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자 내용을 보면 둘이 항시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둘 사이가 이런 소소한 경품 이벤트 상품까지 설악마스터가 직접 발품을 팔아 마련해줄 정도란 말인가?

“각하, 일단 답변을 하셔야 할 듯합니다.”

“그래야지. 친구들이 언제쯤 준비될 수 있을까?”

트럼프가 말하는 친구들이란 금을 취급하는 미국 내 부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몇 차례나 거래를 하면서 아무 문제없이 그 많은 금괴들을 조달한 믿음직한 친구들이었다.

그들도 공짜로 거래하는 게 아니다. 금 대신 그에 상응하는 결정체를 받아,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결정체 연구에 힘을 쏟고 있었으니.

“금괴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운반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대략 이틀이면 될 겁니다.”

“알겠네.”

트럼프는 곧바로 설악마스터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틀 뒤, 예전 그 장소에서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설악마스터는 바로 대답이 왔다.

「좋다.」

황량한 벌판에는 철제 궤에 담긴 금괴 42,000개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트럼프는 다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설악마스터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먼 하늘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트럼프는 북미항공사령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가?”

“예, 각하. 레이더에는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대체 어떤 원리로…….”

“설악마스터의 깃털 표면이 레이더 전파를 100% 흡수해버린다면 가능합니다. 광학 탐지나 열원 탐지가 아닌 이상은 설악마스터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할 겁니다.”

이윽고 설악마스터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고, 트럼프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금괴를 가지고 사라졌다. 그에 상응하는 결정체를 남긴 것은 물론이다.

트럼프는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예. 금괴도 레이더 반응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대로는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설악마스터 본신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은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금괴를 담은 철궤들마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정녕 설악마스터는 현대 문명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천천히 멀어지는 설악마스터의 거대한 모습을 바라보며, 트럼프는 어제 구입한 메가밀리언 복권을 떠올렸다.

―메가밀리언! 역대 최대 잭팟! 39억 달러 돌파!

―파워볼과 쌍벽을 이루는 메가밀리언이 파워볼을 보기 좋게 비웃으며 큰 차이를 벌렸다. 누적 당첨금액 39억 달러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지난주 당첨자로 추정되는 유지웅 의장은 21억 달러를 수령하지 않고 개인 방송에서 복권 용지를 과감히 찢어버린 후, 다음 당첨 예상 번호로 추정되는 번호 6개를 불렀다. 덕분에 미국 전역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메가밀리언 열풍이 불어, 복권을 사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도 복권을 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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