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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1152화 (1,152/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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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반달곰이라는 코드네임을 얻은 토르가 국회의사당 공원에 자리 잡은 지도 어언 한 달이 넘어섰다.

그동안 국정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가까웠다. 일단 국회는 헌법기관으로서 권능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당장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만한 공간도 확보하지 못했다. 임시 국회 의사당을 대신할 만한 공간이나 시설이 없어서도, 그런 시설을 못 찾아서도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멘탈이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을 강탈당하고 목숨의 위협을 받은 충격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으니.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였던 것이다.

국회가 입법기관이자 견제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행정부가 살판이 나서 이리저리 설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김호 대통령은 감히 국회의 눈을 피해 사리사욕을 챙긴다거나 따위는 할 수 없었다.

토르의 속도로 봤을 때, 국회에서 청와대는 지척이다.

언제 토르가 청와대로 쳐들어와 지하벙커를 때려 부수고 난리를 피울지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정상인이라면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특별한 정치적 대의가 아닌, 사리사욕을 위해 대통령에 도전했던 건설업 출신인 김호 대통령으로서는 당장이라도 서울을 버리고 제니스 타운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여의도반달곰은 국회의사당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이따금씩 한밤중에 포효를 내질러 서울 시민 전체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포효만 지를 뿐 파괴 행각을 벌이진 않고 있어 시민들도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처음에 서울을 활보할 때만 해도 그렇게 무서웠고, 당장이라도 서울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야 했다.

하지만 한 달이 훌쩍 지나가는 동안 여의도반달곰은 더 이상 추가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그저 국회의사당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뒹굴거리면서 이따금씩 오금이 얼어붙게 하는 포효를 내지를 뿐이다.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듣기만 해도 온몸이 굳을 만큼 무서웠던 그 포효도 이제 적응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처럼 꼼짝없이 아무것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헤어날 수 없는 공포에서 그래도 조금은 견딜 만한 공포로 순화된 것이지, 서울 거주를 기피하는 흐름은 건재했다.

“그리고 며칠에 한 번씩은 한밤중에 갑자기 사라집니다. 서울 외곽을 벗어나 경기도 일대를 순찰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을 자기 집으로 여기는 맹수의 습성과 매우 비슷합니다.”

“여의도반달곰이 서울 일대를 순찰하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다행히 언론 통제를 하고 있고, 제대로 된 입증 사진도 없어 SNS에서는 음모론으로만 남아 있습니다만……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시민들의 혼란은 더욱 커질 겁니다.”

“강남 지역 아파트는 5년 전 시세로 그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 떨어지고 있습니다.”

표정 없이 듣고 있던 김호 대통령도 마지막 말에는 가늘게 찢어진 눈을 움찔하며 반응했다.

“5년 전 시세라고?”

“예, 그마저도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유주들이 앞을 다투어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선뜻 사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전세나 월세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강남뿐만이 아니라 강남을 시작으로 서울 일대의 집값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강남이 가장 큰 비율의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그 피해가 머지않아 서울 전체로 뻗어나갈 겁니다.”

“끄응…….”

김호 대통령은 신음을 흘렸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꾸준히 서울 수성 정책을 펼쳐 왔다. 다른 지방은 포기하더라도 서울만큼은 우량 도시로 지켜내겠다는 직접, 간접 전략을 취해왔다.

왜냐하면 그의 정치적, 사업 기반도 모두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가족이나 법인 명의로 부동산 등 상당한 재산을 서울 내에 축적해두고 있었다.

그런데 여의도반달곰 때문에 그 재산의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니.

“사실 그런 조짐은 이전부터 팽배했습니다. 다만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요. 여의도반달곰은 그동안 눌려 있던 무의식을 터트리는 기폭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여기 있던 이들 중 그 사실을 몰랐던 이가 없다. 서울의 가치 하락은 꽤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고, 그 잠재력을 꾸준히 축적해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제니스 타운의 건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어도 매달 십만여 명 이상이 제니스 컴퍼니에서 구매한 결정체 작물에서 판매 가치가 있는 결정체 파편을 수확하고 있고, 제니스 컴퍼니는 꾸준히 그것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십만여 명 중에서 억대 이상의 대박 이익을 터트리는 이는 1%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외 나머지는 적어도 월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꾸준히 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6만 명 이상이 거의 매달 결정체 파편을 얻는 이들입니다.”

매달 10만 명이라는 것이지, 그 구성 멤버는 조금씩 바뀌기에 실제로는 15만 명 정도 될 것이다.

그 15만 명은 철저히 유지웅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지지율이다.

“제니스타운의 철강 산업과 결정체 산업 일부, 그리고 소량의 유통업은 이미 그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니스타운 입주민들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고, 국민들 대다수가 그걸 알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의 젊은 층이 가장 예민하게 제니스타운의 성장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미 서울의 젊은 층은 상당수가 제니스타운으로 빠져 나간 것으로 추산됩니다. 다만 아직 주소 이전을 하지 않아 그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제니스 컴퍼니는 제니스타운이 최소 삼천만 이상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출 거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인구 밀집을 감수하면 일억 이상도 수용할 수 있을 규모입니다.”

“유지웅 의장은 서울을 의식하고 제니스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노골적으로 서울의 젊은 인력을 빼내가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의도반달곰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면서 그런 잠재된 의식이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아니, 이미 폭발해 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강남 일대를 시작으로 서울 집값이 폭락하는 게 그 증거입니다.”

제니스타운이라는 초거대도시에 어마어마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측된다. 심지어 주거 문제는 도시의 소유주인 유지웅이 완벽하게 해결해주기로 되어 있다.

안 그래도 서울의 비싼 주거비에 신음하고 있던 이들은 제니스 타운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그런 움직임이 더욱 도드라진다.

여의도반달곰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에 제대로 된 기름을 끼얹어 버렸다.

김호 대통령의 근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언제 여의도반달곰이 청와대에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릴지 모른다는 점.

다른 하나는 여의도반달곰 때문에 가속화되는 탈서울 흐름과 그로 인한 서울의 가치 하락 및 자산의 손실.

물론 김호는 둘 중 후자에 대한 근심이 압도적으로 컸다.

“슬슬 국민들이 적응하고 있군. 바람직한 일이야.”

유지웅은 사회의 변화 흐름에 만족스러워 했다.

“나중에 아침에 일어나서 빌라 옥상을 올라갔는데 느닷없이 비행형 옐로 몹이 졸고 있는 걸 보게 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텐데. 미리미리 적응을 해둬야 실수가 없지.”

본래의 시간 축에서 옐로 몹은 서울 같은 번화가에서도 종종 볼 수 있곤 했다.

때문의 시민의 훈련도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절대 괴수를 보고 놀란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

비명이라도 지르게 되면 아무리 비선공형 괴수인 옐로 몹이라도 흥분해서 날뛸 수 있고, 그로 인해 상당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르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게 하고, 자주 포효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단 괴수한테 적응을 해야, 대괴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을 때 혼란을 빚지 않을 수 있다.

“이왕 이리 된 이상 광주에 국회의사당을 새로 지어야겠어.”

광주는 제니스타운은 아니지만 제니스타운과 경계선이 바로 붙어 있는 가장 큰 도시다. 국회의사당 같은 입법기관을 설치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일단 그런 건 내 집 근처에 둬야 여러 모로 편하니까.

“증권거래소하고 산업은행하고 아이고 가져와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그러면서 유지웅은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바로 광주시장이었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광주시장은 냉큼 전화를 받았다.

「예, 의장님. 박순호 시장입니다.」

“아, 시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제니스타운 근처에 있는 도시나 마을 등은 이미 유지웅 밑으로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초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자체 지도부는 그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

광주는 제법 큰 도시이지만 제니스타운과 바로 붙어 있는 만큼 유지웅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하는 지역이었다.

“국회의사당을 아무래도 새로 지어야 하잖습니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은요.”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시 동안 말을 아꼈던 광주시장은 조심스럽게 수긍의 뜻을 나타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광주에 짓는 게 어떨까요?”

「네? 광주에 말입니까?」

“수도를 분산한다는 취지도 있고, 무엇보다 광주는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역이니 더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제니스타운과 바로 붙어 있으니 입법기관으로서 향후 결정체 산업 육성에 더욱 발 빠른 입법 활동을 하기에도 적당하고, 제 생각에는 의사당 건물을 광주에 새로 짓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요?”

광주 시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지금 유지웅이 한 말의 의도, 그리고 그것이 야기할 변화를 분석하느라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여의도는 출입 금지 구역이 됐고, 거기에 있던 주요 인프라는 어딘가로 이전해야 하잖습니까. 저는 광주야말로 가장 적당한 선정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제니스 타운에 붙어 있으니까요.”

「그, 그러시다면 차라리 제니스타운 안으로 옮겨오는 게…….」

“제니스 타운은 이미 전 구역의 설계가 다 끝났어요. 추가 외부 시설물들을 들일 공간도 없습니다. 애초에 제 사유지라서 그럴 수도 없고요. 저는 광주가 좋습니다.”

「…….」

광주시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깊은 난관에 빠졌다.

유지웅의 말대로 국회의사당이 광주로 이전해 온다면 다시없을 정치적 업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다른 지역에서도 크게 탐을 낼 텐데, 과연 순순히 광주로 이사를 해올까?

「쉽게 이뤄지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 서울에서도 국회의사당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정치가들이 알아서 위험한 서울을 버리고 안전한 제니스타운으로 오려고 할 건데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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