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시즌 헬조선편 금지된 레이드 --
“제니스 타운에 들여도 되는 사람은 3,000만 명 정도가 될 듯합니다.”
박조권은 말을 꺼내면서도 조심스럽게 유지웅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보다 너무 적은 수치에 그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의외였다. 유지웅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태연히 되물은 것이다.
“3,000만 명만 들이면 제니스 타운은 평화로워질까요?”
“공정하고 빈틈없는 규제와 감시를 병행해야겠지만 특별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6,000만 명 중에서 3,000만 명이라……. 역시 평행차원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은 건가.”
중간에 이상한 단어가 섞여 있었지만 박조권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의 독특한 고용주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곤 했으니.
“초기에는 2,000만 명 정도만 들이고, 나머지 1,000만 명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들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개나 소나 들어올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기 위해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적어도 6,000만 명 중 5,000만 명은 들일 수 있기를 바랬는데…… 저만의 꿈이었군요.”
“본보기를 위한 반대 진영은 아무래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 우위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보다 잘 사는 이들을 동경하고 그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기보다 형편이 안 좋은 이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것을 더 편하게 여깁니다.”
“알겠습니다. 결국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숫자가 맞는군요.”
“사실 의장님께서 처음에 원하셨던 엄격한 기준으로 치면 600만 명도 안 될 겁니다.”
“알아요. 모두가 법 없이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놈들을 제니스 타운 안으로 들이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
유지웅이 박조권에게 요구한 기준은 간결했다.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이들은 제니스 타운에 들이지 않고, 그 반대만 들이겠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보다는 상당히 완화된 개념이다. 블랙리스트는 철저히 벽을 쌓고 인연을 맺지 않겠다는, 철천지원수급 인물들만 이름을 올린다.
초기에 2,000만 명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나머지 1,000만 명도 천천히 입주를 시킨다.
그런 절차가 사회 전체에 희망과 개선 의지를 주입하게 된다.
나도 노력하면 제니스 타운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긍정적인 삶을 추구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교수님, 제니스 타운 입주민들이 비교 우위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울타리 밖은 남겨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남겨놓아서는 안 돼요. 그건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염려 마십시오. 의도적으로 조장하지 않아도 울타리 밖에 머물러야 할 사람들 숫자는 자동으로 조절이 될 겁니다. 사람은 모두가 똑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병신 보존의 법칙은 어쩔 수 없는 거죠. 특히 6,000만 명이나 되는 집단이라면 아무래도 병신이 더 많을 수밖에 없겠죠.”
“시간이 지나면 제니스 타운 내부에서도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야 할 사람들이 증가할 겁니다.”
“그런 흐름은 당연한 섭리죠. 그나저나 모니터링 팀이 고생을 많이 했겠습니다. 5,000명 가지고 부족하면 숫자를 더 늘리셔도 됩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어차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해야 할 일입니다. 여기서 더 수를 늘리다가는 오히려 다른 세력들에서 보낸 스파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스파이 잡으면 더 좋죠. 그 세력을 박살내도 되는 명분을 얻을 수 있잖아요. 하하.”
“…….”
박조권은 진땀만 흘렸다. 유지웅의 말이 너무 진심 같아 보여서다.
“그럼 나머지 울타리 밖 3,000만 명은 제니스 컴퍼니로부터 어떤 이익도 얻어선 안 되는 사람들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타운 외부 관리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수주에서 그들에게 이익이 흘러들어가야 합니다. 제니스 컴퍼니가 아무런 수해도 주지 말아야 할 대상은 대략 60만 명 미만이 될 듯합니다.”
“생각보다 많진 않네요.”
“대부분 우리나라 상류층 혹은 그와 연관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박조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재벌 오너,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고위 임원들, 부정한 정치인과 언론인, 직원 착취를 당연시여기는 기업가들, 범죄자, 대체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물론 중산층과 하층민에도 골고루 분포되어 있을 테지만, 그 사람들은 별로 티가 날 만한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원래 사람의 본성을 알고 싶으면 권력이나 돈이나 술을 줘보라고 하잖아요. 그럴 기회 자체를 접하기 힘든 사람들도 많을 테니 지켜봐야 하는 거구요.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박조권은 일어서서 정중히 목례했다.
아들보다 어린 고용주이지만, 그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천국과 지상이라…….’
유지웅이 원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지상 위에 제니스 타운이라는 천국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천국은 선택받은 이만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수에는 제한이 없으며, 일정한 자격 요건만 되면 누구나 가능하다.
지상에 존재하는 이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하거나 인품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이들은 계속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천국에 사는 이들은 지상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다.
박조권이 보기에 제니스 타운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사람답게만 살면 된다. 죄를 짓지 않고, 타인에게 특별히 큰 해를 끼치지 않으며, 적당한 준법 의식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천만 명이나 된다니. 그가 씁쓸함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임시 국회의사당을 광주에 짓는다고 여야가 마침내 협의를 마쳤다. 행정부도 그에 동의하여,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박순호 광주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봐둔 부지를 정돈하는 등 기초공사 작업에 들어갔다.
어디까지나 임시 의사당이고, 차후에 정식 의사당 건물을 짓게 되면 철거해야 한다.
하지만 박순호 시장은 100년 이상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규모와 위치, 편의성, 시설을 갖추라고 주문했다.
“선빵 필승은 건물 시설에도 유효하지. 한 번 정해진 흐름을 되돌리기가 얼마나 힘든데 말이야.”
박순호는 차후 제니스 타운 및 광주의 확장 등을 고려하여 의사당을 지을 위치를 선정했다.
임시 의사당으로 가볍게 출발하지만, 절대로 다른 의사당에 주도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반대급부를 바라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일단 임시 의사당을 설치하고 정식으로 승급하는 과정에서 유지웅이 뭐라도 안 해주겠느냐는 뻥카를 제시해서 겨우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일단 첫 삽을 뜨면 우리가 이기는 거다.”
의사당을 가져오는 것은 성공했지만, 여의도에 있던 다른 주요 시설들은 아직 미정이었다.
산업은행이나 중소기업 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 등의 주요 시설들은 정부나 재계에서 쉬이 내놓지 않으려 했다.
알짜배기 시설들이니만큼 광주로 이전하는 대신 확실한 반대급부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겨우 이 정도 일로 의장님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되는데. 이 정도는 우리 시에서 알아서 추진할 수 있어야…….”
“정 그렇다면 류이한 사장님께 협조 요청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제니스 컴퍼니 CEO 말입니다.”
“흠…… 이번에 임시 의사당 이전을 확정짓는 데도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또 도움을 청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이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유지웅 의장님을 위한 대사업 아닙니까. 류이한 사장님도 흔쾌히 도와주실 겁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다시 연락을 해보지.”
중국의 레이드 성공은 담성그룹의 이미지 실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담성그룹은 역시 재계 1위 재벌 기업답게,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승화하는데 성공했다.
「영상을 잘 보면 광역 토끼는 공격 패턴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대충 방패 들고 막는데도 힐러고 딜러고 거의 멀쩡한 거 보이지? 여의도반달곰이랑은 파괴력이나 기동성 면에서 차원이 다르게 쉬운 괴수다.」
중국에 나타난 거대한 토끼 형태의 괴수는 광역 토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유지웅이 개인 방송에서 ‘광역기를 쓰니까 광역기 토끼라고 부르자.’라고 농담삼아 한 말이 전 세계에 파급 효과를 끼친 것이다.
그에 반발한 중국은 자기들만의 코드네임을 붙여서 광역 토끼를 불렀지만, 정작 그 코드네임은 중국 내에서도 널리 쓰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광역 토끼는 약해 빠졌어. 지룡이나 여의도반달곰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 괴수한테 30명이나 붙이면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근데 광역 토끼가 공격대한테 상대적으로 약한 건 사실인데 일반인한테는 정말 대재앙 그 자체더라. 사상자가 1만 명이 넘게 나왔는데 사망자가 대부분이던데.」
「이 정도면 단일 괴수가 낸 인명 피해로는 역대급 아니야? 사실 지룡이나 여수 괴수, 여의도반달곰 때문에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
「티라노도 제법 인명 피해를 내긴 했지만 대부분 군경이었지, 민간인은 한 명도 안 죽인 것으로 기억해. 그리고 그 수도 얼마 되지 않았어.」
SNS에서는 광역 토끼의 레이드 난이도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를 놓고 치열한 키보드 대전이 펼쳐졌다.
중국 유저들은 광역 토끼가 낸 인명 피해를 근거로 삼아 여의도반달곰을 포함하여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괴수라고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쳤다.
중국 외 지역 유저들은 레이드 영상 분석, 30인이 투입된 점을 들어 광역 토끼의 레이드 난이도 자체는 생각보다 낮다고 반론을 펼쳤다.
중국 당국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화 공격대를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에 골몰했다.
사진팡 주석은 국제공격대연합으로부터 한 장의 공문을 받고 코웃음을 쳤다.
“우리 중화 공격대원들에게 연합에 가입하라고? 참 어처구니가 없군.”
국제공격대연합의 가입 멤버는 고작 4명이다.
황백호, 유지웅, 정효주, 그리고 미국의 레이크가 전부다.
심지어 한국 내에서 각성한 10인의 담성 공격대원들조차 아직 공격대연합에 가입하지 않았다. 담성그룹을 위시한 기득권층이 유지웅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반항이었고, 사진팡은 그런 경쟁 관계 구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중화 공격대원 30인을 끌어들이면 연합의 위상이 더 올라갈 테고, 담성 공격대에 가입 압박을 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에 그러는 게 틀림없습니다. 주석 각하.”
“자기들만이 유일한 레이더였을 때는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날뛰더니, 숫자에서 밀리니까 이제 다급해졌나 보군.”
“이참에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 연합 기구를 창설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당연히 추진해야지. 그리고 이스라엘 파견 건은 지금 어디까지 진행 중이지?”
중화 공격대가 광역 토끼 레이드를 성공한 이후, 이스라엘은 중국에 공격대를 파견해줄 수 있느냐고 정식으로 요청을 해왔다.
량진쿤 상장은 가슴을 펴고 말했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원들은 언제든지 파견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주석 각하.”
“좋아. 가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그 티라노인지 하는 괴수를 섬멸하고 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