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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제니스 타운을요?”
순간 장현진 국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제니스 타운, 아니 제니스 컴퍼니는 한국 사회에 있어서 감히 건드리지 못할 절대적인 성역이다.
제니스 컴퍼니가 보유한 천문학적인 금융 자산 및 부동산, 그리고 결정체 산업과 미국의 무제한적인 지원까지. 그 어떤 재벌도 감히 넘보지 못할 드높은 금자탑을 단 일 년도 걸리지 않아서 쌓아 올렸다.
그 대단하신 재벌 회장님들도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매일 같이 소모임에 불려 와서 간을 혹사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리 3대 방송사라지만 지상파 언론 따위가 제니스 타운을 건드리다니?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눈앞에 훤했다.
“왜, 무리야?”
박철우 이사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까지 띠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장현진은 지금 그가 진심으로 제정신이기는 한 건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곧 떠오른 생각에 아차 싶었다.
“부회장님 뜻입니까?”
“정확히는 회장님 뜻이지. 더 나아가서는 ‘회장님들’ 뜻이기도 하고.”
“……아.”
그제야 장현진은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드디어 반격을 하기로 한 거군요.”
“좀 전에 말했을 텐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순 없다는데 다들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셨다고.”
“우리 SBC가 선발대 역할을 맡기로 한 겁니까?”
“아무래도 지상파 공영방송 채널이기도 하니 제니스 컴퍼니의 견제에서 운신의 부담이 덜하겠지. SBC 수입 증감에 제니스 컴퍼니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도 않고 말이야.”
수입의 대부분이 광고료인 지상파 방송국이기에 유지웅이 돈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접점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대영건설에 피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야 SBC홀딩스 대주주일 뿐, 소유와 경영은 원칙적으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지. 제니스 컴퍼니에서 뭐라고 항의를 해도 그것만 강조하면 그만이야.”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하지만, 실제로 대영건설은 SBC 운영 및 보도 방침에 적극적으로 간섭하고 세세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거나, 혹은 증거가 없거나, 이슈화를 막고 있을 뿐이다.
“확실히 그렇게 나오면 유지웅 의장도 대영건설에 할 말이 없긴 하겠습니다.”
“SBC에서 총대 멘 기자 친구들이 조금 난처해지긴 하겠지만, 유지웅 의장이 어떻게 하기는 힘들지. 나중에 잘못 되더라도 어디 갈 데 없겠어?”
“그런데 왜 하필 우리 SBC입니까?”
“아무래도 반론 여론을 만들기에는 SBC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 듯해서 내몰린 거지.”
박철우 이사는 조금 한숨을 쉬었고, 장현진 국장은 대영건설이 원해서 내린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쯤 강제로 총대를 떠맡게 된 게 아닐까.
“너무 걱정하진 말게. 우리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한국 사회 상류층 전체가 힘을 합쳐 움직인다. 그 중심에는 담성그룹 같은 쟁쟁한 재벌 일가가 있고. 물론 처음부터 대놓고 겉으로 나서지는 못해. 알다시피 유지웅 의장이 한국에서 지닌 위세가 보통이 아니니까.”
“……승산이 있겠습니까?”
장현진 국장은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물었다.
오너가 일단 결정을 내리면 불속이라도 화약을 지고 뛰어들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승산이 보이지 않는 게임이었다.
유지웅은 제니스 타운이 완공되면 결정체 산업을 무기 삼아 대한민국 경제를 포함한 모든 것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그 난공불락의 철옹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수 있을까?
“승리 조건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승산이 달라지지. 설마 제니스 타운을 무효화하거나 유지웅 의장을 이 나라에서 쫓아내는 게 승리 조건일 것 같은가?”
“이사님, 그럼…….”
“맨땅에서 혼자서 다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기존에 빠릿빠릿한 애들과 손을 잡고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효율도 높겠다, 유지웅 의장이 이 정도 생각을 갖게만 돼도 충분해.”
“아아, 그렇군요.”
장현진 국장은 승리 조건을 듣고 안심했다. 재벌 회장들이 그런 합리적인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이 일에 착수한다면, 그래도 무모한 자살로 끝나지는 않겠지 싶었다.
계획의 본질을 말하자면 결국 유지웅한테 ‘우리도 끼워줄래요?’라고 정중하게 읍소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심기를 너무 거스르지 않고, 또 이쪽의 체면을 너무 구기지 않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데스크에 총알받이 될 친구들 좀 미리 확보해둬야겠습니다.”
“너무 피라미는 곤란해. 나중에 유지웅 의장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게 되니까. 적당한 배우들 좀 섭외해두게.”
“예, 이사님. 염려 마십시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잔을 부딪쳤다.
강수현은 40이 넘은 베테랑 기자였다.
그는 얼마든지 사무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현직에서 뛰는 것을 선호했다.
투철한 언론 의식을 갖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발로 뛰는 것이 생활의 윤택함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대기업 임원들로부터 텐프로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2차까지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거센 힘이 뒤에서 그를 우악스럽게 붙잡아서 돌려 세웠다. 술이 확 깨는 느낌을 받는 순간, 단단한 주먹이 그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호흡이 순간적으로 쪼그라들면서 비명까지 막혀 버렸다.
온몸의 근육이 일시에 기절하듯이, 그는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상대는 그가 쓰러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멱살을 쥐고는, 오른손으로 우악스럽게 배와 어깨, 다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펀치 한 방 한 방이 꽂힐 때마다 강수현은 피를 토할 듯한 충격에 빠져야 했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인지하기도 힘들었다.
그저 통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잔인함의 극치를 달리던 폭력이 마침내 멈췄다.
상대가 멱살을 놓자, 강수현은 종잇장처럼 흐느적거리며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물 먹은 솜처럼 풀린 온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횡격막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겨우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말 죽을 만큼 맞았다.
아니, 딱 겨우 죽지 않을 만큼만 맞았다.
원초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폭력 그 자체,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경험을 겪어본 적이 없는 강수현은 완전히 탈진한 채로 숨만 헐떡거렸다.
상대는 그의 가슴팍에 종이 한 장을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서, 선생님! 괜찮으세요!”
두어 시간쯤 그렇게 쓰러져 있었을까.
새벽 순찰을 돌던 아파트 경비원이 쓰러진 그를 발견하고 사색이 돼서 달려왔다.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경비원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서둘러 119에 전화를 걸었다.
“예, S파크아파트 101동 11층입니다! 입주민 한 분이 지금 쓰러져 계세요! 눈을 뜨고 계신데 정신을 전혀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상황 설명을 마치고 난 경비원은 문득 강수현의 가슴팍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종이 한쪽 면에는 커다란 글씨가 써져 있었다.
「기레기.」
“기레기?”
경비원은 의아해서 갸웃거리다가 종이를 뒤집어 반대쪽을 확인했다. 반대쪽 면에는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무언가 긴 내용이 써져 있었다.
그는 일부 내용을 더듬더듬 읽어 보았다.
“성상납을 강요당한 여배우를 농락한 죄, 폭력 가해자인 XX그룹 2세 박원호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가 평소 행실이 안 좋았다며 명예를 훼손한 죄, 데스케이통신의 2,000억 불법 과금의 본질을 흐리는 기사로 대중을 우롱한 죄……. 하이고, 이거 끝이 없구만. 끝이 없어.”
경비원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숨을 헐떡이는 강수현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만한 정신은 없어 보인다.
“맞을 짓을 했구만, 맞을 짓을 했어. 그러니 이렇게 처맞은 거지.”
20여 명의 기자들이 강수현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지독한 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입원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 사실은 단톡방 등을 통해 기자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강수현 선배가 누구한테 엄청 처맞고 병원에 입원했다며?
―강 선배뿐만이 아니지. 좀 규모 있다 싶은 언론사에서 현역 최고참들 20명이 만신창이가 돼서 입원했다던데.
―대체 어느 정도로 맞은 거야?
―불구 될 정도는 아니라는데, 적어도 몇 달은 요양을 해야 한다나 봐. 진짜 걸레짝처럼 처맞았다던데.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거야?
―근데 다들 쉬쉬하는데, 맞은 기자들 옆에 큰 종이 한 장이 발견됐대. 한쪽에는 ‘기레기’라고 써져 있고, 다른 쪽에는 그 기자가 저지른 죄질 리스트를 죽 적어놨다더라.
―그럼 원한에 의한 폭행인가?
―그럴지도. 우리 기자들한테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닥치는 대로 폭행하고 다니는 거 같아. 다들 조심하자.
―하룻밤 동안 20명이 당한 걸 보면 한두 명이 한 짓은 아닌 거 같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있는 게 틀림없어.
기자들의 단결력은 강하다.
그들은 특정한 세력이 조직을 이뤄서 자신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했다.
당연히 그 특정한 세력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했다. 덕분에 그들은 어렵지 않게 CCTV 등 범행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친한 경찰 간부한테 부탁해서 CCTV 10개인가 확인해 봤는데 전부 동일인물 같아.
―그냥 옷만 똑같이 입은 거 아니야?
―옷뿐만이 아니라 체형까지 모두 똑같아.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확인이 안 돼. 보면 힘이 엄청나게 장사인 거 같아. 20분 넘게 왼손 하나로 멱살을 잡고 허공에 들어 올려서 쉬지 않고 주먹질을 퍼붓더라고.
겨우 하루 만에 속속들이 나오는 정보에 기자들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조직이 아니라 단 한 명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다? 그것도 기자에 대한 원한 때문에?
―이거 왠지 최형식이 사건과 매치되지 않아?
―설마. 최형식은 죽이면 죽였지 패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뭐하러 얼굴을 가리고 다녀?
―아무래도 모방 범죄 같은데. 최형식이가 사람 죽이고 다니니까 거기에 동화된 힘 좀 쎄다 싶은 놈이 이러고 다니는 거지.
―죄질을 적은 종이는? 한두 명도 아니고 20명이나 되는 기자들이 옛날에 저지른 짓을 어떻게 일일이 파악해?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주먹 휘두르고 다니는 놈은 하나일지라도 분명히 뒤에서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기자들은 자신들을 향해 증오를 드러내는 누군가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이게 끝이 아니야. 조만간 또 일 터진다. 다들 몸 사리고, 절대 혼자서 다니지 마.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2차 범행이 그날 저녁에 바로 연이어 터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