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1212화 (1,212/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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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시끄럽군요.”

임원의 말에 서류를 검토하던 류이한 사장이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우리 회사가 벌이는 사업도 참 만만치 않은 것들뿐인데…… 이상하리만치 이슈가 안 됩니다.”

“이유야 많지. 언론사들이 우리 편을 들어주질 않으니. 그놈들 마음도 이해는 돼. 10원짜리 광고비 집행도 없으니 어디 우리 좋을 기사를 써주고 싶겠어?”

언론은 광고주의 의향을 충실히 따른다. 그리고 제니스 컴퍼니는 그 엄청난 재정 규모에도 불구하고 단 10원의 광고비도 쓰지 않기로 유명했다.

주력 상품이나 사업이 굳이 광고를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인지도가 엄청나고 미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는 덕분이지만.

그렇다고 언론사들이 제니스 컴퍼니를 까내리는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 유지웅이 지닌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눈치만 살살 보면서 방관하고 있다고 할까.

얼마 전에 SBC가 총대를 메고 제니스 타운을 비판하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였으나, 그마저도 운남동 참사 때문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근데 담성그룹 방산비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커지게 됐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나라에서 담성그룹 영향력 하면 알아주는데, 이렇게 이슈화가 된 것 자체가 신기하네.”

“뭐, 또 늘 그렇듯이 적당히 꼬리 자르고 정리되겠죠. 이번에는 일이 좀 커졌으니까 강석현 참모총장하고 주변 동료들 옷 벗는 선에서 정리되고 끝나겠죠.”

담성그룹이 오랫동안 쌓아온 영향력을 잘 아는 임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의장님께서 한 번 큰 마음 먹고 나서주시면 담성그룹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텐데…….”

“의장님이 그런 하찮은 일까지 신경 쓰실 여유는 없지. 그리고 어차피 제니스 타운이 우리 계획대로 완성되면 담성그룹 같은 재벌은 이 나라에서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돼.”

“맞습니다. 크게 보고 천천히 나아갑시다.”

“제니스카드는 다음 달부터 바로 영업 개시할 수 있지?”

“예, 제니스은행과 연합해서 효과를 극대화할 생각입니다.”

“제니스은행 지점 현황은 어떤가?”

원래 제니스저축은행은 제니스 타운에 1개의 본점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귀찮은 것을 꺼리는 유지웅의 초기 방침 때문이었다.

하지만 류이한 사장은 사업의 확정을 위해 유지웅을 지속적으로 설득했고, 얼마 전에 마침내 승인을 얻어낼 수 있었다.

‘많은 브라더들이 차비가 없어서 본점에 계좌를 개설하러 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합니다!’

유지웅, 다른 명분에는 그렇게 시큰둥해하던 양반이 그런 주장에는 바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류이한 사장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허탈할 지경이다.

“현재까지 서울에 20개, 각 광역시에 5개 이상의 지점을 개설했습니다. 제니스카드 발급 업무도 제니스은행 지점에서 보조적으로 맡기로 했습니다.”

“좋아, 단숨에 우리나라 카드 시장을 잠식한다. 2년 안에 90% 이상의 점유율을 장악해야만 해.”

“염려 마십시오. 이 정도로 많은 돈을 쏟아 붓는데 그 정도 목표는 손쉽게 달성해야죠.”

제니스카드의 시장 잠식 전략은 간단했다.

돈다발 투척.

카드업계에서는 후발 주자지만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해서 단숨에 쓸어버리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카드 이용자한테 캐시백만큼 가장 끌리는 혜택은 없습니다. 다른 카드사들이 그걸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해봤자 자기들이 남는 게 없으니까 안 하는 겁니다.”

캐시백 서비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카드사들이 캐시백을 통해 고객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제니스카드의 캐시백 서비스는 그들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고객 대상, 모든 종류의 소비 대상으로 일괄 2% 포인트 적립.

―적립 포인트는 언제든지 현금으로 인출 가능.

―제니스저축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시 적립 포인트는 두 배로.

단순 계산으로 제니스카드는 이용자가 100만 원을 결제할 때마다 2만원 내지 4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5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그들이 월 평균 100만 원을 지출한다 치면, 1,000억 원 내지 2,000억 원이 돈이 캐시백 서비스로 나간다.

지출의 종류나 적립 한도에 일절 제한이 없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냥 좋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현금으로 돌려주는 게 가장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 좋은 카드를 이용하지 않을 고객은 없습니다. 너도 나도 앞을 다퉈서 발급받으려 할 겁니다.”

“지금까지 이런 카드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영업인가, 기부인가, 고객들은 큰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겁니다.”

“이미 사전 발급 신청을 걸어놓고 대기 중인 신청자 수가 3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다른 카드사들은 우리가 최대 반년 정도 반짝 프로모션을 하고 철수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쟁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상식적으로 영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인데,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다. 후발 주자로서의 열세를 어느 정도 커버하고 나면 서비스를 중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경쟁 카드사들은 큰 착각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카드 사업으로 돈 벌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초기부터 무난하게 치고 들어가서 점령할 수 있습니다.”

“상상도 못할 겁니다. 우리 회사 목적이 카드로 돈 버는 게 아니라, 그놈들이 카드로 돈 못 벌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지금 담성그룹 방산비리 때문에 견제도 전혀 안 들어오고, 일 진행하기 아주 좋은데요.”

청문회는 며칠에 걸쳐 이어졌다.

강석현 참모총장은 피곤함이 극에 달했지만, 언제나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야당 의원들의 총공세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질 때면 항상 신석진 전무의 경고를 가슴에 떠올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만 참고 견디면 다 풀리리라.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다잡으며, 청문회가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그놈이 나타났다. 장태준이 야당의 요구로 청문회에 출석한 것이다.

증인 선서를 마친 장태준은 강석현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당시 레이드는 안정권에 접어들었습니다. 공격 패턴을 유지하면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무리 없이 괴수를 처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 전투 세부 기록을 제출합니다.”

“이 전투 세부 기록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저는 훈련이나 실전 과정에서 모든 수치와 진형, 영상 자료 등을 실시간으로 정리해둡니다.”

“의원님, 전투 기록은 담성 공격대 고유 자산입니다. 이미 퇴사한 이가 그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엄연히 불법적으로 취득한 기록입니다. 불법 경로로 취득한 기록에서 진정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점을 알아주십시오.”

강석현은 발언 차례가 아니지만 차분히 반박했다. 여기저기서 불편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강석현 참모총장, 아니 국방부는 레이드를 무리해서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강석현 참모총장이 대신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요?”

“국방부는 담성그룹에 잘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레이드를 빨리 끝내서 담성그룹의 실추된 이미지 회복에 기여하고 싶어 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담성그룹의 의도가 아니라, 국방부가 자발적으로 그랬다는 뜻입니까?”

“적어도 저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아뿔사. 강석현은 속으로 신음했다.

만약 장태준이 담성그룹을 공격했더라면 담성그룹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끌어다 그의 뒤를 탈탈 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장태준은 공격 목표를 담성그룹이 아닌, 자신으로 한정지었다.

담성그룹 입장에서는 ‘어라? 총장 하나만 자르면 편히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라는 카드가 새로 굴러들어온 셈이다.

장태준이 일개 야인이라면 모르겠지만, 퇴사하자마자 프라임 공격대에 입사를 했다고 들었다.

만약 그의 청문회 출석에 제니스 공격대의 입김마저 닿아 있는 것이라면, 담성그룹으로서는 빠른 시일 안에 조용히 사건을 덮는 게 유리하다.

“증언 잘 들었습니다.”

그날도 청문회가 그렇게 끝났다.

강석현은 못내 찝찝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광주 호텔로 돌아왔고, 또다시 신석진 전무의 방문을 받았다.

원래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든 양반이다. 담성그룹 내에서 2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니. 오너 일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이렇게 자주 얼굴을 비친다는 것은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강 총장, 아무래도 총대를 매줘야겠어요.”

“전무님. 하지만 저는…….”

“아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군납 문제는 우리 그룹으로서도 아킬레스건입니다. 잡음 없이 조용히 처리하는 게 강 총장이나 우리 그룹으로서도 좋은 일입니다.”

“그럼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휘 실책만 인정하란 말입니다.”

“…….”

강석현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역시 담성그룹은 빠르고 손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적당한 꼬리 자르기로 사태를 무마하는 것.

“걱정 말아요. 실책은 누구나 합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겠지만 최악이라고 해봤자 불명예퇴직 정도입니다. 물론 그렇게까지는 안 가도록 우리가 손을 써줄 겁니다.”

“…….”

불명예퇴직을 아무렇지 않게 거론하는 점에서 강석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섭섭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조금이라도 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룹 내에 고문 자리를 만들어줄 겁니다. 연봉 5억에 10년의 고용을 보장하죠. 마지막 퇴직금으로 치면 부족하지 않을 수준일 겁니다.”

“저야 전무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마지막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신석진 전무는 흡족해져서 일어났고, 강석현은 객실 밖까지 배웅을 나갔다.

“보는 눈이 많으니 멀리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예, 전무님. 멀리 나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강석현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배웅한 뒤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거실 쇼파에 앉으려던 그는 불현듯 묘한 기류를 읽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소스라칠 듯이 놀랐다.

“다, 당신 누구야! 여긴 어떻게!”

“쉿. 조용히 해.”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갖다 대며, 동시에 나무로 된 간이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간이 의자의 다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보고 강석현은 흠칫 놀랐다.

“다, 당신은? 혹시……?”

“내 이름은 최형식이다. 들어봤겠지?”

남자가 씩 웃으며 말을 했고, 강석현은 믿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눈을 비볐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알던 최형식의 얼굴이 아니었다.

새하얗고 매끈한 피부, 조각처럼 단정한 이목구비. 전혀 최형식과 닮지 않았다.

가만, 분명히 어디서 본 듯한……?

―운남동 참사가 참모총장님의 지휘 때문에 벌어진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 너는 그때 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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