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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 두 명이 근접 딜러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하아. 황제 도적 님을 두 분이나 이렇게 허망하게 괴수한테 갖다 바치시다니.”
코초프스키 사령관은 통역이 전달해준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무력하게 근딜 둘을 잃었다는 질책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지웅은 이마를 짚은 채 연신 탄식을 흘렸다.
그 태도는 마치 러시아 레이드 사령부의 무능력함에 한숨을 쉬는 듯해서, 코초프스키 사령관은 미약한 수치심까지 느꼈다.
“결론적으로 레이드가 왜 실패했는지 일단 그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어차피 통역이 전달해주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코초프스키 사령관 이하 사절단은 귀를 쫑긋 세웠다.
전투 영상 한 번 보고 상황 설명만 대강 들었을 뿐인데, 벌써 원인을 파악한 듯했다. 과연 세계 최강의 레이더는 뭔가 다른 모양이다.
“어그로가 제대로 튀었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엉망이 됐습니다. 물론 어그로가 튄 건 알고 계실 테고 왜 튀었는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해서 절 찾아오신 걸 겁니다.”
사절단은 완전히 긴장한 상태로 통역이 전달해주는 설명을 들었다.
“부족한 딜을 탱커로 대체한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짜르 공격대는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바로 탱커와 딜러의 공격은 전혀 다른 형태를 띤다는 겁니다.”
“다른 형태라는 게 어떤 말씀이십니까?”
“탱커의 공격은 관통형, 딜러의 공격은 중화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탱커의 공격은 파워가 낮은 대신 괴수의 방어막을 무시하고 괴수에게 직접 아픔을 줍니다. 반면 딜러의 공격은 방어막을 직접 공격합니다.”
사절단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유지웅은 답답해서 물을 한 컵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즉 괴수 입장에서 탱커의 공격은 직접 피부를 찌르니까 아프게 느껴집니다. 반면 딜러의 공격은 방어막 그 자체에 집중되다 보니까 거의 아프지 않습니다.”
“아!”
“이해하셨나요? 괴수도 생각이 있는지라 자기한테 가장 위협적인 적을 우선적으로 칩니다. 그 판단은 주로 얼마나 아프냐로 결정되죠. 근데 아픈 공격을 사방에서 15명이 동시에 때려대면 어떻겠어요? 미치고 환장하는 거죠.”
코초프스키 사령관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레이드에는 메인 탱커라는 개념이 있어요. 괴수가 가장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샌드백을 하나 만들어서 유지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죠. 그래서 탱킹은 반드시 단독으로 해야 합니다. 서브 탱커는 어디까지나 어그로가 튀거나 하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겁니다.”
“그럼 저희가 실수한 것은…….”
“먼저 메인 탱커로 최소 20분 이상 괴수를 공격해서 충분히 ‘빡치게’ 만들어둬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탱커들을 투입해서 조심스럽게 딜을 넣어야죠. 이렇게 되면 시간대비 같은 아픔이 전해지더라도 이미 20분 이상 자기를 빡치게 한 대상부터 찢어죽이고 싶어질 테니까요.”
명쾌한 설명에 사절단은 할 말을 잊었다.
“딜러가 충분하다면 상관없어요. 괴수한테 딜러의 공격은 별로 아프지 않거든요. 눈깔만 치지 않는다면 어그로가 웬만해서는 튀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탱커와 딜러의 공격 형태 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채 전략을 세운 게 실패의 원인이었군요.”
“네, 그래서 러시아의 유이하고 귀중한 딜러 둘을 잃게 된 거구요.”
코초프스키 사령관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유지웅이 너무 달라 보였다. 과연 세계 최강의 레이더라는 위치가 그냥 얻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관록을 쌓은 거지?’
그가 보기에 유지웅은 어디 괴수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한 십 년 이상 구르다가 온 것처럼 보였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그런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의 식견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실 요청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러시아 정부가 정식으로 요청하는 겁니다.”
“짜르 레프를 처치해달라고요? 그러죠.”
“가, 감사합니다.”
요청을 꺼내기도 전에 시원하게 수락해버리자 코초프스키는 조금 당황했지만, 곧 환한 웃음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대가는 어떻게 지불하시겠어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코초프스키 사령관이 잠시 뒤로 빠지고, 아나똘리 외교부 차관이 대신 나섰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자원부국이죠. 석유와 천연가스를 정말 많이 갖고 있죠.”
“에너지 자원을 원하십니까?”
“정확히는 구매권을 원합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아나똘리 차관은 자신만만하게 장담했지만, 유지웅의 말이 이어질수록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국제 시세의 90% 정도의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는 권한을 얻고 싶은데요. 기한은 일단 10년 정도로 하고 그 이후부터는 5년 단위로 조건 변동을 적용해서 갱신하는 것으로요.”
“혹시 생각하시는 수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글쎄, 전 별로 상한선을 정해 두고 싶진 않네요. 아마 우리나라가 소비하는 전체 수량 내에서 구매하겠죠? 되팔이를 하려는 건 아니고 국내에서 소비할 목적이니까요.”
아나똘리 차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권을 가져왔다고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던 것을 한순간에 부끄럽게 만들어버리는 요구였다. 이건 자신이 독단으로 약속을 해주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
“죄송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국에 잠시 전화를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괴수 한 마리 잡아주는 대신 원유와 가스를 시세의 90%로 10년 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건 아무래도 좀 염치없는 요구처럼 보일 수도 있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흔쾌히 수락하는 태도를 보면, 본인도 요구사항이 과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모양이다. 아나똘리 차관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본국에 연락을 취했다.
외교부 장관은 조건을 듣자마자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렸고, 대통령은 즉시 차관한테 전화를 넣었다.
―해줘. 대신 레이드 협조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조건을 반드시 추가하게. 이왕 이렇게 된 거 프라임 공격대, 아니 유지웅 의장과 진지하고 깊은 사이를 만들어야 하네.
“예, 대통령님.”
―협상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거라 믿고 있네, 차관.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괴수 한 번 잡아주는 것으로 구매권을 줄 마음이 없었다. 그 대신 거래판의 규모를 훨씬 키우는 것을 원했다.
그런 뜻을 확인한 아나똘리 차관은 한층 진지해져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구매권은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대신 프라임 공격대, 아니 유지웅 의장님과 우리 러시아 사이에 괴수 협동 대응 체제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레이드 동맹을 하자는 거죠? 알았어요.”
유지웅이 시원스럽게 승낙하자 차관은 다시 한 번 얼떨떨했다. 이건 그런 요구가 나올 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지 않은가.
한편 유지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러시아 대통령은 원래 세계나 여기 헬조선이나 스타일이 변한 게 없네. 하여간 불곰의 나라라니까.’
얼떨결에 그 자리에서 원래 예정에도 없던 양해 각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일단은 기본적인 내용만 대골자로 넣고, 나중에 정식으로 세세한 조건을 다듬어 약정을 맺기로 했다.
양해 각서 작성을 마치고 난 뒤 차관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한국 내 정유 시장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오.”
유지웅이 단번에 대답하자 차관은 조금 헷갈렸다.
당연히 한국 정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러시아 에너지 자원 구매권을 요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라니?
“제가 10년 동안 시세보다 싸게 러시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알려져 보세요. 우리 헬조선 기업가들이나 행정 관료들이 너도 나도 제 앞에서 바짝 엎드려 절을 하지 않을까요? 그거 때문에 요구한 거지 에너지 구매권으로 특별히 뭔가 사업을 벌일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조금 이해가 어렵습니다. 지금도 이 나라에서 넘치는 파워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기는 다양하고 많을수록 더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지금 헬조선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니까 원유라는 무기를 갖고 있으면 더 재밌게 놀 수 있잖아요. 전 그게 너무 기대되거든요.”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업적 이득보다는 개인적인 만족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참, 우리 정부에서 짜르 레프 처치에 관해서 구체적인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짜르 공격대가 레이드 경험을 안전하게 쌓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죠?”
“바로 보셨습니다.”
아나똘리 차관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쪽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지, 정말 이십대 초반이 맞긴 한가 싶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공격대를 소집해야겠어요.”
유지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서재를 나섰다. 폰을 꺼낸 그는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는 북한의 최고 권력자, 황백호 통령이었다.
「아, 유지웅 총리. 무슨 일입니까?」
“지금은 총리가 아닌 프라임 공격대장으로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메인 탱커.”
「오호, 저까지 나서야 할 만한 일이 있습니까? 웬만한 건 공대장이 알아서 다 처리할 수 있을 텐데요.」
“물론 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우리 프라임 공격대의 조직력이 필요합니다.”
「아아, 무슨 일인지 알겠습니다. 혹시 러시아에서 요청이 들어왔나요?」
“네, 그래요. 짜르 레프를 잡으러 갑시다.”
「좋습니다. 바로 출발하지요.」
황백호 통령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요즘 북한이 워낙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겁고 활기가 넘치는 모양이다.
“러시아에는 일단 제가 말을 해두겠습니다. 메인 탱커는 거기서 바로 출발하세요.”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겠군요.」
유지웅은 황백호 외에도, 얼마 전에 합류한 테레사와 레이크한테도 연락을 취했다. 제니스 컴퍼니에 따로 지시를 내려 장태준과 새로 합류한 원거리 딜러 2명도 준비를 하라 시켰다.
조치를 마친 유지웅은 서재로 다시 돌아왔다.
“프라임 공격대는 한 명만 빼고 전부 러시아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한 명이 누구입니까? 혹시 황백호 통령인가요?”
“아니오. 메인 탱커가 빠져서야 말이 안 되죠. 정효주 딜러가 빠집니다.”
“그럼 총 전력이…….”
“메인 탱커, 서브 탱커 하나, 원거리 딜러 넷, 이렇게 6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프라임 공격대는 힐러가 전혀 없군요. 조금 의외입니다.”
“우리 메인 탱커가 자힐이 돼서 힐러가 필요 없죠.”
“하지만 그러다가 어그로가 튀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있는 한 힐러는 없어도 돼요. 힐러는 나중에 몸값 더 싸지면 천천히 영입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