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랭클린 교수.
지금은 고인이 된 핵물리학자이며, 니트로 교수의 은사였다. 또한 휘버 교수의 은사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니트로와 휘버는 동문이었다. 나이는 니트로가 8살 더 많긴 했지만.
하지만 둘 사이는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휘버는 니트로를 사형으로서 인정하고 또 존중했다. 학자로서 존경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다.
즉 니트로 혼자서 휘버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다.
그 싫어한다는 것이 정말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을 만큼 진심으로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니트로는 휘버가 핵물리 학문 본연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만 여기저기 외도를 하는 게 못마땅했다. 은사인 프랭클린 교수의 유지를 받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휘버는 핵물리학 외에도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컴퓨터공학, 우주공학, 자동차공학, 조선업, 심지어 통신 분야까지 다양하게 섭렵했다.
대충 겉핥기식으로 공부한 게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정할 만큼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휘버 교수는 박사 학위만 없을 뿐, 그 지식과 지혜는 이미 컴퓨터공학 박사나 마찬가지 수준이다.’
어느 컴퓨터공학 교수는 휘버의 학문 깊이를 놓고 그렇게 칭찬하기도 했다.
즉 알아주는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다. 그냥 알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손을 댄 분야마다 마스터 레벨을 이뤘다.
“그딴 여유가 있으면 원래 전공이나 더 열심히 파고들 것이지! 프랭클린 교수님이 천국에서 내려다보면서 통곡하신다!”
아무튼 그런 못마땅함에서 시작된 삐뚤어짐은 이내 경쟁의식으로 변했다.
둘의 나이 차이는 8살이다. 휘버 입장에서는 어른 대우를 해줘도 별로 부담이 없는 차이였다.
니트로는 휘버가 자신 앞에서 꼬박꼬박 정중하게 존경심을 담아 대하는 태도가 거슬렸다.
그리고 휘버가 자신보다 많은 예산을 타낼 때면 배가 아파서 미칠 것만 같았다.
바로 지금처럼!
“아니, 고작 발전기 개발했다고 무슨 예산을 100억 달러나 지원을 해줘! 락밀렉 이놈, 내가 북한 정제 실험에서 그렇게 빨아줬는데 어떻게 나를 제치고 휘버한테 이럴 수가 있어!”
“진정하세요, 교수님.”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냐! 100억 달러라고, 100억 달러!”
“아니, 정제 실험 한다고 45억 달러나 한큐에 날려버리신 분이 100억 달러 가지고 왜 이러세요?”
“두 배가 넘잖아!”
“저쪽은 그래도 100억 달러 가지고 폭죽놀이 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내가 언제 폭죽놀이 했어! 괴수가 결정 에너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한참이나 씩씩거리고 난 뒤에야 니트로는 겨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예상 발전 단가가 1kWh당 2센트 정도라고?”
“예, 세계 평균 원자력 발전 단가의 1/3 정도죠. 무엇보다 오염 물질이 전혀 없다나 봐요. 석탄 발전처럼 미세먼지 같은 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원자력 발전처럼 폐기물 처리 가지고 걱정할 이유도 없대요.”
니트로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일단 발전 단가가 매우 싸다. 게다가 환경오염이 없다.
어떤 원리로 결정체로 발전 장비를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그의 머릿속에서도 순식간에 여러 방안이 떠올랐다. 그 중 대충 몇 개를 골라서 실전에서 몇 번 부딪쳐 보면 방법이 나올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그렇군! 녀석도 핵물리학자였지!”
“네? 왜 그런 당연한 말씀을……?”
“입자 붕괴 감속에 성공한 건지도 몰라! 어쩌면 결정체가 물질의 형태를 한 것 자체가 일종의 페이크일 수도. 그래, 맞아! 결정체 에너지를 느리게 붕괴시켜 열에너지로 전환하면…… 가만, 그런데 이 반응을 급속히 일어나게 하면 핵무기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니트로는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투쟁심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락밀렉 그 놈을 만나봐야겠어!”
느닷없이 은사, 니트로 교수의 방문을 받은 락밀렉 장관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각오를 굳혔다.
휘버 교수에게 100억 달러의 예산이 책정되었다는 소문은 지금쯤 니트로 교수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평소 휘버에게 적지 않은 경쟁의식을 느끼는 인물이니, 당연히 자신에게 쳐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락밀렉, 이 노오옴!”
“예, 교수님. 저, 락밀렉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휘버가 만들었다는 결정체 발전기가 대체 어떤 원리냐? 결정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냐?”
“예, 그렇습니다.”
“발전 단가가 1kWh당 2센트라는 건 무슨 말이냐? 결정체가 무슨 우라늄 연료봉도 아니고, 그런 단가가 나올 수 있냐?”
“교수님. 그게…….”
“그 말인즉슨 250만 달러짜리 결정체 하나로 125GWh 전력을 생산한다는 건데, 그 쪼끄만 결정체가 그만큼이나 되는 열량을 낸다면 이건 핵반응이나 다를 게 없지 않냐?”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아니, 핵물리학 박사라는 놈이 잘 모른다고 하면 어떡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100억 달러나 되는 예산 승인을 덜컥 내준 거냐! 네가 그러고도 내 제자냐!”
“저야 백악관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저도 잘 몰라요! 휘버 교수님이랑 직접 이야기해보세요!”
니트로는 한참이나 씩씩거리다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따져 들었다.
“휘버는 지금 어디 있지? 연락이 전혀 안 되던데.”
“연구소에 있을 겁니다. 이번 달 안으로 상용화 제품 1호를 만들어 낼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벌써 상용화를 한다고?”
“네, 100억 달러는 정확히 말하자면 연구비가 아니라 상용화에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들었어요. 이미 연구는 다 끝났고 상용화만 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니트로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아니, 녀석이 언제 그만큼이나 앞으로 나아간 거지?
“교수님, 이건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국책 사업이에요. 제가 에너지부 장관이기는 하지만 발전 원리라든가 정확한 보고를 들은 게 없어요. 그저 돈 달라는 대로 내주고, 원하는 것 들어주고, 그 정도 보조 업무만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교수님도 결정체 정제 사업에 몰두하시면 충분한 예산 지원이…….”
“떽! 내가 알아서 해! 너도 그 이야기는 두 번 다시 하지 마!”
니트로는 버럭 화를 내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휭하니 사라졌고, 그제야 락밀렉 장관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맥아른 연구소를 찾아간 니트로는 드디어 휘버를 만날 수 있었다.
“아, 교수님. 어서 오세요.”
휘버는 언제나 그렇듯이 밝은 웃음을 띤 채 니트로를 맞이했다. 못마땅한 감정을 꾹 억누른 채 째려보던 니트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번에 100억 달러 받았다면서?”
“예, 그렇게 됐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기존 발전소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열 발생 장치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P-2 레이저 조사를 이용하면 결정체 입자의 붕괴 반응을 유도할 수 있죠.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니 교수님이 염려하시는 위험한 반응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장담할 수 있냐?”
“계산식을 한 번 보시겠어요?”
휘버는 종이를 꺼내 그 위에 뭐라고 휘갈기고는 곧바로 니트로에게 내밀었다. 간단한 수학 공식을 확인한 니트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래도 아주 위험한 건 아니구나.”
“안심하세요. 결정체는 참 신비할 정도로 안정된 물질입니다. 급격한 연쇄 반응을 유도하고 싶어도 애초에 그럴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물론 교수님이 매달리시면 충분히 무기화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교수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죠.”
“기존 발전소에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니…… 어째 발전 단가가 너무 싸다 싶었다. 태양이나 수력 발전을 하려 해도 1kWh당 20~30센트는 들 텐데.”
“그러면 너무 비싸서 못씁니다.”
휘버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니트로는 결정체 발전기가 어떤 원리를 띠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마음에 안 들어.’
니트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휘버, 참으로 못마땅한 녀석이다. 말 그대로 싫거나 밉다기보다는 못마땅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녀석하고 대화가 가장 잘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 척척이다.
상상이 가는가?
세상에서 제일 못마땅한 녀석이 하필이면 대화가 제일 잘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이 환장하는지 이해가 되는가?
“발견 자체는 우연이지만 발상은 예전부터 했습니다. 결정체는 분명히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다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골몰했을 뿐이죠.”
“나도 알고는 있었어.”
“물론 교수님도 알고 계셨겠죠. 하지만 결정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별다른 메리트를 못 느끼셨잖습니까. 그래서 제가 대신 했습니다.”
“네 그런 태도가 더 마음에 안 든다.”
콜론은 아프리카 토종 원주민 출신이었다.
그는 해외에서 대학 과정을 마치고 귀국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래 아프리카식 이름이 따로 있었으나, 그는 콜론이라는 미국식 이름을 즐겨 사용했다.
그의 집안은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지역에서는 손꼽히는 부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농장을 둘러보고 있던 그는 관리인이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도, 도련님! 이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웬놈들이 글쎄 괴수를 잡아서 끌고 다니지 뭡니까?”
“뭐야, 괴수를?”
그 말에 놀란 콜론은 서둘러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달려갔다.
과연 서른 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커다란 짐승의 사체를 질질 끌며 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괴수가 분명했다.
콜론은 그걸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며칠 전 보았던 제니스 컴퍼니의 발표를 떠올렸다.
‘제니스 컴퍼니에 갖다 팔아도 최소 200만 내지 250만, 독일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 갖다 팔면 그 배 이상.’
“무슨 일이냐?”
옷차림이 하나같이 거지꼴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못 배운 빈민촌 사람들이 분명해 보였던지라, 콜론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행들 중 선두에 선 이가 콜론 앞으로 다가와서 굽실거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부디 용서를…….”
“저 놈은 뭔가? 자네들이 잡았나?”
“예? 아, 예. 저희가 어렵게 잡았습니다. 마을에 끌고 가서 가족들과 나눠 먹으려고 합니다. 몸집이 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어르신 땅을 지나가게 됐습니다. 부디 용서를…….”
남자는 연신 굽실거렸고, 콜론은 씰룩거리는 입가를 감추기 위해 꾹 눌러 참아야 했다.
보아하니 저들은 괴수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냥 몸집 크고 사나운 맹수쯤으로 알고 있겠지.
문맹률이 90%가 넘고 라디오 보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오지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저 놈으로 다 같이 포식하는가?”
“예, 간만에 배부르게 고기 먹게 생겼습니다. 헤헤…….”
“저 놈을 보니 나도 군침이 도는군. 저 놈을 내게 팔지 않겠나?”
“예?”
“내가 대신 1,000달러를 주겠네.”
지저분한 옷을 걸친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콜론은 근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속으로는 피식거렸다.
역시 달러의 위대함이란.
라디오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지 마을에서도 달러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저, 정말로 1,000달러나 주실 겁니까?”
“물론이지. 당연히 USA 달러라네.”
“그럼 감사하게…….”
“이봐요, 아저씨. 내가 그거 100만 달러에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