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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1244화 (1,244/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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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마진 3%라니.

아무리 제조업이라는 게 마진율이 박하다지만 이건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 수준이 아닌가.

못해도 7~9%의 마진은 남아야 시도라도 해보지, 겨우 3%?

“넌 지금 그걸 거래라고 맺고는 혼자 신이 난 거냐? 겨우 3%? 그것도 상한선이지? 그럼 초반 몇 년은 이익은커녕 적자만 허덕이면서 여기저기 돈을 까먹을 건데.”

“그렇다고 자동차 시장에서 아예 퇴출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동차그룹’이라는 이름까지 달고 있는데 말입니다.”

퇴출이라는 말에 정현수는 순간 흠칫했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정지운은 더욱 강한 표정을 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원래 제니스 컴퍼니는 우리가 망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룹 전체를 인수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인수 자금으로 100조 원 이상 따로 준비해두고 타이밍만 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정효주는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정지운은 자신의 공을 부풀리기 위해 거리낌없이 말을 지어냈다. 부친을 압박하고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부친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망하기를 기다린다고?”

“미국과 유럽, 요즘 환경 문제에 얼마나 민감합니까. 결정체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곧바로 내연기관 자동차는 퇴출시키려고 할 겁니다. 결정체 배터리는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자동차 사업 접어야 합니다, 아버지.”

오죽 답답했으면 회장실에서 그만 아버지라 불렀지만, 정현수는 거기에 대해서 지적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3%라고 너무 적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룹의 존속을 유지케해주는 귀중한 숫자입니다. 이익률이 줄어들 뿐, 손해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초기 전기자동차 시장 선점을 통해서 해외 매출을 늘리면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독점 생산을 맡기는 건 아니라고 했지?”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아마 독점권을 주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 효진배터리의 지분 51%를 제니스 컴퍼니가 가지게 되는 겁니다. 3%의 마진 외에 로열티로 지불하는 돈을 다 갖게 되는 겁니다.”

“효진배터리가 사실상 독점 생산 체계를 갖추는 게 제니스 컴퍼니에도 이익이라는 거구나.”

“바로 그렇죠! 명시적으로 독점 생산권을 주지는 않겠지만, 사실상 독점 생산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뭐, 미국과의 관계도 있으니 미국 배터리 제조사에도 생산권을 나눠줄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감안해야죠.”

“어차피 900억 원짜리 공장으로는 다른 자동차 회사에 판매할 물량까지 커버 못해. 애초에 경쟁사에 부품을 공급해서도 안 되고. 우리가 생산하는 자동차에 넣을 물량 감당하는 것도 버거울 게다.”

정현수의 말에 정지운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저 말은 거의 허락의 뜻이 아닌가. 부친이 완전히 납득한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 그럼…….”

“생산라인 무제한으로 증설하고, 계약서 받아 와. 독점생산에 관해서도 슬쩍 한 번 찔러 보고.”

“알겠습니다.”

“이 건은 지운이 네가 직접 챙겨라.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알겠느냐?”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지운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힘찬 발걸음으로 회장실을 빠져 나왔다.

조용히 닫히는 문을 바라보는 정현수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풀려 있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군. 허참…….”

핏줄에 흐르는 게 워낙 불도저 같은 성향이다 보니, 처음에는 3%라는 박한 마진에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하지만 아들의 차분한 설명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들 말이 백번 틀린 게 없다. 결정체 전기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면 시간이 문제일 뿐, 결국 자동차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말 것이다.

아니면 그룹 전체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부품공급 하청업체로 전락하던가.

어느 쪽이든 정현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미래였다.

“겨우 3%…….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그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정현수는 어떡하면 회사의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유지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원할까? 어떤 것을 요구하고, 시험하려 들 것인가?

“너무 퍼준 거 아니야?”

정효주의 설명을 들은 유지웅은 진심으로 염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헬조선 재벌 기업들은 그냥 족쳐야 하는데. 콩 한쪽도 나눠줘서는 안 되는데. 걔들은 잘해주면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오히려 기고만장한단 말이야.”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거야. 일단 결정체 전기자동차를 빨리 보급하는 게 중요하잖아. 지금 당장 상용화 들어가도 내연기관 자동차들 유예 기간 때문에 시장 장악하려면 어쩔 수 없이 몇 년은 걸릴 걸.”

자동차는 고가 제품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10년에 한 번 바꾸는 것도 버거워하고, 장고의 고민을 겪는다.

하물며 6년 이내에 자동차를 구매한 이들은 당장 전기자동차가 보급되어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전기자동차가 보급되는 시점에서 자동차를 바꾸거나 구매할 의향이 있는 이들만 구매를 할 테니.

그전부터 내연차량을 굴려온 이들은 차 수명이 다하거나 혹은 차량 교체 동기를 품어야 전기자동차에 손을 댈 것이다.

“미래자동차는 자동차 생산과 판매 노하우가 있으니까 그 인프라를 이용하면 빨리 스타트를 끊을 수 있어.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따로 자동차 제조회사를 차려도 되고, 아니면 배터리 공급 끊는다는 협박으로 지분 인수해서 경영 참가해도 되고. 아예 지분 100% 거둬들여서 우리 것으로 해도 되고.”

“이야……. 네가 그렇게 사악한 생각으로 미끼를 던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뭐, 사악하다고?”

“칭찬이야. 흥분하지 마.”

유지웅은 발끈하려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헬조선의 악독한 재벌 기업한테는 얼마든지 사악하게 굴어도 돼. 그들에게 사악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측정할 수 없는 거대한 선을 행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그놈의 측정 불가 거대 선.”

정효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다시 말했다.

“아무튼 나중에 배터리 공급 차단 가지고 아예 자동차그룹 경영권 한 번 노려보려고. 올바르고 깨끗하게 일 잘하는 임원이나 오너 일가 있으면 월급 사장이나 시키지, 뭐.”

“그래도 3%면 엄청 박한 마진인데, 정지운인가 그 사람 용케 받아들였네.”

“나도 그게 신기해서 따로 알아봤는데, 재벌 3세치고는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아. 경영 수업도 착실하게 받았고 특별히 사고 친 것도 없대.”

“유능해?”

“그보다는 무능하지는 않은 정도? 인성도 나쁘진 않고. 그 정도만 해도 어디니.”

“흠, 월급쟁이 사장으로 쓰기에 적당한 카드이긴 하네. 신기하네. 미래그룹 일가에 그런 친구가 있었군.”

유지웅은 ‘헬조선 초재벌 기업이 이럴 리가 없는데.’라고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그럼 결정체 배터리는 효주 네가 맡아서 진행할 거지?”

“응, 그러려고. 왜, 내가 하면 안 돼?”

“그건 아니고, 네가 맡는다니까 내가 당부할 게 있어. 최윤 박사님한테 절대로 배터리 개량을 먼저 요구해선 안 돼.”

“왜? 그분이 맡으면 더 빨리 배터리 성능을 개선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분 머리 좋잖아?”

“그 양반은 한 번 연구에 꽂히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것만 파고들어. 머리카락이 빠지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지. 달리 말하면 자기가 안 내키는 연구를 억지로 시키면 도망가거나 태업을 할 사람이란 말이야.”

“아, 그래?”

“정 시키고 싶으면 요구를 하지 말고 당근을 던져서 살살 유도를 해야 해. 아니면 호승심을 자극하든가. 당신이 제일 전문가고 똑똑하니까 무조건 맡아서 해주세요, 라고 강요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하반신털까지 모두 다 빠져 버릴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내가 원래 공돌이들 보는 눈은 또 칼 같아요. 아주 기가 막히지.”

유지웅은 일어서려다 말고 문득 생각나서 덧붙였다.

“그 사람 유혹하기에는 예산 늘려주는 게 가장 좋아. 근데 그 사람도 이제 통이 커져서 1, 2조 원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거야.”

“미인계는 안 통할까?”

유지웅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최윤이 맺어진 게 레지나였지, 아마? 휘버 박사의 하나뿐인 손녀 말이다.

레지나도 상당한 미인으로 기억하지만, 그녀는 얼굴보다는 뇌가 더 섹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도 레지나가 있으려나? 한 번 휘버 가족 관계를 알아봐야겠어.’

“설마 네가 직접 나서려는 건 아니지? 안 돼. 난 장난으로라도 그런 거 용납 못해.”

“나도 그럴 생각 없거든? 그 대신 소개팅 주선은 해줄 수 있잖아.”

“누구? 최윤 소장님한테 소개해줄 만한 사람 있어?”

“테레사는 어때?”

“…….”

“왜, 별로인가? 서로 안 어울릴까?”

“아니, 의외로 둘이 나쁘진 않을지도……. 근데 그러면 세현이가 나중에 울고불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네.”

“세현이는 또 누구야?”

유지웅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회장님, 내일부터 구체적인 계약 사항을 협상하기로 했습니다.”

정지운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며칠 동안 꼬박 날을 세워 준비했는지 눈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대견한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을 안고 아들을 보던 정현수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정 사장. 아니, 지운아.”

“예, 회장님.”

“지금은 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다.”

“예, 아버지.”

“넌 제니스 컴퍼니를 얼마나 믿느냐?”

정지운은 잠시 동안 부친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이내 그 뜻을 깨달은 그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믿지 않습니다.”

“허어.”

오십 넘은 아들의 대답이 기특하게 느껴져, 정현수는 그만 옅은 웃음을 지었다. 아들이 계속 말했다.

“정효주 부의장은 원래 적당한 프리미엄을 주고 효진배터리를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팅해놓은 생산 라인을 그대로 바로 쓰겠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런 의도를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이템의 격차가 워낙 분명하니까요.”

패를 감추거나 잔꾀를 부리는 것은 힘이 부치거나, 우위에 있더라도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을 때 이야기다.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경우, 즉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쉬를 들고 상대가 다이(die)를 하지 못하도록 권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얼마든지 패를 보여줘도 괜찮다.

상대로 하여금 올인을 강요할 수 있으니.

“사업을 빠르게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일반 직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효주 부의장이 마음을 돌린 겁니다. 제니스 컴퍼니는 일반 평직원들을 심할 정도로 후하게 챙기는 편이니까요.”

“잘 봤구나.”

“당장 필요에 의해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 그룹을 털도 안 뽑고 삼키려 들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잘도 지분 51%를 줬냐?”

“칼자루를 쥐어주지 않고서는 구미가 당기게 만들 수 없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아들의 말을 차분히 듣던 정현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 말을 해줘도 되겠구나.”

“말씀하십시오.”

“제니스 컴퍼니가 지금 미래자동차 지분 5%를 분산해서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보유 지분을 30%까지 늘려줄까 하는데, 그 이야기를 내일 협상 테이블에서 꺼내 보거라.”

“아버지? 진심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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