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시즌 헬조선편 동해 날개 --
최윤의 전력기관이 현재 가지는 문제는 바로 일정 이상의 출력을 안전하게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송전을 감당할 만한 출력을 내려면 배터리 크기가 지나치게 커져버리고, 또 폭발 위험도 증가하므로.
효율이나 안전면에서 신뢰할 수 없는 제품이 되고 만다.
이전까지는 그랬었다. 그리고…….
“방법을 알 거 같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휘버는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최윤의 표정은 후련함이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빛이었고, 기뻐하던 휘버는 의아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안색이 좋지 않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전 방금 교수님의 연구 기록을 보고 힌트를 얻었습니다. 고출력으로 향할수록 폭발 위험이 커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지구 중력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요.”
“아.”
휘버는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을 깨닫고는 표정이 경직되었다.
최윤은 어두운 안색으로 연구 일지를 종료하고는 휘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중앙 발전소에서 대용량 송전을 폭발 위험 없이 가능케 하려면 중력 간섭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하든가, 발전소를 우주에 세우던가, 아니면 다른 새로운 발상의 기술을 적용해야 합니다. 결국 원점이로군요.”
최윤은 진심으로 애석하게 여겼지만, 휘버는 포기하지 말라는 듯 계속 격려를 불어넣었다.
“최윤 박사, 원점이 아닙니다. 적어도 해결 방법은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구 중력을 완전히 튕겨내는 기술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우주에 발전소를 세울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발전소를 건설하는 비용이나 시간이야 그렇다 쳐도, 궤도에서 송전선을 늘어뜨릴 수도 없고. 궤도 무선 송전이라면 모를…….”
순간 최윤은 말을 멈췄다. 휘버 역시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최윤과 시선이 마주쳤다.
“궤도 무선 송전!”
“맞아요! 그 방법이 있었어요!”
“궤도 무선 송전 기술을 개발하면 됩니다!”
우주에 결정체 발전소를 세우고, 궤도에서 무선 송전으로 각 가정에 전기를 공급한다. 둘은 거의 동시에 같은 발상을 떠올린 것에 얼싸안고 기뻐했다.
니트로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얼씨구, 무선 송전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뚝딱 나오는 기술인 줄 아나 보네.”
궤도 무선 송전이 가능해진다면, 그야말로 SF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셈이다. 그게 어디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인가.
니트로는 회의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괴수가 나오고 레이더들이 설치는 지금도 충분히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는 하지. 아니, 영화보다 더한가?”
궤도 무선 송전 기술이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까? 저 둘이 힘을 합쳐도 수십 년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도 보기에는 참 사이 좋아 보이는구만.”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니트로는 저렇게 좋아서 죽이 맞는 모습이 참 부러우면서도 보기 좋아 보였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생에 우정을 못다하고 사별한 베스트 프렌드 사이였었나? 왜 저렇게 서로 좋아 죽지 못해 안달이야.”
박치정은 정현수 회장이 내린 특명을 가슴에 품고 정지운을 찾아갔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박치정은 정지운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본론부터 꺼냈다.
“회장님께서 받아들이셨습니다.”
“…….”
정지운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지만, 박치정은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말했다.
“사장님 생각대로, 회장님께서는 머리가 가슴을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미래자동차그룹은 회장님께서 선친께 물려받아 평생을 바쳐 지금의 모습을 이뤄낸, 회장님의 일대기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회사이니까요.”
기업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정체성이자 인생. 정현수에게 미래자동차그룹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업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지운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고, 박치정은 설명하기 힘든 희미한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늦었습니다.”
“사장님?”
“조금만 더 빨리 오시지 그랬습니까. 벌써 며칠이란 시간이 지났는데요.”
“하지만 아직 언론에는 아무것도 공표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박치정은 당황했다.
정지운은 그 뒤 아무것도 추진하지 않았다.
효진배터리의 사명을 바꾸거나, 지분을 이전하거나.
혹은 미래자동차그룹과 협상결렬로 결정체 배터리를 공급할 수 없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늦었다니?
“저는 그날 그렇게 미래자동차그룹 본사를 나오고 정확히 이틀을 기다렸습니다. 그 이틀이라는 시간이 제가 미래자동차와 정현수 회장님께 드린 기회입니다.”
“사장님.”
“하지만 미래자동차는 그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그 시점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결정을 철회한 것은 아닙니다.”
정지운은 서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미래자동차에 결정체 배터리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발표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거느리게 될 자회사이니, 일을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끌어안아 줄 기회는 날아갔다는 겁니다. 이제는 강제로 품에 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아프고 다치든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박치정은 마른침을 삼켰다. 정지운의 안색에는 조금의 장난기도 묻어나지 않았다.
“51%입니다. 미래자동차 지분 51%를 가지는 조건으로 결정체 배터리를 공급하겠습니다.”
“사, 사장님! 그건!”
“타협은 없습니다. 이미 국내 다른 자동차업체들과도 비밀리에 협상을 타진 중입니다.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으시면 미래자동차를 제외하고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손을 잡겠습니다. 적어도 2년은 배터리를 공급받으실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결정체 전기자동차가 상용 판매가 시작된 날을 기준으로 해서 2년이라는 뜻입니다.”
박치정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정지운의 말이 전혀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는데 일주일 정도 더 경과했다고 이렇게 무지막지한 요구를 해오다니.
“박치정 사장님, 지금부터 시간을 재겠습니다.”
박치정은 터지려는 호흡을 억지로 참아가며 귀를 기울였다.
“10분이 지날 때마다 미래자동차가 내놓아야 할 지분이 5%씩 증가합니다. 100분이 경과하면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 미래자동차 배터리 공급을 끊고 망하게 한 뒤, 저렴한 가격으로 각 계열사들을 인수할 겁니다.”
“사장님!”
“벌써 10초 지났습니다.”
정지운은 느긋하게 쇼파에 몸을 기댔다. 박치정은 다급해져서 얼른 스마트폰을 찾았다. 지금 정지운을 설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무실을 벗어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구석으로 이동했다.
“회장님, 저 박치정입니다. 지금 정지운 사장을 만나고 있습니다.”
「말하게.」
“그것이…….”
박치정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정지운이 어떤 표정과 눈빛으로 무슨 말을 했으며, 자신이 느끼기에 얼마만큼 진심인지, 그리고 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를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짧게 압축한 긴 설명이 끝났지만, 다행스럽게도 정현수 회장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도 박치정을 보내놓고 사무실에서 줄곧 고뇌하고 있었는지, 즉각적으로 대답해줬다.
「하게. 어차피 30%나 51%나 똑같아. 차라리 51%를 내주면 완벽하게 자회사로 편입되는 거니, 나중에 쓸모가 없다고 버려지지는 않겠지.」
“알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박치정은 서둘러 전화를 끊고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아직 8분이 조금 넘게 지나 있었다.
“회장님께서 받아들이겠다고 하십니다.”
“조금 아쉽군요. 적어도 30분 정도는 시간을 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정지운이 밝게 웃으며 말하자 박치정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짧은 순간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린 박치정은 불현듯 하나의 결론에 당도했다. 그는 바싹 말라오는 입술을 느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30%에 만족하실 생각은 없으셨군요. 회장님을 마지막으로 찾아왔었던 그때부터……. 맞습니까?”
“맞습니다.”
정지운은 여유 있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겨우 30% 가지고 어떻게 모회사 놀음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배터리 공급을 꽉 쥐고 있다고 해도요. 법률 관계는 확실하게 해놓아야 나중에 탈이 안 나지요. 경영자로서 당연한 결정 아니겠습니까?”
“…….”
“너무 그렇게 보실 것 없습니다. 박치정 사장님이 제 입장이더라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박치정은 할 말이 없었다.
눈앞의 중년 남자가 더 이상 미래자동차그룹 사람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피부에 와 닿으니, 새삼 압도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정지운은 이미 어엿한 제니스 컴퍼니의 사람이었다.
여전히 인간 정현수의 아들이되, 미래자동차그룹 회장의 아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미래자동차그룹과 제니스 컴퍼니 간에 성사된 빅딜은 매스컴을 제대로 불붙였다.
메이저 지상파 채널은 앞을 다투어 두 회사 간의 결합이 낳을 예상 시너지 효과를 다루었다. 정현수의 아들이 제니스 컴퍼니에 입사하는 것을 두고 온갖 분석을 쏟아냈다.
―제니스 컴퍼니, 미래자동차그룹에 특혜 베풀기로 결심하나?
―미래자동차 그룹, 과감히 수소자동차 포기. 대신 결정체 전기자동차 즉각 도입키로.
―기존 주주들, 일시적인 손해 감수하고 두 팔 벌려 크게 환영해.
―미래자동차그룹, 제니스 컴퍼니의 자회사 되다!
미래자동차 지분 11%는 정현수가, 40%는 우호지분 세력이, 그리고 증시에 풀린 나머지 49%는 일반 투자자들이 갖고 있었다.
미래자동차는 대대적인 유, 무상증자를 통해 제니스 배터리에 넘겨줄 지분 51%를 확보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100조 원 넘게 쌓아두고 있던 사내유보금이 증자 작업, 국내 증시 자사주 매입에 투입되었고.
개미 투자자들은 주가가 더 뛸 것으로 예측하고 버티려 했으나, 정지운은 20% 이상의 프리미엄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30일 안으로 필요한 양의 자사주 매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래자동차그룹에서 과감히 손을 떼겠습니다.”
그런 불안함이 증폭되자 20%의 프리미엄을 받고 공개 매입에 주식을 던지는 개미 투자자들이 급증했다.
혼란스러운 그룹 재편 작업이 마침내 끝났다.
효진배터리는 제니스 배터리로 이름을 바꾼 채 100% 제니스 컴퍼니 자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미래자동차의 지분 51%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현수의 지분 비율은 10%에서 4.26%로 줄어들었으며, 미래자동차의 시가총액은 162조 원을 돌파했다.
정지운은 1차 시험 성적표를 들고 정효주를 찾았다.
그녀를 보자마자 정지운은 황송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부의장님. 제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겨우 이 정도밖에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혈육의 정이 있어 힘드셨을 텐데 깔끔하게 잘 정리하신 거 같아요. 믿음직스럽네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유지웅이 조용히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저 양반, 관상이 딱 내 스타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