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1297화 (1,297/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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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일보는 국내 3대 메이저 일간지 중 하나다. 이 나라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3대 스피커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두 신문사와 마찬가지로, 동원일보는 오래 전에 이미 변질됐다. 언론사가 아닌, 돈을 받고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홍보팀으로 전락했다.

‘너희는 기자가 아니다. 기자의 탈을 쓴 장사치일 뿐이다.’

사익을 위해 불법이나 탈법, 사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기자란 탈을 쓰고 공익을 위해 활동한다고 버젓이 주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걸 믿는다.

그에 대한 철저한 경종이 필요하다.

윤기원은 보안 시스템의 요란한 경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버를 확인했다. 그는 단말기에 메모리 카드를 꽂고 안에 담긴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미국의 천재 해커들이 짜준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미친 듯이 복제되며 내부 데이터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윤기원은 잠자코 작업 진행률이 완료되기를 기다렸다.

작업 진행률이 50%를 넘어가는 순간, 마침내 보안팀 직원들이 나타났다.

“당신 누구야!”

보안팀 직원들은 가스총을 들이대며 위협했고, 윤기원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그는 손을 들어 테이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우악스럽게 한쪽 귀퉁이를 뜯어내어 그들을 향해 던졌다.

보안팀 직원들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태, 탱커?”

“얌전히 있으면 죽이진 않겠다.”

윤기원이 복면 위로 드러난 눈으로 살벌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보안팀 직원들은 당황해서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탱커를 상대로 이런 비약한 가스총 따위가 통할 리가 없다.

탱커가 나타날 경우에는 그저 철저한 항복만이 유일한 지침이다. 섣불리 도주라도 했다가는 문제만 더 키우게 된다.

그 사이 작업 진행률은 100%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데이터 파괴 작업이 100%를 찍는 순간 윤기원은 드디어 움직였다. 컴퓨터 장비들을 닥치는 대로 맨손으로 뜯어내며 산산조각 내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터 복원이나 장비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소프트웨어적으로 먼저 파괴를 하고 그 후에 다시 하드웨어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그, 그만 둬!”

보다 못한 보안팀장이 창백해져서 외쳤지만 윤기원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보안팀 직원들은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맨손으로 단단한 철제 외피를 뜯어내고, 전기가 흐르는 전자기기를 아무렇지 않게 파괴하는 상대 아닌가.

자신들이 나서봐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만이 그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여기는 동원일보의 중앙서버실, 말 그대로 동원일보의 모든 무형적 가치를 보관하는 곳이다.

직원 정보, 회계 정보 같은 것은 차라리 없어져도 괜찮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고 있는, 동원일보가 수십 년 간 축적해온 기사 자료들이 날아가면, 회사는 더 이상 신문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게 된다.

당장 내일 해야 할 기사 송출은 어떻게 되겠는가?

동원일보는 포털 서비스 업체가 아니기에 제대로 된 백업 데이터 센터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본사 서버실 내에서 2중으로 백업망을 갖추고 있는 게 전부다.

미국의 협조로 그 사실을 낱낱이 파악해둔 윤기원은 주저 없이 모든 전자기기를 남김없이 파괴했다.

“모두 지켜보느라 수고했다.”

조롱처럼 그 한 마디를 남긴 윤기원은 그대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거리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CCTV의 사각지대를 찾아 큰 빌딩 사이 골목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사각지대를 찾은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가발과 겉옷을 전부 새로이 바꿨다. 그리고 건물 내부를 가로질러 유유히 대로로 다시 빠져 나왔다.

그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반도일보 본사건물이었다.

시청 인근에 있는 반도일보 본사 앞에 서자, 누군가가 조용히 옆에 다가와서 섰다. 바로 최형식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마치셨군요.”

“동원일보 컴퓨터가 조금 느리더군요. 데이터 소각 작업이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확실히 파괴했겠지요?”

“물론입니다. 동원일보는 당장 내일부터 포털 기사 송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힐 겁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기사 자료들이 날아가 버렸다. 백업 장치까지 같이 날아갔으니 복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원일보가 잃어버린 자료를 복구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터넷, 그 광활한 세상에 여기저기 널리 퍼져 있을 자기들의 자료를 일일이 수집하는 것뿐이다. 100% 재건도 불가능하거니와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소모될 것이다.

게다가 날아간 것은 기사 자료만이 아니다.

인사 정보, 회계 정보, 재무 정보 등 회사에 필수적인 숫자들도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내일부터 동원일보 사무직원들은 캐비닛에 잔뜩 쌓여 있을 종이 서류를 몽땅 끄집어내서 다시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해야 할 것이다.

아, 그 전에 먼저 원격 백업이 확실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 공백 기간 동안 동원일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자, 이제 여기만 박살내면 오늘부터 3대 신문사는 완전히 힘을 잃게 됩니다. 소식을 듣고 대비하기 전에 서두릅시다.”

“그러지요.”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반도일보 본사 건물로 향했다.

그날 저녁, 3대 메이저 신문사는 모든 데이터 서버가 파괴되어 하루아침에 신문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데 SBC는 안 날려도 됩니까? 거기도 만만치 않게 이 나라의 여론을 흐리고 있는데요.”

“거기는 놔둬도 될 겁니다. 제니스 컴퍼니에서 인수를 준비 중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리고 신문사가 아닌 방송국이라서 예능이나 드라마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많아서요. 섣불리 데이터를 날려버리는 것은 좀 아까운 생각도 들고요.”

“알겠습니다.”

하룻밤의 파고 행각을 마친 둘은 손을 툭툭 털고, 여유롭게 다시 S캐슬로 돌아왔다.

느닷없는 새벽 테러에 청와대는 한바탕 뒤집어졌다.

달게 잠을 자고 있던 행안부 장관은 긴급 호출을 받고 제대로 세수도 하지 못한 채 급히 청와대로 출근해야만 했다.

김호 대통령도 소식을 들었는지 잠이 덜 깬 듯 퀭한 눈으로 그를 맞이했다.

긴급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사건은 금일 새벽 01시를 기점으로 벌어졌습니다. 백신공격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두 탱커가 동원일보와 변경일보 사옥을 급습해서 서버실을 완전히 파괴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완전히 파괴된 서버실 내부를 촬영한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두 회사는 본사 내부 서버실 외에 별다른 외부 데이터센터를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백업 서버도 본사 서버실 내부에 존재합니다. 즉 서버실만 날려버리면 두 회사가 지닌 모든 전산 자료가 영구히 날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설마?”

“예, 서버실은 철저히 파괴되고 두 회사의 전산 자료는 몽땅 날아갔습니다. 약 40분 후 습격을 받은 반도일보 서버실도 동일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나라 3대 신문사 셋이 하루아침에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겁니다.”

“…….”

“일단 현역 기자들이 자기들 노트북에 있는 자료로 기사를 급히 작성해서 포털 사이트 등에 송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임시적인 땜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3대 신문사는 기득권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스피커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성능 좋은 도구, 그런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못 쓰게 되었다.

3대 신문사 외에 다른 중소신문사들도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서버실이 파괴된 것을 본 그들 신문사들은 이제부터 몸을 극도로 사릴 것이다. 재계나 정계가 원하는 대로 기사를 쉬이 써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행동해왔던 3대 신문사가 하루아침에 어떤 식으로 무력화됐는지 똑똑히 지켜봤으니까.

“그래서 대책은?”

“…….”

“아니, 이런 답답한 사람들을 봤나.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만 하면 다인가? 대책을 내놔야지.”

탱커가 얽힌 문제에서는 사실 뾰족한 대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똑같이 탱커로 구성된 특수기동대 같은 것을 창설하면 모를까, 그 외에는 답이 없는 문제인 것이다.

총알이나 화학무기가 통하지 않는 탱커를 무슨 재주로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탱커로 구성된 특수부대 설치는 시작부터 보기 좋게 실패를 맞이했다.

탱커나 힐러들이 특수부대 모집에 일절 응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그런 백신 자처하는 혁명가들이 나타난 건데 그걸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까? 상대가 탱커니까 같은 탱커가 알아서 책임지고 막아라, 뭐 이런 소리입니까?

―아니, 선생님. 그게 그런 뜻이 아니고요…….

―백신공격대가 차라리 약자 괴롭히고 사회 질서 무너뜨리러 다니는 거라면 백번 생각해서 한 번쯤 고려를 해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 무너진 사회 질서를 회복하려 하고 있어요. 무력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써가면서까지요. 굳이 내 목숨 걸고 그런 사람들 막고 싶지 않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저도 그 사람들하고 같이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제가 잃을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양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뿐이지.

―백신 공격대가 뭐하든 관심 없어요. 그냥 열심히 레이드 뛰어서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면 그걸로 만족이에요. 백신 공격대와 싸우다가는 높은 확률로 죽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제가 그런 짓을 해야 하죠?

―특수부대? 안 해요, 그딴 거.

위험은 위험대로 높지, 명분은 명분대로 없지,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레이더들은 특수부대 모집에 응하지 않았다.

관련 법안은 이미 통과된 상태이므로, 공권력을 발동하면 강제로 탱커와 힐러를 특수부대에 모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치인도 그런 위험 부담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막말로 강제 동원 대상자로 지정된 탱커가 악감정을 품고 몰래 쳐들어와서 목을 따기라도 한다면?

탱커라면 명백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도 없었다.

때문에 재계 입김에 따라 레이더 통제 법안이 통과되었음에도, 막상 제대로 된 실효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청와대는 경계를 강화하라는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청와대에서 오간 논의 내용을 전해들은 김범석은 한심해서 혀를 끌끌 찼다.

“김호 정권은 미국 사례를 보고도 배운 게 없나? 한심한 종자들이군. 대통령이 일본인이어서 그런가.”

일본에서 태어난 기업가 출신인 김호 대통령은 그 출생과정 덕분에 ‘명예황국신민’이란 조롱을 받고 있었다. 또한 정책 성향을 대부분 일본 내각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탱커 특수부대를 설립해서 백신 공격대를 막으려고 하다니…… 다 쓸모없는 짓인데 말이야.”

그동안 사회적으로 억눌려 있던 불만이 마침내 터져 나온 게 바로 백신 공격대다.

총기가 금지된 사회에서 억울한 소시민에게 탱커라는 강력한 기관총이 쥐어짐에 따라, 사회의 부정을 향해 마구 난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걸 힘으로만 틀어막으려고 하니 제대로 될 일이 있나.

“주인님께서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하셨거늘.”

늘 그렇듯이 정치인들은 시킨 대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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