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1362화 (1,362/1,550)

--  --

“뭐야?”

유지웅은 깜짝 놀랐고, 김범석은 설명을 계속했다.

「저번에 주인님께서 이 충실한 종에게 서울 상수도 불량 문제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계엄군이 테러니 마니 바람을 잡는데 제가 한 짓이 아니냐고 질책하셨지요. 그래서 이 충실한 종은 그 문제를 한 번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야, 그건…….”

혹시라도 네놈이 과잉 충성심 때문에 저지른 짓이라면 도를 넘지 말라고 주의를 주려고 했을 뿐인데. 하지만 김범석은 그 말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주인님은 필연적입니다. 주인님이 무언가 발언을 하셨다면 그것은 운명적 필연성에 의해 생성된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상수도 불량 문제를 주시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니, 난 그냥 혹시 네놈이 쓸데없는 짓을 한 건가 하는 예감이 들어서 한 마디 한 건데? 그 뒤로는 잊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그런 예감을 느끼셨다는 것 자체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충실 된 종으로서 그냥 두고 지나칠 수만은 없었습니다.」

“…….”

유지웅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곧 마음속에서 깊은 감동이 올라왔다.

“범석아.”

「예, 주인님.」

“이 세상에서 잠시나마 나를 말문 막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효주 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네가 있었구나. 나는 실로 대견해서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주인님!」

벅찬 감격, 그리고 대견함.

두 주종은 잠시 그렇게 감동의 여운을 나누고 난 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근데 서울시내 응급실이 노약자로 꽉 찬 거와 상수도가 무슨 상관인데? 정말 상수도 테러가 맞는 거냐? 김호 정부에 반기를 든 시민군이 상수도에 몰래 약이라도 풀었어?”

「약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수질 검사와 시설 검사에서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수 조치가 하루 만에 풀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요.」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야?”

「존경하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머나만 이국땅에서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것을 잊지 않고 항상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이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브라질 험난한 오지에서 겪으시는 고난을 제 일처럼 탐구했습니다.」

말을 하다 말고 또 감정이 벅찼는지, 목소리에 희미한 울먹임이 생긴다.

유지웅이 물도 잘 안 맞는 브라질에서 고생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충실 된 종복으로서 그저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상수도 문제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봤습니다. 그 결과 질환을 앓은 이들이 보인 증세가 므야브루스 족이 겪은 증세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치돼서 퇴원했습니다.」

“계속 해봐.”

유지웅은 표정은 어느덧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 뒤로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저는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시내 종합병원 응급실이 동일 증세로 실려 온 노약자들로 가득 찬 것을 바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주인님 덕분입니다. 주인님께서 브라질에서의 일을 통해 저의 눈을 틔게 해주지 않으셨다면, 저로서도 이렇게 재빨리 파악할 수는 없었을…….」

“잠깐, 동일 증세라고? 응급실 환자들이 전부?”

「예, 증세만 보면 므야브루스 부족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게 주인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에 대한 징벌은 나중에 하면 되고, 일단 설명부터 마저 해봐.”

「현재 의사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 전염병이 발병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정 에너지 과농축 현상이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행정부는 물이 원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물이 결정 에너지에 오염됐다는 확증도 없는데 너무 섣불리 판단하면 곤란해.”

「하지만 므야브루스 부족과 동일한 증세입니다. 저는 주인님의 업적을 믿습니다. 주인님께서 그 머나먼 브라질까지 가신 것은 장차 서울에 닥칠 이 일을 대비하기 위한 운명의 이끌림이었던 것입니다.」

“일단 기다려.”

유지웅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대기하라 지시하고, 곧바로 최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현재 서울에서 일어난 상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최윤의 숨소리가 안 좋아졌다.

“……그래서 한 번 확인을 해보고 싶은데, 혹시 수도권에 바로 띄울 만한 드론 부대가 있나요? 팔당호만 스캔해도 바로 견적이 나올 것 같은데.”

팔당호는 서울의 상수도원으로 보호받고 있다.

만약 정말 물이 오염된 것이라면, 팔당호를 스캔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윤은 난색을 표했다.

「저희가 보유한 모든 스캔 드론을 전부 긁어서 브라질로 가져온 터라, 지금 한국에는 여유분이 없습니다.」

“단 1기도 없어요?”

「네, 단 1기도 없습니다.」

“아니, 대체 우리 연구소가 얼마나 가난하게 긴축 재정을 하고 있었으면 본국에 여유 드론 1기도 없대요. 나 진짜 눈물 나려고 그러네. 내가 그렇게 돈을 못 챙겨줬나 싶기도 해서…….”

「아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의장님은 언제나 충분하게 저희를 챙겨주셨습니.」

「비켜요, 최 소장! 내가 설명하리다! 아니, 투자자한테 그런 식으로 설명하면 안 되지!」

「니, 니트로 교수님!」

「빨리 시켜 봐요! 내가 비켜볼 말이 있단, 아, 너무 급해서 나도 모르게 말이 꼬이네요. 이게 아닙니다. 아무튼 어서 비켜 봐요!」

통화음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니트로가 급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의장님, 닥터 니트로입니다.」

“아, 니트로 박사님.”

「원래 저희 과학자들은 있으면 있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사는 게 습성이 된 종족들입니다. 예산이 지급되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0을 찍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고 있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런 낡은 표현은 투자자의 마음을 더욱 언짢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니트로는 새로운 표현을 개발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돈이 모자라서 본국에 드론 여유기를 남겨놓지 못한 게 아닙니다. 가능한 브라질 조사를 빨리 마무리 짓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다 긁어온 것이지, 살림살이가 쪼들려서 그런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번에 예산도 10배를 더 늘려주셨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전 또 연구원 분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돼서 순간 울컥했었네요.”

「저희 밥 잘 먹고 다닙니다. 다들 입사하기 전보다 살이 5kg 이상씩 쪘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연구소 구내식당 메뉴를 고급 다이어트 식단으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니트로는 유지웅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다독일 수 있었다. 최윤이 ‘과연.’하며 감탄하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유지웅의 귀에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일단 드론 1기를 따로 항공기에 실어서 서울로 보낸 뒤 측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드론들은 전부 메인컴퓨터의 정교한 통제를 받아 움직이는 터라, 드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종 모듈을 따로 제작해야 합니다. 다행히 부품은 충분하니 세 시간 정도 프로그래밍을 할 시간만 주시면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스캔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혹시 드론을 다시 여기로 가져와야 하나요?”

「아닙니다. 이곳에서 원격으로 데이터를 받아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다시 가져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종 모듈을 따로 만드는데 세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좋아요, 그 세 시간을 한 시간 미만으로 줄여봅시다.”

「네? 그것은 물리적으로…… 아니아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이거 왜 이러세요. 저 유지웅입니다. 마른 걸레 쥐어짜듯 직원만 무조건 쥐어짜지 않아요.”

「예?」

“조종 모듈 따로 만들 필요는 없어요. 기다려 봐요.”

니트로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은 유지웅은 곧바로 브라우니 위성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브라우니, 네가 이곳으로 좀 와줘야겠다. 아, 오기 전에 들릴 데가 좀 있어. 가져와야 할 게 있거든.”

“자, 여기 팔당호에서 퍼온 물입니다.”

연구팀이 있는 별장으로 향한 유지웅은 세 박사들을 향해 자랑스럽게 수통을 내밀었다. 세 박사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팔당호에서 물 퍼서 미리 출발했던 게 아닐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우리한테 물었던 걸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럼 아까 전화 끊고 바로 한국에서 팔당호 물을 보냈다는 건 말이 됩니까? 이제 겨우 20분도 안 지났어요!’

정황을 보면 한국에서 미리 알고 실어 보낸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20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사이에 퍼왔다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최윤이 물었다.

“의장님, 이 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아, 방금 한국에서 도착했습니다. 아까 전에 막 퍼 올린 따끈따끈한 물입니다. 아마 결정 에너지가 스며들어 있다면 아주 생생하게 반응하겠죠?”

“자, 얼른 스캔해주세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저 물은 대관절 어떻게 된 걸까.

그런 궁금증을 억누르고, 그들은 곧바로 스캔 작업에 들어갔다. 굳이 드론을 이용할 필요 없이 결정 에너지 스캐너를 이용하면 되었다.

삑! 삑! 삑! 삑!

“오오!”

“틀림없습니다! 결정 에너지가 감지됐습니다! 이 물은 결정 에너지에 오염된 물입니다!”

“팔당호에서 퍼오셨다고요? 그럼 팔당호를 시작으로 한강 일대가 이미 결정 에너지에 오염된 상태입니다! 즉시 상수도를 차단해야 합니다.”

유지웅은 잠시 고민했다.

김호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인가, 아니면 방송으로 직접 터트릴 것인가.

그는 어느 쪽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선에서 더 재밌는 전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그는 김범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범석아. 확인했다. 팔당호는 이미 오염됐어. 제2의 아마존 강이나 마찬가지다.”

「역시 제 믿음이 옳았군요.」

“그래서 어떡할까? 이 사실을 김호 정부에 알려줘서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내가 방송에서 직접 터트릴까? 너는 어느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냐? 물론 시민들이 위험해지지 않는 선에서.”

「나의 주인님, 어느 쪽이든 주인님이 원하시는 쪽을 선택하십시오. 무엇을 선택하든 주인님의 바람대로 이뤄질 거라고, 이 미천한 종은 깊이 받들어 믿습니다.」

“녀석…… 전개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일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을 쓰겠다는 거구나. 알았다. 네 충심을 믿으마.”

「언제나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김범서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유지웅은 흐뭇해서 전화를 끊었다.

“아, 이래서 고대 황제들이 아첨하는 간신들을 옆에 가까이 두고 예뻐했던 거군. 그 마음이 이해가 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