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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타운.
강서우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유지웅의 방송도 본다. 채팅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넓은 사유지를 조건 없이(그가 보기에는 그랬다) 타인에게 제공하다니.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이 그곳에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전이 어려우시다면 2호점이라도 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제니스 타운은 임대료가 매우 낮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수준입니다. 이 정도 면적이면…… 월 25만 원 정도 되겠네요.”
강서우는 순간 지긋지긋한 건물주 아들을 떠올렸다.
그 침묵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했는지, 하신현 대리의 말이 조금 더 빨라졌다.
“현재 제니스 타운 거주 인구는 500만 명 가까이 됩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2위의 대도시죠. 조만간 서울을 추월하게 될 겁니다. 여기에 탈모 치료, 관광을 위해서 찾는 국내외 관광객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서울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장사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실 겁니다.”
“이사하겠습니다. 마침 여기 가게를 비워줘야 했는데 잘 됐어요.”
“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제가 몇 가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강서우는 조용히 가게 이사를 준비했다.
오래 일한 직원들을 불러다가 사실대로 통보하고 의견을 구했다.
“제니스 타운으로 옮기면 거기서 직원들 기숙사도 제공해준대요. 물론 기숙사 비용은 제가 경비로 부담하겠습니다. 쉐어하우스는 아니고 그냥 일반 투룸이래요. 아니면 가족들 데리고 이사를 해도 되고요. 월세가 엄청 싸서 저도 놀랐습니다.”
“세가 어느 정도인데요?”
“서울 시세의 1/10 이하라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보증금이 전혀 없어요.”
“그게 진짜인가요, 사장님?”
나이 든 여직원들은 다들 놀라워하며 웅성거렸다. 세상 정보 습득이 느린 그들은 제니스 타운의 주거 정책에 관해서 잘 아는 바가 없었다.
“네, 제니스 타운 전체가 사유지이다 보니, 말이 거주민이지 사실상 직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사장님이 가게를 거기에 판 거예요?”
“그건 아니고, 직원은 아니지만 결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다 보니 일종의 회사 내 매점 같은 셈이죠. 아무튼 조건은 이렇습니다. 어떻게들 하시겠어요?”
“가야죠. 가족들 데리고 갈래요.”
가족과 함께 가느냐 혼자 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직원들 전원이 이주를 결심했다.
강서우는 이주를 결심한 뒤 제니스 타운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내려가면서 가게터를 찾았다. 마침 타운 주거 지역과 인접한 곳에 적당한 상가용 건물이 하나 나와 있었다.
직원을 통해 어렵지 않게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곧바로 내부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자신처럼 제니스 타운과 계약을 맺고 타운 내에서 영업을 하는 인테리어 업체가 있었다.
견적을 내자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한 가격, 그리고 깔끔한 절차에 강서우는 깜짝 놀랐다.
“예상보다 싼데요?”
“단가를 낮춘 게 아니라 거짓 거품을 걷어내서 그래요. 건설 쪽이 원래 그런 게 좀 많이 있었거든요. 근데 여기서는 그런 짓 하다가는 큰일 나요. 바로 계약 해지당하고 쫓겨납니다.”
“아, 그래요?”
“제니스 임대 계약서에도 그런 조항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는 정직하게 장사해야 돼요. 돈을 많이 버는 건 상관없는데 무조건 정직해야 돼요.”
“아, 그런 설명을 들은 기억은 나요. 직원 분이 신신당부를 하시더라고요.”
“단가 대폭 속이다가 걸려서 쫓겨난 업체도 있었어요. 그런 건 절대 안 봐줍니다.”
강서우는 오히려 그런 엄정한 문화가 안심이 되었다. 정직하게 장사하는 거야 이미 몸에 배여서 상관없었다.
‘참 신기한 도시구나.’
제니스 타운을 내려가면서 강서우는 타운 외의 다른 곳도 두루두루 둘러봤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제니스 타운이 거대하고, 또 사람이 많으며, 활기도 넘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수백 개가 넘는 거대한 크레인타워…….
수백만 명이 넘는 탈모 원정대들의 모습은 강서우에게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서울이 한국 제일의 도시라고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은 채 살아왔지만, 제니스 타운을 자주 드나들면서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테리어 중간 확인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웬 청년 하나가 팔짱을 끼고 뒤에 혼자 서 있었다.
왠지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강돈집 사장님? 이번에 우리 동네로 이사 오신다면서요?”
“호, 혹시 유지웅 의장님?”
“네, 맞습니다. 사장님이 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왔어요. 제가 사장님 가게 고기 좋아하거든요.”
“예? 그게 무슨…….”
“자주 갔습니다. 변장하고 가서 아마 모르셨겠지만요.”
“이런 영광이…….”
강서우는 몸이 얼어붙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머릿속이 그저 새하얗기만 했다.
“타운 식구가 된 걸 축하합니다. 혹시 저한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은 없나요?”
그 말에 강서우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는 전부터 유지웅을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봐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질문을 꺼냈다.
“임대료를 왜 이렇게 싸게 받으시는 거죠? 그거 받아서 남는 게 있긴 합니까?”
“…….”
유지웅은 잠시 말이 없었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 강서우는 혹시 실수를 한 건가 하고 불안해졌다.
잠시 후 유지웅이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점차 커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장사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질문이 날카로우시군요. 덕분에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아, 비웃은 건 아니니까 절대 오해하지 마시고요.”
“아, 알고 있습니다.”
“혹시 콩시티 해보신 적 있나요? 도시건설게임인데.”
“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임입니다. 게임할 시간이 자주 없어서 치트키 치고 했지만요.”
“치트키 치셨다니 이해가 빠르겠네요. 도시 인구 빨리 늘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나요?”
“그야 세금 낮추고 임대료도 낮추고…… 아!”
“바로 그겁니다.”
강서우는 곧바로 이해해버린 한편, 치트키라는 말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아야 인생을 치트키 치고 한다고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뭐, 도시를 빨리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고, 건강한 도시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요. 사실 우리 헬조선이 부동산이나 토지 소유 이용 가지고 갈등이 워낙 많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그런 문제가 우리 제니스 타운에 어떡하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답이 간단하더라고요. 제가 유일한 땅주인이 되어 저렴한 가격에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뭐 돈이야 다른 곳에서도 들어오니까, 임대 수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요.”
“…….”
“나중에 한 번 찾아봐요.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더 큰 자본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이거든요. 유튜브 제 채널에 들어가면 있어요. 구독이랑 좋아요 눌러주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유지웅이 돌아간 후, 우두커니 서 있던 강서우는 홀린 듯이 폰을 꺼내 유튜브에 들어갔다.
유지웅의 채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더 큰 자본으로 해결한다’는 검색어를 넣어 관련 동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목 좋은 위치를 남들보다 먼저 선점했다는 이유로 큰 불로소득을 벌지? 결국 부동산으로 인한 갈등은 이거야. 대체할 수없는 자원의 선점으로 인한 갈등. 토지가 왜 대체될 수 없는 자원이냐고? 너, 종로구 세종로1 주소지가 세상에 하나인지 둘인지 한 번 생각해봐.」
「그런 갈등이 애초에 안 나오게 만들려면 답은 하나지. 내가 유일무이한 땅주인이 되는 거. 그래서 도시 짓기 전에 땅부터 몽땅 사들인 거야.」
「제니스 타운을 관할하게 될 등기소장은 참 꿀보직이야. 땅주인이 오로지 나 하나뿐이니까 말이야. 안 그래?」
홀린 듯이 보고 난 강서우는 죽은 건물주를 떠올렸다.
이상했다.
인자하면서도 정 많고, 좋은 건물주라고 생각했던 그의 얼굴 위로 유지웅이 겹쳐 보였다.
곧바로 건물주 아들이 떠올랐고,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얼마 후 인테리어가 끝나고, 이제 입주를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려갈 준비를 완전히 끝낸 강서우는 건물주 아들에게 연락해 가게에서 보자고 했다.
좋아라 하며 가게로 온 건물주 아들은 텅 빈 내부 시설에 당황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집기며 테이블이며 다 어디 갔어? 내일 장사 안 해?”
“야이 새끼야. 말끝마다 반말하고 지랄이야. 내가 그렇게 순해 빠져 보여?”
강서우가 일어서서 험악하게 눈알을 부라리자 처음으로 건물주 아들이 긴장하는 낌새를 보였다.
“내가 세입자고 사장님한테 오래 신세 진 게 있어서 나 죽었소 엎드린 거지, 내가 술고기 장사만 10년을 넘게 했어. 성깔이고 배짱이고 없는 줄 알아, 앙?”
“다, 당신 왜 이래?”
“계약 기간 아직 조금 더 남았지만 가게 미리 뺀다. 그리고 임대보증금 있지? 그거 돌려줄 필요 없으니까 지금 이 순간부로 우리 얼굴 보지 말자. 지금 가게 내부외부 사진이고 동영상이고 다 찍어놨으니까 나중에 파손 물어내라느니 뭐니 귀찮은 짓거리 하지 말고.”
보증금이라고 해봐야 1천만 원 정도다.
이미 건물주한테 3억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과분한 돈을 유산으로 받은 강서우는 그 돈 가지고 더 이상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알았으면 꺼져.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 만약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그 면상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다.”
강서우는 그렇게 제니스 타운으로 이주했다.
장사는 무척 잘 되었다. 블로그나 인스타, SNS 리뷰 글을 본 타운 거주민들이 첫날부터 줄을 서서 몰려든 것이다.
개업 효과인 줄 알았지만, 2주일이 지나도 손님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 오히려 서울에 있을 때보다 매출이 잘 나왔다.
심지어 유지웅도 찾아왔다.
“축하합니다, 사장님. 여기 돼지고기 10인 분 주세요.”
‘새 건물주’의 첫 방문에 반색하며 직접 주문을 받으러 나온 강서우는 놀라서 반문했다.
“단체이십니까? 그렇다면 2인 테이블 말고 단체 자리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혼자 와서 10인분을 주문해놓고 정작 2인 테이블에 앉고 있었던 것이다.
“아뇨, 둘입니다. 이놈이랑 저 둘이죠.”
유지웅은 테이블 맞은편에 꼿꼿이 서 있는 수탉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강서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건 닭이 아닙니까?”
“네, 제 애완조입니다. 왜 그러시는지?”
“시, 십 인분이나 시키셔서…….”
“이놈이 얼마나 잘 먹는데요. 그 정도는 시작입니다.”
주변 손님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서우는 의아해서 돌아봤고, 다들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사장님, 그놈이 생긴 건 닭처럼 생겼어도 맹금류예요. 고기 엄청 좋아합니다.”
“우리 사장님 오늘 기절하실지도 모르겠네.”
아, 몰라. 그냥 생각 안 할래.
얼이 빠진 채 주문을 넣은 강서우 사장 이하 직원들은 그날 수탉 한 마리가 혼자서 30인 분의 돼지갈비를 먹는 것을 보고 기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