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시즌 헬조선편 순순히 금을 내놓으면 --
―금괴 2만 톤?
신수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타이핑 속도가 이전보다 갑자기 빨라진 듯한 느낌이다. 혹시 착각인가?
―네, 금괴 2만 톤을 바칠 테니, 부디 지혜를 빌려 주십시오. 신수여.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잘될 듯한 느낌이 든다.
‘신수는 금을 좋아하지. 그것도 매우 좋아하지.’
인간은 과거로부터 배운 것으로 현재를 쌓아 올리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트럼프는 결정체를 팔아가면서까지 금을 탐닉한 신수의 금 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다.
금 2만 톤을 조달할 방법도 이미 구상해두었다.
예전에 신수로부터 결정체를 사들일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오랜 부호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들이 가문의 힘을 동원하여 각출하면 금 2만 톤쯤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신수는 지구의 신비다. 전 세계의 많은 부호들이 어떻게든 신수와 한 번 접촉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
캠프데이비드에 신수가 나타나서 함께 만찬을 즐겼다는 사실은 이미 월가에서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있었다.
신수로부터 선택받은 미합중국 대통령이라는 사실 덕분에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의 거부들은 그가 신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고 싶어 했다.
신수와 만찬을 한 번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트럼프는 미 재계에서 다소 얼간이 취급 받던 것을 벗어던지고, 정보의 중추가 되었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신수에게 금을 제공하고 지혜를 빌린다, 이 기회를 마다할 부자는 없지.’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최대한 많은 것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 신수와의 친분을 쌓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로스차일드, 록펠러, 카네기 등 유수의 가문들은 트럼프가 손만 내밀면 좋다고나 하고 달려들 것이다.
―좋다. 1kg짜리 정량 기준으로 준비해라.
―예!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지 미국이 공식적으로 보유한 금의 양은 11,000톤 정도다.
물론 이것은 순수하게 미 정부가 보유한 금으로(연방은행이 실제로 사기업인 것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민간에서 보유한 금이나 타국의 금을 위탁보관해주는 것은 제외한 것이다.
하지만 록펠러, 로스차일드, 카네기 등 석유와 철도, 철강 등 오랜 전통 사업으로 많은 부를 쌓아올린 가문들은 그 이상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금들은 시장과 유리된 채 철저히 그들의 비밀금고에서 잠들고 있다.
말 그대로 그들 가문이 지닌 최후의 병기.
그럴 리는 없겠지만 미국이 멸망하고 세계가 대혼란에 빠지더라도 그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유일한 자산이자 보험.
게다가 그들은 금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금광을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수천 톤 이상의 금을 캐낼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굳이 국제 금시장의 질서를 교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마치고 트럼프는 참모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야기가 잘 이루어진 것에 기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각하, 다행입니다.”
“정말 잘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금 2만 톤을 마련하려면 그 친구들도 상당히 머리 깨나 아프겠습니다. 이미 5,000톤 이상을 지출한 바 있으니 말입니다.”
트럼프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였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판을 더 키워야지.”
달러나 주식과 달리, 순수한 금 2만 톤을 미국 부호들의 힘만으로 단기간에 충당하기는 버겁다.
트럼프는 판에 끼어들지 못했던, 하지만 누구보다 판에 끼어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호들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바로 아랍의 부호들 말이다.
트럼프는 먼저 금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신수와 처음 거래를 틀 때, 결정체 매입 대금으로 낼 금을 같이 모아준 친구들이었다.
미국의 대부호인 그들은 흔쾌히 트럼프의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여담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서 빠져 있다.
기업을 소유하고 있지만 기업가는 아니고, 또 자산의 대부분이 공개되어 있지 않은, 암막에 숨은 부자들이다.
재산으로만 보면 트럼프는 그들 그룹에 어울리지 못한다.
하지만 미 대통령이라는 직위, 그리고 신수와의 결정체 거래 덕분에 그들 그룹에서 중요한 인물로 대우받고 있었다.
트럼프는 가장 먼저 그들에게 아마조니온 사태,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위험성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트럼프가 신수 이야기를 해서 좋아라 하며 달려왔는데, 초반부터 이런 암울한 내용부터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트럼프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금 2만 톤이 필요한 거요.”
“금 2만 톤이라고 하셨습니까, 대통령?”
카네기 가문의 주인, 세인 아민 카네기가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음성만 들어보면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지만, 희미하게 떨리는 눈썹이 그가 느낀 동요를 말해준다.
금 2만 톤.
달러화로 환산하면 약 1조 달러에 달한다.
“이미 우리는 몇 차례 금을 각출한 적이 있어요. 그것만 해도 벌써 수천 톤은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2만 톤의 금을 확보하려고 하면…… 아무리 우리가 미국 경제를 주름잡는 부자라 해도 그건 무리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미 5,000톤의 금을 각출한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빠르게 결정체를 대량으로 입수하여 보유한 기업이나 연구소로 하여금 연구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할 수 있었다.
니트로와 휘버는 결정체 정제 기술과 발열기관을 개발했고, 이들은 그 연구에 상당한 지분이 있었다. 두 과학자가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뒤에서 댔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혹은 기관을 통해 우회적으로 댄 것이기에 두 과학자는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트럼프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 말했다.
“물론 여러분들은 적지 않은 투자를 했고, 그 투자의 결실을 보았소. 가장 큰 이익은 바로 금 5,000톤을 내고 시간을 샀다는 거요. 적어도 그간의 거래에서 손해 봤다고 여기는 분들은 아마 없을 거요.”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대통령.”
“그간의 거래는 매우 흡족했지요. 자랑스러운 우리 미국의 과학자들이 놀라운 연구 성과를 두 건이나 냈습니다.”
“그 후 제니스 컴퍼니로 이전해버린 것은 다소 아쉽지만…… 제니스 컴퍼니도 어차피 우리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이니.”
제니스 컴퍼니는 한국 정부보다 오히려 미 정부와 더욱 친밀하게 쿵짝이 맞는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신수는 금 2만 톤에 지혜를 빌려준다고 했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건 인정하겠소.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일까요?”
“식수 오염 현상이 전미에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대공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혼란이 몰려올 거요.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의 자산 가치는 과연 안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오?”
“…….”
대부호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위기는 늘 기회를 만든다.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위기를 활용하여 더 많은 자산을 늘린다. 때로는 자산을 늘리기 위해 일부러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제된 위기일 때 이야기다.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기 앞에서는 대부호들도 그저 무력하다. 오히려 가진 게 많기에 잃는 것도 더욱 많아진다.
“여러분들은 드러나지 않은 금 등의 순수 유동성 자산을 세계 곳곳에 숨겨두었소. 세계 붕괴 같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일 거요. 지구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유동 자산이란 그런 대위기에서도 든든한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
“하지만 그 보험을 진짜로 사용하게 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소?”
사람들은 사고를 대비해서 보험을 든다. 하지만 보험금을 받는 날이 없기를 바란다.
암 보험을 들면서 보험금을 타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급적 죽는 날까지 보험금을 받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므로.
마찬가지로, 대부호들은 세계 붕괴를 대비해서 금을 확보해두었지만, 그 취지에 부합하게 금을 사용하게 되는 날은 없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반드시 금 2만 톤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진 자산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렇소. 하지만 그저 금만 내놓고 물러나라는 이야기는 아니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거요. 금으로 신수와의 저녁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라고.”
“만찬?”
만찬이라는 말에 세인 아민 카네기의 눈빛이 빛났다. 다른 대부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가슴을 펴고 말했다.
“이미 신수의 승낙을 받았소. 금을 각출한 이들 전원과 함께 저녁 만찬을 할 것이며, 가장 많은 양의 금을 낸 다섯은 각자 따로 만찬을 할 것이라고. 그 자리에서 어떤 질문이든 자신이 대답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대답해준다고 했소.”
“오오!”
“하나 더 추가로, 가장 많은 금을 지불한 한 명은 다음 생일에 직접 찾아와 축하해준다고 했소. 꼭 생일이 아니라 사적 파티라도 상관없다고 했소.”
최상위 다섯은 신수와 독대 만찬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최상위 한 명은 따로 파티에 찾아와서 축하까지 해준다?
대부호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신수와 친분을 트는 것이다.
이미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룬 그들에게 있어, 미지의 존재인 신수는 최후의 소망이었다. 신수와 밥 한 번만 먹을 수 있다면 수백억 달러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염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지혜를 빌려주고, 같이 만찬을 즐길 수 있으며, 따로 파티까지 축하해주러 온다니.
“내겠소.”
“그렇다면 당연히 하겠소.”
“문제는 여기 모인 우리들 힘만으로는 2만 톤을 단시간 내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금광에서 캐낼 수 있는 금만 총동원해도 2만 톤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문제는 채굴해서 금괴로 정련하는 시간이다.
적어도 해는 넘겨야 될까 말까 할 것이다.
“우리들 힘만으로는 물론 불가능하오. 하지만 중동 부호들을 끌어들이는 건 어떻소?”
“오일 머니라니…….”
대부호들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특히 세인 아민 카네기의 표정이 가장 좋지 않았다.
중동은 미국의 견제 대상이자 동시에 이용 도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신수 앞에서 중동의 위상이 서는 것을 가장 바라지 않을 것이다.
헌데 그가 중동 부호들을 끌어들일 생각을 하다니?
“신수 앞에서 탐욕을 보이는 것은 무의미하오. 오히려 대담하고 이상적인 인격적 가치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오. 그래서 난 중동 친구들을 끼워 넣을 생각을 한 거요.”
“으음,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어차피 애초에 우리만으로 금 2만 톤을 조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