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족이다 1444화
[헬조선 편]
83장 듬직한 후손(2)
유지응은 패기 넘치게 장담했다.
하지만 그 장담을 실현하는 것은 오릇이 과학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유령을 집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니.”
“양심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게 할 것인지만이라도 가닥을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니오?”
“맞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라니. 이건 대체 어디 서부터 손을 대야……
과학자 넷의 탄식이 끊이지 않았 다.
가장 나이가 어린 최윤이 일단 지 휘봉을 잡았다.
“투자자 말씀입니다. 힘들겠지만 일단 해봅시다.”
“……투자자.”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마 법의 단어로군요.”
결국 네 과학자는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그들은 최윤의 가설부터 검토 했다.
“결정도가 한계치인 125,000에 달 하는 퍼를 결정체가 고인의 사망 당 시 특별한 작용을 일으켜서 인격과 기억을 물리적 정보로 재구성했다 라……
“가설 자체는 그럴 듯합니다. 그런 데 의장님은 125,000이라는 한계치 수치를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요?”
느닷없이 휘버가 의문을 제기했다.
니트로도 그 의문에 수긍이 간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아까 퍼플 결 정체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의장 님이었지.”
“블루 결정체보다 상위 등급의 결 정체는 우리도 이론적으로 추정하고 는 있지만,의장님은 마치 본 것처 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유령이 보라색 돌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말입니다.”
괴수와 결정체에 관한 유지웅의 끝 없이 해박한 지식은 참으로 신비할 정도였다.
과연 그는 어떻게 퍼플 결정체를 본 것처럼 알고 있었던 걸까.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의 끝은 어디 일까.
등등 그런 의문점을 나누는데,중 간에 가텐이 끼어들었다.
“자자,교수님들. 이러다가 제니스 타운에 있는 1경 8,750조 달러어치 의 결정체가 어디서 났는지까지 파 고들겠습니다.”
아,좋은 지적을 해줬다. 하마터면
삼천포로 끝도 없이 빠질 뻔했군. 역시 내 대학원생이야.”
“교수님,저도 교수라고요. 더 이상 대학원생이 아닙니다. 제 밑에 데리 고 있는 대학원생이 몇 명인데요.”
가렌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휘버가 작게 키득거렸다.
“결정도 125,000에 달하는 거대한 에너지가 정보화되었다면 분명히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겁니다. 아무리 전환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 소비 가 있었다 해도,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맞아요. 에너지가 전부 완전히 사
라졌다면 애초에 유령이 자기 형체 를 유지할 수도 없있겠죠.”
“가장 먼저 유령부터 조사해 봅시 다. 거기서 모든 걸 시작해야 합니 다.”
그렇게 유령을 조사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막대한 제작비 를 들여 만든 최첨단 장비가 있었 다.
최윤의 바퀴 달린 바주카포형 탐지 기.
휘버의 백팩에 이어진 쌍장총형 측 정기.
가렌의 거대 라이플형 센서.
그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장비들이 마침내 가동을 위해 나섰고,유지웅 과 정효주는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 느라 바빴다.
정효주가 물었다.
“교수님들,그런데 그 장비들은 전 부 어디에 쓰는 건가요? 설마 유령 찾아보겠다고 급히 만들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에이,애초에 그럴 시간도 없었습 니다. 원래 미시,거시영역에서 일어 나는 결정 에너지의 변화와 파동을 정밀하게 감지하기 위해 제작해 둔 겁니다.”
“와,엄청 비싸 보여요.”
“당연하죠. 이 장비 하나하나가 한 국의 이지스함 세종대왕함보다 더 비쌀 겁니다. 선박 건조비뿐만 아니 라 안에 들어가는 미사일 등 모든 무장 장비들까지 다 포함해도 못 이 깁니다.”
정효주가 소스라치게 놀라기 전에, 유지웅이 끼어들었다.
“개당 2조 원은 넘는다는 거군요. 만족했습니다. 역시 니트로 교수님 은 예산을 화려하게 태우는 법을 잘 알아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유령의 실체를 검증하는 작 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 다.
“이럴 수가! 아무것도 안 잡히다 니!”
모니터 그래프를 몇 번이나 들여다 보면서,네 과학자들은 혀를 내둘렀 다.
개당 2조 원이 넘어가는 장비를 3 개나 사용해서 투시했음에도 불구하 고,이상 반응은 전혀 잡히지 않았 던 것이다.
‘수치 반응만 보면 순수한 홀로그
램에 가깝습니다. 내부에 어떤 정보 나 에너지도 존재하지 않아요.”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에너지 가 없는데 어떻게 정보와 형체를 유 지할 수 있지?”
네 과학자들은 고민에 빠졌고,유 지응은 정효주를 슬그머니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간만에 매 사냥이나 하러 갈까? 참치 어때?”
“좋지. 그러자.”
“공돌이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는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다고 하더 라.”
“그래. 브라우니는?”
“지금 부르면 금방 오겠지.”
유지웅은 조상 유령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했다.
“조상님,저는 잠시 자리 좀 비우 겠습니다. 금방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내가 집에 갈 수 있나?”
“여기 이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뛰 어난 네 명의 천재 과학자들입니다. 이분들이 모이면 못 할 일이 없어 요.”
반대로 이분들이 못 하면 누구도
못 한다는 거군……
“뭐,그렇죠……. 하지만 너무 실망 하지 마세요. 저분들은 방법을 찾을 겁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그렇게 유지웅은 정효주와 함께 요 트를 타고 바다로 떠났다.
오랜만에 브라우니를 날려서 참치 사냥을 즐겼다.
“박사님들도 드려야 하니까 넉넉하 게 여섯 마리 정도 잡아가자.”
“한 마리만 잡아도 다 못 먹을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요즘 세상은 1인 1 참치 시대라고. 정 남으면 집에 가 져 가셔서 두고두고 먹으면 되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목적이 었기에,유지웅은 천천히 참치 사냥 에 나섰다.
최고로 맛있어 보이는 참치를 선별 하는 데 시간을 크게 할애한 것이 다.
덕분에 참치 사냥은 도합 세 시간 이 걸렸고,유지웅은 능숙하게 피를 빼고 뱃속에 얼음을 채워 넣어 참치 를 식혔다.
그리고 군함도로 다시 돌아왔다.
“자자,싱싱한 참치가 왔습니다. 금 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다들 맛 좋은 참치 한 접시 드시죠?”
유지웅은 당연히 그들이 기뻐할 것 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네 쌍의 눈동자는 묘한 퀭함에 물들어 있었 다.
정효주가 당황해서 나섰다.
“저기,박사님들? 왜 그러시죠?”
“뭔가를 찾아내신 거야! 그렇죠?”
유지웅이 눈을 빛내며 앞으로 성큼
나섰고,최윤이 이들을 대표로 설명 을 꺼냈다.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잘못 생각한 거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것 말입 니다!”
최윤은 패기 넘치게 외치며 손가락 으로 유령을 가리켰고,유지웅은 질 겁 했다.
“아니,조상님에게 손가락질이라니 요!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 죄송합니다. 모욕하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최윤이 몸을 수그리자 휘버가 변호 하듯이 나섰다.
“최 소장님은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모습이 진짜 유령이 아니라고 말하 고 싶은 겁니다.”
“뭐라고요? 그럼 지금 저 조상님이 허깨비라는 건가요?”
“네,그렇습니다.”
최윤이 다시 나서서 설명을 지속했 다.
“퍼를 결정체가 인격과 기억을 정 보화해서 유령으로 재구성했다고 가 정했을 때,본체는 따로 존재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모습은 본체에
서 출력된 영상 결과물에 불과합니 다.”
“아,그렇군요. 완벽하게 이해했습 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잖아.”
“아니야,완벽하게 이해했어.”
유지웅은 새삼스럽다는 듯이 눈을 돌려 유령을 지그시 바라봤다.
유령이 잔뜩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군. 나 는 지금 여기 있는데,지금 내가 허 깨비라고?”
“네, 그래요. 어쩐지 자꾸 밑도 끝 도 없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본체는 따 로 있었군요,”
“지금부터 본체를 찾으려고 합니 다.”
“무한 노가다 작업이 되겠네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 도 가지 않는 유령의 본신.
아무래도 네 과학자 같은 고급 인 력한테 그런 길고 단순한 작업을 시 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대거 데려와서 하자니,유령에 관한 보안을 유지하
기 어렵다.
“할 수 없지. 브라우니.”
- 네??
“네가 나서줘야겠다.”
-••••••네.
“어허,목소리가 작다. 이 녀석,지 금 반항하는 거야?”
“아,아닙니다!”
“박사님들 같은 고급 인력에게 그 런 무리한 단순 노가다를 시킬 수는 없잖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네가 힘을 내봐.”
신수 정도면 충분한 최고급 인력
아닌가요?
브라우니는 이 말을 그저 속으로만 삼켰다.
* * *
브라우니는 3개의 수색 장비를 들 고 섬 전체를 이 잡듯이 샅샅이 뒤 졌다.
섬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물을 수색 했으며,채굴을 위해 파인 갱도들도 전부 파헤쳐가면서 수색 작업을 계 속했다.
그러는 동안 군함도 공터에는 브라 우니가 찾아낸 해골들이 수도 없이 쌓여만 갔다.
심지어 열 살도 안 되는 어린아이 의 것으로 보이는 해골도 존재했다.
“아니,이렇게 많은 백골들이 있었 는데 미쓰비시는 전쟁 이후에도 수 십 년 동안 전부 감춘 거야?”
“전쟁 당시 폐쇄 갱도 같은 곳에 작정하고 묻어버렸으니 그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겠지요. 전범 기업이 굳이 자기들의 치부를 들춰낼 리도 없고요.”
모두 찍어야겠어요.
유지웅은 이를 바드득 갈며 브라우 니가 찾아낸 백골들을 남김없이 사 진과 영상에 담았다.
의외로 유령은 덤덤하게 백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이자 이웃,친구들의 파편일지도 모를 그것들을 무심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담대한 모습이 오히려 형언하 기 힘든 깊은 고통이 느껴지게 만들 었다.
정효주가 조심스럽게 유령한테 질 문했다.
‘좀 어때요? 괜찮아요?”
“백골들을 보고 있으니 실감이 나. 정말 67년이 넘게 홀렸다는 게.”
“그렇게 오래 살아온 기억이 없는 데,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늙어 버렸군.”
정효주는 불현듯 가슴이 아파왔다.
유령이 사망할 당시에 기억하는 자 신의 나이가 18살이라고 했던가.
검댕이 많이 옅어진 얼굴은 이제 더 이상 40대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W대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30대로는 봐줄 수 있는 얼 굴이었다.
얼마나 큰 풍파에 시달렸으면 저렇 게 찌들었을까.
그러는 사이에도 섬 이곳저곳에 감 춰져 있던 백골들의 무덤은 쌓이고 있었다.
-섬은 다 뒤졌습니다. 아무것도 없 었어요.
“좋아,그럼 이제 해저를 수색한 다.”
一네? 네…….
명령이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
브라우니는 해저도 샅샅이 뒤졌다.
어느덧 날짜가 바뀌었지만,여전히 브라우니는 특별한 물체를 찾아내지 는 못했다.
네 과학자들도 이게 어떻게 된 일 인지 수군거리며 의논에 들어갔다.
-주인님,이상해요, 분명히 섬 어 딘가에서 은은한 기운이 느껴지는 데••••••.
“큰 기운이야?”
-아뇨,그냥 조그마합니다.
“하긴,넌 화이트니까 퍼플의 힘
따위야 그렇게 느껴져야 정상이지. 그럼 섬 어딘가에 있긴 있다는 건 데……
-그럼 전 잠시 에그 농장에 다녀 와도 될까요? 부하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에그파우 더 수출 사업이 지금 한창 궤도에 오른 터라 물량 펑크 나면 큰일나 요.
“이 녀석,벌써 사업가가 다 됐네. 그래,어서 다녀와라.”
-넵!
브라우니는 날개를 펄럭이며 수직 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섬이 작게 보일 때까지 높이 날아 오른 브라우니는 한국으로 머리 방 향을 틀었다.
잠시 군함도를 내려다본 브라우니 는 자그마하게 보이는 섬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불현듯 탄성 을 내질렀다.
-그랬군! 그랬어!
보라우니는 다시 쓴살처럼 곤두박 질쳐서 섬에 내려앉았고,유지웅은 의아해서 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주인님! 찾았습니다!
“뭐를 찾아? 아,설마?”
-왜 아무리 뒤져도 못 찾았는지 알아냈어요! 섬 전체가 유령의 본신 이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