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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형 대마법사-43화 (43/318)

제43화

어떻게 김완호를 찍어누를까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 두긴 했지만, 이영원은 지금 김완호의 행동을 보고 준비해 둔 방안이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 네 방식대로 처리해 주마.'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 이영원 때문에 김완호가 살짝 당황했다.

'이 새끼… 대체 무슨…….'

"이거 마시면, 선배도 제가 주는 술잔 받을 겁니까? 선배니까 당연히 받겠죠?"

꿈틀.

명백한 도전 행위.

김완호는 비틀어지는 입으로 대답했다.

"오냐. 네가 주는 잔도 받으마. 그 전에, 이거부터 원샷 때려."

"오, 오빠……!"

김미진, 류혜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영원을 불렀다.

이영원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저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건 미친 짓이었다. 지나친 신고식으로 사망에 이른 사건은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던가.

이영원과 가까운 조원들은 이영원이 걱정되었다.

"안 돼. 오빠. 양이 너무 많아……!"

"완호 선배님… 이러지 마세요……!"

하지만 이영원은 만류하는 친구들을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을 보여줘 안심시킨 뒤, 김완호에게 말했다.

"약속한 겁니다?"

꿈틀.

김완호는 도발적인 이영원의 행태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설마 이걸 다 마시겠어? 싶은 표정이다.

"그래, 이 새끼야. 이거나 다 처마시고 말해."

이영원이 씩 웃는다.

두 손으로 들어도 묵직한 대야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든 뒤 그것을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꺄악!"

"오, 오빠아아!"

"형!"

꿀꺽- 꿀꺽-

하지만 이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야에 담긴 술을 쭈욱 들이켰다.

김완호는 당황스러웠다.

'설마 진짜 마시겠다고 할 줄이야. 안 마시는 걸 빌미로 까려고 했을 뿐인데…….'

이영원이 생각보다 얼빵한 놈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영원이 대야를 받아 마시기 시작했으니 상황의 주도권은 다시 본인에게 돌아왔다.

'큭큭. 너 쓰러지면 1학년들은 X 된 거다.'

팔짱을 끼고 이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꿀꺽- 꿀꺽-

"……."

"……."

이상했다.

원래 몇 모금 마시다가 버거워서 대야를 내려놓곤 비틀거려야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대야는 점점 수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마, 마, 말도 안 돼……!"

"어, 어어어?!"

그 모습에 모두가 동공을 크게 한 채로 기함했다.

주르르-

마지막 남았던 방울이 바닥에 살짝 흘러내리고, 이영원이 대야를 내려놓았다.

"이제 선배 차롑니다."

"…거, 거, 거짓말……."

김완호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못해도 1리터는 될 양이었다.

물이라도 이렇게는 마시기 힘들다.

그러니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본 일이니 부정할 수 없다.

까득-!

그때, 이영원이 태연스럽게 소주병을 까기 시작했다.

콸~ 콸~

그리고 반대로 대야에 부어지는 술들.

이영원은 대야에 술이 적당히 차자 김완호에게 내밀었다.

"원샷 하세요. 그러면 선배로 인정해 드리죠. 만일, 원샷 못 하면 당신은 우리의 선배가 아닙니다. 두 번 다신 1학년들 앞에 나타날 생각하지 마세요."

김완호에게 절체절명의 순간이 왔다.

받는 건 미친 짓.

하지만 받지 않으면 선배로서 체면은 완전히 구기는 것이다.

'X, X팔. 저 새끼가 했는데, 내가 못 할까?'

그렇게 김완호는 자충수를 두었다.

*     *      *

찰싹- 찰싹-

"어이, 선배님!"

"……."

이영원이 뺨을 수차례 쳐도 김완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고작 몇 모금 마시고 이게 뭐람?"

이영원은 축 늘어진 김완호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갚을게요… 제발요. 진짜로 갚을……."

김완호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애원하는 표정으로 잠꼬대하듯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악몽을 꾸는 모양이었다.

"푸흐……."

그 모습에 뒤에 있던 미진이가 웃음 소리를 냈다.

"하, 너무 웃겨 진짜."

"하, 하하……."

뒤에서 이영원과 김완호의 승부를 지켜보던 1학년들이 하나둘 경직되었던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김완호가 금방 깨어나서 또 행패를 부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영원이 김완호를 완벽히 패배시킨 모습이 그저 통쾌했다.

"혀, 형 괜찮아요?"

이지용의 물음에 이영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 내가 술이 좀 쎈 체질이거든."

이지용을 시작으로 동기들이 하나둘 이영원에게 다가간다.

"형……."

"오빠……."

걱정 어린 그들의 눈에 이영원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앞으로 이 사람이 너희 괴롭힐 일 없을 거야. 이제 들어가자. 뒤처리는 나한테 맡기고, 너흰 들어가서 편하게 놀면 돼."

1학년들은 이영원의 말이 너무나 듬직하게 들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영원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공부 잘하고 연예인급 외모일 뿐만 아니라, 교수, 선배와도 잘 어울리고 물리학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심지어 동기인 동생들도 너무 잘 챙기는.

그야말로 사기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오빠. 근데 어떻게 그렇게 술이 센 거예요?! 나 진짜 놀랐어요! 난 진짜 잘못될 줄 알고 몰래 119도 눌러놨다고요!"

"저 형처럼 터프한 사람 진짜 처음 봤어요!"

"하하… 그랬어?"

이영원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1학년들을 펜션으로 들여보냈다.

'얘들아, 혹시라도 나 따라 하지 마. 난 마법사라서 가능한 거니까…….'

이영원은 수능 이후 몇 번의 술자리를 하며 깨달았다.

마나를 운기하면 평소보다 술에 덜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마나 분해 구슬로 훈련하며 마나 운기를 더 잘할 수 있게 된 이후론, 술을 마시는 즉시 해독시켜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즉, 이영원은 방금 소맥이 아니라 그냥 보리맛 물을 마신 것이었다.

하지만 방금 상황을 지켜본 동기들은 이런 사정을 모르니 그저 이영원이 대단하게 보일 뿐이었다.

한편, 이영원에게 적대적이었던 과대 송영구의 조원들도 이번 일로 생각을 조금 달리했다.

"저 형… 생각보다 괜찮은 형일지도……?"

"흑흑… 진짜 영원이 형 아니었으면 악몽 같은 MT였을 텐데……!"

아까 가장 앞자리에 서 있다가 제일 심하게 털린 송영구와 고종민, 김우성은 이영원에 대해 호감이 생겼는지 이영원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영원이 나서주지 않았으면 더 험한 꼴을 봤을 것이고, 이영원이 나서준 덕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조 채신용만큼은 아직 아니었다.

'쳇… 이번 일로 저 형 인기는 더 치솟겠군… 재수 없어!'

방금 일이 고맙긴 했지만, 1학년 동기들이 이영원을 더욱더 떠받드는 모습을 보자 질투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완호가 없는 MT는 다시 맨 처음 즐거웠던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술 게임에서 연달아 지는 바람에 정신을 잃고 곯아떨어지는 애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새벽이 되자 은근히 자리를 떠서 바닷가에서 단둘이 밀회를 갖는 남여도 있었다.

설레는 대학 1학년 MT다운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은 새벽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고, 해가 뜰 무렵에야 모두 잠들었다.

"후후… 모두 고생들 했습니다."

이영원은 거기서 잠든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리프레시 리커버리!"

노느라 지친 사람들은 모두 단잠에 빠져서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들은 퇴실 시간에 맞춰 숙취 없는 기상을 할 수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     *      *

"학생! 학생!"

"크흣……!"

찌이이이잉!

머리가 곧 쪼개질 듯 엄청나게 당긴다.

"학생! 정신 차려봐 좀!"

"으, 으윽……."

"이제 청소해야 된다니까? 얼른 좀 일어나! 다음 손님 있단 말이야!"

"……."

김완호는 실눈으로 손목시계를 봤다.

"X, X발……."

어제 밤 10시쯤 와서 애들을 잡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거의 14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학생! 친구들 다 갔어! 이제 학생도 가야지!"

"다, 다 갔다고요?"

김완호는 숙취로 깨질 거 같은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MT의 흔적조차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이, 이, 이게……."

그때 주인 아줌마가 쪽지를 하나 준다.

"이거 받아! 어떤 학생이 쪽지 남기고 갔어!"

<자차로 오셨죠? 굳이 깨울 필요 없을 거 같아서 먼저 갑니다. 잘 쉬고 오세요. 아, 어제 일 기억 못 한다고 잡아떼시면 안 됩니다? -이영원>

그 쪽지에 모든 것이 생각났다.

어제 이영원과 1학년들을 족치고 있었고, 이영원에겐 술을 대야로 먹였는데 그 괴물 같은 놈이 그걸 다 마시고 오히려 대야를 건넸던 것까지.

그리고 본인은 그가 건넨 대야의 술을 반도 채 못 마시고 쓰러졌다. 모든 1학년의 눈앞에서.

"X, X팔……."

쪽지는 그의 손아귀에서 구겨졌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펜션을 뛰쳐 나가 차로 들어갔다.

"아이고! 학생! 잔디를 구두로 밟으면 어떡해! 나 원!"

뒤에서 주인 아줌마의 성질 부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김완호는 그런 걸 신경 쓸 재간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여길 떠나 어디라도 숨고 싶은 마음뿐.

*     *      *

<물리학과 MT 썰 푼다 ㅋㅋㅋ>

한동안 이런 제목의 글이 에브리원타임 어플에 돌았다.

글은 화제가 되었고 나는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요지는 이렇다.

똥군기를 잡으려던 선배를 내가 통쾌하게 박살 냈다는 것.

그 외, 내가 교수님, 선배님들과도 잘 어울리고 동생들도 챙길 줄 안다는 이야기도 미담으로 댓글에 주르륵 달렸다.

아무리 익명의 내용이라지만 1학년이 쓴 게 명백하기 때문에 김완호가 알아볼 텐데, 애들은 더 이상 김완호를 의식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좋았나? 하하."

나는 어플의 글과 댓글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김완호는 더 이상 1학년 앞에서 나대지 못할 것이다.

또 나대면 다시 박살을 내면 그만이고.

나는 이만 휴대폰을 덮었다.

지금 나는 강의 하나를 듣고서 카페에 앉아 다음 강의 전까지 뭔가를 구상하는 중이다.

"음, 대충 커리큘럼은 이렇게 하고. 여기서 뭘 더 할까……."

슥- 슥-

내 메모장이 어떤 내용들로 죽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오빠아!"

이 목소리는 홍예림이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홍예림이 활짝 편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어, 예림이구나."

"오빠, 혼자 뭐 하는 거야? 커피 마실 거면 나 부르지!"

"아, 그냥 잠깐 강의 사이에 시간이 남아서."

예림이는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한지 내 메모장을 슥 훑어봤다.

"어, 설마!"

그러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오빠, 과외 하기로 마음 먹은 거야?!"

"하하……."

그렇다.

내가 메모장에 쓰고 있는 건 과외할 때 쓸 커리큘럼이었다.

여타 과외와는 다른, 나만의 특별한 방식의 과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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