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형 대마법사-61화 (61/318)

제61화

"아이 참.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된다니까……."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니 역시 난감하다.

<입금 : 10,000,000원.>

이건 다음 달 과외비가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보너스 상여금이다.

다인이 엄마는 돈을 보내신 후, 통화로 다인이를 밖에 나가게 해준 것과 옷 값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거듭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이렇게 되돌려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며 답례를 한사코 거절했지만, 다인이 엄마는 성화를 부리며 부디 받아달라고 사정하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다인이를 대학 갈 때까지 맡아달라는 당부도 함께 하셨고.

"이렇게 몇 배로 갚으시면… 이거 부담스러워서 다인이랑 또 바깥에 나갈 수 있으려나."

다인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일종의 수업이었다.

사회 적응 수업.

그런데 앞으로 수업 중 지출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몇 배로 보답해 주시면 어쩌나, 부담감에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어쨌든, 첫 단추 꿰는 데 성공이야. 다인이도 꽤 만족스러워하는 거 같고.'

유다인에게 공부를 가르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단지 방향만 지시해 주면 다인이는 알아서 잘할 녀석.

그런데 알아서 잘한다 해도, 대학이든 연구실이든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공부만 잘하고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면 다인이의 능력을 꽃피울 수 없다.

그렇기에 바깥에 데리고 나가 사회에 적응시키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이제 슬슬 사람들도 만나게 해줘야겠지.'

첫 번째 스텝이 '일단 밖에 나가기'였다면,

두 번째 스텝은 '사람들과 어울리기'이다.

가족과 가정부 아줌마, 그리고 소꿉친구인 김도진, 박민영을 제외하면 다인이가 관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깥에 나가서도 잘 모르는 사람과 필요한 대화 정돈 나누고, 함께 일하고 연구하게 될 사람들과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성은 길러줘야 한다.

그 단계를 어떻게 시작할지는 이미 머릿속에 생각해 두고 있었다.

'축제 때 학교에 초대하는 거야.'

대한제는 외부인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한대는 유다인이 올지도 모르는 학교.

거기서 선배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과 인사 정도 해두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일 테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계획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무엇보다 돈도 돈이지만, 다인이의 첫 외출에 그렇게 감격하고 나에게 고마워하던 다인이 부모님이 생각났다.

'보람… 이것도 큰 보람이다.'

나의 영달과 성취만 보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

또, 누군가와 행복의 순간을 함께하는 것.

그것만으로 과외의 대가는 충분히 보답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     *      *

"허억……!"

"어, 어떻게……?!"

"……."

우리는 거대한 조형물 앞에서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성그룹 미래기술연구센터장이자, 최고책임연구원이신 임성재 님이 우리 앞에서 말했다.

"어떤가요. 설계대로 잘 나왔죠?"

"…네. 정말 완벽해요."

"와… 이거 진짜 기성품 같아. 대박이다."

"이게 진짜 그때 그 3D프린터로 뽑은 게 맞아……?"

각각 7미터, 5미터, 2미터에 이르는 세 가지 높이의 미끄럼틀이 차례대로 우리 앞에 세워져 있었다.

붉은색 칠에, FRP(표면에 유리섬유를 입히는 작업)까지 되어 매끄러운 유광 붉은색이 되었다.

'저 미끄럼틀에 물만 흐르게 하면 사이클로이드 미끄럼틀은 최종 완성이다.'

맨들맨들한 표면을 만져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상당히 훌륭하게 마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후가공은 어떻게……?"

"후후, 이 연구센터에서 이 정도 마감은 일도 아닙니다. 가까운 데 다양한 설비를 갖춘 공장도 보유하고 있고요."

사실, 내가 어떻게 했냐고 물은 것은 오성그룹의 능력을 몰라서 물은 게 아니다.

나는 설계만 넘겼을 뿐, 이게 무엇이고 완성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센터에선 내 설계만 보고 이것의 완성이 어떤 건지 간파해서 후가공과 조립까지 해준 것이다.

완벽한 완성물이었다.

임성재 센터장이 내게 되물었다.

"이걸 학생이 설계했다고 했죠?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활용한 미끄럼틀."

"예. 그렇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곡선 위에 있지만, 위치가 서로 다른 세 미끄럼틀이라… 어느 미끄럼틀을 누가 타든 바닥에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겠지요."

역시, 잘 알고 계신다.

"혹시, 제가 주제넘게 완성시킨 거라면 미안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걸 보면 궁금한 걸 참을 수 없어서요."

"아닙니다. 이렇게 해주셔서 저희야 너무 감사하죠."

제작 비용이야 어차피 지출될 것이었으니 이득이라고 볼 것 없지만, 단축된 시간은 이득이다.

3D프린터에서 나온 부품을 후가공하고 조립하는 것도 다 시간이 드는 일이다.

'나야 나쁠 거 없지. 이거 제작할 시간에 내 공부에 더 몰입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호기심에 이렇게까지 해주신 걸까?

나는 우리가 받는 호의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오성그룹이 뭐 하러 대학생들 축제 준비에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하며 나서준단 말인가. 아무리 지용이와 잘 아는 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친절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 임성재 센터장님이 말했다.

"우리 오성그룹이 보유한 네버랜드 워터파크에 이 미끄럼틀을 놓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

네버랜드 워터파크.

오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가 소유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원지이다.

"물론 이것보다 규모가 더 커지겠지만, 설치하면 어떨까 진지하게 검토 중이에요. 물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공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

"그래서 말인데, 이영원 학생."

임성재 센터장님이 날 진지하게 쳐다봤다.

"이 미끄럼틀. 혹시 특허 내볼 생각 없어요?"

"……!"

"어떤가요? 원하시면 당장에라도 오성그룹 변리사에게 부탁해서 진행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나는 흔들리는 동공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몰라 잠깐 멍해졌다.

*     *      *

잠시 후, 우리 넷은 연구센터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지용아. 그러지 말고 받아라."

"아녜요. 형 정말로……."

이지용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래도. 어쨌든 너희 아버지가 비용을 대주시거나 다른 방식으로 보답하셨을 거 아냐. 오성그룹에서 공짜로 그냥 해줬을 리 없고."

학생회에서 대한제를 준비하라고 과마다 예산을 배정해 준다. 그리고 우리 과에 배정된 예산은 지금 축제 준비를 떠맡은 내가 관리하고 있다.

나는 3D프린터 이용료와 후가공 비용을 오성그룹에 지불하려고 했는데, 연구센터에선 이미 계산은 이지용 쪽에서 끝냈다고 했다.

그래서 이지용에게 과 예산을 주려고 하는데 이지용은 계속 손사래만 치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 그래도 경우가 아니지. 이런 서비스를 공짜로 받는 게 어딨어."

"형, 진짜 괜찮아요. 연구센터에서 그냥 호의로 해주신 거예요. 사실 저희도 아무 비용 안 냈요. 진짜예요."

"아무리 그래도……."

곤란했다.

이렇게 큰 비용을 지용이의 지인 찬스로 날로 먹듯 세이브한다는 사실이.

'심지어 완성품을 자기네 용달로 학교에 가져다주시겠다고까지…….'

과대 송영구와 채신용도 이지용에게 진짜 괜찮냐고 수차례 되물었지만, 이지용은 진짜 괜찮다고 사양했다.

"참… 난감하네. 아무튼, 너 혹시라도 언제든 생각 바뀌면 말해. 예산은 딴데 안 쓰고 지켜두고 있을 테니까."

내 말에 이지용이 헤프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형, 전 진짜 괜찮아요. 이렇게 학교 생활이 재미있을 줄은 기대조차 못 했거든요. …형이랑, 또 좋은 동기들이랑 같이 학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충분한 보답이에요."

"……."

"……."

우린 이지용의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어서 침묵했다.

순수한 건지, 아니면 바보 같은 건지.

알 수 없는 이지용의 말에 그냥 멋쩍어서 커피만 홀짝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정장 차림의 몇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가운데 선 사람이 우리 쪽에 정중히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네버랜드 기술사업부 부장 김종수라고 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

아까, 센터장님의 제안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치 오늘 미팅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오성그룹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함께 온 실무진들과 변리사까지 미리 준비된 것처럼 나타났다.

모두 나의 사이클로이드 미끄럼틀 하나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     *      *

김완호는 강의실에 앉아 노닥거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그가 하루 중 기다리는 건 오직 스포츠 경기가 있는 시간뿐.

'오늘은 제대로 한몫 잡아야 해…….'

한 사이트에서만 계속 돈을 벌려고 하면 나중에 추방당하거나 돈 인출이 막힌 채로 운영진이 날라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그가 들락거리는 사이트만 십수 군데나 된다.

-부재중전화 13건.

오늘도 사채업자들의 전화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빌린 돈을 누가 안 갚는다고 했나?

오늘 경기만 지나고 나면 다 갚을 수 있다.

돈만 주면 조용해지는 사채업자들이야, 잠깐 무시하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그때 학생회 지원비를 내가 관리한다고 했었어야 했는데.'

김완호는 며칠 전, 과 전체 회의 때 있었던 일을 후회했다.

바쁜 3, 4학년들이야 어차피 축제 준비에 관심 없고, 주로 1, 2학년들이 주축이 된다.

그리고 2학년 중 최고책임자가 선정되는 게 일반.

하지만 그때 그 자리에서 이영원과 설전이 붙었고, 이영원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자 당황한 나머지 분위기를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축제 따위야 이영원 그 새끼 말대로 하라고 하고, 예산 관리라도 내가 가져왔어야 했어!'

만약 그랬다면 오늘 경기에 걸 수 있는 액수가 커졌을 것이고, 더 큰 금액을 남겨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원래 돈줄은 자기가 잡고 밑에 애들은 몸으로 떼우게 하는 게 사회생활의 정석 아니겠는가.

'젠장… 그 자식이 너무 세게 나오는 바람에.'

1학년이 축제 준비를 전담하겠다며 예산권까지 챙겨간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영원의 술책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1학년짜리에서 그런 노회함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보통 상대는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어디 한번 제대로 걸려 봐라 진짜… 축제 엉망이기만 하면 그땐 진짜 안 봐준다."

이영원이 진짜 잘 준비했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하는 일에 책 잡을 건더기 하나 안 나오겠는가?

어떤 결과물이든, 내오는 순간 가서 박살 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웅성웅성.

강의실 주변이 시끄러웠다.

"어, 저거 뭐야?"

"미끄럼틀? 근데 모양이 좀 이상한데? 저거 사람이 탈 수 있는 건가?"

"근데 저걸 왜 오성그룹에서 가져오는 거야?"

오성그룹 소속을 나타내는 커다란 트럭들이 붉은색 미끄럼틀들을 싣고 학과 앞에 주차하고 있었다.

"글쎄. 일단 한번 나가보자."

와르르.

자연과학대 학생들이 대다수 몰려 나갔다.

김완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마… 저거, 저 미끄럼틀……!'

저 모양을 모를 리 없다.

사이클로이드 곡선 미끄럼틀.

분명 이영원이 회의 때 말했던 물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