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오후 4시에 열리는 메카닉코리아의 퍼레이드 총평회에 초대받았다.
동아리 일원이 아닌 사람이 총평회에 초대되는 경우는 그쪽 업계에서 권위 있는 사람이 아닌 한 거의 없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좀 특별했다.
퍼레이드가 중단된 긴급 상황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아마, 쓸 만한 인재라면 붙잡고 싶어서 그런 거 같지만.'
처음엔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이한수는 끝까지 설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담 주는 자리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로봇 보면서 피드백 나누는 자리야. 옆에서 구경하면서 듣고만 있어도 돼. 누가 너한테 인사를 시키거나 말을 시킬 일도 없을 거고.
수업 시작 시간까지 대화할 시간이 30분밖에 없었지만, 이한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기 의사를 확실하게 어필했다.
과연 퍼레이드를 총괄할 만한 재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락.
나는 수업 시간 도중, 그가 건네고 간 동아리 소개 명함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어디 소속되면 좋을 거 같긴 해.'
졸업해서 업계 현장 실무를 뛰는 동문들부터, 교수 인맥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의 연구 노하우들을 배울 수도 있다.
전에 홍예림의 동아리방에 놀러 갔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괜찮은 동아리 하나 정도는 시작해도 실 될 게 없다. 이곳은 대한대니까.
'뭐… 잠깐 시간 내서 구경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그렇게 와보라고 하니 한번 가보긴 해야겠다.
어떤 동아리를 선택하기 전에, 다양한 동아리를 탐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테니까.
* * *
"아아… 3등이라니… 젠자아앙."
두 번째 수업을 마치고, 아직도 축 늘어져 있는 동기들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3등이 어디야, 3등이."
"그건 그렇지만……."
원래 아예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면 아쉬움도 없지만, 넘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되었을 때의 아쉬움은 크다.
"그래도 전체 회식비 지원이라도 받았으니 좋게 생각해. 하하."
나는 송영구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 주었다.
인기 1위 학과는 실용음악과.
일반인 음악 경연 콘텐츠와 학생들의 공연으로 언제나 뜨거운 열기를 보여준 학과이다.
2위는 패션과.
패션쇼를 통해 상품도 많이 뿌렸고, 보세 옷 무료 나눔과 벼룩시장 운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대망의 3위가 바로 물리학과.
'난 너무 만족스럽다구.'
역대 내로라하는 인기 학과들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아까 이한수도 헤어지기 전까지 말도 안 된다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정도였다.
"더 이상 옛날 물리학과가 아니라구."
나는 씩 웃으며 보무도 당차게 강의실을 나갔다.
잠시 후.
금방 로봇공학과 뒤편에 있는 거대 컨테이너 건축물 앞에 도착했다.
와글와글.
컨테이너 시설 안은 굉장히 넓었고, 거기에는 이번 퍼레이드에 동원된 모든 로봇이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다니며 로봇을 둘러보는 많은 사람들. 모두 동아리 일원이거나 초대받은 사람들인 듯했다.
내가 입구에서 분위기를 느끼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쯤,
"이야~ 잘 왔어! 어서 와!"
이한수가 다가왔다.
그 큰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시선을 돌린다.
"어라? 저 사람은……?"
"저 사람이 여긴 어떻게……?"
총평회라는 장소의 느낌치고는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했다.
이한수는 잠깐 자기 때문에 집중된 시선들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이번 퍼레이드에 쓰인 로봇들에 대해 개개인의 피드백을 수집하는 중이야. 대충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로 총평회가 진행되지."
한데 모여 한 사람씩 발언하는 총평회가 아니라, 자유롭게 로봇을 점검하며 인터넷 클라우드에 피드백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상당히 효율적이긴 하네.'
방식의 장단점은 있지만, 적어도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도 꽤 괜찮아 보였다.
이한수가 나에게 다른 사람 시선이나 누가 말이라도 시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거 같아? 우리 동아리?"
로봇이 어떠냐는 질문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대학생 수준은 확실히 뛰어넘은 것 같아."
"후후. 물론이지. 전국 어디에도 이 정도 저력을 가진 학교 동아리는 없어. 물론 인기 학과에 선정되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지만……."
세계 각지에서 로봇공학 분야를 이끌어가는 졸업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예산도 풍부하고, 기업들로부터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사용을 후원받는다.
또한, 로봇공학은 국가에서 양성하는 사업이기도 해서 국비 지원도 넉넉하다.
거기에 최고의 브레인들이 한마음으로 모였으니, 이렇게 대단할 수밖에.
"다시 소개할게. 이게 그때 네가 봐줬던 로봇, DR-HS1이야. 관세 구역 내의 화물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지. 물론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한수가 처음으로 이끌어간 곳 앞에는 축제 당시 기사단장처럼 굉장한 분위기를 풍기던 거대 로봇이 늠름하게 놓여 있었다.
물론 기사단 컨셉 복장은 벗겨놔서 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덕분에 고장 안 내고 살릴 수 있었다. 여기에 3학년까지 내 인생 전부가 걸려 있었어. 초기 설계부터 직접 가닥을 잡아 과 내 로봇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녀석이지."
"오~?"
설마, 이 거대 로봇이 이 녀석의 작품일 줄이야.
생각보다 놀라서 질문했다.
"정말 다행이네. 그럼, 이게 일종의 졸업작품이 될 수도 있는 건가?"
"맞아. 이 녀석을 더 보완해서 개량한 작품으로 졸업할 생각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 녀석을 기업에 팔아 현장에 투입시키는 것이고."
그 대답에 나는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 관세 구역에서 쓸 화물 로봇이 필요하다면, 꼭 이족 보행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바퀴나 탱크의 무한궤도처럼 설계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이족 보행은 균형을 유지시키는 것도 어렵고 두 다리가 온몸을 지탱해야 해서 에너지 효율도 좋지 못하다. 심지어 화물을 이동시켜야 한다면, 동작도 훨씬 복잡해지고 다리 쪽 부하가 심해져 부품 마모도 빨리 진행될 것이다.
"훗. 그거야 효율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지."
"……."
이한수는 내 생각을 이미 다 알기라도 하는 듯, 뭘 모르시네 하는 표정이었다.
"너도 알 거야. 현존하는 발명품들 중 상당수가 편리함, 합리성만을 이유로 태어난 건 아니라는 점을."
"……."
"상상력과 로망."
이한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바퀴나 체인으로 굴러가는 로봇은 멋이 없잖아. 상상력과 로망은 발명의 핵심 원동력이라고."
"아-"
나는 비로소 한수의 생각을 이해했다.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도 처음부터 비행기의 쓰임에 대해 이것이 과연 효율적인가만 따지고 발명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비행기의 쓰임이 어떨지 대충 생각해 둔 바는 있겠지만, 그들이 발명에 열정을 바치게 했던 것은 어쩌면 훨씬 단순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저 새처럼 하늘을 한 번 날아보고 싶다는 것.'
이런 의미에서, 세상은 효율과 합리성을 따지는 사람보다 꿈꾸는 사람들로 인해 훨씬 큰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당장은 이족 보행이 비효율적으로 보여도, 제대로 발전시키기만 하면 훨씬 많은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후후. 두고 봐."
"……."
이한수의 순수한 열정.
나는 문득 거기에 경탄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노력만이 아니라…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찬 녀석이다.'
이한수는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자, 이쪽으로 와봐. 로봇들을 더 구경시켜 줄게."
"좋아."
"너도 사실 로봇 무지 좋아하지? 수석이었으면 어느 과든 택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로봇공학과로 진학하지."
"……."
무작정 노력만 하는 것이 아닌, 분명한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는 것.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한수에게 있는 '그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걸까.'
완전 공식을 찾아서 세상에 파란을 일으키고 싶다는 목표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그것으로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바라는 건 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꿈꿔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너무 맹목적이었을지도.'
남들에게 말하면 다 비웃을 만한 목표라도,
지금껏 역사에 등장했던 위대한 발명가들과 한수가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것처럼, 나도 그런 열정에 사로잡혀서 노력하고 싶다.
'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야.'
"이건 청소 로봇이야. 네임은 DR-KH2. 4학년 경한 선배의 두 번째 작품이지."
"오……."
"그리고 이건 DR-YK1. 내 후배의 작품인데, 제설 로봇이래. 그런데 글쎄, 부가기능으로 치어리딩도 할 수 있다나? 대단하지?"
"……."
나는 새로운 충격이 주는 고양감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한수가 이어 말했다.
"어때, 내 후배 녀석 건데 살펴보고 피드백을 줘볼래? 너라면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흐음… 피드백이라."
총평회에 온 사람들은 자유롭게 로봇에 관한 피드백을 남길 수 있다.
새로운 자극을 준 장소인 만큼, 나도 조금 진지하게 참여해 봐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그럼, 어디……."
나는 조심스럽게 로봇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곳저곳 살펴보는 시늉과 함께 마나 링크를 발동.
마나가 로봇을 전체적으로 훑고 내 머릿속에 정보를 전달했다.
-대상 : 자동화 기계.
-상태 : 양호.
-기능 : 부실.
이어 상세 정보가 하나둘 떠오른다.
-부족한 동력, 부족한 관절 수로 '댄스' 기능 부실. 배터리 용량 부실로 1절밖에 소화할 수 없음.
-제설 작업 시 기온 하강에 따른 배터리 장애 발생 예상.
"아……."
마나 링크로 파악한 문제점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문제점을 알아냈으니, 여기서부턴 내 역할이다.
마나 링크는 대상의 상태를 알려줄 뿐, 해결 방안까지 내주는 건 아니다.
"음…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해볼게."
이한수가 귀를 기울인다.
"첫 번째는 몸 전체를… 유압식 관절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
"오?"
"어차피 이족 보행형이니까 진짜 인간처럼 메인 동력은 심장 부위에 하나만 놓고, 거기서 압력만 컨트롤해 전신의 관절을 통제하게 만드는 거지."
이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처음 설계는 훨씬 복잡해지겠지만, 제설이든 치어리딩이든 힘 많이 드는 업무에선 그게 나을 거야. 게다가 지금처럼 관절마다 일일이 톱니 모터를 달아놓는 방법은 조잡스럽기도 하고 동작이 인간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와우~"
한수는 리액션을 잘하는 듯하다.
내가 이어 말했다.
"두 번째로. 배터리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그 말에는 한수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이한수의 두 눈이 빛났다.
"아마 리튬이온배터리를 병렬로 연결해서 삽입해 뒀을 텐데… 알다시피 리튬이온배터리는 저온에 약하지. 제설 업무와는 상극이라는 뜻이야."
"……!"
첫 번째 의견은 그냥 꽤 재미있는 의견이군 하는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놀란 듯한 눈이었다.
계속 말했다.
"이 로봇은 실제 제설 환경에서 동작하기 어려워. 동작에 필요한 힘이 안 그래도 클 텐데, 추운 곳에선 배터리가 제 기능을 하기 힘드니까. 아마 얼마 못 가 멈춰 버릴 거야."
그렇다고 배터리를 지키자고 배터리 쪽에 온열 장치를 두거나 외피를 두껍게 만들기도 애매하다.
배터리를 보호할 순 있을지 몰라도, 그것들 때문에 장치가 추가되고, 로봇 무게가 무거워지니 배터리 소모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즉, 실효성이 없다.
"배터리 문제를 잡아야 해. 그런데 전기를 고집하는 한 현존하는 기술로는 아직 어렵겠지."
리튬이온배터리로 동력원을 삼는 한, 실제 임무 투입은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직은 리튬이온배터리만 한 게 없는 상황이다.
짝- 짝- 짝-
"……?"
갑자기 이한수가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