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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형 대마법사-91화 (91/318)

제91화

요즘 이예원은 눈에 띄는 자신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얼마 전 겪었던 일은 누가 들어도 충격 그 자체.

오빠가 권했던 것처럼 꽤 긴 시간을 두고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예원의 마음 상태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내가 원래 좀 씩씩하고 내색이 없는 편이긴 했지만… 보통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가?'

평균이 어느 정도인지 의심되기 시작한다.

'내가 평균인 건지… 아니면 이상한 건지.'

심리 상태는 코앞에 두고 있는 기말고사 준비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멀쩡했다.

가슴이 떨릴 정도로 놀란 건 딱 그날, 그 당시뿐.

사실, 다음 날부터 멀쩡히 하루 일과를 수행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나중에 내 이야기를 들었던 엄마랑 아빠가 아직까지 더 난리지…….'

자습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저기, 예원아."

이예원의 도움으로 함께 과외를 받고 있는 친구 박소현이다.

"어, 소현아. 왜?"

"진짜 괜찮은 거야?"

이예원이 어딘가 생각에 골똘하고 있는 모습에 박소현은 걱정돼서 와본 것이었다.

정작 당사자의 고민은 '왜 나는 멀쩡한가'에 있었지만.

"아, 응. 진짜 괜찮아."

"진짜 별일 있는 거 아니지……?"

박소현을 비롯한 학급 또래들 전부 이예원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고 있다.

단지 얼마 전 교무실에 몇 번 불려가더니, 경찰 조사랍시고 경찰서까지 들락거리는 걸 봤을 뿐이다.

다들 이예원에 대해 수군거렸지만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예원은 단지 그 사건의 피해자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것뿐인데,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당시 사건은 그 자체가 비밀에 가려졌고, 이예원도 자신이 납치당했다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아 했다.

'괜히 오빠에 대한 이야기까지 번질 테니까.'

박소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렇구나. 아무 일 없었다면 다행이다. 그리고 예원아, 이거."

박소현은 자양강장제 하나를 이예원의 책상에 올려줬다.

"고마워 소현아."

"에이, 이런 거 가지고 뭘~ 헤헤."

박소현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곤 그만 자리로 돌아갔다.

"……."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본인은 무려 그 사건의 피해당사자이고.

아마 여기 있는 또래들에게 그 사건 때문에 경찰서에 들락거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전부 놀라 뒤집어질 것이다. 그만큼 그 사건은 아직까지도 화젯거리.

'근데 역시 나는 너무 태평하단 말이지.'

이예원은 자신의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기 위해 사건 당시를 회상했다.

비범한 움직임으로 범죄자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던 오빠의 모습.

순간 이예원의 동공이 커졌다.

"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이후 멘탈이 나갔던 적 있었다.

'그때도 오빠가 주문을 알려줘서…….'

그 주문을 외며 평정심을 찾아갔고, 공부에 다시 마음을 붙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된 주문이지만, 분명 오빠가 알려줬던 주문이 특별한 효험을 발휘했었다.

'설마…….'

이예원은 실이 구슬을 쫙 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건의 아귀가 짝짝 맞아가는 그런 느낌.

이예원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오빠가 있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오빠가 평범하지 않다.

'서, 설마, 무슨 마법사라도 된 건 아니겠지?'

스스로 생각해 놓고도 낯부끄러운지 고개를 털어버린다.

하지만, 오빠가 자신에게 일정한 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지금처럼 큰일을 겪어도 태평할 수 있게 된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의 변화는 분명 오빠와 관련이 있으리라 직감이 확 꽂힌다.

그리고 이예원은 눈매를 좁혔다.

'아무튼… 계속 지켜봐야겠어. 뭔가 또 가족들한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이번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다.

이례적으로 방학 동안 서울 본가에 올라가 오빠랑 같이 지내볼까도 생각이 들었다.

같이 지내다 보면 뭔가 더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     *      *

나는 예림이와 만나고 돌아와서 마인드 월드로 들어왔다.

쉭! 쉭!

진의 동작을 보고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로시온 기사 생도와 싸우기 전, 진과 약속 스파링을 하며 몸을 예열시키는 것이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

"아, 응. 한 학기가 끝나서. 홀가분하달까."

"그렇군. 그럼 종강 기념으로 더 세게 해볼까?"

진이 무서운 눈을 뜬다.

약속된 동작만 서로 주고받는 약속 스파링이라지만, 저런 눈을 뜰 때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하다.

"살살 좀 하라고~!"

하지만 오늘은 왠지 싫지만은 않다.

오늘따라 힘이 넘쳤다.

어쩌면, 아까 예림이와 식사하면서 겪은 신선한 충격 때문인 듯했다.

-저기, 예림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너 그때 했던 말 있잖아… 혹시, 너 나 좋아해서 그런 말 한 거니?

나는 용기를 내서 직접 물어봤다.

솔직히 홍예림 같은 대단한 인싸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었고, 그럼 나한테 인생 전부를 투자하겠다는 건 무슨 말인지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예림이의 대답은 굉장히 빠르고 심플했다.

-응, 나 오빠 좋아해. 아주아주.

생긋 웃는 얼굴로 잘도 말하던 홍예림.

그 생각을 하자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아직도 믿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때도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버만 했다.

-하, 하지만. 나는 으음, 그러니까 해야 할 일도 많고, 네 마음은 고맙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썸이라든지, 연애라든지, 혹은 그 이상(?)의 것이라든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상 내가 예림이를 좋아하는 건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인생에서 처음 겪은 일이라 온갖 낯부끄러운 망상을 하고 있을 때, 홍예림은 내가 정신을 차리게끔 말해줬다.

-근데 나 오빠한테 부담 주는 건 싫어. 나도 잘 알잖아, 오빠 얼마나 바쁘고 할 일이 많은지~! 그냥 지금은 내 마음 알아두기만 해.

-…그, 그래도 돼?

-푸히힛! 그래도 되냐니~! 오빠, 내가 오빠한테 투자하고 싶다고 한 얘기 다 진심이야. 오빠가 잘돼야 나도 잘되는 거라고! 윈윈 관계! 오빠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만 하라는 뜻이야!

-…….

나는 솔직히 그 말에 감동받아서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홍예림처럼 대단한 친구가 날 좋아해 주는 것도 고마운데, 내 자존감을 올려주는 배려까지 베풀어주니 말이다.

그 덕인지, 인생에 대한 의욕과 활력이 확 솟았다. 그래서 지금도 힘이 넘치는 것 같고!

콰직!

"크흣……!"

"뭔 생각을 하는 거냐?! 계속 간다!"

한차례 강력한 충격에 나는 뒤로 쭉 밀렸다.

진은 그걸 놓치지 않고 곧장 쇄도했다.

공격 방향을 다 안다고 해도 절대 방심은 금물이었다.

'맞으면 진짜 아프니까!'

휘리릭!

공중도약으로 진의 발차기를 피하면서 거리를 벌려 동시에 자세를 수습한다.

그리고 호흡 조절.

"후우……!"

"호흡 컨트롤이 제법이군!"

진이 입가에 광소를 띠고 웃는다.

"제발… 그런 얼굴 좀 하지 말아줄래……? 네가 낯설어진다고!"

"큭큭. 그래, 넌 잘 모르겠지. 성장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진은 틀림없는 변태 사디스트가 맞는 듯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동작을 눈으로 캐치했다.

내가 3분을 버티는 그 생도보다 더 빠르면 빠르지, 절대 느리지 않다.

파핫!

이어지는 수십 차례의 공방.

나는 진과 춤추듯 사방을 휘저었다.

장장 2시간 동안을 말이다.

"헉… 허억……."

약속된 2시간이 다하자 숨이 벅차 무릎은 자동으로 꿇린다.

어디까지나 이것이 몸풀기였다.

"마법을 허용하지. 몸 회복시키고 재정비할 시간 5분 준다."

"후우… 오케이."

곧장 리프레시 리커버리로 기력을 전부 회복시킨다.

마인드 월드 내에서 기력 회복은 육체의 부상 전부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정신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잘하고 있다. 그렇게 매일 한 동작씩 익숙해져 가라고. 나중엔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될 거다."

"그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진의 말.

"그럼 정확히 5분 후에 시작하마."

진은 잠시 물러가 줬다.

곧 주변 환경이 뭉글뭉글 변한다. 생도의 복제품과 만나는 결투장 무대가 세팅되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 상대가 나오길 기다렸다.

컨디션은 다시 최상이고 준비는 이미 충분했다.

'…아무쪼록, 꽤 괜찮은 마무리였어.'

나의 첫 대학 생활 말이다.

스펙타클한 여러 가지 역경과 계속되는 새로운 도전들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중 만만했던 건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입학 이후 동기들과 친해지는 것부터, MT며, 축제며, 과외며, 강현호 일당과 맞서는 것까지.

모두 다 처음이었고, 경험 없는 백지에서 시작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러 가지 도전들에 정면으로 맞섰고, 지금은 달라진 나 자신을 이렇게 느끼고 있다.

씩.

보람찬 기분에 얼굴은 자동으로 활짝 편다.

확실했다.

'이기는 습관이 들면, 계속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나는 도전을 통해 계속 성장할 것이고, 이기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거야. 이 인생이라는 게.'

무엇이든 처음이 힘든 것이다.

처음이라는 것이 가져오는 충격과 귀찮음과 의심과 불확실함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장애들을 디디고 한 걸음씩 전진했을 때, 반드시 얻게 된다.

달라진 자기 자신을.

비록 성취의 폭은 각자 다를지라도 말이다.

뭉게뭉게.

휴식 시간이 끝났다.

내 앞에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 나의 상대가 나타났다.

나는 문득 끝없이 도전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마법이라는 걸 거저 얻기까지 했으니, 더 할 나위 없이 감사하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도전이라도 말이다.

나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놈에게 씩 웃어 보이곤 놈을 향해 힘차게 몸을 던졌다.

* * *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MK캐피탈 회사만은 청청히 빛을 밝히고 있었다.

"사, 사, 살려주세요. 제발!"

"거, 시끄럽네."

빈센 리가 부하들에게 눈치를 주자 부하들이 가서 강현호의 입을 틀어막는다.

강현호는 제정신이 되돌아온 뒤 곧장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갔으나 얼마 못 가 빈센 리의 힘으로 임시 귀가 조치되었다.

어디까지나 수사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고, 빈센 리는 수사 방식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힘이 있었다.

강현호는 끌려와서 자기 운명을 깨달았다.

곧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해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남자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외친다.

"믿어주십시오! 제, 제발! 믿어주십시오!"

"…기가 차서 진짜. 얘들아, 너희 생각은 어떠냐?"

빈센 리의 말에 그를 시위한 부하들이 한 마디씩 의견을 낸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대학생 하나에 스무 명이 넘게 당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혹시 저놈 진짜 미친 거 아닐까요?"

빈센 리는 정신병원에서 강현호가 하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원래 굳이 이런 놈 하나 때문에 뒷권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특별히 이놈을 꺼내왔다.

무슨 개수작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네놈이 수를 써봤자 뭘 할 수 있겠냐만.'

빈센 리가 지금껏 암흑 세계에서 절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뭐든 위험분자가 될 수 있는 걸 사전에 싹을 쳤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위험분자에는 지금 강현호가 하는 말처럼 납득되지 않는 아이러니함도 포함되었다.

"시작해."

"으아아악! 제발! 제바아아알!"

부하들이 강현호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강현호.

며칠간 계속되는 고통에 강현호는 진짜로 미칠 지경이었다.

빈센 리는 고통에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흐음…….'

뭔가 켕기는 걸 속에 감추고 있을 경우, 숨기는 게 뭐든 고통과 함께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강현호는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살려달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다.

'원래 저런 놈이 아닐 텐데?'

강현호가 비열한 인간이라는 건 빈센 리도 잘 알고 있다. 고통 앞에서 고분고분해지는 인간 부류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있는다는 건?

'저놈 말이 진짜란 말이야?'

대학생 하나에 조직원 전부가 털렸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강현호가 완전히 미쳤다는 결론뿐이다.

빈센 리의 입가에 웃음기가 싹 돈다.

"됐다."

"으히이이익……."

자기 피를 뒤집어쓰고 침을 줄줄 흘리는 강현호.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반사적으로 멈춰준 것에 대해 감사를 읊조린다.

빈센 리는 이에 조소를 보냈다.

"이제 놓아줘."

"가, 감사합……."

푸걱!

그 말과 함께 강현호의 두 동공이 크게 확장된다.

고문하던 부하 중 하나가 그의 목을 예리한 것으로 찌른 것이다.

강현호는 쓰러지며 줄줄 세는 피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피를 막아보려고 해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놓아준다는 건 곧 죽음을 가리켰다.

강현호가 대학생 놈에게 대패했든, 아니면 그냥 미친 것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팩트는 강현호가 완전히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재사용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한 거니까.

그러니 굳이 살려둘 필요도 없다. 살려뒀다간 괜히 경찰이나 언론에 가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지껄일 위험만 있을 뿐.

빈센 리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싹 정리해 둬. 저놈은 어디 동해바다 깊은 곳에 던져주고."

"예, 옛… 알겠습니다."

그렇게 현장을 마치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빈센 리.

그의 얼굴엔 알 수 없는 의미의 웃음이 걸려 있었다.

'흐음, 강현호를 혼자 격파한 대학생이라… 재미있겠어. 어떤 놈일까?'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빈센 리는 이미 그 의문의 대학생을 의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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