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형 대마법사-95화 (95/318)

제95화

'예원이에게 마법사의 자질이 있다고……?'

마나감응력이란 문자 그대로 마나를 느끼는 힘을 말한다. 마나감응력이 강할수록 마나를 더 쉽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마나 링크로 예원이를 읽었을 때, '육감'이라고 나왔던 상태가 바로 이걸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마법이 걸리는 순간을 캐치할 수 있었던 것이군…….'

보통 인간이면 아무리 마법에 걸린다 한들, 그 사실을 캐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외 한 가지 사실이 더.

'혹시… 예원이는 마법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는 걸까?'

내 경우는 루이스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건지, 마나를 신체에 깃들게 하는 정도나 가능할 뿐 마법을 연성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예원이는 다르다면?

마나감응력에 더해 마법을 연성할 수 있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면?

예원이는 루이스의 대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어머어마한 양의 마법서들을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헬파이어에 블리자드를 사용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

문제는 예원이에게 마법에 관한 것을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였다.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났다니까 마법 배우자! 이런 식의 말은 절대 꺼낼 수 없다.

인간은 배타적인 종족이다.

자신과 다른 타 종족에 관해 아무 이유 없이 적개심을 가진다. 특히 그 종족이 자신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면 더욱!

그렇기에 예원이에게 마법에 관해 알려주는 건 극도로 위험하다. 예원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실험실의 이슬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마나를 이용해 신체를 단련하는 정도라면 괜찮다.'

마나감응력을 이용해 꼭 마법을 시전해야 하는 건 아니다.

마검사나 마도사들처럼 마나를 이용해 육체를 강화시키는 방법도 분명 존재한다.

'루이스와 내가 그런 것처럼.'

일단 어느 정도 이 세계에 발을 걸친 예원이에게 그 정도는 허용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

내가 진을 진지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기, 진……."

그러자 진은 이미 내 생각을 안다는 듯 피식 웃는다.

"맡겨둬라. 자기 몸 하나 정돈 지킬 수 있게 도와주마."

"하하. 정말 고마워!"

나는 저도 모르게 진을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녀석이 원한다면 말이지."

"맞아. 그게 순서지."

예원이가 깨어나면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훈련을 받아보지 않겠냐고!

*     *      *

예원이는 30분 정도 쓰러져 있다가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요 1년 사이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야 했다.

다행히 머리 회전이 빠르고 똘똘한 예원이는 금방 현실을 받아들였다.

예원이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신체를 어떻게 그렇게 강하게 만들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단, 마법에 관한 이야기는 배제했고 마나를 이용해 타인의 상태의 정신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정도만 이야기했다.

"후… 진짜 진땀 뺐네. 그래도 이야기가 순조롭게 잘돼서 다행이야."

예원이도 상식이 있는 녀석이니, 이런 사실을 아무 데나 말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당연히 이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인드 월드에서 진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진이 살살해야 할 텐데… 하하."

아무튼, 뒤는 진에게 맡기고 나는 외출을 준비한다.

예원이가 진을 만나는 동안 식사를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식재료가 떨어졌다.

예원이가 온 뒤로 식재료가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예원이는 한동안 더 서울 집에서 머무르다 갈 거 같으니 예원이가 좋아하는 식재료도 좀 살 생각이다.

삐리릭-

채비를 마친 뒤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

나는 발달한 기감으로 무언가 이상을 감지했다.

'…누군가 있다.'

유성그룹 경호팀?

그도 아니면 강현호의 잔당?

기감에 잡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그자가 나를 향해 상당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성큼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만 나오시죠."

"……."

내 말에 비상계단 쪽에 있던 그림자 하나가 슥 움직였다.

"……?"

그런데 내가 전혀 모르는 인간이었다.

"당신 뭡니까? 나한테 볼일 있어요?"

"…이영원. 당신이 이영원이군."

머리를 올백으로 짱짱하게 묶은 정장 차림의 여자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이미연.

그녀는 2주 전 홧김에 이영원을 찾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기다렸다.

대신 흥신소에 부탁해 이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조사해 달라고 추가 의뢰를 넣었다.

이영원의 일신에 관한 조사를 마치긴 했지만, 그의 현재 사생활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곧장 찾아갔다간 오히려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사한 결과, 특별한 점이 없다는 보고만 나왔다.

그저 집 학교, 집 학교를 반복하는 평범한 학생이라는 것.

'은둔하는 부류가 틀림없다.'

최면술사도 사람에 따라 활동 영역이 천차만별.

대개 집단에 소속되어 규율에 맞춰 활동하게 마련이지만, 저 이영원은 그런 사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시 혼자 활동하는 은둔형이 틀림없었다.

은둔형 최면술사의 경우 그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려진 바 없어 위험하고, 돌발 행동 시 전체 최면술사 집단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예의주시 대상!

'잘 걸렸다 이놈.'

최면술사들 사이에서도 최상위 티어인 이미연은 모든 조사 끝에 비로소 이영원을 찾아왔다.

최면술사들을 대표해 집단을 수호해야 한다는 공공정신도 일부 있긴 했지만, 자기 돈줄을 위협한다는 괘씸함이 먼저였다.

일단 회유, 먹히지 않으면 그다음 처벌이다.

처벌이란 다름없다.

자신의 최면술로 이영원의 능력을 봉해 버리는 것!

"당신… 누군데 날 알고 있는 거지?"

착 가라앉은 이영원의 목소리.

이미연은 침착하게 한 걸음 더 전진했다.

"네 정체는 알고 있다. 잘도 애들을 가르치고 다니더군……."

"……."

이영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길 알 뿐만 아니라 과외 활동까지 알고 있다.

즉, 과외 학생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뜻.

"당신 뭐야. 대답해."

"모르는 척하는 건가……? 같은 동네에서 활동하면서 날 모를 리 없을 텐데."

"……?"

이미연은 이영원이 당연히 자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은 무려 경기지부의 총책임자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으려고 한 최면술사 나부랭이가 아무리 간이 부었다고 해도, 자기 얼굴조차 모르고 있을까?

이미연이 말했다.

"시치미 떼지 마라! 너, 애들을 가르치면서 기술을 쓰고 있잖냐!"

"……!"

기술이란 최면술사 세계에서 최면술을 가리키는 약칭이다.

하지만, 저 말이 이영원에겐 다르게 들렸다.

'…설마, 마법을 알고 있어……?'

이예원에게 마나감응력이 있었던 만큼, 세상 사람 중 또 마나감응력 있는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지만, 이영원은 경계심을 최고조로 올렸다.

'만약… 마법을 쓸 수 있는 존재라면.'

본인의 마법은 하급보조 마법 세 가지가 전부이다. 그런데 앞에 있는 인간은 다른 마법도 구사할 수 있다면?

그 생각에 이르자 이영원은 반사적으로 신체에 마나를 둘렀다.

전투를 대비하는 행동이었다.

움찔.

그런데, 그 모습에 이미연의 얼굴이 당황에 물든다.

'무, 무슨… 저 말도 안 되는 사이한 기운은 뭐지?'

이영원의 신체 주위에 푸른색 아우라가 보이는 듯했다.

눈을 비비는 이미연.

최상급 최면술사 정도 되기에 느낄 수 있는 아우라였다.

'…뭔지 몰라도 위험해.'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 이미연은 즉시 최면도구를 꺼냈다.

그런데,

파앗! 촥!

"……!"

이미연이 뭔가 해볼 새도 없이 눈앞에 뭔가 번쩍하더니 손에 있던 최면도구를 빼앗겼다.

"이게 뭐야?"

이미연은 당혹감에 동공이 흔들렸다.

'무, 무슨 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한 건 찰나의 순간 눈앞에 있던 이영원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최면도구는 그의 손에 들려 있었고.

"흐음."

이영원은 즉시 마나 링크를 발동한다.

-대상 : 아티펙트.

-상태 : 최하급. 마도공학자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하급 능력자가 최면술을 위해 제작했다. 최면 대상자에게 암시를 걸어 원하는 정신 상태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대상에게 약간의 마나 저항력만 있어도 무용지물.

"최면……?"

"……!"

"최면도구였어?"

이영원의 웅얼거림에 이미연은 뒷목이 서늘해졌다. 마치 최면도구를 처음 보는 듯한 태도.

'…최면술사가 아니라고? 그럼 대체 정체가 뭔데……?'

방금 움직임만 해도 그렇다.

최면술사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에게 일정한 암시를 걸어 특정 행동을 강제하는 능력자이지, 초인적인 움직임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걸로 뭘 하려고 한 거야?"

"……."

마인드컨트롤.

최면의 최상급 기술 중 하나로, 상대방의 심리와 생각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암시를 걸어 최면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면 사고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영원히 최면기술을 쓰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썼어도 마나 저항력이 높은 이영원에겐 무용지물이었겠지만.

이미연은 뒷걸음쳤다.

"자, 잠깐. 항복하겠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 같다."

"……?"

아무리 봐도 최면술사가 아닌 데다, 이영원이 두르고 있는 저 푸른색의 사이한 기운.

이미연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항복한다!"

이영원은 기가 차서 피식 웃었다.

바사삭!

쓰레기보다 못한 최면 아티펙트를 손아귀 안에서 으스러뜨려 버렸다.

"세상엔 재미있는 사람이 많군. 그동안은 몰랐는데, 역시 세상은 넓은 거 같아."

"크흣……."

이영원이 씩 웃으며 이미연을 향해 말했다.

"항복하겠다고?"

"…그, 그렇다."

이영원이 예의 무서운 기운을 풍기며 이미연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전부 말해라. 네 정체와 날 찾아온 목적까지 전부."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방금 자신에게 뭔가 못된 짓을 하려고 했다. 금세 힘의 격차를 느끼고 항복하긴 했지만.

들어야 할 이야기는 천천히 공포를 심어주고 나서 들어도 늦지 않을 거 같다.

*     *      *

비슷한 시각, 서울 소재의 어느 캐피탈 회사.

그곳에 건장한 남자들이 칼과 야구방망이로 무장했다.

그리고 무장한 장정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어떤 남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고 있다.

"어이… 내가 언제까지 당신 밑에서 길 줄 알았어? 우리 같은 깡패도 당신처럼은 안 해. 그놈의 납부금이 뭐길래… 참 나. 당신이 무슨 권리로 우리 돈을 받아먹는 거야?"

"이래서 머리 검은 똥개는 거두는 거 아니랬는데. 쯧쯧."

둘러싸인 남자는 혀를 찼다.

이에 무장한 쪽의 리더가 꿈틀했다.

"…아직도 자기가 처한 상황을 모르나? 돌아다닐 거면 부하를 잔뜩 데리고 왔어야지. 넌 오늘 뒈졌어 이 새끼야. 퉷!"

둘러싸여 있는 남자는 빈센 리.

그리고, 무장한 쪽의 리더는 몇 달째 납부금을 내지 않은 대부업자 송지환이다.

빈센 리는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이었는데, 송지환이 빈센 리를 맞이하는 태도는 지금 보는 바와 같았다.

"큭큭… 분수도 모르는 놈."

"회장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빈센 리와 동행한 부하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아니, 너는 나서지 마라."

빈센 리가 씩 웃으며 외투를 벗는다.

"……."

그러자 부하는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여 물러간다.

빈센 리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고, 대항해 진을 친 장정들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놈은 혼자서 스무 명 넘는 놈을 쓰러뜨렸다지?'

빈센 리는 이영원에 대해 조사를 이미 끝냈다.

결과는 강현호가 말한 대로 진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 사실에 빈센 리는 진심으로 크게 놀랐다.

동시에 관심이 생겼다.

'어디 보자.'

빈센 리는 자길 둘러싼 장정들의 수를 센다.

"열아홉이라?"

이영원에 비하면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대충 가늠은 해볼 만한 숫자이다.

빈센 리가 선글라스를 벗고, 왼쪽 팔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왼쪽 눈의 의안과 기계로 된 왼팔이 드러났다.

"으, 으윽……!"

그 기이한 모습에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고, 빈센 리가 말했다.

"어디 한번 덤벼봐. 동시에 전부!"

그 말에 송지환이 명령한다.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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