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오늘 아침, 언론에서 대학생 공모전 소식이 보도된 뒤로 전화기가 불타는 듯 울려댔다.
"어, 엄마. 응. 맞아, 그거 나야. 에이~ 얘기할 게 뭐 있다고. 그냥 대학생 공모전일 뿐인데. 응. 그동안 바빴지."
엄마는 내 소식을 기사로 먼저 접한 걸 섭섭해했다.
당연히 부모로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너무 일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말하는 것도 까먹어 버렸네…….'
사실, 내가 투고한 전고체 배터리 아이디어는 대단한 게 틀림없지만 대학생 공모전 자체는 그다지 대단한 이벤트도 아니다. 지금 언론에서 내보내는 것만큼 시끄럽게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지금 언론 때문에 엄마랑 아빠한테 친척들이 연락 오고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특히 상금이 5천만 원이나 걸린 큰 대회라는 점에서 모두 내일 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단다.
<내일 오후 2시. '미래혁신기술 아이디어 대학생 공모전' KBN 라이브 방송!>
아침 보도 이후 기사 클릭수와 사람들의 반응이 보이자 방송가에선 곧장 라이브 방송까지 결정했다.
원래 기사 한두 줄 나오던 공모전인데, 이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싶다.
아무튼, 엄마 아빠, 여동생부터 같이 재수, 삼수를 했던 민지 누나, 태식이 형한테서도 오랜만에 연락을 받고 나서 이제야 등교를 시작한다.
부릉-
마침 아파트 밑에 도착하는 내 자동차.
"형님!"
김완호도 아마 기사를 봤거나 주변 사람에게 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귀한 분을 모시게 되어 이 김완호, 정말 영광입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출발이나 시켰다.
"휴… 나 한숨 좀 잘 테니까 깨우지 말아줘."
"옛! 형님, 맡겨주세요!"
나는 그렇게 마인드 월드로 들어가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자동차는 순조롭게 학교로 향했다.
* * *
"형!"
"오빠!"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또 시작됐다.
"아, 얘들아. 하하……."
나는 또 엄마나 아빠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해야 했다.
"형 진짜 방학 때 계절학기도 꽉꽉 채워서 하더니 이제는 대학생 공모전 본선까지 갔어요?!"
애들 중 같이 방학 스터디를 했던 애들은 내가 공모전을 나간 것까진 알고 있다. 근데 그 애들도 내가 설마 본선까지 갈 줄은생각 못 한 듯했다.
계절학기만 해도 상당히 빡센 과정인데, 거기에 공모전으로 본선까지 가려면 대충대충 해선 불가능하니 엄청난 시간을 쏟았을 것이다.
"오빠는 무슨 시간이 하루 48시간이라도 돼요……?"
입을 쩍 벌리고 외계인 보는 듯한 눈을 하는 혜연이에게 뜨끔한다.
'이, 이런 식으로 귀찮은 일이 생길 줄이야.'
비범해진다는 게 여러모로 귀찮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와, 지금 미튜브에서도 공모전 관련 얘기 막 올라오기 시작한다. 영원이 형 관련 언급이 거의 대부분이야."
"야야, 여기는 팬카페도 있다! 미친. 영원이 형 팬카페야!"
"뭐? 진짜?"
이미 개설된 지 수 개월이 된 팬카페였다.
내가 전국 1등 하고 처음 공영방송을 탔을 때부터 개설되어 있었던 카페. 누가 주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별난 사람이다.
"우와~! 팬카페 멤버가 5천 명이 넘어! 미쳤네."
그 팬카페의 주인장 닉네임은 'SSun미'라는 사람인데, 왠지 내가 알 것만 같은 이름이다.
'구선미… 그 녀석 아니겠지?'
내 과외 학생이고, 나한테 처음부터 묘한 눈빛을 보내던 녀석이었다.
'공부해야 할 녀석이! 이런 거나 하고 있고 말이야.'
나는 혀를 차면서 애들이 보여주는 카페 창에서 눈을 돌렸다.
웅성웅성.
강의 시간이 다 돼서 교수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이 분위기는 안 바뀔 거 같다.
<오성전자 김승우 부장 : 그의 아이디어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대현반도체 구성민 부장 : 공모전 취지에 매우 적합한 아이디어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과학계에 큰 영감을 줄 것.>
서로 상반된 평가에 사람들은 더욱 흥분과 기대감을 키웠고, 내일 있을 공모전 본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드르륵-!
그때, 강의실 문이 열렸다.
수업까지 시간은 아직 30분가량 남았다.
성큼성큼 물리학과 강의실에 들어오는 한 사람.
"오… 너는?"
그건 바로 이한수.
나와 함께 본선 진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대한대 학생 중 하나였다.
"이영원……!"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꿈틀거린다.
"한수야, 소식은 들었다."
"나야말로."
파지직! 파직!
이한수의 눈빛에서 레이저 광선 같은 게 나오는 듯 따갑길래 나도 강렬한 눈빛으로 맞서주었다.
본선의 경쟁자.
수군수군.
"…뭐야 저 사람?"
"누구야?"
"듣기론 로봇공학과 3학년 학생이라던데?"
"근데 저 사람이 왜 여기에……?"
"글쎄, 저 사람도 본선에 올랐대."
"아! 그럼 라이벌이구나. 영원이 형하고 라이벌!"
주변 동기들이 나와 한수의 눈빛 대결을 두고 수군거렸다.
"…동아리 들어오라고 했더니, 들어오지는 않고 혼자 공모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냐?"
"후후. 네 덕분이기도 하다. 네가 나한테 큰 영감을 줬어."
"내가?"
이한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가 그때 동아리 총평회에 초대해 주지 않았다면, 이번 공모전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거야."
"호오… 그랬단 말이지? 그래서 주제가 뭔데?"
나는 그저 씩 웃었다.
"비밀이다. 아직은. 너는 로봇이 주제지?"
"쳇… 한 수 주고 가는 게임이라니. 이거 불공평하잖아? 자존심이 상하는걸?"
"에이~ 어차피 개별적으로 심사받는 건데 주제를 알고 모르고가 뭐가 중요해. 난 그냥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비밀로 할 뿐이야."
사실, 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 본선작 10개 중 9개는 주제가 뭔지 이미 공개되어 버렸다. 참가자들이 알아서 밝힌 것이다.
이유는 여론전.
어떤 아이디어가 어느 대학 누가 쓴 아이디어다더라 하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아이디어가 최고다! 하며 여론을 형성해 준다.
그럼 심사위원들이 그 여론에 약간이나마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걸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한수 역시 자신의 공모작 주제를 발표했고, 현재 학과와 동아리를 통해 지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자신만만하다는 뜻이겠지……?"
"그렇기도 하고. 사실, 난 입상에 별 관심은 없어서."
"이 자식 이거… 은근히 재수 없단 말이야."
이한수는 날 웃기는 놈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서 좋은 경쟁 해보자. 승패는 중요하지 않잖아. 그렇지?"
피식 웃으며 내 손을 맞잡는 이한수.
"물론. 하지만, 내 아이디어가 우승하게 될 거다."
나는 하하 웃으며 그를 배웅해 줬다.
* * *
대망의 공모전 날이 밝았다.
오늘은 특별히 학교에서 수업을 빠져도 출석을 인정해 주겠다는 배려를 해줬다. 당연하지만, 거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부릉~
이영원과 김완호는 차를 타고 함께 삼성역 코엑스로 향했다.
코엑스의 전시관 한쪽에서 대학생 공모전 본선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스르륵-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 자리에 안착하고,
턱-
둘이 내리자마자 기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둘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KCB의 이성국 기자입니다. 이영원 씨 맞으시죠?"
"MBN의 배규원 기자입니다. 이영원 씨, 오늘 본선에 오게 되셨는데 준비한 주제가 뭔지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촬영팀까지 대동한 기자단이 어떻게 알고 기다렸는지, 이영원이 내리자마자 몰려들었다.
"저기요! 저기요! 좀 지나갈 테니 길 좀 비켜주세요! 형님은 인터뷰 안 하십니다!"
주제에 대해선 함구하기로 한 김완호가 오바를 하며 기자들 사이를 비집었다.
이영원은 그의 행동에 이마를 한 번 짚고는 그를 뜯어말렸다.
"야, 우리가 뭐 대스타냐? 왜 그렇게까지 해."
이영원은 주제에 대한 질문은 회피하고 나머지만 간단히 대답해 주고 안전하게 본선 참가 대기실로 이동했다.
"후우… 피곤하다. 피곤해 벌써부터."
웬만해선 지치지 않는 이영원이지만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 진땀을 빼며 대기실에 입장했다.
대기실 풍경은 경관이었다.
본선에선 출품한 아이디어를 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므로 다들 몇 가지씩 준비해 온 발명품이 있었는데, 그 발명품의 규모가 한 제법씩 했다.
'오, 다들 꽤 진지해 보이네.'
전기자동차 회생에너지와 관련한 아이디어부터, 자율주행에 관한 아이디어, 도로 위를 달리며 충전하는 도로 설계 아이디어, 청소 로봇에 요리 로봇까지.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학생뿐만 아니라 그를 봐주고 지지해 주는 교수와 학부모들까지 전부 총출동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이한수의 로봇이었다.
이한수는 축제 때 가져온 로봇을 개량해서 가져왔다.
'관세 구역에서 화물을 나를 수 있는 로봇이라고 했지.'
이한수는 일단 공모전에 내놓을 만한 현실적인 타협을 해서 전기 동력이 아닌 내연기관에 사람이 직접 탑승하는 방식으로 로봇을 개조했다.
무려 탑승형 이족 보행 로봇이다.
저것으로 수 톤의 선적물을 옮길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난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다들… 이미 대학생 수준을 넘어섰어.'
아이디어야 대학생 본인의 머리에서 나왔겠지만, 구현되기까진 아마 교수님들부터 졸업생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발명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것들도 자동차부터 로봇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시선을 빼앗아갈 만한 것들이었다.
그에 반해, 이영원은 단출하기 그지없는 모습.
"혀, 형님. 괜찮은 거예요? 다들 장난이 아닌데……."
전국 일류 대학들에서 인단을 끌고 와 떨치는 위세에 김완호는 완전히 위축되었다.
"형님, 뭐라도 준비해 오셨어야 하는 거 아닌지……."
그 말에 이영원은 그저 씩 웃기만 한다.
'이미 준비되었다고.'
그의 주머니, 손안에 잡혀 있는 물건.
전고체 보조배터리였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얻은 시제품이지.'
오늘 새벽까지 이영원은 이 시제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설비들과 씨름했다.
조립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꽤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성능 구현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뽑혀 나온 이 전고체 보조배터리 시제품.
그것을 마나 링크로 읽었을 때 나온 정보는 이랬다.
-대상 : 휴대용 전력 공급 장치
-상태 : 상(上). 손실률 10% 미만.
성공적이었다.
마인드 월드에선 손실률 5% 미만까지 내리는 데 성공했지만, 아무의 도움 없는 현실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뭔가 어디서 잘못된 건지 더 시간을 연구해서 알아내야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긴 하다.'
요즘 나오는 양산형 보조배터리의 손실률이 20~40%에 가까운 현실을 생각하면 틀림없는 혁신이다.
심지어 전고체 배터리.
이영원은 자신 있었다.
둥둥땅~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음?"
발신자는 유다인.
띡-
곧장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다인아. 무슨 일이야?"
-선생님… 소식 들었어요.
"아, 들었구나."
-네.
다인이는 그 대답 이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저기… 선생님.
"응, 다인아. 말해."
-꼬, 꼭 입상하세요.
"……."
-응원할게요.
이영원은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제자의 응원을 받는 건 언제나 환영이었다.
"고마워. 잘하고 올게."
-그, 그리고.
"응."
이영원은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호, 혹시… 앞으로 필요한 일 있으면 저한테도 먼저 말해주시면… 그땐 꼭 나서서 도와 드릴게요. 제가 아직 부족하지만 제 지식으로라도 뭔가 도와 드릴 일이 있을지도…….
아마 유다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이었던 것 같다.
꽤 가깝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이 자신에게 말도 없이 공모전에 나간 게 조금 섭섭했고, 자신도 선생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
'아, 이 녀석. 설마.'
이영원은 제자의 애틋한 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대답한다.
"그래. 다음엔 너한테도 꼭 미리 말해줄게. 정말 고마워, 다인아!"
천재 유다인이 함께라면 지금 혼자 하는 개발 일에 날개가 돋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언젠가 동료가 필요해지긴 할 텐데, 그 동료가 자신의 제자, 그것도 천재 제자라면 그보다 믿을 만한 동료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