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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형 대마법사-104화 (104/318)

제104화

"여, 이영원! 왔구나!"

이한수가 이영원을 발견하고 곧장 다가왔다.

"어, 이제 막 도착했어."

"엥? 근데 왜 혼자냐?"

운전기사로 따라온 김완호는 아예 사람으로 쳐주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냥 딱히 같이 올 사람이 없었는데?"

"흐음. 그건 그렇고, 넌 시연 안 할 생각이야? 본선에선 아이디어 시연 기회가 있잖아. 몰랐어?"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럼 왜 빈손으로 왔는데?"

이영원은 그 말에 자기 주머니를 가리키며 웃는다.

"가져왔지, 이미."

"엥? 그렇게 작은 거라고?"

뭔가 휴대폰 같은 게 들어 있긴 한 것 같은데 자동차며 로봇이며 다른 팀들의 시연품들에 비하면 미약하기 이를 데 없는 크기였다.

"참고로, 말은 안 해줄 거야. 이따 내 발표 시간 되면 그때 알게 될 테니 기다려."

이영원은 이한수가 묻기도 전에 미리 철벽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한수는 당장에라도 꺼내보라고 이영원의 몸을 수색할 태세였다.

"치사한 자식……!"

"하하. 근데 내가 전에 힌트 줬잖아. 너네 동아리 총평회 갔다 온 이후로 영감을 받았다고. 궁금하면 한번 잘 추리해 봐~"

"……."

이한수가 선 자리에서 손을 턱에 괴고 생각에 잠긴 사이, 이영원은 손을 흔들곤 조용히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와글와글.

촬영팀부터 참가자들의 인단으로 이 코엑스 전시관이 가득 찼다.

'이런 분위기를 예상한 건 아니지만… 뭐, 상관없어. 여기선 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이것'이 중요한 거니까.'

이영원은 주머니에 든 배터리를 소중하게 만지작거렸다.

"형… 진짜 괜찮은 거죠? 전 형님이 본선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김완호는 끝까지 다른 참가자들이 내뿜는 압도감에 사로잡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완호야."

"네, 형."

"이따 눈 크게 뜨고 잘 봐. 넌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는 거니까."

"……."

김완호는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그 말을 곰곰이 되짚으며 조용해졌다.

*     *      *

참가자들이 시연할 물건을 정비하는 사이, 심사위원들이 하나둘 전시관에 도착했다.

찰칵! 찰칵!

기자들의 카메라가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심사위원들은 뜻하지 않게 자기들 얼굴을 전국에 내보내게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고서를 좀 더 검토하고 오는 건데.'

특히 오성전자 김승우 부장은 쓴침을 삼켰다.

원래 대학생 공모전이라는 게 이런 분위기가 아니다.

본선이라고 해봤자 어린애 장난 같은 발표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시간을 떼우다가, 대충 인상에 남았던 한 개를 골라서 입상시키고 정리하면 끝나는 일이었단 말이다.

'쳇… 상금이 5천만 원이 되는 바람에 실력 있는 애들이 많이 몰린 모양이야.'

기존엔 상금이 많아야 500~1,000만 원 선이었는데, 이번엔 특별히 5,000만 원이나 된다. 그 바람에 참가자들이 더 몰렸다.

그래서 지금 앞에 보이는 것처럼 여느 때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귀찮긴 해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여기서 방송만 잘 타면 내 인생도 승승장구다……!'

위에 계신 본부장, 이사, 그리고 그보다 더 위에 계신 우리 로얄패밀리분들까지.

오성그룹을 대표해서 방송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일단 심사평을 통해 전문성을 보여주고,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일 먼저 컨택해서 우리 오성전자의 것으로 만든다.'

그럼 확실히 점수는 좀 딸 수 있을 테다.

김승우 부장은 짬처리 하는 심정으로 심사위원 역할을 맡았다가, 그래도 새옹지마처럼 인생역전의 기회를 맞았으니 이 상황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라이브 방송용 카메라가 스탠바이 중이니, 이 모습을 그룹의 높으신 분들이 실시간으로 다 보게 되리라.

그걸 의식한 김승우 부장은 자세를 고쳐잡고 위엄 있는 전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행 실수와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은 절대 해선 안 되었다.

곧 심사위원 일곱 명이 전부 자리에 착석했고, 오후 2시가 되었다.

미래혁신기술 아이디어 공모전, 본선 시작이다.

"네, 그럼 본선 진행하겠습니다. 참가자들, 순번대로 발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10명의 본선 참가자는 투고된 순서대로 순번을 지급받았다.

비교적 마감일이 다 되어 투고한 이영원의 순번은 9번이었다.

방송가 사람들은 이영원의 순서를 가장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본선 거의 마지막까지 시청률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쾌재를 불렀다.

곧 1번 참가자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경기도대학에 재학 중인 최재형이라고 합니다. 발표 및 시연 시작하겠습니다."

도시 설계 분야에서 꽤 인지도 있는 대학에서 나온 1번 참가자의 아이디어는, 달리면서 전기자동차를 충전시킬 수 있는 도로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공사 비용과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매설 방식보다는 가드레일이나 연석 쪽에 장치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충전 시스템 구현을……."

경기도대학교 4학년 최재형의 발표에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 줬다.

다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본선의 그림 자체는 잘 뽑히고 있었다.

대략 20분가량 발표와 시연이 있고 나서, 비로소 심사위원들의 총평이 나온다.

먼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공무원.

"네, 최재형 학생의 아이디어 잘 들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것 같고요. 특히 기존 매설 방식의 한계를 설명해 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간결한 총평이었다.

그다음 대현반도체의 구성민.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다만, 학생의 의견이 실현되려면 자동차 제조회사들의 협조도 필요하겠군요. 아래가 아닌, 양 옆으로 충전 가능한 설비를 차량에 설치해야 할 테니까요. 앞선 의견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유지 관리가 편리한 가드레일과 연석을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업계에 많은 영감을 줄 것 같군요.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승우 부장 차례가 왔다.

김승우는 목에 힘을 주었다.

"네, 저도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만,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약간 아쉬운 생각이 드는군요. 달리면서 무선 충전이 되려면 자동차와 충전 장치가 가까워야 하는데, 가드레일이나 연석을 이용하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 충전이 잘 안 될 거 같아요. 그로 인해 운전자들이 가드레일과 연석 가까이 운전하는 습관을 들이기라도 하면 큰일이고요. 더 먼 거리에서도 자유로운 충전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온다면 아이디어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견 잘 들었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에 비해 시니컬하긴 하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기에 참가자를 비롯한 대부분 참관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편, 이걸 관람하고 있는 몇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다.

"오, 뭐야. 이런 행사도 꽤 재밌잖아? 그동안은 왜 홍보를 안 한 거지?"

"그러게. 기업들이 하는 전시관은 많이 다녀봤는데 이런 느낌은 새롭다. 대학생들이 이 정도로 준비해 왔다는 것도 신기하고."

주변 반응을 보니 아마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도 비슷하리라.

방송가 관계자들은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후 2시라는 애매한 시간대의 실시간 방송의 시청률이 3%대까지 올라갔다.

'대박이다. 대박이야.'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모전 본선이었다.

발표는 순서대로 계속 진행되었다.

전기자동차의 회생에너지를 개선시키는 아이디어부터, 요리 로봇, 청소 로봇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여섯 번째 참가자의 차례가 왔다.

"다음분 발표 시작해 주세요."

"안녕하십니까? 대한대 로봇공학과 3학년 이한수입니다."

앞선 참가자 중 없었던 첫 3학년이 등장했다.

그 전엔 모두 4학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무엇보다 이한수가 가져온 로봇이 큰 관심을 끌었다.

"와… 저걸 저 친구가 만든 거야?"

"저 정도면 거의 시제품에 가까운데? 대박이다, 진짜."

이한수가 발표를 시작했다.

"제 아이디어는 관세 구역처럼 무겁고 큰 수하물이 많은 장소에서 쓸 수 있는 이족보행에 탑승이 가능한 로봇에 관한 것입니다."

찰칵! 찰칵!

이한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직접 로봇에 오르기 시작했다.

단지 활동을 보조해 주는 엑소슈트라고 하기엔 덩치가 3미터가량으로 컸다. 진짜 미래 로봇을 영접한 듯한 위용.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말보다는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오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심사위원들도 눈매를 좁히고 유심히 그것을 쳐다봤다.

기잉-!

로봇은 이한수의 조작에 따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준비된 선적물에 다가갔다.

대략 1톤가량 되는 정사각형의 물건이었다.

푸쉬이이잉-

프레스음과 함께 로봇에 힘이 작용한다.

그리고,

번쩍!

로봇이 물건을 집어 들었다.

또한 그것을 든 채 안정적인 걸음으로 이동해 정해진 곳에 물건을 안전하게 내려놓는다.

짝짝짝-

주변에서 소소한 박수가 나온다.

이한수가 로봇에서 내렸다.

"이처럼, 이 로봇은 1톤가량의 선적물을 안정적이고 손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관세 구역에 있는 골리앗크레인을 대체 내지 보완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한 결과입니다."

골리앗크레인은 무지무지 비싸다.

그뿐만 아니라, 무거운 콘테이너를 옮기다가 바람이 불어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수하물이 파손될 뿐만 아니라, 끔찍한 인명 피해가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기술자 한 명을 교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기술자 한 명이 한 시간대에 일하는 속도에 맞춰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물류 이동이 지연된다는 단점이 있다.

높은 크레인에 오르다가 바람이 불거나 미끄러져 기사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말이다.

"오, 상당히 대단해 보이는 로봇이네요. 이한수 학생, 그런데 로봇 조작이 어렵진 않나요?"

"누구든 30분만 교육받으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흔한 포크레인 작동보다 훨씬 쉽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술렁술렁.

이한수의 당찬 대답에 좌중이 술렁인다.

그때 김승우 부장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또 문제점이 보입니다. 그 로봇으로 대략 1톤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는데, 보통 관세 구역의 콘테이너는 훨씬 크고 무겁지 않습니까? 그 로봇이 어떻게 골리앗크레인을 대체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죠?"

이한수가 막힘없이 대답한다.

"그건 로봇 간 협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버전으론 4대가 있으면 5톤급 컨테이너를 옮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대를 움직이면 골리앗크레인보다 훨씬 빠른 물류 작업이 가능해질 겁니다."

김승우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수가 대답을 이었다.

"동시에 여러 개를 움직일 수 있는 데다가, 프로그래밍으로 안전에 관한 장치를 설계하면 기사들의 안전 사고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짝짝짝-

주변에서 또 박수가 나왔다. 조금 전보다 큰 박수였다.

구성민 부장이 마무리했다.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인 거 같군요. 꼭 관세 구역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만능 로봇이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에 이한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이족 보행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로봇은 개량을 거듭하면 우리 인류 산업 전체에 공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험한 일은 로봇이, 두뇌를 쓰는 일은 인간이 담당하는 시대가 될 거라는 말이었다.

이에 좌중들의 박수가 한 번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네, 이한수 학생 아이디어 인상 깊게 잘 들었습니다."

이한수는 발표와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심사위원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뒤 자기 좌석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이영원과 눈을 마주치고 씩 웃어 보인다.

'어떠냐? 날 이길 수 있겠어?'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 이영원도 느낄 수 있었다. 이영원은 그저 미소로 거기에 응했다.

분명 압도적인 반응이었다.

지난 5명의 참가자보다 월등히 좋은 반응.

아이디어 발표며, 시연이며 모두 성공적이다.

이한수의 발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다음 참가자들 중에서도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이한수의 입상이 유력해 보였다.

그리고, 비로소.

"다음, 9번째 참가자 발표해 주세요."

"네."

이영원이 단출하기 그지없는 맨몸으로 발표 무대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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