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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형 대마법사-127화 (127/318)

제127화

축구 경기는 학과당 참가 인원이 최소 11명이고 25분씩 전후반 총 50분을 뛰어야 한다.

체력적인 부담이 크고 많은 인원을 모집해야 하는 만큼 학과 내 축구팀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학과에서 기권을 선언하고 참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자연과학대가 그랬다.

"와아-! 골!"

"김완호 잘한다!"

"나이스 패스, 이영원!"

자연과학대에서 축구 경기에 참가한 학과는 통계학과와 물리학과뿐.

그리고 나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골키퍼로서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면서 정확하고 강력한 초장거리 패스로 바로 역습으로 이어주는 플레이.

전반 25분 만에 우리는 무려 다섯 골을 넣었다.

통계학과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듯했다.

전반이 종료되고 주어지는 5분간 휴식.

물리학과 응원단이 우리 팀 선수들에게 물과 수건을 들고 간다. 그리고 선수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후반전에도 뻔하게 이어질 경기 결과를 미리 자축했다.

"완호 선배! 다섯 골 대단해요!"

"하하! 대박! 우리 진짜 우승할지도 몰라!"

"볼 점유율 우리 쪽이 80%는 될 듯?!"

동기들과 자축을 한 김완호가 곧 내게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짝!

"형! 형은 못하는 스포츠가 없는 거예요?!"

"뭐, 대충 그렇다고 봐야겠지?"

내 완벽한 패스를 경험한 김완호가 물었고, 나는 너스레로 화답했다. 그러자 김완호가 크게 웃어젖힌다.

나는 김완호와 동기들의 기쁨에 장단을 맞춰주며 은근히 관중석 쪽을 살폈다.

'안 왔나 보네.'

어제 내내 우리 쪽 응원단에서 함께했던 예림이.

그리고 말없이 집에 볼일이 있다며 돌아가서 한참 연락이 안 되던 예림이.

난 경기를 뛰며 괜스레 녀석이 신경 쓰였다.

'뭐, 오늘 밤에 보기로 했으니. 별걱정 안 해도 되겠지.'

어쩌면 지금은 평소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와 의예과 진영에서 응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내 보이지 않는 예림이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다시 경기를 시작했다.

후반전 경기는 전반보다 더 했다.

전의를 잃은 통계학과의 경기력은 더 처참히 무너졌고, 흥에 받친 우리 물리학과의 기세는 더욱 등등했으니까.

털썩.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체육대회면 수학과와 나란히 자연과학대 밑을 깔아주던 예전 물리학과가 아니었다.

통계학과는 자신들의 계산에서 한참 벗어난 물리학과의 경기력에 허탈한 패배를 맛본 뒤 씁쓸하게 물러났다.

곧 이어지는 본선.

본선 첫 번째 상대는 역사교육과이다.

"얘들아. 저 김완호만 조심하면 돼! 이영원의 패스만 잘 커트하면 이기는 거 쉽다!"

"예!"

골키퍼인 나와 원톱 스트라이커 김완호를 제외하면 완전히 병풍 취급이다.

그런데 우리 팀 병풍 플레이어 9인은 그 말에 별로 자존심도 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자식들, 어깨를 펴라!'

삐익! 뻥!

역사교육과의 선제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원톱 스트라이커 김완호를 피해 패스를 돌리며 우리 팀 진영 왼쪽을 파고든다.

"으읏!"

우리 동기들은 공을 빼앗아보려고 발을 뻗어보지만 단순한 페인팅 동작에 걸려 상대를 놓쳐 버린다.

"후후, 역시. 별거 아니라니까!"

하지만 여기까진 통계학과와의 경기 초반과 수순이 똑같다.

나와 김완호를 제외하면 드리블 한 번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초짜들.

이들을 제치는 건 일도 아니다.

"여기야! 패스!"

곧 왼쪽에서 크로스를 올려준다.

트래핑으로 공을 받은 공격수가 나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하! 그냥 프리패스구만!"

"……."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어줬다.

능수능란하게 드리블을 하며 날 넘으려는 녀석.

"일대일 찬스야! 명우야, 1점 가즈아~!"

"위험해! 얘들아, 더 쫓아가서 붙어!"

각 진영에서 터져 나오는 상반된 반응.

툭!

날 완전히 속였다고 생각한 스트라이커가 페이팅 동작을 준 뒤 골 구석으로 공을 밀어넣는다.

하지만,

텁!

"……!"

내가 엄청난 역동작으로 공을 잡아낸다.

"마, 말도 안 돼!"

체육대회 하며 저 말을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겠다.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

이러나저러나 이제 우리 차례다.

"완호야! 받아라!"

뻐엉!

시간 틈을 두지 않은 초장거리 패스.

공은 엄청난 높이로 공중에 떴고, 순식간에 하프라인을 넘었다.

"막아!"

하지만 역사교육과는 통계학과보다 조금 더 강적이었다.

김완호를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김완호 곁에 순식간에 세 명이 붙었다.

'제법이네.'

타앗!

김완호는 노련한 몸짓으로 트래핑하고 드리블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압박해 오는 세 사람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악!"

태클에 공을 빼앗기는 김완호.

슈팅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태클도 반칙 판정이 되지 않았다.

"후후. 너희 팀 전략은 너무 뻔해서 우리한텐 안 통해!"

김완호로부터 공을 빼앗은 학생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곧장 드리블을 시작했다.

역사교육과의 역습이다.

"어억!"

"안 돼!"

우리 동기들이 열심히 따라붙었지만 노련한 패스 플레이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번엔 동시에 들어간다!"

"오케이!"

금세 골대 근처까지 오는 역사교육과 공격수들.

나는 정면으로 공을 몰고 오는 녀석을 향해 접근했다.

골키퍼는 공을 가진 공격수와 대치 상황에서 슈팅 각을 좁히기 위해 골문에서 나가 가까이 붙어야 한다. 이것은 상식.

'상식대로 움직여 줘야지. 암.'

공을 몰던 놈이 씩 웃고 측면에서 따라 들어오던 동료에게 패스를 줬다. 전형적인 세트플레이였다.

그런데,

투웅!

"……!"

공이 중간에 커트되었다.

'봐주려고 해도 워낙 느려서 말이지.'

보통 인간이라면 프로급 선수라도 방금 같은 상황에서 골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감각과 근력이 탈인간급인 데다 녀석들이 어떤 플레이를 할지 훤히 꿰고 있다.

그러니 눈앞에서 일어나는 패스를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중간에 커트하는 게 가능하다.

"뭐, 뭐야 방금?"

뒤에서 뜻밖의 상황에 멍하니 서 있을 상대편 공격수들을 버려두고 나는 힘차게 달렸다.

"어, 어?! 골키퍼가 드리블한다!"

"뭐야 이거!"

퉁! 퉁!

그야말로 돌진.

나는 공을 발에 붙인 듯 드리블하며 스프린터처럼 달렸다.

우리 팀 동기들과 상대편 선수들을 엄청난 속도로 제쳐 버린다.

"어, 어어?!"

김완호를 둘러싸고 있던 수비수들은 당황해서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슛.

나는 공을 즈려밟아 가볍게 공중에 띄웠다.

"헥토파스칼 키이익!"

꽈아앙! 촤르르륵!

곡예에 가까운 킥이 공에 작렬했고, 공은 엄청난 파공음을 일으키며 골문을 뒤흔들었다.

골키퍼는 쫄아서 손으로 자기 얼굴을 방어할 뿐,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와아아아!"

"우, 우와! 미쳤어!"

술렁술렁.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전부 벌떡 일어났다.

방금 골키퍼가 다대일에 몰려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역습이 일어났고 골이 터졌다.

거기까지 고작 약 10여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직도 얼떨떨한 역사교육과 선수들과 관중들.

우리 동기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 우와아! 영원이 형!"

"대박……!"

다들 달려와 나에게 매달린다.

나는 가벼운 골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여유롭게 골키퍼 자리로 돌아갔다.

"어, 어떡해야 해?"

"뭘 어떡해. 이번 건 저쪽이 운이 좋았을 뿐이야……!"

또 내가 공을 몰고 나오면 김완호와 나 중 누굴 막아야 하느냐는 수비수의 질문에, 상대 팀 주장은 이번 골을 운으로 치부하고 기존 작전을 속행시켰다.

그것이 역사교육과의 패착.

촤르르륵!

또다시 내가 골을 넣었다.

이번엔 하프라인에서 찬 중거리 대포알 슛이었다.

"와아아아아!"

아니, 나를 집중마크 하라고 전략을 수정하지 않은 걸 역사교육과의 패착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전략을 쓰든 결과는 정해져 있어.'

미안하지만, 이번 체육대회는 물리학과가 주인공을 해야겠다.

그동안 무시 받은 것에 대한 설욕이자, 날 믿고 따라주는 우리 동기들에 대한 선물이다.

"이영원! 이영원! 이영원!"

관중석과 우리 응원단 쪽에서 내 이름이 크게 연호되었다.

그렇게 50분이 흐르고, 역사교육과는 7 : 0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안고 코트에서 퇴장했다.

*     *      *

방금 종료된 역사교육과와 물리학과의 축구 경기에 에브리원타임 어플은 또 불난 듯 시끄러워졌다.

<오늘 내가 본 게 대체 뭐냐?>

-무슨 소림축구 보는 줄 알았다. 아무리 대학 체육대회라지만 이영원 저 사람은 미쳤어. 당장 선수로 뛰어도 손색이 없다.

근데 축구부는 뭐 함? 저 사람 안 데려가고! 삼강대회 때 저 사람만 있으면 민국대랑 성학대 상대로도 우승 가능할 듯.

이런 종류의 글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왔고, 이영원에 대한 이야기로 핫게시물이 도배되었다.

여기에 댓글도 엄청 달렸다.

ㄴ나도 지금 보고 온몸에 소름 돋았다 ㅎㄷㄷ;

ㄴ전성기 때 날두 보는 것 같았음.

ㄴ에이, 그건 네가 축알못이라서 그런 듯. 무슨 물리학과에서 날두가 나와 ㅎ

ㄴ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 경기 봄? 안 봤으면 제발 아가리 묵념 좀;

ㄴ또또 시작했구만. 이영원 그 인간은 대체 정체가 뭐야. 뭔데 이렇게 화제를 모아.

ㄴ하여튼, 물리학과가 옛날 같지 않음. 너드 찐따들이 아니야. ㅈㄴ 개쎔.

이 사실을 모르는 이영원은 그저 우승만 생각하며 동기들과 전의를 불태울 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본선 2차전에서 또 재미난 상대를 만났다.

"영원이 형… 후후. 축구에선 다를 겁니다."

"유소년 축구단 출신인 내가 있는 한 피구 때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정환과 유정수가 이끄는 의예과.

이영원은 다시 이 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홍예림은 의예과 응원단 쪽에서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

*     *      *

홍예림은 뒤늦게 학교로 출발했다.

어젯밤부터 심경이 복잡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오정환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내가 영원 오빠를 장난감이나 흥밋거리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당연히 본심은 그렇지 않다.

본래 존경할 수 있는 남자에게 끌렸던 홍예림.

홍예림은 이영원을 존경할 수 있었기에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3자가 봤을 땐 오정환처럼 생각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이영원을 대상으로 한 내기에 참가하고 돈을 따간 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경솔하게 살았던 거 같아…….'

홍예림은 언제나 인싸였고, 상류층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남다른 루트를 밟은 건 아니다.

평범한 학교, 평범한 재수학원을 거쳐 평범하게 대학에 들어왔으니까.

그렇지만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신보다 못한 또래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행해왔던 일들이 있었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행했던 일들.

하지만 그것이 제3자가 봤을 땐 문제 있는 행동이 될 수도 있음을 처음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오빠에게 큰 상처를 줬어.'

자신이 한 일을 이영원이 알면 분명 그렇게 느끼리라.

이영원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이르자, 홍예림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까지 했던 것이다.

홍예림은 어제 밤을 지새우며 인생을 돌아봤고, 비로소 결론을 냈다.

'사과해야 해.'

이영원에게 친구들과 내기한 걸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정면돌파였다.

물론 두렵다.

이영원이 솔직하게 자백하는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그러면 난 어떡하지……?'

그 생각만 해도 당장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오정환의 입을 통해 말이 전해지기 전에 자기 입으로 먼저 말하는 게 나았다.

문제는, 공교롭게 본선에서 의예과와 물리학과가 다시 만나 버렸다는 것이다.

오정환이 재수 때 이후로 바뀐 이영원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한 둘이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홍예림의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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