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성공이야!"
"하하! 해냈다! 해냈어!"
연구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아직 반도체 후공정 과정은 시작도 못했는데 벌써 다 이룬 듯한 반응들이다.
물론 그럴 만도 하다. 이것만 해도 전 세계 세 번째니까.
그러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들의 기쁨에 초를 쳐야 했다.
"저도 기쁘지만 여러분들께서 곧장 해주셔야 할 다른 일이 있습니다."
"엑? 벌써요?"
"네, 이제 며칠 뒤면 오프라인 스토어가 오픈하고 휴대폰과 노트북을 출시해야 해서요. 전 세계 라이브 방송도 다시 합니다."
"우, 우와아."
"맞다. 라이브 방송 한다고 했었지……! 근데 오프라인 스토어까지?"
오프라인 매장과 관련된 내용은 연구원들 모르게 진행된 것이라 이들은 지금에야 소식을 접했다.
"알았으면 같이 준비하는 건데!"
"형님, 스토어는 어디인가요?"
"강남 한복판. 가장 알짜배기 위치에 있는 건물을 구매했어."
"우, 우와아-!"
"가보고 싶다!"
"왜 얘기 안 해줬어요!"
이영원들이 연구원들을 말렸다.
"말씀 못 하고 진행해 버려서 미안합니다. 다들 바빴잖아요. 어차피 강남 쪽에 오픈할 생각이었고,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헐… 그럼 소장님은 실리콘 추출기며 1나노미터 세공 핵심 부품도 만들면서 매장 준비까지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것뿐만 아니라 H&C사를 정상화시키는 일도 했다.
'마인드 월드에서 개인 훈련과 공부도 물론이고.'
그나마 연구원들이 반도체 설비를 제때 완성시켜 줘서 손을 덜었을 따름이다. 원래 이들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플랜도 짜두었는데 말이다.
아마 나의 살인적인 일정을 알면 전부 까무러치리라.
"그렇게 되었네요. 아무튼 바로 휴대폰, 노트북 출시를 준비해 주셔야 할 거 같아요."
"헐… 뭐야. 이겼지만 진 거 같은 이 기분은……."
"…과연, 형님의 추진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연구원들은 날 이겼다는 기쁨을 살짝 잃어버린 듯했다.
내가 피식 웃고 그들의 등을 두드려 줬다.
"승부는 여러분이 이긴 게 맞으니, 해외 여행은 가겠습니다! 자자, 이제 또 갈 길이 수만 리예요. 어서 일합시다!"
1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핵심 설비가 완벽하게 만들어졌으니 한시름 덜었다.
예정대로 늦지 않게 체슬라와 계약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을 듯했다.
매장 오픈과 함께 공개할 휴대폰, 노트북은 시제품 정도로 족하니 나머지 반도체 공정은 내 마나 능력으로 커버하면 된다.
참고로 체슬라에 줄 물량은 우선 두 달 내로 0.3나노미터 반도체 칩 100개와 1나노미터 반도체 칩 1만 개.
그것으로 자동차와 로켓에 관한 기술 일부를 양도받기로 했다.
자동차는 자율주행에 대한 핵심 노하우가 것이 될 것이고, 로켓은 수직 이착륙에 관한 노하우가 될 것이다.
이론과 현실이 다른 만큼, 실무를 경험해야 알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우리 01인더스트리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된다.
그 시행착오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기회비용의 낭비를 없애는 게 반도체의 대가인 셈이다.
"여기, 다른 회사들 휴대폰과 노트북 설계도가 있습니다. 이걸 참고해서 만들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전문 사진사, 디자이너, 음악가들이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프로그램을 내장할 생각입니다. 다들 연구 개발에 참고해 주세요."
"헉……!"
"형님, 시제품 선보이는 날이 4일 뒤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안에 그걸 다……?"
내가 웃으며 말한다.
"물론 발표까진 하드웨어만 완성되면 돼. 소프트웨어는 더 장기 프로젝트인 셈이지."
"아~ 그럼 삽가능이지."
"난 또 뭐라고. 하하. 그 정도는 껌이지."
연구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러갔다.
원래 4일 내 시제품용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라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주문. 내 손에서 탄생할 반도체 칩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성품을 사용한다는 점을 빼놓고 봐도 말이다.
하지만 나의 살인적인 일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고, 소프트웨어까지 만들 뻔한 걸 하드웨어만으로 끝낸다고 하니 불평이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다루니 참 순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밀레~ 공밀레~
에밀레종에 아기를 인신공양하여 에밀레 소리가 난다면, 밤낮 불 켜진 연구소에는 공돌이 공순이들을 공양하여 공밀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세상에 공돌이 공순이를 갈아넣어서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시에라 : 3일 내로 디자인 시안이 필요하시다고요?!
-아오이 : 헉… 너무 이른 거 아닐까요? 영감을 떠올릴 시간도 충분히 필요한데ㅜㅜ
-다니엘 : 흠…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흡족한 결과물이 나올진 모르겠네요.
바로 디자이너들.
아직 나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런 듯했다.
'적어도 3일 내로 디자인이 나와야 4일째 공장에서 시제품을 뽑아내는 게 가능해진다.'
-영원 : 꼭 완성형이 아니어도 돼요. 말 그대로 시제품입니다. 공식 판매 때는 여러분이 모두 만족할 만한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드릴 테니, 시제품용 디자인을 만들어주세요.
-아오이 : 네 알겠습니다…ㅠㅠ
-시에라 :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니엘 : 그렇다면 한번 해볼게요!
제품 디자인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제품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성능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디자이너들과 연구원들이 서로 소통하며 협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이런 앓는 소리를 한다면… 연구원들과는 아예 불통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예상하긴 했지만, 결국 예상대로였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앞으로 다른 문제가 터지기 전에 예방하는 조치였다.
-영원 : 여러분, 오늘이나 내일 중에 당장 한국에 들어올 수 있나요?
내 물음에 세 디자이너들이 화들짝 놀랐다.
-시에라 : 오늘이나 내일이요……?!
-아오이 : 헉, 갑자기요?
다들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며칠 전만 해도 각자 자기 일상이 있었던 만큼 즉흥적으로 한국행을 하기엔 무리가 있을 터.
'하지만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연구원들과 달리 디자이너들은 버프와 마나 인핸스를 겪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버프를 걸어 능력치를 끌어올려 주고 우리가 연구소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줘 자극을 줄 참이다.
-영원 : 한 달 정도 체류하면서 저희 일 하는 것도 보시고 한국 여행도 하세요. 전액 회사 경비로 지원해 드리고 출장비 명목으로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이에 디자이너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아오이 : 그럼 바로 짐 쌀게요!
-시에라 : 저도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다니엘 : 저도요!
이 사람들, 한 달간 합숙을 통해 우리 01인더스트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게 해야겠다.
지옥의 합숙이 될 것이나, 그 시간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악마의 미소를 숨기고 사람 좋아 보이게 씩 웃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 * *
한편, 동남아의 어느 이름 없는 섬.
"박사님, 지시하신 일을 전부 완수했습니다."
"알겠다. 그만 물러가라."
보스나 회장 등 다른 호칭보다 박사로 불리길 바라는 사람.
오성수 박사는 수하들을 돌려보냈다.
그가 수하들에게 지시한 일이란 연구 개발에 필요한 온갖 재료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오성수는 부하들이 가져왔다는 '물건'을 향해 발걸음했다.
'그럼 어디.'
그가 처음 자리를 잡아갈 때만 해도 이곳은 이름 없는 농부의 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갖 기계 설비로 사면이 가득한 영락 없는 연구소의 모습이다.
스륵-
오 박사가 부하들이 가져온 컨테이너 박스를 열었다.
하지만 거기엔 지금까지 가져왔던 연구 재료와는 조금 다른 게 들어 있었다.
"누, 누구시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여긴 어디야? 당신 누구야! 날 집에 보내줘, 어서!"
우글거리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밖으로 나와라."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
퍽!
"쿠어어억-!"
반항이 가장 심하던 어떤 남자는 그에게 보디블로를 한 방 맞고 먹었던 모든 걸 게워냈다.
그리고 오박사는 컨테이너 한쪽 모서리를 잡아 손아귀 힘만으로 철근을 찰흙 다루듯 찌그러뜨려 버렸다.
꾸지지직!
"헙……!"
"이, 이럴 수가……!"
오 박사는 컨테이너에 들어 있던 사람들에게 다시 말했다.
"밖으로 나와라. 안 그러면 이대로 바다에 던져 버릴 테니까."
우다다다.
힘을 보여주자 비로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밖에 나와 가지런히 도열했다.
"앞으로 너희는 나의 연구를 돕게 될 거다."
"어떤 연구를……!"
"질문은 금지. 여기선 어떤 질문도 불허한다.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사람들은 온몸이 기계로 둘러진 그의 모습을 보고 그저 침만 꿀꺽 삼켰다.
"조용히 따라와라. 반항자는 그 즉시 처형이니 명심하고."
"……."
"……."
합죽이가 된 사람들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한편, 부하들이 잡아온 이 사람들은 전부 과학계 한 분야에서 최고로 자리잡은 사람들.
즉, 모두 과학자들이었다.
"여긴……."
"연구소……? 이런 데 연구소가 있어?"
설마 저 괴력의 기계 인간이 과학자일 거라곤 생각 못 한 모양이다.
그때 과학자 중 한 사람이 오성수의 얼굴을 알아봤다.
"어, 어엇! 설마 당신……!"
"……."
"매드사이언티스트, 오성수 아닌가?!"
이에 씩 웃어 보이는 오성수.
"나를 아직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설명할 시간을 아낄 수 있겠군."
그 말을 끝으로 오성수는 연구소 한편에 있던 무언가를 던져줬다. 손바닥만 한 것이었다.
"이건……."
01보조배터리와 비슷하나, 그것과 조금 다른 외형을 가진 물건이었다.
"내가 만든 전고체배터리다. 너희가 할 일은 우선 그걸 개량하고 양산하는 것이다."
"……!"
"……!"
세계 각지에서 온 과학자들이 그 말에 기함했다.
"설마……! 전고체배터리를 만들어낸 것이오?!"
"세상에… 이영원 그자 말고 다른 천재가 있었다니."
오성수는 천재라는 소리에 은근히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도 손은 두 개뿐이다.
연구와 개발에 한계를 느낀 오성수는 자신을 도울 조수들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부하들을 통해 저명한 과학자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나는 머지않아 그놈을 뛰어넘을 것이다. 너희는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럼 지금 이영원이 받고 있는 모든 영광을 너희가 받게 될 테니까. 나 오성수와 함께!"
"……."
"……."
납치되어 온 과학자들은 그 말에 합죽이가 되었다.
절망감이었다.
그의 말인즉, 여길 빠져나갈 날은 오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 적어도 이영원을 이기겠다는 말은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슨 수로 그자를 이기겠다고…….'
'아무리 오성수가 천재라 해도 이영원한텐 안 될 텐데…….'
'저자는 한참 옛날에 망한 퇴물 아니었나……?'
하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모르고 있었다.
오성수의 천재성은 그들의 생각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이내 오성수는 과학자마다 임무를 하나씩 할당했다.
돈, 물자 무제한.
심지어 윤리와 도덕마저 버릴 수 있는 이곳.
어찌 보면 과학자들의 파라다이스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오성수의 밑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야 추호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살고 싶으면 이 이름 모를 섬의 주인인 오성수의 말을 듣는 수밖에.
* * *
"미스터 리!"
"영원 사마!"
미국에서 한국으로 디자이너들이 도착했다.
"어때요. 한국 온 소감이."
"전 너무 기대돼요. 특히 한국의 문화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아주 사랑하고 있었어요."
"우리 회사의 모습이 어떨지 정말 기대됩니다!"
시에라, 아오이, 다니엘에게 소감 한 마디씩 듣고 곧장 차에 태웠다.
"연구소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차로 한 40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서울 도심은 3일 뒤에 데려갈 수 있겠네요."
오프라인 스토어 오픈에 맞춰 디자이너들을 데려갈 셈이다.
"어때요, 미국에 비하면 촌처럼 보이죠?"
"아, 아뇨~ 그보다 산이 정말 많네요. 그게 인상 깊어요."
"후후. 등산도 같이 하면 좋겠네요. 한국엔 명산이 많거든요."
"뭐든요. 여기서 보낼 시간을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설레고 있는 디자이너들.
여기서의 시간이 아무쪼록 많은 영감을 주는 시간이길 바란다.
부릉~
자동차는 이 세 사람을 태우고 지옥의 합숙소로 향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도 처음엔 울고 불며 치를 떨던 그곳.
바로 01물리학연구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