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끼익.
몬스터트럭이 KS에너지 공장에 도착했다.
거기서 이영원이 보게 된 것은 엄청난 크기의 설비였다.
"조금 더 이쪽으로요! 37번 레일 위치가 살짝 안 맞아요!"
"오라이! 오라이!"
연구원들은 거기서 기술자들을 지휘하느라 이영원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영원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셔터 소리에 비로소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
"어?! 영원이 형!"
"오빠?"
"소장님, 오셨군요."
이영원이 가까이 다가간다.
"오~ 이게 자동차를 만들 3D 프린터인가요?"
"네, 01인더스트리만의 자동차를 만들 새로운 형태의 3D 프린터예요."
"엄청나다……."
유다인의 설명에 이영원이 감탄을 내뱉었다.
백여 개의 잉크 분사 장치와 그 옆에 자리한 레이저 발사 장치가 군집을 이루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오빠가 신물질 개발에 실패하거나 늦을 경우를 대비해 설계해 봤어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금속 3D 프린터가 될 거예요."
"오호."
프린터기에 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보는 이영원.
마나 링크가 발동되었다.
-상태 : 다중복합 금속 3D 인쇄 장치. 미완성(공정률 79%)
아직 미완성의 상태지만 연구원들이 무얼 만들고 있었는지 딱 감이 왔다.
'이거… 연구원들이 엄청난 일을 해줬군.'
이영원은 유다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인아, 정말 고생 많았다."
"헤헤… 아니에요."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유다인.
이제 특별한 사이가 된 두 사람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특별한 관계.
"동시다발적으로 금속을 녹여 차체를 완성시키는 장치구나."
"네, 맞아요. 104개의 잉크 분사기와 레이저 장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빠르게 차체를 완성할 수 있어요."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놀라워. 생각을 단순화하여 이런 프린터를 착안해 냈구나."
하지만 그 발상 자체보다 그 발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실천한 걸 더 높게 사고 싶었다.
'이거, 내 손을 몇 번은 덜어주었는걸?'
이영원이 씩 웃었다.
유다인과 연구원들이 말했다.
"그런데 오빠는 신물질 개발 어떻게 되었어요?"
"성공이야."
"……!"
"서, 성공?! 어떤 건데요?"
진공 상태에서는 흐르지만 공기와 접촉을 통해 굳어버리는 신 금속 물질이었다.
"이름하여, 리퀴드메탈 No.2."
"리퀴드메탈……!"
리퀴드메탈은 이미 여러 생산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고온의 상태에서만 액체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프린터 잉크로 사용은 부적합했다.
그리하여 이영원은 고온이 아니라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금속을 만들었고, 그것이 <리퀴드메탈 No.2>다.
비록 잉크 상태를 진공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이는 프린터 잉크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 리퀴드메탈 No.2는 티타늄보다 강력하며 부식되지도 않는다. 또한 가볍다.
그야말로 프린터 잉크의 원료와 차체로 쓰기에 매우 적합한 물질인 셈이다.
"미쳤다… 말도 안 돼."
"그럼 이 프린터는 이제 쓸모없는 건가……?"
이영원이 답했다.
"아니, 쓸모없기는. 훨씬 좋은 조건이 된 거지! 여기서 잉크 카트리지를 진공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개량만 하면 돼. 다인이와 여러분이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아!"
그렇다.
기존 금속 분말을 이용해 50분에 1대를 생산할 수 있다면, 리퀴드메탈 No.2를 사용하면 십여 분 대로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다.
리퀴드메탈 No.2와 새로운 형태의 3D 프린터는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켜 자동차 생산에 혁신을 가져다줄 것이다.
"지금부턴 나도 도울게요. 진공 카트리지 개발하고 레이저 장치만 떼어내면 될 거 같습니다."
레이저 가공 절차가 생략되면 3D 프린터의 오작동 확률도 내려가고 생산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연구원들과 이영원은 설계 수정을 함께했다.
'역시… 영원이 형은!'
'오빠는 역시……!'
'소장님은 진짜 대단해!'
며칠간의 작업이 더 이어졌고, 결국 새로운 형태의 금속 3D 프린터기가 세상에 탄생했다.
"와아……."
"해냈다."
"이제 이걸 공장으로 가져가 보죠."
마나 링크상으로 양품인 게 다 확인되었다.
이제 직접 차량을 제작하는 일만 남았다.
이내 거대한 용달 차량에 장치를 인양하여 김포로 향했다.
* * *
물질 치환기는 3D 프린터가 완성되는 동안 리퀴드메탈 No.2를 대량 생산해 두었다.
다섯 골렘들이 이를 진공 상태로 보관하여 잉크도 준비가 끝났다.
"그럼."
진공 카트리지에 진공 포장해 둔 리퀴드메탈 No.2를 투입한다.
"떨린다."
"제발……."
"이거 성공하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거야. 제조업의 모든 프로세서가 재설정되어야 할 테지."
연구원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띠익.
위이이잉!
104개의 잉크 분사 장치가 각자의 위치에서 액체 금속을 주륵 흘리기 시작했다.
"한다!"
"움직여!"
액체는 공기와 접촉하며 곧장 굳어버렸다.
기잉, 척!
기잉, 처억!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1분여 만에 하단부가 거의 완성되어 버렸다.
"대박……!"
"이게 바로 리퀴드메탈……!"
위이이잉!
그렇게 10분여가 흐르고.
연구원들과 이영원은 시에라가 디자인한 세단 차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배터리, 동력장치, 바퀴, 센서, 배선 등 설치가 더 필요하고 마감 작업도 해야겠지만 차체를 하나의 프로세스로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짝짝짝짝!
"…와아아!"
"해냈다!"
"대단해! 대단한 발명이야!"
이내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는 연구원들.
어디로 보나 자동차였다.
무려 10분여 만에 탄생한 자동차.
"질감이 상당히 고급스러워."
"이게 리퀴드메탈……!"
"이게 가능하다니… 눈앞에서 보고도 믿시지가 않아."
"이제 자동차 만드는 것도 문제는 아냐……!"
"나머지 장치들은 기존 자동차를 분해해서 만드는 방법을 익히면 돼."
이영원이 말했다.
"여러분, 때가 왔군요."
"……?"
"몬스터트럭과 잠시 이별할 시간이 왔습니다."
"……!"
이영원은 다른 전기차 레퍼런스를 찾기보다 몬스터트럭을 레퍼런스로 써먹을 생각이다.
몬스터트럭이야말로 가장 진보한 전기차였고 최고의 레퍼런스가 될 모델이었다.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체슬라의 마스터피스니까.
"나머지 작업은 01인더스트리의 직원인 다섯 형제들이 도와줄 것입니다."
"오오……!"
"여러분은 이제 다시 연구소로 복귀해 주십시오. 전달 드릴 게 있습니다."
기성의 것을 모방하는 건 연구원들이 할 일은 아니었다.
연구원과 이영원은 함께 이동해 연구소 각자의 자리로 오랜만에 복귀했다.
"여기, 이걸."
사락, 사락.
또 공부해야 할 문건이었다.
바로 앨런 모스코가 칩의 대가로 전달해 준 전기차와 로켓에 대한 핵심 노하우.
그러나 로켓에 대한 건 아직 나눠주지 않았다.
"다시 공부 시작입니다. 유리가 자율주행에 상용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또 수고를 해주셔야겠군요."
"……!"
"…대체 이런 건 언제!"
"무려 체슬라의 노하우가 담긴 문서야……!"
연구원들은 앨런과 이영원 사이에 체결된 거래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고급 기술 정보가 담긴 문건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유리를 자동차에 탑재하는 임무만 해도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더 이상 자동차도 단순한 하드웨어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성능은 굳이 더 좋게 할 필요가 없다. 더 빠르고 강력한 엔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드웨어는 충분히 필요한 만큼 개발되었다.
이제 자동차도 소프트웨어다.
자동차도 결국 소프트웨어로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제 연구원들은 유리를 자동차에 완벽히 이식하고 단순히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로 도로에서 굴러갈 정도로 학습을 시켜야 했다.
시행착오는 앨런의 노하우로 커버하면서 말이다.
'자동차 소프트웨어는 연구원들에게, 자동차 나머지 부품들은 골렘들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일을 해야지.'
연구원들이 제자리에 앉고 연구를 시작했을 때쯤.
이영원은 조용히 이한수를 불렀다.
"어, 영원아. 왜?"
"잠깐 이리 좀."
따로 둘이 자리를 마련한다.
"무슨 일인데?"
"너에게 특명을 내릴 게 있다."
"특명?"
이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영원이 씩 웃으며 말한다.
"로봇 개발. 이제 시작해야지."
"……!"
두 눈을 부릅뜨는 이한수.
"인간이 착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 생각이야. 전기차가 완성되고 나면 네가 주축이 되어 연구원들을 이끌어줄래?"
"웨, 웨어러블 로봇……?!"
"신체가 불완전한 장애인들을 위한 슈트, 그리고 스포츠용 슈트도 개발할 생각이야. 네가 미래혁신기술 대학생 공모전 때 말했던 것처럼, 다양한 작업 환경에서도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 생각이지."
"……!"
이한수는 가슴이 뛰었다.
그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던 로망이 자극된 것이다.
원래 이한수는 로봇 이야기에 설득되어 01물리학연구소에 들어왔던 게 아니던가?
비로소 때가 온 것이다.
'못 걷던 환자가 걷게 되고, 슈트를 착용해 스포츠 경기를 벌이고… 관세 지역에서 로봇이 화물을 옮기는…….'
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격변한 세상이 보였다.
새로운 스포츠도 탄생하게 될 것이다.
풋볼 선수들이 모두 로봇 슈트를 착용한 채 경기를 진행한다고 상상해 보라. 인간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는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한수는 이영원의 말에서 먼 미래까지 내다봤다.
이내 악수하는 두 사람.
이한수의 눈은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맡겨줘라. 반드시 해낼게."
"아무렴. 01인더스트리의 연구원인데. 당연히 해내야지! 목표는 대한제까지다. 그때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거야!"
"…대한제!"
로봇 퍼레이드를 훨씬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이한수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한편, 이영원이 로켓에 대한 공부 자료를 넘겨주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바로 로켓 설계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
연구원들에 앞서 앨런의 자료를 공부한 이영원은 앨런의 로켓 개발 방식에서 한계를 보았던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또다시 필요하다.'
앨런 모스코는 <유니버스링크>라는 회사를 통해 1단 연료 로켓을 다시 지상에 착륙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다.
1단 로켓을 착륙시켜 재사용할 수 있다면 인공위성이든 사람을 태운 우주왕복선이든 발사하는 비용을 약 30%가량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발사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걸 생각하면 비용 절감 효과는 굉장했다.
'하지만 그래도 불완전해.'
로켓은 일자형으로 기다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착륙에 굉장히 불리한 형태였다.
기상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을 뿐만 아니라, 연필을 바닥에 세우듯 고도로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착륙에 실패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고, 착륙을 시도하다가 공중에서 폭발하기라도 하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패러다임의 전환… 혹은 신 에너지원이 필요하겠지.'
그리하여 이영원은 앨런의 방식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마인드 월드에 들어갔다.
루이스의 대도서관.
어마어마한 책의 숲에서 그 답을 찾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