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화
[주창호]
메시지를 보낸 발신인의 아이디였다.
“주창호 교수님?!”
이영원이 1학년 때, 1학년을 담당했던 교수였다.
이영원의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회사 일로 학교를 못 나와도 출석을 인정해 주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던 이영원의 은사.
이영원은 곧장 메시지를 확인했다.
<영원 학생, 안녕하신가? 요즘 많이 바쁘지? 혹시 괜찮다면 이곳에서 한번 만나고 싶네. 자네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회신을 기다리겠네. - 주창호 교수>
‘설마 교수님도 로열 퀘스트를 하고 계실 줄이야……!’
전 세계적으로 로열 퀘스트 붐이 일어난 건 이영원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주창호 교수까지 로열 퀘스트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척 반가웠다.
이영원은 제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주창호 교수에게 연락해 만남을 정했다.
* * *
중립국 헤르만티온 광장.
“이곳에… 대한대 물리학과 학술 센터를 만들자고요……?”
“맞아. 이곳이라면 재학생, 졸업생 할 것 없이 언제든 편하게 만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곳에 학술 센터가 있다면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고 대한민국 물리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
“…….”
이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좋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현실의 만남을 대신해 이곳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주창호 교수의 생각이 썩 틀리지 않다.
오히려 트렌드에 발 빠르게 반응해 학생들의 학업을 돕고 물리학을 발전시키겠다는 뜻은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왜 이영원에게 와서 이야기를 하느냐이다.
유저는 여기서 어떤 일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원하면 얼마든 이곳에 학술 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혹시, 돈이 부족하십니까?”
주창호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돈은 충분해. 총장님도 내 생각에 동의를 해주셨고, 학교 차원에서 지원을 받아냈거든. 하지만 문제는 이 헤르만티온의 국왕이야.”
“……?!”
주창호 교수가 한 이야기는 이영원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학술 관련 기관을 설립하려고 했는데 글쎄, 왕국 근위병들이 찾아와 훼방을 놓는걸세. 이거 참,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이야. 자네에게 자문을 좀 구하고 싶네.”
“아~”
이영원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주창호 교수가 더 자세한 내막을 설명했다.
“근위병들이 와서 하는 말이, 학술 기관을 설립하면 위험한 사상을 가르칠 수 있다면서 절대 허가를 못 해주겠다지 뭔가? 설득하려고 몇 번이나 국왕을 알현하려 했지만 도무지 성문이 열리지 않아.”
“그랬군요.”
“중립국을 찾자면 이만한 데가 없는데 계속 아쉬워서 말이야. 그렇다고 다른 왕국에 학술 센터를 설립했다가 어딘가로부터 침공받으면 어쩌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술 센터를 세우기 가장 합당한 나라는 현재로서 이곳뿐이야.”
이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 이유였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와 같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권력을 잡은 인간은 백성들이 똑똑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백성이 똑똑할수록 다스리는 사람은 더 똑똑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담을 느낀 군주들은 사적인 교육 기관을 철저하게 통제하곤 했다. 그래서 과거 군주제 시절 여러 나라의 교육 기관을 살펴보면 왕립인 경우가 태반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건 왕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즉, 왕이 감시하고 통제할 수 없는 사적 교육은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원 학생, 이걸 봐주게.”
“…….”
주창호 교수가 자신의 퀘스트창에 있는 항목을 하나 보여줬다.
<퀘스트 - 헤르만티온에 학술 기관을 설립하라>
-내용 : 국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많은 돈? 명망 있는 사람? 무엇이든 동원해 국왕의 마음을 움직여라.
-난이도 : A.
-보상 : 학술 기관 설립 허가. 히든 클래스 ‘대학자(大學者)’로 전직.
주창호 교수가 학술 센터를 짓겠다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퀘스트가 부여된 듯했다.
주창호 교수는 퀘스트를 이영원에게 공유했다.
“혹시 자네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좀 도와줬으면 하는군.”
“흐음,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저도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이영원은 주창호 교수와 헤어진 뒤, 바로 헤르만티온 왕국에 대해 조사했다.
헤르만티온 왕국의 개국일은 지금으로부터 607년 전인 대륙력 299년경이었다.
현 국왕은 헤르몬 6세. 나이는 올해로 마흔이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며 주변국으로부터 상거래 수수료를 받아 성장한 나라군.”
정보를 차근차근 수집하다 보니 헤르만티온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었다.
현 국왕 헤르몬 6세는 즉위한 지 11년 되었고, 그는 강력한 무투파 제왕이었다.
일머리는 별로 없는데 타고난 무력으로 왕위를 물려받은 케이스였던 것이다.
“학술 기관을 왜 그렇게 경계했는지 알 것 같아.”
중립국이라는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단연 강력한 무력과 왕권이다.
힘이 없으면 중립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헤르만티온 왕국에선 강력한 힘을 지닌 제왕이 인정받는 분위기였고, 헤르몬 6세 또한 그런 분위기상 가장 적합한 왕이었다.
그러다 보니 왕국 내 사상이나 학문이 발전하는 걸 두려워했다.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중립국의 위치를 지키려면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온 백성이 한 몸처럼 움직여 줘야 하는데, 백성들의 머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국왕의 정치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정치가 위태로워지면 중립국 지위를 지키는 것도 어려워진다.
조사를 어느 정도 마친 이영원은 곧바로 움직였다.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단 성문을 두드려 봐야 어떤 수단을 써야 국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전략이 세워질 것이다.
저벅.
이영원은 단출한 복장을 갖춰 입고 성문 앞에 섰다. 최대한 헤르몬 6세가 위협을 느끼지 않을 만한 차림새를 갖춘 것이다.
척! 척!
“거, 뭐 하는 놈이냐!”
“무슨 일로 왔느냐!”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이영원에게 창을 들이밀며 경계했다.
이영원이 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아아, 저는 헤르만티온을 지나가던 여행객 이영원이라고 합니다. 국왕 폐하께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묘안을 제안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뭐라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 묘안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수군수군.
이내 두 병사가 흠칫하는 표정으로 서로 속삭였다.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아냐. 나도 그렇게 들었어. 확실해.”
병사들은 이영원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속닥거리고 다시 한번 보고 속닥거리길 반복했다.
이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병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커흠… 잠깐 기다리시오. 폐하께 의중을 여쭙고 올 테니.”
“…….”
병사 중 하나가 성안으로 들어가 찾아온 손님이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대략 2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끼기이이익!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문이 활짝 열렸다.
‘음? 그냥 열어주잖아?’
주창호 교수는 몇 번이나 찾아가도 꿈쩍 안 했다던 그 성문이었다.
성문 바로 안쪽에는 대신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국왕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이쯤 되자 이영원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감지했다.
‘이렇게 쉽게 흘러갈 리가 없는데?’
무려 난이도 A급의 퀘스트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그냥 돌아갈 순 없다.
이영원은 대신들의 에스코트를 받아 왕의 보좌가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
“다, 당신은……!”
일면식도 없던 국왕 헤르몬 6세가 이영원을 보자마자 보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성큼성큼 걸어 이영원에게 다가갔다.
쿵.
그러다 이내 무릎을 꿇는다.
“아, 아니. 지금 뭐 하는……!”
“아아… 존귀한 분을 뵙습니다……! 이 헤르몬, 당신에게 무엇이든 배우고 듣겠나이다.”
당황스러운 쪽은 이영원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헤르몬! 존귀한 분께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 하였습니다. 부디 저에게 지혜를 베풀어주소서!”
“……?”
대체 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때 이영원의 머리에 무언가 번뜩였다.
‘아니, 설마……!’
당장 마스터 메시지를 통해 유리를 불렀다.
“유리… 이거 네가 설계한 거야? 내가 운영자라서?”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된다.
일면식 없는 국왕, 그것도 강력한 힘으로 중립국을 이끌어가는 헤르몬 6세다.
그런데 그가 대체 왜 이영원을 처음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느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준 것도 그래. 설마 나를 운영자로 인식해서 그런 건가?!’
유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마스터.]
“그럼 대체 뭐야? 아무리 내가 이 세계의 운영자라고 해도 이런 특별 대우는 바라지 않아.”
운영자라고 마음대로 로열 퀘스트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게임은 머잖아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게임 세계관과 스토리는 어디까지나 유저들에게 일임된 영역. 운영자라고 해서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었다.
이내 유리가 해명했다.
[마스터, 마스터의 게임상 명성 수치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이에 따른 결과라 판단됩니다.]
“뭐……?”
이영원은 당장 상태창을 켜서 어느 부분을 확인한다.
-명성 : 2,640,783.
놀라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막대한 명성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난 플레이를 거의 하지도 않았는데?’
세계를 구원한 인간이라 해도 이 정도 명성을 얻는 건 불가능하리라.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저 헤르몬 대왕의 명성 수치도 고작 1만 대에 불과했다.
이영원은 일개 국가의 국왕보다 무려 이백 배 이상 높은 명성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유리가 부연했다.
[명성 수치는 유저, NPC들 사이 대화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빈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마스터께선 모든 유저들로부터 칭송받고 있으므로 이만한 명성을 얻으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
지금도 바깥은 우주 쓰레기 문제 해결로 온통 이영원을 칭송하는 분위기다.
그것뿐이랴?
이 로열 퀘스트를 만든 것이며, 01링크 서비스며, 01폰, 01북, 01전기차, 웨어러블 로봇, 북한 개발, 우주 여행까지.
이영원을 칭송할 거리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만큼 넘쳐 흘렀다.
‘아뿔싸…….’
마스터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닌, 순수하게 칭송을 받아 오른 명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졌다.
이영원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
‘이것도 게임의 일부라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강제 조치를 발동해서라도 수정해야 하는가…….’
고민 중인 이영원에게 헤르몬 6세가 말했다.
“존귀한 분이시여! 부디 이 몸의 청을 들어주소서! 무엇이든 배워 지혜를 얻게 하소서!”
“…….”
강력한 힘에만 의지하던 헤르몬은 지혜에 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민 끝에 이영원이 말했다.
“학술 기관…….”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헤르몬이 눈에 불을 켰다.
“오오! 학술 기관을 설립해 드리면 되겠나이까?! 왕국의 국고를 전부 털어서라도 설립해 드리겠나이다! 여보시오, 대신들! 뭣들 하고 있는가! 존귀한 분께서 학술 기관을 설립하라 지시하신다!”
“말씀을 받들겠나이다!”
“말씀을 받들겠나이다!”
“…….”
그날 헤르만티온에는 이영원의 이름을 딴 대학 기관이 설립되었다.
거기에 부설로 대한대 물리학과 학술 센터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