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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5화 (5/168)

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5화

탁한 거울의 표면에도 생김새를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

“…….”

순간 그는 거울 속 조각 미남의 모습에 흠칫 굳어 버렸다.

원래의 그와 몹시 달라서는 아니었다.

‘나랑 너무 닮았잖아?’

도플갱어나 평행 세계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알렉은 자신의 생김새를 눈으로 훑으며 얼굴에 손끝을 갖다 댔다.

흐트러진 짙은 흑발과 새까맣게 빛나는 눈동자.

매끈한 눈썹과 반듯한 콧날, 그리고 날카로운 턱선과 야릇한 입술까지…….

묘하게 국적이 다른 것 같은 분위기 빼고는 어디 하나 비슷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그의 잃어버린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모가 똑같았다.

“하…….”

알렉의 손이 힘없이 추락했다.

그건 그냥, 그였다.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기억이 희미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정체와 과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본래 그는 대서사를 끝낸 현대 게임 판타지 소설 속 히어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는 게이트라고 불리는 차원의 문이 열렸고, 그 속에서 온갖 마물들이 나타나 인간을 위협하고 전염병을 퍼뜨렸다.

끝나지 않는 주위의 죽음과 멸망의 공포.

전 세계의 인류는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소멸과 무력함을 실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의 앞에 게임 상태 창 같은 푸른빛의 시스템이 나타났다.

시스템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각성시켰고, 각성자들은 끊임없는 퀘스트로 레벨을 올려 더욱 강해졌다.

알렉 또한 그런 각성자들 중 한 명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각지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을 해치웠다.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그의 성장에는 끝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그의 랭킹을 차지하는 이가 나타나지 않을 만큼, 그와 2위의 격차가 신과 보통 인간 수준으로 벌어질 만큼 그는 강력해졌다.

등급이 SSS급에 달하는 보스 몹은 이제 그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구에 흉측한 마수를 보내는 주체를 찾아내 세계를 구해야 했다.

그건 바로 지구를 점령하려 한 이세계의 신.

마침내 최종 전투에서 그는 인간도 아닌 존재와 싸워 승리했다.

더 이상 지구와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았고, 그토록 바랐던 평화가 펼쳐졌다.

상태 창과 함께 종횡무진 굴렀던 그에게도 드디어 ‘끝’이라는 지점이 찾아온 것이다.

해냈다, 는 안도감 뒤에 밀려온 건 의외로 허탈함이었다.

세상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그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걸까?

전투와 살육과는 무관한 삶을 이제 얻을 수 있을까?

세상은 구했지만.

‘내 삶도 구원받을 수 있나?’

세계의 평화 외에 그가 진짜로 원한 건 뭐였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당장은 조금 쉬고 싶었다.

그렇게 눈을 감은 그의 앞에 어김 없이 상태 창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냉혹한 모태 솔로’님!]

“…….”

[당신의 칭호가 변경되었습니다.]

[냉혹한 모태 솔로 → 신을 죽인 구원자]

“…….”

[21세기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신을 죽인 구원자’님께 드디어 최종 보상이 도착했습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최종 보상?’

마지막 전투는 시스템 영역 밖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퀘스트였던 걸까?

받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 그는 최종 보상을 수락했다.

아무쪼록 게임 머니나 아이템이나 스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순간 주위가 점점 새까맣게 점멸하더니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의식을 잃었다.

그 전에 짧게 생각했던 것은.

‘하와이로 보내 줘. 아니면 괌, 발리…….’

그는 오랜 포상 휴식을 받을 자격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의식을 되찾은 그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는.

‘알렉!’

‘정신이 드십니까, 각하? 아, 아니 알렉시스 마이어스 님!’

‘여보……?’

“…….”

뜬금없이 다른 세계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다니.

기껏해야 해외 휴가 정도를 생각한 그는 당황스러운 기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런 미친…….”

예고도 없이 사람 놀라게…….

최종 보상이라는 게 새 인생이었어?

* * *

“휴우…….”

방문을 닫고 나온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아직 혼란스러운 것 같아 더 쉬게 했다.

벽에 기댄 나는 불편하게 먹먹한 가슴을 꾹 눌렀다.

쿵쿵쿵…….

가슴 아래에서 아직도 심장이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그가 쥐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가슴은 계속 이 상태였다.

짧은 사이에 충격과 절망과 안도의 롤러코스터를 탔기 때문일까?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나서 정말 다행이고 안심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이 안도하고 있었다.

새삼 그의 존재가 이만큼이나 내 마음속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나 싶었다.

‘알렉, 역시 내 반응에 당황했던 거구나. 얼마나 놀랐으면 물을 다 뿜어.’

하긴 나도 당혹스러운데.

나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남은 물기를 닦았다.

알렉과 나는 서로 애틋하거나 사랑을 속삭이는 부부가 아니었다.

지금껏 그에게 원망과 실망을 품고 있었고,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죽었다가 깨어났는데 안도하는 부인이라니, 아마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그가 놀라다 못해 머금고 있던 물을 다 뿜어 버린 게 이해가 갔다.

씁쓸하고 쓸쓸했다.

‘……혹시 또 나와 이혼을 하려고 할까?’

그가 다시 눈을 뜨긴 했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으니 또 나를 밀어내려고 할지도 몰랐다.

어차피 후계자를 낳기 전까지는 시어머니가 절대 허락해 주지 않겠지만…….

‘이혼이라니, 내가 싫어…….’

나는 등 뒤로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나?

그가 이혼을 말하던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고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연했다.

그가 죽는 줄 알았을 때는 발밑이 꺼지며 가슴이 뻥 뚫리는 좌절감을 느꼈다.

나도 이런 내가 너무 낯설지만.

알렉과의 이별은 또 겪고 싶지 않았다.

* * *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여관의 부엌을 빌렸다.

어제저녁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집안이 쫄딱 망했으니 먹을 정신이 없기도 했고, 누군가 음식을 줬어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슬슬 남편이 배가 고플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시누이도 마침 “우리 뭐 안 먹어?”라며 찾아왔다.

“10골드예요.”

“네?”

“부엌 빌리는 비용이요.”

여관 주인이 턱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 그렇죠. 네.”

흔쾌히 빌려준다고 해서 무상인 줄 알았더니 셈이 철저한 곳이었구나.

10골드면 한 사람이 이 여관에서 하루는 더 묵을 수 있는 가격인데…….

나는 드레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10골드를 건네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큰일 치를 뻔해서요.”

“……될 수 있으면 빨리 나가 주시면 좋겠군요. 황제 폐하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우리한테 괜한 불똥이 튈 것 같으니.”

여관 주인은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냉큼 돌아서 버렸다.

치맛바람에서 풍긴 싸늘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여관 주인이 폭군의 눈 밖에 난 우리를 받아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폭군 개자식…….’

그놈만 떠올리면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나 자신이 꼭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잠시 화를 삭인 나는 이내 챙겨 온 가방을 열었다.

공작가에서 쫓겨날 때 시녀장이 몰래 쥐여 준 것이었다.

안에는 캔에 든 비상식량과 빵이 들어 있었는데, 요리라고 해 봤자 그것들을 데우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우유는?”

이윽고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있는 방에 뜨끈한 빵과 수프를 가져다주었을 때였다.

시누이가 빤히 쟁반 위를 내려다보더니 우유를 찾았다.

나는 한숨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없어.”

“뭐야. 우유도 없이 어떻게 먹어!”

“싫으면 먹지-.”

“아, 아니야! 언니.”

탁!

“…….”

내가 그릇을 빼앗으려고 하자 시누이가 냉큼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나는 남편과 나의 방으로 향했다.

‘참자. 원래 세계였다면 중2잖아…….’

엘로이가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윽고 살짝 열린 문을 당기니 남편이 조금 초조한 태도로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

어제까지는 넋 빠진 사람 같더니 이제야 뭔가 우리의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는 걸까?

남편이 저리 날카롭게 고뇌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의외였다.

“알렉.”

불쑥 내뱉은 내 목소리에 그가 화들짝 몸서리치더니 내 쪽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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