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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43화 (43/168)

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43화

그의 인벤토리도 접근이 불가능했다.

상점과 인벤토리는 레벨이 훨씬 더 높아야 개방되었다.

기드온.

알렉은 그레이브 용병단장 카슨에게 붙여 놓았던 기드온의 머릿속을 확인했다.

앞으로 카슨의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분명 카슨은 자신을 고용한 사람을 찾아갈 것이고, 그들의 반응을 확인해야 앞일을 대비할 수 있었다.

곧이어 알렉은 기드온의 눈을 통해 보이는 장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카슨이 자신의 의뢰인을 찾아간 건 다음 날 오전이었다.

* * *

“뭐?”

열린 창문 밖으로 밝은 햇빛이 들어왔다.

마르셀 하워드 후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군가 자신의 전 재산을 훔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황당하고 험악한 표정이었다.

마르셀의 반응에 카슨은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설마 그 몰락한 공작 놈이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 저한테 일부러 말도 안 하셨던 겁니까?”

“……하.”

마르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감히 내 집무실까지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어?”

그리 말한 마르셀은 내심 긴장감에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 갔다.

아침부터 나타난 카슨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굴 한쪽이 눈탱이 밤탱이가 되다 못해 푸르딩딩하게 멍으로 뒤덮여 있었다.

처음에는 염색약을 얼굴에 잘못 부어서 저렇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알렉시스에게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카슨까지 알렉시스한테 당했다고?’

마르셀 자신과 개리슨, 데미안은 싸움이나 힘과는 무관한 귀족들이니 그러려니 했다.

알렉시스 그 자식이 갑자기 어떻게 돌아 버린 건지는 몰라도, 그들이 힘도 못 쓸 정도로 두들겨 맞은 건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용병이 아닌 고귀한 귀족이니까.

그런데 용병단장이기까지 한 카슨도 알렉시스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니.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것 아닌가?

카슨은 이 릴트 제국에서 힘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카슨의 용병단은 제국에서 규모가 두 번째로 클 정도로 막강했다.

첫 번째로 큰 용병단인 ‘사자의 송곳니 용병단’과는 다르게 황제의 은밀한 비호까지 받고 있었다.

그런 규모의 용병단을 이끄는 수장이 낯빛까지 파래질 정도로 얻어맞았다니 충격적이었다.

당장 마르셀 본인도 신분을 떼고 카슨과 맞붙으면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겨우 숨통만 건질 것이다.

‘알렉시스, 그 새끼 진짜 뭐지……?’

카슨이 위협적으로 이를 갈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발뺌하시면 후작 각하와 신뢰 관계를 이어 가기가 제 입장에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웃기는군. 카슨 자네, 의뢰도 완수하지 못해 놓고 남 탓이나 하는 쪼잔 한 놈이었나?”

“뭐요?”

“그레이브 용병단도 이제 한물간 모양이야. 고작 평범한 몰락 귀족 하나 처리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우습군.”

“…….”

카슨이 말없이 이를 갈았다.

침묵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말보다 더 죽일 듯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마르셀은 일부러 카슨을 더 자극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구든 알렉시스를 죽지 못해 살 정도로 망가뜨려 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알렉시스에게 당했던 날을 떠올리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고 분노가 들끓었다.

‘개자식, 감히 우리의 자존심을 뭉개고도 멀쩡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지만, 카슨이 아니라면 딱히 더 나은 방법이 없었다.

카슨이 피식 웃었다.

“시치미를 떼시는 거 보니 아주 잘 알겠습니다. 우리 용병단을 우습게 여기신 거 후회하실 겁니다.”

‘저 위아래도 없는 새끼가…….’

마르셀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열려던 찰나, 카슨은 이미 집무실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쾅.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에 있던 줄리아는 흠칫 멈춰 섰다.

남편의 집무실에서 카슨이 쾅쾅대며 나가고 있었다.

마르셀의 부인인 줄리아 하워드 후작 부인은 열린 문틈 사이로 마르셀의 분위기를 살폈다.

‘제기랄, 저 새끼 또 화나 있네.’

불안하고 초조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남편이 그녀의 비밀을 알아채기 직전이었다.

‘내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어. 내 영원한 물망초인 당신이 나를 배신하고 다른 놈하고 붙어먹었다는 소문 말이야.’

‘뭐, 뭐라고요? 대체 누가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죠? 말도 안 돼요!’

줄리아는 공들여 다듬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마르셀은 사랑에 있어서는 순수한 남자였다.

그러나 배신을 당하면 누구보다도 잔혹하게 갚아 주었다.

그녀에게 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손가락이 다 잘리고 머리카락도 빡빡 밀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르셀이 무서워도 줄리아는 욕망을 포기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정부가 있다는 건 사교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릴트 제국의 사교계는 겉치레일 뿐인 평화와 행복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아무리 사실이어도 갈등이 될 만한 일은 그 누구도 소문내지 않았다.

그건 사교계의 철칙이고 불문율이고 상식이었다.

속으로는 썩어서 곪아 들어가고 있어도 겉으로는 누구나 동경할 만큼 화려하고 눈부셔야 했으니까.

‘어떡하지. 누구를 들킨 거지?’

그녀의 정부는 많았다.

우선 마르셀의 친구인 개리슨이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부 중 그 누구도 그녀와의 관계를 폭로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복수를 당할 테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줄리아는 이내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곤 결론 내렸다.

‘이 멍청한 여편네들이 설마?’

사교계의 귀부인들 중 한 명이 그녀에게 억하심정을 품은 게 분명했다.

겉으로는 하하 호호 모두가 평화로운 사이를 유지했지만, 돌아서면 서로 어마어마한 험담을 하는 것을 줄리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줄리아는 사교계의 퀸.

황후는 황궁에 따로 있었지만 황궁 밖에서는 줄리아가 귀부인들 세계에 군림하고 있었다.

줄리아는 황후가 아끼는 사촌인 데다가 누구나 선망하는 화려한 미모와 사교계를 휘두를 만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특히 남편이 소유한 방직 공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어서 남들에게 아쉬울 게 없었다.

돈으로는 못 할 일이 없었기에 다른 귀부인들의 기를 쉽게 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누가 그녀에게 가장 많은 적의를 품고 있을까 줄리아는 고심해 보았다.

‘내 정부들의 부인? 내가 자기들 남편한테 꼬리를 쳤다고 생각할 테니까. 아니면 내가 능력 있는 시녀장을 빼앗아 간 부인? 그건 더 많은 봉급으로 인재를 거래한 스카우트라고! 아니면 드레스 예약을 새치기당했던 부인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선수를 치는 건 당연해!’

그 이후로도 수없이 고심하던 줄리아는 이내 포기했다.

줄리아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귀부인들이 너무도 많았다.

‘아무래도 황후 폐하께 가 봐야겠어.’

줄리아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처음으로 자신이 사교계에서 퇴출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대체 누가 그런 이야기를 마르셀한테 흘린 거야?”

순간, 설마 싶은 사람 한 명이 떠올랐다.

“……!”

2년 전 그 여자가 했던 경고가 문득 생각난 것이다.

쩌저적.

평화로웠던 줄리아의 세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 * *

“대체 누가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 까요?”

“줄리아를 상대로 간도 크네요.”

“설마 상상도 못 했어요. 영원히 들킬 일 없을 줄 알았거든요.”

“불쌍한 줄리아…….”

줄리아를 제외한 귀부인들이 호화로운 티 룸에 모여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마르셀이 줄리아의 정부를 찾겠다며 여기저기 말을 흘리고 다닌 탓에 사교계에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귀족들이 정부를 두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르셀과 줄리아는 다른 귀족들과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마르셀은 진심으로 줄리아를 영원한 자신의 물망초라고 여기며 사랑했고, 줄리아 또한 마르셀에게 정성을 다했다.

두 사람은 사교계 최고의 잉꼬부부로 명망이 높았다.

하지만 줄리아는 자신의 욕망과 배신을 철저하게 숨긴 채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마르셀이 줄리아의 정체를 알면 과연 어떻게 될까?

파국이 일어날 것이다.

마르셀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제 아내에게 분노할 것이고, 줄리아는 지금 같은 부유한 생활과 평화를 잃게 되겠지.

“……정말이지 걱정되네요. 줄리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대로 아무 일 없이 묻힌다면 제일 좋겠지만 과연 그럴지…….”

“마르셀이 느낄 배신감도 상당할 거예요. 줄리아를 진심으로 아꼈잖아요.”

“불쌍한 줄리아…….”

차를 마시던 귀부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은근슬쩍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줄리아에게 닥쳐올 불행을 고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줄리아에게 당한 게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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