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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72화 (72/168)

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72화

“아니야. 마르셀이 올 거야. 마르셀이 날 구하러 오지 않을 리가 없어.”

한참이 지나자 줄리아는 다시 정신을 차리며 어두운 감옥 안을 서성였다.

그녀를 끔찍이 아끼던 남편이었다.

물론 줄리아의 정부들도 그녀를 아끼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정부들의 존재는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마르셀만이 그녀를 구해 줄 유일한 존재 같았다.

“마르셀. 마르셀 뭐 하는 거야…….”

“줄리아.”

그 순간이었다.

낮은 음성이 거짓말처럼 들려와 줄리아가 머리를 들었다.

“개리슨?”

“줄리아.”

개리슨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줄리아도 창살로 다가갔다.

“개리슨! 여태 어디 있었어? 날 빼내 줘!”

“못해. 마지막으로 보러 왔어.”

“뭐?”

“……다들 그냥 널 버린 것 같아. 폐하의 장난감은 건드리는 게 아니라 더라.”

“그런 소리나 할 거면 꺼져!”

“난 너 안 버렸어. 사랑해, 줄리아.”

“꺼지라고!”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

그 순간 기다렸던 마르셀의 음성이 험악하게 들려왔다.

“누가 누굴 사랑해?”

“…….”

줄리아는 너무도 깜짝 놀라 창살에서 몸을 떨어뜨렸다.

지금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밀어내듯 뻣뻣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아니야, 마르셀. 개리슨이 자기 멋대로 날 사랑한 거야…….”

“마, 마르셀…….”

개리슨마저 당황한 듯 조금 뒷걸음질 쳤다.

줄리아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머리통을 움켜쥐는 손끝이 더 처절해졌다.

“내가 설마설마했지. 일단 저 자식 끌어내.”

“아니야, 오해라고! 마르셀!”

마르셀과 개리슨의 외침이 연달아 들려왔다. 줄리아는 이 꿈 같은 상황을 모조리 거부하고 싶었다.

둘만 남은 감옥 안에서 마르셀이 이를 악물고 창살을 움켜쥐었다.

“줄리아. 내 배신감이…… 어떤 줄이나 알아?”

“……살려 줘.”

“아니. 여기서 평생 날 그리워해. 날 배신한 죗값을 치르라고!”

“그럴 거면 너도 망해 버려!”

아, 아니야.

아이들이 있잖아?

줄리아는 문득 유모들에게 맡겨 놓고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어린 아이들이 생각났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듯 줄리아가 마르셀에게 다가갔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날 보고 싶어 할 거야. 여기서 나 좀 꺼내 줘!”

“웃기지 마. 엄마가 누군지도 까먹을 정도로 찾아가지 않은 게 누구지?”

“…….”

“내 영원한 물망초 줄리아. 평생 여기서 반성해. 네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다른 놈들 만나는 것보단 여기 갇혀 있는 게 난 훨씬 좋거든.”

“미친 자식! 다 꺼져!”

욕설을 퍼붓고 돌아선 줄리아는 구석으로 가 몸을 웅크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구해 주려 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게 다 루이제 그년 때문이야…….’

줄리아의 눈에서 살기가 타올랐다. 줄리아 자신까지 삼켜 버릴 듯한 살기였다.

‘어떻게 내가 그딴 년한테 당할 수 있어?’

눈물이 철철 흘렀다. 그녀는 허공 어딘가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언가가 줄리아의 시야 안으로 떠올랐다.

“……?”

사물을 비치는 투명한 형상. 은색 머리카락과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 눈.

보는 순간 전신이 얼어붙을 만큼 섬뜩한 모습이었다.

헉 놀란 줄리아는 기겁하며 물러나 벽에 바짝 붙었다.

비명을 지르거나 눈도 깜박하지 못할 만큼 온몸이 굳어 버렸다.

여기가 몇 층인지는 몰라도, 아니 사람이라면 저런 모습으로 벽을 통과 해 나타나지 못할 텐데…….

유, 유령?!

[줄리아 하워드 후작 부인.]

“……!”

공기를 울리는 섬뜩한 목소리에 줄리아는 벽으로 등을 더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 좁은 감옥 안에서 더 도망 칠 곳은 없었다.

헉헉 숨이 막혔다.

이러다 심장이 멈춰 버릴지도 몰랐다.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을 크게 뜬 줄리아가 겨우 입을 움직였다.

“저, 저리 가…….”

[캐시를 죽인 대가를 치러라.]

“악!”

저리 가! 오지 마!

[너의 속죄를 내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아악!”

아무것도 없는 돌 감옥 안에서 줄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사교계의 퀸은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8. 북부 영주 부부의 완벽한 속궁합

북부를 향해 마차가 달렸다.

얼마나 달리기 시작했을까?

루이제는 알렉의 팔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알렉은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창밖만 바라보았다.

‘알렉. 캐시가 이제 원한이 풀렸을까요? 줄리아가 그렇게 됐으니 하늘에서나마 덜 억울하겠죠?’

“…….”

캐시가 죽은 일로 루이제가 줄리아에게 복수하려고 했다.

그는 캐시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사용인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대강 알게 되었다.

루이제와 엘로이, 어머니의 대화로 미루어 보아 줄리아 때문에 캐시가 죽게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의 가슴이 묵직한 걸까?

루이제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 마치 그도 직접 겪은 일 같았다.

알렉은 어젯밤 캐스다인을 줄리아에게 보내 조금 더 위협을 했다.

루이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줄리아에게 마지막 경고를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알렉은 질끈 눈을 감은 채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점점 더 이 가족들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루이제와 입맞춤을 했던 촉감도 아직 생생하게 그의 입술에 남아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마음의 무게와 서러움이 남의 것 같지 않았다.

이래도 될까?

그는 언제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모르는 사람인데, 이렇게 점점 정이 들어도 괜찮은 걸까?

정이 든다는 표현부터가 그에게는 잘못되었다. 그는 원래 남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편이 아니었다.

알렉은 슬그머니 시선을 내려 루이제를 내려다보았다.

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도기처럼 반질반질한 얼굴에 앵두처럼 윤기가 나는 입술.

그 고결하면서도 자극적인 모습에 알렉은 세게 입 안을 깨물며 다시 창 밖을 보았다.

루이제가 깰까 봐 몇 시간째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도 낯설었다.

어느덧 마차는 하루를 꼬박 달려 북부로 들어왔다.

어느 순간 사람 한 명,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주위의 온도는 이미 영하 한참 아래로 내려갔다.

문득 마차가 멈추더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말들 때문에 잠시 쉬어 가겠습니다, 주인님!”

마부인 페드로였다.

그와 루이제를 따라 북부로 가고 있는 마차가 다섯 대 더 있었는데, 짐을 실은 마차 외에는 사용인들이 타고 있었다.

시녀장인 제인과 시종장인 제임스, 그리고 요리장인 알버트와 그레타 부인 등 사용인들 중 일부가 우선 그들을 따라 출발했다.

똑똑.

“잠시 문을 열어 봐도 되겠습니까, 주인님?”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알렉이 문 쪽을 보았다. 제임스의 음성이었다.

“들어와.”

이윽고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더니 잠든 루이제를 발견했다. 눈이 조금 커지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 필요하신 게 있을까 봐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괜찮다.”

“알겠습니다. 부르실 일 있으면 마차가 출발하기 전에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고맙군.”

제임스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사용인들도 모두 그와 루이제처럼 풍성한 털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사용인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그의 주변은 많은 게 변했다.

지금까지는 루이제와 어머니, 엘로이하고만 지냈지만 앞으로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쳐야 했다.

그런데 사용인들은 등장인물 일람에 단 한 명도 뜨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이 누군지 아예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알렉은 꽤 신경을 써야 했다.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

다행히 사용인들은 그의 말투와 자세가 너무도 달라진 탓에 이미 그를 새로운 기분으로 대하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조만간 의심받을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알렉은 다시 한번 미간을 눌렀다.

사용인들은 이미 다른 가족들처럼 알렉시스를 오래 겪어 본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는 수십, 수백 명으로 늘어날 텐데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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