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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93화 (93/168)

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93화

“…….”

잠시 침묵과 함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킬리울은 숨까지 멈추고 루이제가 들고 있는 힐리베리를 쳐다보았다.

주위에 있는 다른 야인들도 설마 진짜 힐리베리를 가져온 건가 싶어 숨을 죽였다.

알렉은 잠자코 상황을 주시했다.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루이제가 어떻게 상황을 풀어 갈지 기다려졌다.

루이제가 연이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킬리울은 힐리베리를 직접 본 적이 없겠네요.”

“…….”

킬리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힐리베리에서 천천히 시선을 들어 루이제를 응시했다.

분명 킬리울은 그와 루이제를 쫓아내기 위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로 전설의 영약을 가져왔으니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말로…… 힐리베리를 가져왔다고?”

“그럼요. 저희도 이걸 발견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답니다. 칼라니쉬 산에 오를 때만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전설의 영약이 실제로 존재할 줄 누가 알았겠나요?”

“……가까이 가져와 봐.”

킬리울이 켈즈에게 턱짓을 하자 켈즈가 다가왔다.

루이제는 힐리베리를 하나 집어 켈즈에게 건네주었다.

이윽고 킬리울은 심각한 얼굴로 힐리베리를 살펴보았다.

그 열매는 언뜻 보면 앵두처럼 붉고 동그랗게 생기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복숭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알렉과 루이제가 보기에도 신기하고 낯선 모양의 과일이었다.

“한평생 칼라니쉬 산을 드나들면서 이런 열매는 본 적이 없는데.”

킬리울의 말에 켈즈도 조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산이 아니라 북부의 어디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야 당연하죠. 그게 힐리베리니까요.”

루이제의 말에 다른 야인들도 입술을 꾹 다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열매가 있었던가?

따로 다른 열매를 구해서 힐리베리라고 속이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야인들은 그와 루이제가 진짜 힐리베리를 가져왔다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현실을 부정하는 중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수도에 이런 열매가 많은 거 아니야?”

“궁금하면 직접 수도에 가 보면 되겠네요.”

계속되는 의심에 루이제가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힐리베리를 처음으로 획득했을 때 그의 시스템이 퀘스트 성공을 알렸으니, 저 열매의 정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못한 열매인 탓에 킬리울 또한 바로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킬리울이 열매 하나를 살짝 베어 물었다.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알렉과 루이제도 하나씩 먹어 보았다.

복숭아와 딸기와 앵두가 섞인 듯한 식감과 맛이었는데, 먹자마자 달콤한 풍미가 신비롭게 퍼졌다.

킬리울도 방금 막 그 맛을 느꼈는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듯 루이제가 말했다.

“정말 달콤하지 않나요? 사실 나도 그 열매를 보고 많이 놀랐답니다. 저런 건 태어나서 처음 봤거든요. 맛도 그렇고, 모양만 봐도 처음 보는 거라 전설의 열매인 줄 단박에 알았어요.”

“…….”

“나와 내 남편의 운이 정말로 좋았던 것 같네요. 백곰이 자꾸 달려들어서 피해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거든요.”

말을 마치며 루이제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킬리울은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루이제를 강하게 주시하기만 했다.

인정하기 싫은 걸까?

그러나 부정하지도 못하는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당장 여기서 킬리울의 인정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킬리울에게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충격적인 일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 순간 킬리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 조화가 일어난 건지는 몰라도 용케 힐리베리를 구해 왔군.”

“…….”

루이제의 숨결이 조금 흐트러졌다.

이제야 킬리울이 믿는 듯한 기색을 내비쳐 살짝 안도한 모양이었다.

킬리울이 피식 비웃었다.

“칼라니쉬 산이 장난도 아니고, 거길 정말로 기어갈 생각을 할 줄은 몰랐지.”

그 말에 루이제는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앞으로 우리도 등산하러 자주 갈 텐데, 덕분에 미리 가 보게 되었네요.”

루이제가 어금니를 조금 꽉 깨물었다.

그녀와 킬리울 사이에 오가는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알렉의 입장에서는 소설 속 진짜 귀족과 야인이 기 싸움을 하는 생전 초면의 진귀한 장면이었다.

킬리울이 재차 비웃었다.

“우선은 약속대로 사지는 멀쩡하게 보내 주지.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야.”

“아무튼 이번에는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받아 주면 좋겠네요. 동료가 된 기념으로요.”

루이제의 옅은 웃음에 킬리울의 안색이 조금 구겨졌다.

어떻게 된 게 한마디도 지지 않냐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루이제가 망토 안쪽에 달린 주머니에서 실크로 감싼 뭉치 하나를 더 꺼냈다.

“더 필요하면 언제든 윌스브룩 성으로 찾아와요.”

루이제가 켈즈 쪽을 보자 켈즈가 잠시 흠칫하다가 다가왔다.

꽤 적지 않은 양의 힐리베리였다.

킬리울은 켈즈가 루이제에게서 힐리베리를 받아 가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과연 킬리울은 알까?

‘악센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차피 야인들도 악센에게 파멸당한다는 것.’

아쉽게도 킬리울에게 미래의 일을 믿게 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루이제와 함께 돌아서는 찰나, 킬리울의 눈빛이 알렉에게 닿았다.

알렉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저들의 협조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훼방은 곤란했다.

그와 루이제를 방해하면 전투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힐리베리 때문에라도 이렇게 넘어가지만, 그는 킬리울이 야인들을 위한 결정을 하길 바랐다.

완전히 돌아서자 킬리울과 닿았던 눈길도 끊어졌다.

그들의 뒤통수에 계속해서 킬리울의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알렉과 루이제는 여러 야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그들의 거처를 나왔다.

그제야 루이제가 조금 한숨을 돌렸다.

“역시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래도 반감은 조금 없어진 것 같죠?”

루이제의 물음에 그가 한번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내색은 못 했겠지만 힐리베리를 가져다준 탓에 꽤 진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와 루이제에게 조금은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조만간 성에 초대해서 수도의 음식들로 극진하게 대접해야겠어요.”

루이제가 그리 말한 순간 야인들의 거처지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다.

“이제 여기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루이제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알렉도 그녀를 단단히 안았다.

마차가 없으니 스킬로 카나크까지 가서 마차를 빌려 탈 생각이었다.

야인들에게 많은 양의 힐리베리를 건네줬지만 아직 루이제가 갖고 있는 양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캐스다인이 어디선가 찾아온 힐리베리가 있었다.

‘스킬. 신속.’

마침내 그들의 자취가 바람보다 빠르게 흩어졌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켈즈는 헉 숨을 들이켰다.

“……!”

방금 본 게 뭐지?

켈즈는 눈을 깜박이다가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온데간데없이 귀족 부부가 사라져 버렸다.

야인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바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켈즈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으로 황급히 킬리울에게 달려갔다.

“킬리울 님! 킬리울 님!”

킬리울은 심각하게 팔짱을 끼고 벽을 향해 서 있다가 의아하게 돌아섰

“무슨 일이지?”

켈즈는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킬리울에게 다가가 자신이 본 것을 속삭였다.

그러자 킬리울의 적갈색 눈동자가 심상치 않게 깊어졌다.

그가 품었던 의혹이 이제야 확실해졌다.

“어쩐지 힐리베리를 찾아왔다 싶었더만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었잖아?”

“정말로 그 사람들이 신의 대리인 같은 거라도 되는 거 아닙니까?”

“…….”

킬리울은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

북부의 영주가 되겠다고 나타난 귀족 남자와 여자는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압도적인 위압감과 기운이 그의 짐승 같은 육감으로 느껴졌다.

그러니 더욱더 그들이 북부에 해를 끼칠 사람들인지 아닌지 똑똑히 두고 볼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동료가 될 마음이라면 괜찮겠지만, 적이라면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킬리울은 그만 켈즈에게 눈짓했다.

“저거나 갖고 나가라.”

“예? 힐리베리 말입니까?”

켈즈는 킬리울이 가리킨 곳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래. 아이와 여자부터 하나씩 나눠 줘.”

“그, 그래도 저런 귀한 걸…….”

힐리베리는 모든 야인들이 어릴 때부터 전설로 듣고 자라며 꿈에 그리던 열매였다.

그러나 그 열매를 직접 먹어 본 사람은 수백 년 전 어느 야인 말고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영주 부부가 힐리베리를 가져왔다는 소식에 다들 들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두 번 묻지 말고 가져가라.”

“……아, 알겠습니다. 킬리울 님 것도 곧 준비하겠습니다.”

“난 됐다. 아까 하나 먹었다.”

“그래도 킬리울 님께서 더 드셔야-.”

“단 거 안 좋아한다.”

“……알겠습니다.”

켈즈는 그만 힐리베리를 갖고 조용히 물러났다.

야인들에게 전설의 명약을 맛보게 해 주려는 수장의 의도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킬리울 님의 은혜에 감복하며 무척 행복해할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졌다.

킬리울은 다시 벽을 보고 서서 영주 부부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갔다.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비범한 힘을 가졌으니 동료가 될 조건은 충분했지만, 만약 적이라면 끝까지 맞설 생각이었다.

[등장인물 일람]

[킬리울 칼라니쉬]

[남, 나이: 26세]

[칼라니쉬 산에서 유래된 칼라니쉬 성을 가진 야인족의 수장. 야인족들의 수장을 대대로 킬리벡스라고 칭한다.]

[킬리벡스는 전대 킬리벡스의 자식 들 중 ‘뜨거운 힘’을 물려받은 사람이 승계한다.

뜨거운 힘은 마력의 일종이며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초인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한다.]

[북부를 지키려다가 악센에 의해 야인족 모두가 몰살당했다.]

[전투력: 레벨 99]

[주 무기: 맨주먹과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강철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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