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118화
그래서 그렇게 세상 두려울 것 없이 폭정을 휘두른 거구나.
황제는 그렇다 쳐도 황후까지 그런 비현실적인 힘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알렉은 살짝 턱을 매만지더니 심상치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황제의 짓일 겁니다.”
“황제요? 아…….”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가 자신의 힘을 황제에게 받았다고 했던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리고 황후는 죽었죠.”
“……죽었어요?”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는데 죽었다니.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본 황후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실처럼 위태위태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나나 메리엔 같은 죄 없는 사람들을 위협할 일이 없어 다행이면서도 조금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를 죽이려 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으니까.
“어쩌다 죽었어요?”
내 말에 그는 생각을 하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대답했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황후를 황궁으로 돌려보냈죠. 밖에서 발견되면 무슨 일로 이렇게 됐는지 황제가 추궁할 테니까요. 그렇다고 황후를 그 자리에서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여러모로 걸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메리엔과 당신이 의심받을지도 모르고, 그게 당신을 죽이려 한 죗값도 아닌 것 같아서요.”
“잘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황후가 지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황궁에서 나왔죠. 제가 마지막에 봤을 때는 희미하게나마 숨은 쉬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결국 죽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 것 같네요…….”
문득 나는 황제가 자신을 버렸다는 황후의 말을 떠올렸다.
설마 그래서 목숨을 버릴 생각으로 날 죽이려 했던 걸까.
그러나 황후는 이미 죽어 버렸고, 나와 메리엔이 무사하니 이 이상 더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나요? 황제가 당신 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는 거요.”
내 물음에 그는 살짝 망설이더니 이윽고 흔쾌히 대답했다.
“……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후까지 그랬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황제에게 받은 마력이라 티가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황제에 비하면 무척 약한 수준이었지만요.”
“……그랬군요.”
나는 조금 걱정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단순한 폭군인 줄 알았던 황제가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황후에게 공격받았을 때, 그 기운이 한밤중에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이라 덜컥 겁이 났었다.
그런데 황제는 그보다 더 강한 마력을 갖고 있다니.
황제를 무너뜨리겠다고 목표를 세웠던 것이 조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음의 준비를 더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썹을 조금 안타깝게 휘며 알렉의 눈을 다시 응시했다.
“……알렉.”
내 손을 잡은 그의 손등을 나의 다른 손으로 감쌌다.
“당신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당신이 이렇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난 아무 희망도 갖지 못했을 거예요.”
“루이제…….”
“당신이 강해지는 일에 내가 필요해서 정말 다행이기도 하고요. 내가 뭐라도 도울 수 있잖아요.”
“그건…….”
알렉은 뭐라고 말하려 입술을 뗐다가 다시 다물었다.
이윽고 옅은 한숨과 함께 일어서더니 테이블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상자를 풀어 보니 내가 아는 물건이었다.
“……어? 그거.”
내가 황후에게 던졌던 것과 똑같은 붉은 머리핀이었다.
설마 그사이에 새로 산 걸까?
“새로 드리겠습니다.”
그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직접 내 머리에 핀을 꽂아 주었다.
그 손길과 가까워진 거리에 괜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핀을 다 꽂은 그가 살포시 내 머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의 품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내가 늘 듣고 싶었던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앞으로는 이걸 쓸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루이제.”
나도 두 팔 가득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구해 줘서 고마워요.”
* * *
알렉은 루이제가 다시 잠드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초조했는데,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아니, 실은 아직도 철렁했던 가슴이 안정되지 않았다.
‘루이제가 공격을 당하다니.’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라 알렉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늦지 않게 루이제를 구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방직 공장에서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저택에서 쉬고 있을 줄 알았던 루이제는 이미 나간 뒤였다.
메리엔이 보낸 편지는 그녀의 침실 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알렉은 무심코 그 편지를 펼쳐 보았다.
그런데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둘이 따로 만나자고?’
무슨 일일까?
이미 출발한 지 좀 되었다는데, 데리러 가는 게 좋을까?
별일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알렉은 혹시 모르는 마음에 루이제가 갔다는 곳으로 향했다.
마차는 느리니 스킬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벌어진 상황에 그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황후가 바닥으로 쓰러지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약했나 봐. 이제 그만 끝내자……. 난 도저히, 더 못 견딜 것 같아.’
‘아니. 난, 안 죽어……. 아악!’
그 고통에 찬 루이제의 비명.
가냘프고 날카로운 소리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그의 심장도 날카롭게 베였다.
그는 단숨에 황후의 마력을 억제했다.
분노가 솟구친 탓에 순간적으로 힘이 조절되지 않아 황후의 몸이 날아가 버렸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던 그 순간의 기분이 살아나는 것 같아 알렉은 왼쪽 가슴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정말로 루이제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심장이 뿌리째 뽑히는 것 같았다.
그의 새까만 눈빛이 어느새 차가운 빛을 밝혔다.
‘캐스다인 경.’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그의 부름에 캐스다인의 음성이 금세 돌아왔다.
알렉은 이쯤 되면 끝났을 것 같은 일을 물었다.
‘황후의 영혼은 찾았나?’
황후의 사망 소식이 들리자 알렉은 가장 먼저 캐스다인에게 그녀의 영혼을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미 죽었어도 볼일이 남아 있었다.
캐스다인은 충직하게 그가 만족스러워할 만한 대답을 했다.
[예.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지붕 위에서 만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캐스다인과의 연결을 끊은 알렉은 저택의 천장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의 방 테라스의 커튼이 뒤늦게 휘날렸다.
지붕 위에서 수도를 내려다보니 깊은 밤이라 집집마다 불을 끄고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서늘한 기운과 함께 캐스다인의 찢어진 망토 자락이 부유하며 나타났다.
그 아래에는 창백한 낯빛의 황후가 무릎이 꿇린 채 두 손이 결박되어 있었다.
그를 응시하는 황후의 눈동자는 더 없는 충격으로 떨리고 있었다.
“고, 공작?”
알렉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찬찬히 황후를 살펴보았다.
황후는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불현듯 사납게 그를 쏘아보았다.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용케도 힘을 숨기고 있었군!”
알렉은 황후를 유심히 살펴보던 눈길을 거두며 옅은 한숨으로 물었다.
“어쩌다 죽었지? 내가 살려서 보냈는데.”
“그건 알 필요 없다. 어서 날 풀어 줘!”
“뭐 그쪽의 사정이야 곧 나한테 술술 털어놓게 되겠지.”
“뭐?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유령이 된 황후는 친절하고 자애로웠던 가면을 아예 벗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황후다운 위엄은 남아 있었다.
알렉은 그녀에게 자신의 의도를 알려 주었다.
“너에게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주려고 한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어서 날 풀어 줘! 왜 내 영혼을 불러낸 거야! 난 이만 죽고 싶다고!”
그녀가 울부짖듯이 애원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다시 죽여 줘. 난 살고 싶지 않아. 죽지 않으면, 계속 생각난단 말이야. ……그분의 눈빛, 목소리.”
“…….”
“잊고 싶어. 너무 차가워. 제발 날 보내 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황후가 숨이 넘어갈 듯이 목멘 소리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알렉은 그녀의 애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여자를 건드리면 봐주지 않는다고.”
“……안 돼. 으아악!”
황후가 결박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런 식으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루이제가 또 위험에 빠지게 될까?
알렉은 황후의 등장인물 소개를 다시 한번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그녀가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러나 황제는 황후의 마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원작에서 황제는 황후가 병으로 죽은 후 다른 황후를 또 들일 틈도 없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황후가 황제에게 마력을 받았다는 내용은 원작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는 설정이었다.
그만큼 악센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었다.
“널 다른 존재로 만들어 주지. 황제에게 가졌던 충성심보다 더 따르게 될 것이다.”
“……뭐?”
“혹시 모르지. 앞으로 루이제를 천 번쯤 지켜 준다면 내 생각이 바뀌어서 널 풀어 줄지도. 내 여자를 죽이려고 한 사람을 나도 가까이 두고 싶지 않거든.”
“대체 그게 무슨 말…… 싫어. 내가 왜 그 여자를! 싫다고……!”
경악한 황후가 그를 피하려는 듯 뒤쪽으로 물러났다.
원작보다 훨씬 이른 죽음이었다.
어차피 곧 다른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 그와 루이제에게 순종할 것이다.
그동안 황제와 있었던 일을 공유받고 다시 소멸시킬 수도 있었다.
어쨌든 알렉은 황후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낮게 지시어를 읊었다.
“나의 사역령이 되어라.”
“……아악!”
띠링.
[사역령 포섭에 성공했습니다!]
[보유 사역령 3/5]
[축하합니다!]
[제국의 특급 셀러브리티 로열 패밀리: 황후를 포섭한 보상으로 다량의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
[특별 보상]
[경험치가 20억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