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159화
* * *
한편 황궁 안.
보좌관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해리엇과 알렉시스의 싸움을 숨도 못 쉬고 지켜보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꼼짝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불꽃이 살벌하게 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황제가 아끼는 기사단장이라 그런지 파괴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그런 해리엇을 상대로 몇 수나 버티고 있는 저 사람이 설마…….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떠올리는 와중 누군가가 힘겹게 소리 냈다.
“저, 저 사람이 정말 브렌트 공작, 아, 아니 윌스브룩 자작이 맞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그제야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탄식을 쏟아 냈다.
그들은 오늘 여러 번 말문이 막혔다.
황제 궁이 무너졌다가 다시 마법처럼 원상 복구가 되었고, 누군가 빛처럼 나타나 황제를 패대기친 데다가 이번에는 워든 백작을 상대로 불꽃을 튀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바로 윌스브룩 자작이라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황제가 초월적인 권능을 보여 준 것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은 알렉시스의 모습에 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순둥이 알렉시스에게 어떻게 저런 힘이?!
“말도 안 돼!”
“그냥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 아닙니까?”
“아까 폐하께서 워든 백작에게 윌스브룩 자작을 죽이라고 한 말 못 들었나?”
“윌스브룩 자작이 저럴 리가 없는데!”
마침 앤드류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심각하게 창밖을 주시했다.
“맞습니다.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는 윌스브룩 자작, 알렉시스 마이어스입니다.”
“뭐, 뭐라고?!”
귀족들이 앤드류를 돌아보았다.
앤드류는 호위대처럼 분장하고 있던 수염을 떼어 내고 무거운 모자도 벗어 내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동시에 놀란 숨을 들이켰다.
“앤드류 몬델리이 백작?!”
“백작이 왜 여기에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이오!”
앤드류는 조금 결연한 눈으로 알렉시스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황궁에 루이제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황궁의 호위대로 위장 잠입했다.
루이제를 구출하는 일에 어떻게든 가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알렉시스가 먼 북부에 있어 연락이 빨리 닿지 않아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나타날 줄이야.
앤드류 또한 알렉시스의 힘이 믿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금세 납득했다.
북부에서 알렉시스가 윌스브룩 성을 찾아내고 전설의 명약인 힐리베리를 구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이제야 다 이해가 갔다.
알렉시스는 이미 더 이상 과거의 알렉시스가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 훨씬 이상으로 강해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들 부부가 반역을 다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콰쾅!
알렉시스의 검이 워든 백작의 검을 내리친 순간, 그 빛이 앤드류의 눈동자에도 비쳤다.
앤드류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힘내게, 알렉시스. 자네는 분명 황제를 처단하고 루이제를 구할 거야.”
“……!”
앤드류는 루이제를 따라갔지만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명 침실 밖을 나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봤는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감쪽같이 보이지 않았다.
황제가 데려간 걸까?
그러나 앤드류는 알렉시스가 루이제를 구하고 끝내 황제를 물리칠 거라고 굳게 믿었다.
“화, 황제 폐하를 처단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일 것 같은가?!”
사람들이 거듭 경악하여 외쳤지만 앤드류는 자신의 믿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알렉시스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도 더 이상 예전의 릴트 제국이 아니게 되겠죠. 세상이 바뀌는 겁니다.”
“……!”
확신에 찬 앤드류의 말에 사람들이 또다시 놀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알렉시스가 해리엇의 검을 소멸시켰다.
* * *
알렉시스는 빠르게 기드온의 기억을 훑어보았다.
성의 지하에서 훌쩍이던 엘로이를 리디트가 토닥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루이제가 이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하실에 숨어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드온은 그의 지시대로 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리디트와 함께 있었다.
알렉시스는 금세 기드온의 기억을 꺼 버렸다.
어떻게 저 셋이 함께 여기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그는 얼른 루이제에게 가야 했다.
“……기드온, 엘로이. 조심해라. 황자 전하를 잘 지켜 드려.”
“해리엇은 나한테 맡겨!”
“으아악!”
엘로이의 외침에 기드온이 앞발로 해리엇을 후려쳤다.
해리엇은 비명을 내질렀고, 리디트 황자는 엘로이에게 매달린 채 응원이라도 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짧게 황자를 바라본 알렉시스는 그들을 뒤로한 채 돌아섰다.
기드온이 있는 이상 해리엇이 엘로이와 리디트를 위협하진 못할 것이다.
‘스킬. 광속.’
루이제는 어디 있지?
그가 빠르게 허물어진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 올리비아에게서 신호가 왔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올리비아가 어딘가로 향했다.
알렉시스는 올리비아의 눈을 통해 길을 확인하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오래된 성이 나타났다.
더 이상 황실에서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성 주위에는 어김없이 악센의 결계가 쳐져 있었다. 유독 짙고 단단한 결계였다.
‘스킬. 고급 남편의 간지럼.’
알렉시스는 망설임 없이 성을 향해 스킬을 날렸다. 그러자 금세 결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루이제.
설마 그가 늦은 건 아닐까?
무사해야 하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터질 것처럼 뛰었다.
문마다 겹겹이 결계가 쳐져 있어 알렉시스는 결계와 함께 문들도 모두 날려 버렸다.
콰콰쾅.
육중한 성이 다 무너질 듯한 충격과 굉음이 연거푸 귀를 찢을 듯 울렸다.
눈 깜짝할 새에 알렉시스는 성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루이제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든 순간,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넓고 둥근 천장으로 이루어진 공동.
사방에 차갑고 어둡게 배어 있는 마력.
“알렉시스?”
누군가의 서늘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알렉시스는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 어느 것도 그의 눈이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루이제만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알렉?”
“루이제.”
낮게 그녀의 이름을 읊은 그는 빠르게 루이제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알렉!”
반가움과 놀라움, 걱정과 안도가 뒤섞인 채 그녀가 외쳤다.
그가 아는 눈부신 생김새와 보랏빛 눈동자, 은빛 머리카락.
루이제가 마침내 그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무사했구나.
알렉시스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그녀가 무사하여 정말로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리 말하려 그가 입술을 뗀 순간이었다.
“무사했군요, 당신.”
“…….”
루이제가 글썽거리며 제단에서 내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심장을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의 눈동자가 크게 한 번 일렁였다.
그가 그녀를 걱정한 만큼 그녀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절감되었다.
서로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왜 전에는 몰랐을까?
알렉시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목소리가 다 떨릴 만큼 심장이 뛰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루이제.”
“…….”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가 차원을 넘어서.
그 얼마나 하고 싶던 말이었던가.
그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는 그의 염원과 약속이 이제야 이루어졌다.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하며 괴로워 했었는지 그의 피부와 영혼으로 처절하게 느껴졌다.
기억 포션 그 이상의 감정과 기억들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정말.”
“…….”
루이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정말로 당신이에요……?”
“…….”
“이제 기억이 돌아온 건가요?”
알렉시스는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당겨 와락 껴안았다.
“……!”
“……루이제.”
이 부드럽고 애틋한 품과 감촉.
처음 이 세계로 온 이후 그녀를 수없이 안아 보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가 원했던 포옹이었다.
“당신이 제가 있던 세계에 다녀간 뒤로 기억을 잃었습니다. 더 강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억을 버려야 했죠. 이제야 되찾아서, 당신이 삶을 버릴 만큼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알렉.”
루이제가 안도하듯이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정말 당신이군요.”
“…….”
알렉시스도 그녀를 더 바짝 감싸 안았다.
그의 불행을 나눠 가져야 했다는 사실 말고는 완벽한 여자.
그래서 그는 그녀를 두고 목숨을 끊었지만, 이제는 루이제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당신이 나와 함께 오랫동안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에요.’
‘당신은 항상 내 소중한 남편이었어요. 너무 늦게 말해 줘서 미안해요.’
“……다신 당신을 혼자 두지 않겠습니다.”
알렉시스는 앞으로는 이 품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 그녀를 빼곡하게 감쌌다.
이제야 그는 비로소 그녀와 함께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뭣들 하는 거야. 루이제에게서 떨어져라, 알렉시스.”
문득 돌아본 곳에는 악센이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