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162화 (162/168)

남편이 빙의한 주인공이다 162화

“……!”

황제의 치명적인 약점?

그런 것도 알고 있었어?!

가슴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우르르, 시커먼 하늘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저 경악스러운 모습이 릴트 제국의 전역을 어둡게 뒤덮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제국민들은 지금쯤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을까?

그들의 두려움을 생각하니 눈앞이 다 아찔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황제가 끔찍한 존재라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폭군인 줄 알았더니 악마, 아니 재앙이었잖아?

황제의 괴상한 목소리가 다시 온 세상을 가득 메웠다.

“치명적인 약점? 그런 걸 네놈이 알 리가 없지. 어디 마음껏 날 죽여 봐라, 알렉시스. 그 전에 네놈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네 심장. 그것만 찾아 베어 내면 죽는 게 아닌가?”

“…….”

불현듯 하늘의 형상이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알렉의 말이 적중한 모양이었다.

그에게 닿아 있었던 황제의 두 눈이 문득 땅 위를 넓게 내려다보았다.

“소용없어. 네놈이 내 털끝 하나 건드리기 전에 내가 이 세상을 다 삼켜 버릴 것이다. 오늘 여기서 모두 다 죽는 거야.”

“끝까지 사람들 목숨을 개미만도 못하게 여기는군.”

알렉이 낮게 혀를 찼다.

나는 증오와 경멸을 담아 놈을 쏘아보았다.

설령 놈에게 죽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심지까지 놈이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거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왔다.

“이런다고 당신이 얻는 게 뭔데. 사람들이 고통받는 게 즐거워? 다 죽고 혼자만 남고 싶은 거야?”

“…….”

놈의 눈길이 나에게 닿았다.

분노한 것처럼 먹구름이 굉음을 내며 크게 꿈틀거렸다.

그 굉음보다 더 거대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렸다.

“어차피 나는 혼자였다. 거기서 무력하게 내 존재를 경외해라. 내가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모두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마.”

결국 저런 거였어?

세상을 제멋대로 지배하고 싶어서?

빗줄기가 내 눈가를 적셨다.

새카만 하늘이 점점 짙어지고, 희미했던 달빛조차 완전히 가려졌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가득 차올랐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 구름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몸을 뒤트는 소리,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내 귓가를 찢을 듯이 장악했다.

세상이 종말의 날이라도 맞이한 것 같은 광경이라니.

불현듯 내 머릿속으로 식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엘로이와 시어머니, 그리고 리디트 황자와 여러 사용인들은 잘 있을까?

저 모습을 보고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텐데.

내가 모두와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캐스다인 경.”

문득 알렉이 누군가를 낮게 부르더니 짧은 빛이 번쩍였다.

캐스다인이라고 불린 존재가 온몸으로 빛을 뿜어내며 유유히 하늘로 올라갔다.

이윽고 그의 검이 오묘한 빛을 뿜어냈고, 그 빛이 알렉을 비추었다.

그에게서도 영롱한 푸른 빛이 차츰 발산되고 있었다.

‘……알렉.’

나는 두 손을 세게 붙잡았다.

싸늘한 소름이 피부에 돋아났다.

하늘에서 지진이 나는 듯한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고, 회오리 모양으로 점점 구름이 어둡게 겹치기 시작했다.

그 안에 무언가 검은 기운이 고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황제의 마력입니다.”

내 목소리에 올리비아가 대답했다.

이윽고 올리비아가 다시 소리 냈다.

“다른 데로 피하겠습니다.”

채 대답하기도 전 을리비아가 나를 붙잡더니 어딘가로 단숨에 움직였다.

황제의 형상에서 조금 멀어진 듯했지만, 어차피 놈의 시야 안이었다.

불쑥 알렉이 휙 날아올랐다.

무언가를 발돋움 삼아 디디며 차츰 높게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에 사로잡혀 눈을 뗄 수 없었다.

‘황제의 심장을 찾으면…… 죽일 수 있다고?’

어디 있는 거지?

나로서는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방금 전 목이 베였던 황제의 시신을 찾아봤지만 눈앞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심장을 찌른 건 아니었는데, 정말로 그 육신은 죽은 게 맞을까?

재차 하늘을 올려다본 나는 헉 숨을 들이켰다.

무언가가 구름 사이에서 튀어나와 알렉을 붙잡으려고 했다.

알렉은 그 위를 훅 뛰어넘더니 다시 회오리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은은히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이 아니었다면 그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황제가 연이어 그를 공격했지만, 그의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스치지도 못했다.

이윽고 알렉이 황제의 얼굴을 한 형상과 마주 섰다.

두 눈이 마주친 짧은 찰나, 그는 망설임 없이 즉시 검을 쳐올리며 달려들었다.

파바바바박.

몇 번이나 검이 쇄도한 건지 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속도가 빨랐다.

황제의 형상이 알렉의 검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뒤늦게 일그러졌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는 입술로 황제가 웃었다.

“하하하. 소용없다고 했잖아, 알렉시스 “

알렉은 황제의 형상을 뚫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놈의 심장을 찾으려는 듯했다.

회오리 중앙에 고이고 있는 마력은 어느새 아까보다 훨씬 크고 짙어졌다.

필요한 만큼 모아 한 번에 퍼뜨릴 작정인 걸까?

“내 심장은 너 따위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다.”

“…….”

지금까지 우리 제국의 황제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 저런 괴물이었다니.

제국 전역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넌 절대 알아낼 수 없을 거다.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어.”

“아니야. 알렉은 알고 있어.”

내가 작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리디트 황자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었고, 윌스브룩 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기도 했다.

절대 모를 것 같은 여러 일들을 알렉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새집을 구해 주고, 나와 식구들을 몇 번이나 지켜 주었다.

이번에도 분명히 황제의 심장을 찾아 처치할 것이다.

내 주위를 휩쓰는 폭풍에도 나는 흔들림 없이 서서 알렉을 지켜보았다.

그때 섬뜩한 크기로 회오리치던 구름이 갑자기 멈췄다.

“자, 이제 모두 사라져라. 다 죽어 버리는 거야.”

황제의 울부짖음에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놈의 마력이 순식간에 장막처럼 넓게 퍼졌다.

태풍에 휩쓸린 새들이 그 어두운 장막에 닿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귓가를 자극하던 소음들마저 멍하게 들릴 만큼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저게 정말로…… 흔적도 없이 생명을 소멸시키는구나.

황제의 마력이 퍼지는 속도가 내 눈으로 다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순식간이었다.

놈의 마력은 정말로 한순간에 세상을 다 집어삼킬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참혹한 어둠을 뚫고 문득 눈 부신 빛 한 줄기가 쏜살같이 내려왔다.

모든 게 눈 깜박할 찰나였다.

황제의 장막을 앞질러 땅으로 내리꽂혔다.

눈앞이 번쩍했다.

“……!”

헉 놀란 내가 뒷걸음질 친 순간, 올리비아가 나를 붙잡고 재빨리 물러났다.

뭐지?

눈을 깜박였으나 강렬한 빛에 사로 잡혔던 시야는 금세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무척 정결하고 맑았던 빛.

나는 그게 알렉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황제의 형상이 치명타라도 입은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빠르게 범위를 넓혀 가던 장막 또한 가만히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숨을 죽이자 알렉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 심장 간수는 안 보이는 곳에 잘했어야지.”

“……!”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에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렉이 저 앞쪽에 서서 무언가 커다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저게 뭐지?

전동건? 기계식 총?

갑자기 어디서 저런 게 난 거야?!

그 밑으로는 목이 베였던 황제의 시신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시신의 가슴에 구멍이 나 있었다.

심장이 있어야 할 왼쪽 가슴이었다.

땅바닥에 처박혀 있던 황제의 머리가 스르륵 돌더니 눈을 크게 떴다.

“……!”

경악한 내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저 시신, 안 죽은 거였어?

목이 날아갔는데도?

그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졌으나 특유의 붉은 눈빛만큼은 시리도록 선명했다.

“뭐야. 날 속인 거냐?”

“아는 척을 했으면 네가 심장을 지키려 도망을 쳤겠지.”

“거지 같은 놈. 끝까지 넌 나에게 거슬리는구나.”

“네가 안도하고 기고만장한 탓이다.”

“개자식…… 진즉에 널 죽였어야 했는데…….”

“…….”

핏발이 날카롭게 선 황제의 두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뭐라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황제는 정말로 목을 베어도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심장만 찌르지 않는다면 몸이 두 동강이 나도 생명이 붙어 있다니.

행여나 알렉에게 즉사당할까 봐 몸을 해쳐도 소용없다고 수를 쓴 듯했다.

그런데 이제.

알렉이 놈의 심장을 처치했다.

그 사실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쿵쾅 난동을 부렸다.

살면서 이토록 크게 가슴이 박동한 적이 있었을까?

“잘 가라, 악센.”

“…….”

알렉이 황제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빛나는 총구를 황제의 코앞에 드리웠다.

그 순간 온 세상이 숨을 멈춘 듯했다. 나 또한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정말로.

정말로 황제가 죽는구나.

드디어 사라지는 거야.

내 모든 불행의 원흉.

고통의 온상.

원수라는 말도 부족한 나와 내 남편의 세상의 재앙.

바로 그런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내 두 눈에 또렷하게 담기 위해.

나는 두 손을 굳세게 말아쥐며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불과 몇 달, 몇 년 정도 시달린 게 전부이지만, 알렉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을까?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알렉이 총구를 고쳐 들자 빛나는 마력이 그를 휘감았다.

진정한 소멸을 직감한 듯 황제가 외쳤다.

“안 돼-!”

마치 총탄과도 같은 마력이 쏘아져 나가자 황제의 육신이 모두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