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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는 내가 차지한다-7화 (7/124)

# 7

봄의 정원에는 아가씨들이 모여 있었다. 이엘은 저벅저벅 걸어갔다. 자신이 걸어가니 아가씨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어서들 와.”

이 얼마나 흐뭇한 일이란 말인가. 그는 웃으면서 아가씨들을 상대했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아가씨들이 갑자기 모여들었다.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여기저기서 꾀꼬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외모도 아름다운데 목소리까지 아름다운 아가씨들이었다. 그녀들은 이엘을 보고 방긋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얼른 찜해 두었던 과자를 낚아챘다.

이엘이 걸어가면 아가씨들이 인사했고, 그가 지나가면 아가씨들은 얼른 과자로 배를 채우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이엘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비올레와 같이 있다 보니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 맨 처음 그에게 인사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거의 끝에 가서야 아리스는 이엘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비올레도 옆에서 같이 인사를 했다.

‘나도 과자 먹고 싶어.’

이엘 뒤에서 과자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종과 시녀들이 과자를 채우고 있었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녀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비올레와 아리스 역시 배가 고팠다. 얼른 그에게 인사하고 과자를 먹고 싶었다.

“아, 그대는!”

비올레 앞에서 이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사실 아리스가 봐도 비올레가 여기서 가장 아름다웠다. 다른 아가씨들도 아름다웠지만 비올레를 따라오지 못했다.

“비올레 디 에셀입니다.”

그녀에게 다가온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는 가운데 아리스는 얼른 그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아가씨!”

루진이 그녀를 따라갔다.

“말리지 마!”

과자! 꿀이 들어가고 초콜릿이 들어간 달콤한 과자!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행복감을 주는 과자가 필요했다.

황태자에게 잡힌 비올레에게는 미안하지만 배고픔이 먼저였다. 그녀는 얼른 찜해 둔 과자를 찾았다. 다른 영애들이 과자가 남은 것을 발견하고 눈에 불을 켰다.

아리스도 얼른 달려가 과자를 집었다. 다른 영애들도 달려왔지만 그녀가 먼저 잡았다.

“잡았다!”

드디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다른 영애가 달려오다 그만 미끄러져 아리스 옆으로 쓰러졌다. 아리스도 덩달아 넘어졌다.

“꺄아아!”

그 덕분에 과자가 땅에 떨어졌다. 과자는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 사라졌다.

“미안해요!”

쓰러진 영애가 아리스를 일으켜 주었다. 아리스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내 과자!’

과자가 없어졌다. 얼른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먹고 싶었던 과자는 이미 동이 난 뒤였다. 과자가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시녀들이 조금씩 과자를 가져다 놓고 있었다. 속도에 맞춰 음식을 날랐다간 연회 도중에 음식이 동이 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조심하셨어야죠.”

루진이 다가왔다. 아리스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과자가 떨어진 것을 보고 쓰러진 영애가 미안하다고 계속 사죄했다.

“아니에요.”

“하지만.”

“괜찮지 않지만, 영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 아리스를 보던 루진이 방긋 웃었다.

“여기 있어요.”

“응?”

루진의 손에 과자가 몇 개 있었다.

“아가씨가 아까 보던 것 위주로 덜어 두었어요.”

“루진!”

“네, 아가씨.”

“사랑해.”

과자를 먹을 수 있다. 배고픔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녀는 루진이 준 과자를 야금야금 먹었다. 옆에서 주인을 위해 과자를 챙겨 둔 시녀들은 주인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과자를 먹던 아리스는 이엘을 찾아보았다. 비올레가 마음에 든 듯 계속 그녀 옆에 있었다.

‘역시 금발이 취향이었어.’

비올레가 튀다 보니 황태자가 다른 영애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리스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과자를 좀 남겨둘까.’

이대로 가다간 과자가 동이 날 것 같다. 비올레가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보다 한 끼 더 굶은 것 같던데. 물론 비올레 시녀가 챙겨 두긴 했겠지만 양이 부족할 것 같았다.

잠시 후 황태자가 비올레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다른 영애들과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비올레가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아리스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배고프죠?”

그녀의 말에 비올레가 울상을 지었다.

“정말이지 떼어 놓고 싶었어요.”

인사만 하고 맛난 걸 먹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올레의 슬픈 얼굴에 아리스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와, 예쁜데 슬퍼하니 더 슬퍼 보인다.’

이것이 외모 후광이란 말인가. 비올레의 시녀가 다가와 과자를 주었다. 과자를 먹는 그녀에게 아리스가 과자를 주었다.

“별거 아니지만 드세요.”

“어머.”

“나보다 더 배가 고플 것 같아서요.”

비올레가 감동 어린 눈으로 아리스를 보았다.

“고마워요.”

“아니, 뭘요.”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죠?”

그녀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 하나로 미인을 꼬시다니.’

황태자가 이 방법을 알았다면 비올레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황태자 전하께서 비올레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녀의 말에 비올레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황태자 전하가 별로예요.”

“왜요?”

“정부도 두고, 여자 아낄 줄도 모르잖아요.”

열세 살의 입에서 거침없는 말이 나왔다. 아리스는 순간 영혼의 쌍둥이를 만난 것 같았다. 배를 채운 몇몇 영애들이 이엘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이엘은 그녀들과 같이 있으면서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아하.”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스와 비올레는 동시에 중얼거렸다.

“여자를 좋아하시네.”

“좋아하는군.”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안 들어요.”

비올레가 먼저 말했다. 그러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이엘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로 남자 보는 관점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둘은 조용히 구석으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자고로 남자는 한 여자만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비올레는 에셀 공작의 평소 가르침에 따라 남자를 판단하고 있었다. 그 말에 아리스도 동의했다.

“저도 그리 생각해요.”

남자 주인공은 카리스마가 있거나 뭔가 대단한 남자인 건 아니었다. 그냥 여자를 아낄 줄 알고 다정한 남자였다. 물론 능력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미래에 만나게 될 남편을 생각하며 아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요.”

그녀의 말에 비올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떤 남자인가요?”

“전쟁터에 사는 남자예요.”

아직은 그가 전쟁터에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작위를 받지 않았지만 여론이 그에게 작위를 줘야 한다는 쪽으로 몰려 있었다.

오늘 아침 신문에도 그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 중이었다.

“오란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그 분요.”

“아.”

비올레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평민인데 괜찮아요?”

귀족은 귀족을 찾기 마련이다. 그녀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지고 싶어요.”

“음, 그럼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요?”

“편지요?”

“네, 그분께 부담스럽지 않게 편지를 써서 교우 관계를 다지는 건 어떨까요?”

편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리스는 그녀에게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고 좋은 방법까지 알려 주니 말이다.

그래, 결혼하기 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지. 그와 미리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여기 있었군.”

이엘이 비올레를 발견하고 천천히 걸어왔다. 비올레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졌지만 이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얼른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네, 전하.”

“그런데 그 옆은?”

같이 인사를 했어도 비올레가 워낙 눈이 부셔 아리스는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황태자는 금발이 취향이었다. 아리스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리스 호리슨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인사를 했다. 그러자 황태자의 얼굴에 이채가 어렸다.

“그대가 아리스 호리슨이군.”

“저에 대해 아시나요?”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셨지. 비올레 디 에셀과 아리스 호리슨에 대해서 말이야.”

역시 황제는 자신을 찍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자신을 선택하게 하도록 흘러가게 하지 않을 것이다.

“둘이 친한 모양이군.”

“마음이 잘 맞아서요.”

비올레가 말하자 이엘이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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